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방의 터줏대감, 최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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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가구 브랜드 '까사미아'를 설립한 최순희 소장과의 인터뷰로, 부부가 디자인과 경영을 철저히 분업화하여 기업을 성장시켜 온 과정을 소개한다.

살림방의 터줏대감, 최순희

profile
1982년 가구 회사 까사미아를 설립하고 1984년부터 남편 이현구 사장이 운영을 맡아 지금까지 함께해 오고 있다. 까사미아는 ‘매일 새롭고 좋은 방법을 찾자’를 슬로건으로 하며 250명이 넘는 임직원 중 30명 이상이 디자인 센터에서 근무하는 전형적인 디자인 오리엔티드 된 기업이다. 한편 2007년에는 사무용 가구 우피아를 론칭하며 디자인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까사미아가 문을 연 것이 1982년도였고, 내가 처음 전화를 받고 불려 가 최 소장을 만난 것이 1986년도였다. 최 소장은 당시에도 단도직입적으로 내던지듯 이런저런 질문을 혼자 날렸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을 튼 지가 어느덧 25년이나 되었다.

처음에 까사미아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결혼 전부터 이쪽 일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 일이 무슨 비즈니스가 된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글쎄요, 아마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친구의 부추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예요.

지금의 이현구 사장이 까사미아 운영에 동참한 것이 1984년도였고 그의 재무 관리 경력이 실력을 발휘하면서 회사는 탄탄한 성장을 이루었다. 밖에서는 부부인 이 두 사람이 사업 파트너로서 보여준 끈끈한 팀워크를 시기 반 부러움 반으로 쳐다본다.

두 분이 디자인과 경영 분야를 확실하게 나누어서 회사를 운영하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제품 개발에만 신경을 써요. 두 가지 전문성이 필요한 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잖아요. 실력보다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얻은 셈이지요.

20년을 넘기면서 까사미아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몸집을 불려왔고 이제는 70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디자인 생활용품을 전달해주며 늘 옆에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유심히 보면 까사미아 매장들은 상당한 요지에 자리잡고 있다.

디자인에 관여하는 인원은 얼마나 되나요?

35명쯤 돼요. 비주얼과 구매 담당이 10명쯤, 제품 기획과 제조 관리가 제품별로 나누어져 있고 별도로 인테리어팀에도 5명이 있네요.

다른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2008년도 하반기를 넘어서면서 거의 공황 상태가 된 경기 한파에 시달리는 최 소장의 모습이 보였고 디자인은 생존 경쟁의 문제에서 한참이나 거리가 먼 소꿉놀이처럼 여겨졌다.

디자이너의 업무 변화가 심한가요?

예전에는 도면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일이 훨씬 많았는데 요즘은 구매 업무에 대한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언제부터 개발보다 구매 비중이 높아졌나요?

최근에요. 그건 비용 문제가 아니에요. 상품이 출현하는 속도와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너무나 급속하게 발전해서 우리가 아이디어를 잡고 도면화하고 제품화하는 과정이 너무 늦은 거예요. 마치 생각만 하면 딱 어떤 물건이 나타나는 것같이 너무나 많은 상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기 때문에 우리의 아이디어가 소비 흐름과 비교해 어느 정도만 비슷해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요?

압도적이지요. 그런 선택은 현실적인 결정인가요? 물론 다분히 그래요. 구매 결정도 실제로 무척 복합적인 행위잖아요. 그래서 디자이너가 구매를 결정하려면 다양한 경험과 수리 감각이 있어야 해요. 이것이 상품이 되려면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아야 한다는 판단이 딱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구매 위주로 쏠리다 보면 상품의 디자인적인 비중이 현격하게 작아지는 것 아닌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최선을 다해서 디자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늘 노력하지요. 부분적으로 더러 포기를 하지만 최상의 결정이 되도록 해야지요. 제 역할은 디자이너들의 결정을 지원하는 겁니다.

디자이너들의 최종 결정에 의도적으로 많은 재량권을 주나요?

그럼요. ‘네가 결정하라’고 하지요. 그런 다음 담당자들이 결정 내린 항목을 저한테 보여주면 이런 점은 옳은 것 같고 이런 점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줘요.

담당 디자이너들의 결정에 대해 만족하세요?

네. 저마다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리고 뜻밖의 성취를 거둘 때가 많아요. 배경이 다른 저 친구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놀랄 때가 있어요. 정말 인간은 놀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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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켓은 젊은 신혼층부터 중년층까지 폭넓은 나잇대를 포괄할 수 있는 가구의 콘셉트 디자인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경쾌한 다리 모양과 하부의 둥근 모서리 디테일이 특징이다. 특히 다리 부분은 복고 느낌을 주는 월넛 무늬와 어우러져 있다.

