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기억을 발굴해 미래를 짓는 차세대 건축 거장, 리나 고트메

한때 고고학자를 꿈꿨던 이 젊은 건축가는 땅의 기억에 귀 기울이는 차세대 거장이 되어가고 있다.

땅의 기억을 발굴해 미래를 짓는 차세대 건축 거장, 리나 고트메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리나 고트메는 장소의 역사와 기후, 재료와 공예, 그곳에 축적된 기억에 귀 기울이며 건축의 단서를 발굴한다. 그가 이를 일컬어 ‘미래의 고고학’이라 부르는 이유다. 리나 고트메에게 지역성이란 과거의 모습을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땅속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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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태어나 레바논 내전 이후의 베이루트에서 성장했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장 누벨, 노먼 포스터 등 세계적 건축 거장과 일했다. 2005년 국제 설계 공모전에 당선돼 진행한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은 2016년 완공 직후 유럽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미스 반데어로에 어워드 후보로 지명됐고, 프랑스 AFEX 대상을 수상했다. 2016년 파리 11구에 리나 고트메 건축 사무소를 설립한 뒤 현재 세계 각지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linaghotmeh.com 사진 David Levene

건축계의 고고학자가 읽은 땅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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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2016). 리나 고트메가 댄 도렐(Dan Dorell), 다네 쓰요시와 함께 2005년에 열린 국제 설계 공모전에 당선돼 진행한 프로젝트다. 사선 형태의 거대한 지붕 디자인은 마치 활주로가 대지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Dorell Ghotmeh Tane 사진 Takuji Shimmura
원래 꿈은 고고학자였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나요?

고고학을 포기했다기보다 건축과 고고학을 함께 다룰 방법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베이루트는 일곱 번 이상 파괴와 재건이 반복된 도시입니다. 여기서 성장한 저는 땅을 파고 흔적을 추적하는 일, 파편들을 다시 연결해 하나의 문명에 관한 이야기를 복원하는 방식에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단지 과거를 발굴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들고 짓는 행위로 이미 일어난 일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방법이겠죠.

건축에서 그 답을 찾았군요.

건축은 이 두 가지 열망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흔적과 기억, 시간의 층위에 주목하는 고고학자의 시선과 앞으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지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책임을 함께 담을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제가 ‘미래의 고고학’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출발점입니다. 즉 건축을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읽고 발굴해 새롭게 해석하고 미래로 투사하는 연구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결코 고고학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목적지가 아니라 방법론이 되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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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ell Ghotmeh Tane 사진 Takuji Shim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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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ell Ghotmeh Tane 사진 Takuji Shimmura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은 당신이 말하는 ‘미래의 고고학’ 개념을 명징하게 드러낸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고고학은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싹튼 개념입니다. 다양한 학문과 전문 분야에 열려 있던 캠퍼스의 환경이 건축을 하나의 고고학적 과정으로 바라보게 했죠. 다시 말해 건축은 땅과 대지에 뿌리를 둔 연구 중심의 실천이며,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형태로 드러내고 장소와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은 특히 강렬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당시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에 막 가입한 참이었고, 격동의 역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제가 경험한 레바논 역사와도 공명했습니다. 옛 소련군 비행장 터에도 그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우는 대신 그 흔적에서 건축물이 솟아나도록 했습니다. 옛 활주로의 축을 따라 대지에서 완만하게 솟아오른 형태는 장소가 간직한 기억에서 끌어낸 것입니다. 이곳은 기억을 간직하는 동시에, 앞으로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과거를 기념할 뿐 아니라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풍경인 셈입니다. 고고학이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된 것입니다.

얼핏 자하 하디드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성 건축가라는 점, 중동 출신이라는 점, 유럽에서 초기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 등에서 말이죠. 하지만 결과물은 사뭇 다릅니다. 당신의 디자인에서는 지역성이 좀 더 짙게 느껴져요.

