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커뮤니티센터 네 곳이 ‘포용’을 디자인하는 방식
커뮤니티센터 네 곳이 보여주는 디자인 태도
커뮤니티센터에서 디자인은 표면을 넘어 누구를 위해 공간을 열 것인가를 결정한다. 전 세계 네 곳의 사례를 통해 모두의 일상을 배려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공공 공간 디자인을 살펴본다.

좋은 공공 공간은 조용히 그 존재를 증명한다. 문턱의 높이나 빛이 드는 각도, 사람 사이의 거리 등 사소한 설계 요소는 쉽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공간에 얼마나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커뮤니티센터는 이 감각이 가장 예민하게 시험받는 장소다. 특정 취향이나 세대를 위한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 전체가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커뮤니티센터에서 디자인은 표면을 다듬는 일을 넘어, 누구를 위해 공간이 열려 있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그 선택은 공간 경험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 그 도시에 사는 삶의 질까지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대륙과 기후, 도시의 조건이 저마다 다른 전 세계 네 곳의 커뮤니티센터를 통해 조용하지만 단단한 심어짐의 방식을 따라가보자.
흙으로 빚은 포용의 공간, 아난달로이

방글라데시 루드라푸르 지역에 위치한 아난달로이(Anandaloy)는 장애인을 위한 치료 공간과 지역 여성들의 직물 공방을 함께 품은 커뮤니티센터다. ‘큰 기쁨의 장소’라는 뜻의 아난달로이는 처음 장애인 치료센터로 계획됐지만, 이후 여성 재봉사들을 위한 텍스타일 작업실이 더해졌다. 장애인에게는 치료뿐 아니라 배우고 일하며 지역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여성에게는 마을에서 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이곳을 설계한 스튜디오 안나 헤링거(Studio Anna Heringer)는 건축을 ‘삶을 개선하는 도구’로 여겨왔다. 이러한 철학은 아난달로이의 재료와 건축 방식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건물의 두꺼운 벽을 지역의 흙과 짚, 모래, 물을 반죽해 쌓는 전통적인 코브(cob) 방식으로 제작했고, 베란다와 상층부의 스크린에는 인근에서 구한 대나무를 사용했다. 특히 거푸집이 필요 없는 코브 공법은 곡선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어, 주변의 직사각형 건물과 달리 아난달로이 특유의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헤링거는 흙을 낡고 값싼 재료의 대안으로 취급하기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그 조형적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다.



건물을 감싸며 위층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램프는 이러한 생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위층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램프는 헤링거가 말하는 ‘포용의 상징’이자 건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심 요소다.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을 감추는 대신 건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드러낸 것. 내부에는 일반적인 활동 공간과 함께 동굴처럼 만들어진 작은 방과 터널을 두어 휴식하거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건축 과정 역시 지역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됐다. 흙과 대나무 작업에는 마을의 장인과 주민들이 참여했으며 일부 장애인도 시공에 함께했다. 앞선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 기술을 익힌 지역 작업자들이 아난달로이에 다시 참여하면서 축적된 기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역 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건설 예산의 상당 부분도 지역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풍경에 흐르는 공동체 감각, 그레이스 팜의 리버 빌딩

미국 코네티컷주 뉴캐넌, 약 80에이커 대지에 자리한 그레이스 팜(Grace Farms)은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예술과 커뮤니티, 신앙, 사회적 활동을 아우르는 공공 공간이다. 비영리단체 그레이스 팜 재단이 운영하는 이 부지 안에 SANAA가 설계한 핵심 건축물인 ‘리버 빌딩(River Building)’이 자리한다. 2015년 문을 연 리버 빌딩에는 예배 공간과 도서관,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 티 파빌리온, 체육관 등이 분산돼 있으며 토론과 공연, 예술 활동, 스포츠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한다. 서로 다른 목적과 활동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SANAA는 이를 위해 건축이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구상했다. 핵심은 완만한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하나의 긴 지붕. 유리와 콘크리트, 철, 목재로 이루어진 건물이 언덕에서 시작해 경사면을 따라 흐르듯 이어지는데, 그 모습에서 착안해 ‘강(River)’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낮고 가느다란 지붕은 지면 위에 떠 있는 듯 이어지고, 그 아래 필요한 실내 공간들은 투명한 유리 볼륨으로 나뉘어 배치된 모양새다.

이때 각각의 프로그램이 하나의 폐쇄된 건물 안에 밀집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성격과 용도에 따라 유리 볼륨 사이의 거리를 달리하고, 그 사이에 산책로와 중정, 지붕이 덮인 완충 공간을 만든 이유다. 한 공간에서는 연못이 보이고 다른 곳에서는 습지가 펼쳐지는 식으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이 다가온다.

이에 투명성이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작용했다.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과 열린 통로를 통해 실내에 머무는 동안에도 주변의 초지와 숲, 습지와 계절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 SANAA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열어 사람들이 자연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동시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건축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뒤로 물리고 사람과 활동, 풍경이 전면에 놓이도록 하는 SANAA의 건축적 태도가 이곳에서 구체적인 공간으로 구현된다.


