2026년 하반기 놓치지 말아야 할 국내 전시 8
하반기 미술계를 빛낼 전시들
올 하반기 미술계가 가장 주목할 전시는 무엇일까. 꼭 봐야 할 전시 8선을 모았다.

2026년도 어느덧 반환점을 지났다. 미술계는 이제 곧 분주해진다. 프리즈 서울을 전후로 세계적 거장들의 개인전이 잇달아 개막하고,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회고전도 함께 열린다. 공연과 건축을 넘나드는 공간 예술가부터 한국 단색화의 거장, 독일 신표현주의의 화가, 개념미술의 선구자, 미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화가까지. 올해 하반기,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여덟 개를 소개한다.
무대를 작품으로 만든 공간 예술가, 에스데블린 개인전
기간 2026.08.20 – 2027.01.31
장소 푸투라서울


올해 하반기 화제의 전시 중 하나는 단연 에스 데블린(Es Devlin)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그의 이름은 낯설어도 작업은 한 번쯤 봤을 가능성이 크다. 런던 올림픽 폐막식, 슈퍼볼 하프타임 쇼, 비욘세와 아델, U2의 공연 무대까지.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공연과 전시, 공공 프로젝트를 넘나들며 ‘공간은 어떻게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가’를 탐구해왔다.

에스 데블린은 무대를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만든 인물이다.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을 수상했으며, 대영제국 훈장(CBE)을 받는 등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푸투라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가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대표 프로젝트와 함께 전시 공간의 구조에 맞춰 새롭게 구성한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간과 작품, 관람객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에스 데블린이 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공간 예술가로 평가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술뿐 아니라 건축, 무대디자인, 전시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전시다.
변화를 거듭한 단색화 거장, 박서보 회고전
기간 2026.08.24 – 10.18
장소 국제갤러리 K1·K3·한옥

박서보(1931~2023)는 한국 단색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다. 그를 ‘단색화의 거장’이라는 한 문장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국제갤러리 회고전 〈변하는, 변하지 않는〉은 작고 3주기를 맞아 그의 50여 년 작업을 ‘변화’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조명한다.


반복과 수행의 회화로 알려진 묘법 시리즈 안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재료와 화면을 바꾸며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확장해왔다. 국제갤러리 K1, K3, 한옥 전시장 전체를 채우는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초기 연필 묘법부터 2023년 마지막 신문지 묘법까지 작가의 작업 변화를 따라간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평생 변화와 일관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온 박서보의 예술 세계를 다시 읽는 시간이 될 것이다.
거꾸로 선 형상 너머에 담긴 삶과 예술, 게오르그 바젤리츠 회고전
기간 2026.08.13 – 12.27
장소 세화미술관

독일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2026)는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 그린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을 넘어 전후 독일 사회와 역사적 트라우마를 응시해온 치열한 회화의 기록이다. 화이트 큐브와 가고시안 등 세계 주요 갤러리가 전속으로 다뤄온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4월 세상을 떠났다.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 타계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첫 전시로, 바젤리츠의 예술 세계를 회고한다.


전시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노년기의 대표 연작까지 60여 년의 궤적을 아우른다. 인간의 신체와 독수리 모티프, ‘리믹스(Remix)’ 연작, 말년의 ‘골드 페인팅’까지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 세계를 따라간다. 거꾸로 선 화면은 기존의 회화 질서를 흔드는 장치이자, 익숙한 대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독일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치기 어려운 전시다.
13년 만에 돌아온 집의 예술가, 서도호 개인전
기간 2026.08.27 – 2027.02.09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도호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2013년 서울관 개관전 이후 처음이다. 당시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머물던 로드아일랜드 주택과 성북동 한옥을 겹쳐 놓은 설치작품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을 선보이며 서울관의 시작을 함께했다. 13년 만에 다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돌아온 그는,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 기억과 정체성을 탐구해온 지난 30여 년의 작업 세계를 선보인다. 지난해 런던 테이트 모던 개인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전을 연다.