최 소장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지나갔다. 그녀의 이런 솔직하고 직선적인 심성이 까사미아의 오늘을 만든 셈이다. 나는 해외 출장에서 크레이트 앤드 배럴(Crate & Barrel)이나 무지(MUJI)를 찾았을 때 문득 까사미아를 머리에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까사미아가 크레이트 앤드 배럴보다는 무지처럼 브랜드 컬러가 더 독립적인 쪽으로 가야 한다고 단정 지었다.

오랫동안 디자인 작업을 해왔는데, 소비자들의 요구를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에요.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해져요. 우리가 가능한 한 모든 기법을 동원해서 예측하고 10년이 넘는 경험을 가진 인력들이 결정을 해도 대부분 틀려요. 맞는 경우가 오히려 극히 드물어요.

어디서부터 예측이 빗나가는 건가요? 

그것을 알면 우리가 왜 이 고생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요인들이 너무 복잡해진 거예요.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500개씩 20가지 품목을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500가지 품목을 20개씩 사야 돼요. 이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들어주는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결국 담당자는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종종 회의석상에서 구매 담당자에게 말해요. “내가 너의 고독한 결정을 지지하는 기둥이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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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까사미아의 키즈용 가구 중 모리(MORI).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싱글족을 대상으로 한다. 중성적인 스타일의 인조가죽 침대와 5단 서랍장, 옷장으로 구성된 베드룸 아이템은 남녀 모두에게 어울리며, 심플한 스타일의 책장은 학생 방이나 모던한 스타일의 서재, 사무실에도 사용할 수 있다. 
2 까사미아 압구정점 전경. 20여 년을 이어온 까사미아는 현재 매장이 70개에 달하며, 대부분이 각 도시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다. 
3 사무용 가구 우피아의 위즈 시리즈 중 ‘BN’. 데스크, 파티션, 캐비닛 등 사무 공간의 기본 아이템들로 구성돼 있으며, 친환경 소재와 고급스러운 알루미늄 프레임을 적용하고 사무 공간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쟁쟁한 관록의 디자인 경영자들이 이런 푸념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디자인뿐만이 아니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라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항목의 범위가 홍수처럼 불어난 세상이 되었다. 2004년에 까사미아는 살림 빌딩을 열었고, 2007년에는 사무용 가구 우피아(Uffia)를 선보였다.

사무용 가구의 론칭 성과는 어떤가요? 

2년 동안 매출 규모는 괜찮았어요. 일반 판매보다 프로젝트 쪽에서 성과가 있었어요.

요즘엔 어떤 사업을 진행하나요?

작년부터 까사미아를 다양한 채널로 브랜드를 넓히려고 시도 중이에요. 마트, 홈쇼핑 같은 곳에 새로운 까사미아 브랜드를 적용시켜보려고요. 지금의 시장 규모는 더 이상 커지기 어려운 형편이에요. 작년에 론칭한 홈쇼핑 브랜드는 ‘까사온’이에요. 마트 쪽은 올해 가을쯤 론칭할 계획입니다.

2009년에 바닥을 칠 것이라던 경기 예측이 적어도 2010년까지로 길어지면서 모든 기업들이 버티기 자세로
돌아섰다. 중국에서 상당량의 제품을 들여오던 까사미아도 거의 절반 넘게 국내로 구입처를 바꾸었다. 최 소장은 환율 폭등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빚어내는 혼란을 지켜보며 사업가다운 생각을 꺼내 보였다.

“이참에 오히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해야 할 판이에요. 중국은 시장이 크면서 계층 구조도 다양하잖아요. 어떤 것을 사 와서 가공하고 브랜드를 입혀 다시 수출하는 거예요. 중국이 몇십 년 동안 유럽에 OEM을 하면서 쌓은 기술을 우리가 사용할 수도 있지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유럽의 디자인 제품을 한국에 들여와도 되고 우리가 디자인을 입혀 중국이나 유럽에 팔 수도 있지요.”

최 소장은 이제 디자인계 출신으로 사업 쪽에서도 성공을 거둔 표본이 되었다. 그동안 제법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업쪽으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거의 성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좀 더 욕심을 내서 스타일이 탄탄한 디자인 브랜드로 중국이나 유럽에 진출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까사미아는 요란하거나 별난 디자인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디자인이 항상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길을 가도록 신경을 써왔다. 별난 욕심을 품지 않은 까사미아의 제품들이 25년동안 모든 이들의 생활 공간 속으로 흘러 들어갔던 것이다. 허버트 리드의 말대로 도자기 같은 생활용품은 그 나라의 예술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닌가.

구성회 프론트 디자인 대표
1951년생으로 1970년대에는 금성사와 현대자동차 디자인실에서 근무했고, 1980년부터 3년 동안 공간사에서 일했다. 1989년에 설립한 프론트 디자인 대표로 있고 현재 경영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 마인드>라는 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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