이러한 접근은 건물이 놓인 대지를 다루는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전체 80에이커 가운데 약 77에이커는 초지와 숲, 습지, 연못 등 열린 자연환경으로 보존하도록 계획했으며, OLIN의 조경 설계는 기존 서식지를 보존하면서 커뮤니티 가든과 운동장, 놀이터, 산책로 등을 그 안에 통합했다. 건설 과정에서 제거한 나무는 현장에서 가공해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의 대형 공동 테이블을 비롯한 가구를 만드는 데 활용했다.
안으로 열린 안전한 장소, 필라레스

멕시코시티 이스타팔라파에 위치한 커뮤니티센터 필라레스(PILARES)는 도시의 소외 지역과 주변부 커뮤니티에 안전한 문화 교육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추진된 공공 프로젝트다. 필라레스란 스페인어 ‘혁신, 자유, 예술, 교육과 지식의 거점’을 조합해 만든 약칭으로 페르난다 카날레스(Fernanda Canales)가 설계했다. 목공과 요리, 보디 아트, 인터넷 교육, 독서 등 다양한 수업과 워크숍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학습과 활동을 지원한다.
센터가 놓인 환경이 무엇보다 설계의 중요한 조건이 됐다. 이스타팔라파는 인구밀도가 높고 범죄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지역으로, 건물 바로 옆에는 대규모 남성 교도소가 자리한다. 이에 건축가는 외부의 거친 환경과 교도소의 감시 시설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면서도, 센터 내부에서는 사람과 활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다.

건물은 중앙의 야외 공간을 여러 개의 직선적인 볼륨이 감싸는 형태로 구성됐다. 중심에는 아고라를 연상시키는 열린 공간과 네 개의 둥근 중정이 자리하며, 각각의 실내 공간은 중정으로 직접 연결된다. 건축가는 이러한 배치를 “중정을 향해 열리며 그것을 감싸안는 두 팔”이라고 표현했다. 중앙의 야외 공간이 각 공간을 연결하기에 별도의 복도를 둘 필요가 없으며, 사람들이 마주치고 머물 수 있는 중정 자체가 건물의 중심 동선이 되는 셈.


반면 건물의 외곽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선택적으로 조절한다. 인접한 교도소와 감시 시설을 직접 바라보지 않도록 계획해 시각적인 연결을 차단하는 한편, 내부 공간은 중정과 녹지를 향해 열린다. 전면을 따라 설치된 물결 모양의 다공성 테라코타 격자 역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면서 빛과 공기가 통과하도록 한다. 완전히 닫힌 벽으로 주변과 단절하기보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릴 것인지 조절한 것. 이곳의 핵심은 안전한 커뮤니티 공간을 단순히 ‘닫힌 장소’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주변 환경과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교실과 중정, 빛과 공기, 사람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연결한다. 외부를 향한 경계와 내부를 향한 개방성을 동시에 설계함으로써, 주민들이 보호받으면서 배우고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는 일상의 거점을 만들었다.
수직으로 쌓은 일상, 캄풍 애드미럴티

싱가포르 북부 우드랜즈에는 수직으로 쌓아 올린 커뮤니티 시설인 캄풍 애드미럴티(Kampung Admiralty)가 있다. 고령화와 고밀도 도시라는 조건에 대응해 주거와 의료, 돌봄, 상업, 녹지와 커뮤니티 공간을 하나의 건축에 결합한 프로젝트다. WOHA는 0.89 헥타르라는 제한된 부지에서 여러 공공시설을 각각 짓는 대신 서로 다른 기능을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이들이 ‘수직 마을(vertical village)’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캄풍(kampung)’은 말레이·인도네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마을을 의미하며 프로젝트는 그 공동체적 환경을 현대의 고밀도 도시 안에서 재해석했다.

건물은 크게 세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지상에는 호커센터와 상점, 식음시설 등이 광장을 둘러싸며, 이곳은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도시의 거실(urban living room)’로 계획됐다. 중간에는 레인 가든을 중심으로 의료센터가 자리하고, 상부에는 고령자를 위한 104가구의 주거시설과 보육시설, 노년층 활동시설, 커뮤니티 광장과 공동 텃밭이 들어선다. 주거와 의료, 돌봄, 식사와 여가를 가까이 배치해 고령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적이고 활발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 것.

공간 구성은 세대 간 관계까지 고려한다. 보육시설과 노년층 활동시설은 같은 커뮤니티 광장을 향해 배치해 아이와 성인이 운동하거나 놀고 정원을 가꾸는 공간을 공유하도록 했다. 건물을 층층이 감싸는 녹지는 수직적 마을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장치다. 전체 녹지 면적은 건물의 대지 점유 면적보다 크며, 여러 높이의 정원과 테라스가 공공·의료-주거 공간 사이를 연결한다. 식재는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를 만드는 동시에 햇빛과 열, 인접한 기차역의 소음을 완화하며, 옥상과 테라스에서 모은 빗물은 레인 가든을 거쳐 정화된 뒤 공동 텃밭의 관개에 다시 활용된다.

캄풍 애드미럴티는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을 별도의 시설로 분리하지 않고 일상의 여러 기능 속에 겹쳐 놨다. 집을 나선 뒤 치료받고, 식사하고, 정원을 가꾸고, 아이와 노인이 마주치는 순간이 하나의 장소에서 펼쳐진다. 전통적인 마을의 공동체적 관계를 고밀도 도시의 조건에 맞춰 수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커뮤니티센터를 하나의 건물이 아닌 생활을 지탱하는 작은 마을로 확장했다.

좋은 커뮤니티센터의 조건은 무엇일까. 완성된 형태보다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지, 함께할 수 있는 자리와 혼자일 수 있는 자리가 나란히 있는지, 만남을 유도하되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등. 앞서 살펴본 네 곳의 커뮤니티센터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했다.
포용적인 공간은 모두를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 아닌 서로 다른 삶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오래도록 규격과 기준의 언어로 논의돼온 것과 달리 위 네 곳의 건축은 포용을 수치가 아닌 감각으로 번역해냈다. 그 감각은 거창한 선언에 있지 않다. 우리가 그곳에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다는 사실, 그 하나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