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위한 건축, 에비앙의 라 수르스 비브
에비앙 숲속에 문을 연 새로운 실내악 공연장, 라 수르스 비브(La Source Vive)
지난 6월 24일, 프랑스 에비앙의 조용한 숲속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490석 규모의 실내악 공연장 ‘라 수르스 비브(La Source Vive)’다.

레만호(Lac Léman)를 따라 이어지는 프랑스 에비앙의 숲은 깨끗한 물과 심신의 치유를 상징해왔다. 이 조용한 숲속에 지난 6월 24일, 새로운 문화적 랜드마크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490석 규모의 실내악 공연장인 ‘라 수르스 비브(La Source Vive)’가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소리를 위해 건축을 설계한다’는 오래된 이상을 실현한 사례로, 건축 형태를 먼저 결정한 뒤 음향을 최적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음향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건축을 결정한 후, 마지막으로 외관이 탄생하는 방식을 따랐다. 건축이 음악의 그릇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가 된 셈이다.

프랑스 건축 스튜디오 PCA-STREAM의 창립자 필립 키암바레타(Philippe Chiambaretta)가 설계를 맡았으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Renaud Capuçon), 음향 전문가 알베르 쉬(Albert Xu), 예술감독 파트릭 부셍(Patrick Bouchain)이 긴밀하게 협업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목표를 공유해 완성한 공연장은 시각적 아름다움 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실내악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음향 공간을 실현하고자 하는 건축적 실험이 되었다.

‘라 수르스 비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건축은 악기(Architecture as Instrument)’라는 개념이다. 원형 부지에 세워진 공연장의 평면은 일반적인 직사각형도, 완전한 원형도 아닌 비대칭의 조개껍데기(conch)를 닮은 형태다. 음향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진화한 것인데, 건물 내부의 부피와 높이, 곡선의 라인은 소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전달되는 경로를 계산해 나온 결과다. 특히 공연장 천장을 떠다니는 거대한 음향 캐노피는 이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요소다. 수백 개의 초승달 형태 알루미늄 패널은 각각의 크기와 방향, 높이가 모두 다르며 객석의 위치에 따라 음향을 세밀하게 반사하도록 설계되었다. 마치 거대한 악기의 공명판처럼 공연장 전체의 잔향을 미세하게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음향 장치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실내 디자인 요소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연장들이 완공 이후 음향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달리 ‘라 수르스 비브’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해 공사 단계마다 실제 음향 데이터를 측정했다. 콘크리트 구조체가 완성될 때, 석고 마감이 끝났을 때, 좌석을 설치했을 때, 캐노피를 매달았을 때마다 공간의 음향 특성을 다시 분석했고, 마지막에는 실제 연주를 통해 건축을 하나의 악기처럼 ‘튜닝’했다고 한다. 이는 건축과 음향을 동시에 완성시키는 매우 드문 방식이다.




전통적인 클래식 공연장은 대부분 ‘슈박스(Shoebox)’ 형태다. 길고 직사각형 공간은 선명한 음향을 제공하지만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어진다. 반대로 현대 공연장의 대표적인 유형인 ‘빈야드(Vineyard)’는 베를린 필하모니처럼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계단식으로 둘러싸며 몰입감을 높인다. 하지만 음향 특성은 서로 다르다. ‘라 수르스 비브’는 이 두 방식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실내악 공연장을 제안한다. 직사각형 공연장이 지닌 음향의 선명함과 빈야드 구조의 친밀한 시각 경험을 동시에 구현한 것이다. 무대를 중심으로 비대칭으로 배치된 객석은 연주자의 손끝까지 더욱 가까이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어느 좌석에서도 거의 동일한 음향 품질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연은 어둠 속에서 시작되고, 창문은 음향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지만 ‘라 수르스 비브’는 이 상식을 뒤집었다. 건축가와 음향 디자이너가 창작의 과정은 공연과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하루의 흐름을 느끼며 연습하고, 자연과 연결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천장을 관통하는 둥근 창을 만들어 자연광을 공연장 안으로 끌어들였고, 공연이 시작되면 차광 장치를 내려 일반 공연장처럼 어둡게 만든다. 자연광은 음향 캐노피를 한 번 반사한 뒤 거친 석고 벽을 타고 퍼지면서 무대의 너도밤나무 바닥과 천연 가죽 좌석에 은은한 장밋빛으로 반사되며 공간 전체를 감싼다. 인공조명으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미묘한 색감이다.

콘크리트 구조 위를 덮은 것은 흰색 석고와 원목, 가죽, 그리고 금속뿐이다. 이 재료들은 전부 미적인 이유보다 음향이라는 기능을 위해 선택되었다. 특히 공연장 내부를 감싸는 거친 석고 벽은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현대 공연장에서는 목재 패널이나 흡음 패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음향 컨설턴트 알베르 쉬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들이 목재와 석고, 유리라는 가장 오래된 재료 위에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결과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용된 석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사용했다.

벽면의 물결무늬 역시 장식이 아니다. 관객의 귀 높이에서는 최대 8cm까지 돌출되며 저음과 고음이 균형 있게 확산되도록 계산된 것으로, 아래쪽은 촘촘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간격이 넓어지는 리듬감 있는 패턴은 잔향을 조절하고 에코를 줄이는 음향 장치로 역할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수작업으로 조각한 예술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 끝에 만들어진 거대한 음향 장비다. 무대 뒤편에는 프랑스산 너도밤나무 원목을 사용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목재 패턴은 시각적인 따뜻함과 함께 소리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연장의 독특한 돔 형태는 내부 음향 공간이 그대로 외피를 밀어낸 결과다. 건물을 감싸는 외피에는 프리패티나(pre-patinated) 처리된 구리 패널이 사용됐다. 짧은 이음새를 반복한 비늘 형태의 지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산화되고, 숲의 색과 함께 변화할 예정이다. 여름에는 녹음 속으로 스며들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과 어우러지며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건축물은 풍경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프로젝트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 스튜디오 PCA-STREAM은 도시와 건축을 하나의 살아 있는 생태계로 바라보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축이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자연과 기술, 문화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이들의 철학과 접근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친환경 건축은 에너지 소비나 탄소 배출량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PCA-STREAM은 문화적 지속가능성(Cultural Sustainability) 역시 건축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지역의 풍경과 역사, 음악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미래 세대까지 이어주는 것 또한 지속가능한 건축이라는 해석이다.

‘라 수르스 비브’는 화려한 친환경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을 공간의 품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490석이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거대한 규모나 첨단 기술과 경쟁하지 않고, 한 사람의 연주자가 내는 가장 작은 숨소리까지 얼마나 아름답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집중한 이번 프로젝트는 PCA-STREAM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모든 좌석이 무대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최소화했다. 기술은 눈에 띄지 않지만, 공간 전체가 하나의 정교한 악기처럼 작동한다. 공연이 없는 시간에도 이곳에는 자연광이 흐르고, 숲의 풍경과 함께 음악을 기다리는 침묵마저 건축의 일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