서도호의 작업에서 ‘집’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반투명한 천으로 구현한 집과 공간은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억으로 이끈다. 개인의 삶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보편적인 감각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이번 전시는 대학원 졸업작부터 주요 설치작,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작가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다. 대표작뿐 아니라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도 함께 소개된다. 올해 3월 데미안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이 ‘국제 거장전’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솔 르윗 회고전
기간 2026.09.01 – 2027.02.28
장소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념미술’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그 의미를 작품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는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대규모 회고전 〈Sol LeWitt: Open Structure〉는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자리다. 르윗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주장한 작가다. 작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고도 지시문과 규칙에 따라 다른 사람이 작업을 실행하는 방식을 통해, 예술의 창작 방식과 작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번 전시는 드로잉과 조각, 프린트,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벽면 전체를 캔버스로 삼는 ‘월 드로잉(Wall Drawing)’은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바꾸는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는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출발해 솔 르윗 재단과의 협력 아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공간에 맞게 새롭게 구성된 순회전이다. ‘예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다.
감각을 공간으로 옮기는 설치미술가, 구정아 개인전
기간 2026.09.05 – 12.27
장소 리움미술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대표한 구정아 작가. 그의 작업은 언제나 설명보다 경험이 먼저다. 빛과 냄새, 소리, 공기, 중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공간 속에 끌어들이며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유도한다. 조각과 설치, 영상, 건축, 공공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특정 장르로 정의하기 어렵다.


오는 9월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는 국내에서 작가의 작업 세계를 가장 큰 규모로 소개하는 자리다. 2025년 프랑스 루마 아를, 2026년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로 이어진 ‘우스’ 연작의 세 번째 장이기도 하다. 신작을 포함한 다양한 설치 작품이 로비와 M2 전시실, 고미술 상설전시 공간 등 미술관 곳곳에 배치되며,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전시 경험도 달라진다. 야광, 자석, 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요소를 다뤄온 작가의 세계는 전시장 전체로 확장된다.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공간을 걷고 감각하는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일상을 캔버스에 담은 화가, 웨인 티보 회고전

형형색색의 케이크와 파이, 아이스크림, 립스틱. 웨인 티보(Wayne Thiebaud, 1920-2021)의 그림은 한눈에 친숙하고 유쾌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단순한 정물화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광고와 상업미술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와 소비사회를 회화의 언어로 끌어들인 그는 팝아트와 미국 리얼리즘 사이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익숙한 사물을 선택했지만, 과장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 독특한 붓질로 일상의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크라프트베르크, 스탠리 큐브릭, 팀 버튼, 장 폴 고티에를 소개해온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가 이번엔 웨인 티보를 데려온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규모로 열리는 회고전이다. 대표적인 디저트 연작을 비롯해 도시 풍경과 인물화까지 폭넓게 소개하며, 작가가 평생 탐구해온 ‘일상의 재발견’을 조명한다. 모더니즘과 팝아트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는 디터 부흐하르트(Dieter Buchhart), 안나 카리나 호프바우어(Anna Karina Hofbauer)가 공동 기획에 참여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두꺼운 붓질과 섬세한 색채 변화는 웨인 티보 회화만의 매력을 보여준다.
꽃과 사막을 그린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 미국 모던 아트
기간 2026.11 – 2027.03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흔히 꽃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 아니다. 꽃과 사막, 동물의 뼈, 뉴멕시코의 풍경을 대담한 크기와 구도로 확장하며 미국 모더니즘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다.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와의 인연으로 뉴욕의 갤러리 ‘291’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뉴멕시코의 자연에 매료되어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발전시켰다.


오는 11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조지아 오키프와 미국 모던 아트〉전은 오키프를 중심으로 20세기 미국 모더니즘의 흐름을 함께 살펴본다. 대표작과 함께 동시대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유럽 중심으로 전개되던 근대미술이 미국에서 어떻게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됐는지 보여준다. 연말을 장식하는 대규모 전시인 동시에, 오늘날 디자인과 시각문화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시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