먼저 제가 자하 하디드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건축가의 언어는 자신이 성장한 환경, 장소와 기억, 재료와 맺어온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건축은 언제나 한 장소가 내는 크고 작은 목소리, 때로는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까지 귀 기울입니다. 그곳에 조형의 뿌리가 있습니다. 저에게 로컬리티와 환경은 스타일을 결정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출발점이죠. 저는 무언가를 그리기 전에 팀과 함께 그 장소의 역사와 자원, 기후, 사회적 층위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인근에서는 어떤 돌을 구할 수 있는가?’ ‘어떤 흙으로 벽돌을 만들 수 있는가?’ ‘그곳에는 이미 어떤 전통 공예가 존재하는가?’ ‘어떤 재료와 지식, 기억이 그 장소에 새겨져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떠올립니다. 저에게 로컬리티란 이미 그 장소에 속한 건축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형태를 외부에서 가져와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드러낼 건축을 발견하는 것이죠. 노르망디에서 설계한 에르메스 공방이 오사카에서 설계한 바레인 파빌리온과 전혀 다른 모습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 건축은 전혀 다른 맥락과 재료, 기후, 역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밑바탕의 방법론은 같습니다. 장소에 대한 고고학, 그리고 귀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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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a Ghotmeh – Architecture 사진 Iwan Baan
2020년에 베이루트에서 선보인 스톤 가든(Stone Garden)은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을 듯합니다. 고향에서 선보인 첫 건축 프로젝트이니 말이죠.

베이루트는 하나의 ‘열린 고고학’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파괴와 재건의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고, 주변 환경이 빚어낸 수많은 이야기가 겹쳐진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느껴지는 곳이죠. 그곳에서 성장하며 장소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축, 지식을 이어가는 방식으로서의 건축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스톤 가든은 베이루트 도심 가까이 자리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전면적으로 정비된 지역이죠. 도시는 재건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억마저 지워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스톤 가든은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을 거부합니다. 분쟁이 남긴 상처를 감추는 대신 건축 안으로 들이고 기억을 물질로 변환합니다.

특히 스톤 가든은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입니다.

건물 덩어리를 깎고 조각하듯 만든 창들은 한때 도시에 상처를 낸 총탄의 흔적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스톤 가든 안에서 이 구멍(창)들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삶을 위한 공간이 됩니다.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하나의 풍경처럼 담아내는 커다란 개구부가 되는 것이죠. 건물 파사드는 사람들이 직접 빗질하고 다듬어 완성했습니다. 이제 그 위로 자연이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고요. 인간의 만들고 자연이 길러내는 표면인 셈입니다. 또한 외피에는 건물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남아 건축 과정에 깃든 인간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파빌리온 그리고 지속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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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펜타인 파빌리온 ‘아 타블르’(2023). 매년 여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앞마당에서 진행하는 이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차세대 건축 거장의 등용문으로 알려졌다. 리나 고트메는 모듈식 목구조, 바이오 소재, 저탄소 목재 등으로 파빌리온을 디자인했다. ©Lina Ghotmeh – Architecture / Serpentine 사진 Iwan Baan
스톤 가든에 이어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아 타블르(À Table)’로 다시 한번 세계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 타블르’는 스톤 가든과 전혀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였지만, 그 바탕에는 같은 신념이 자리합니다. 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행위로 돌아가자는 것이죠. 바로 하나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음식을 먹고, 무언가를 나누며, 때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이 작업 역시 리서치에서 시작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공원 속 파빌리온이나 폴리(folly)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살펴보는 한편,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모였던 다양한 방식도 연구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앉아 먹고 토론했던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 마을 원로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공동체의 결정을 내렸던 도곤족의 공간, 환대와 대화, 모임이라는 폭넓은 전통을 지닌 마즐리스(majlis)*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레퍼런스는 하나의 직접적인 원형이라기보다 서로 연결된 일종의 별자리처럼 작용했습니다.

* 아랍어로 앉는 장소나 거실을 뜻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결정을 내리는 만남의 공간이자 공동체 문화를 상징한다.

프랑스어로 ‘아 타블르’는 ‘테이블로 와서 식사하자’라는 뜻이죠. 이름에서부터 시대의 화두인 환대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파빌리온은 목재로 지었고 기둥은 나무줄기를 연상시킵니다. 그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마치 숲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외곽의 갤러리는 다공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로 만화경 같은 공간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반면, 중심부에는 나뭇잎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주름진 지붕 아래 한층 내밀한 공간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이 파빌리온은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오브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옆 사람을 만나고, 커피 한 잔을 나누도록 초대받습니다. 공간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머물며 직접 참여하는 것이죠. 그렇게 테이블은 건축 요소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회적 장치가 됩니다. 저에게 음식은 어디에 살든 제가 가장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음식에는 기억과 문화, 영토와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 타블르’는 ‘우리가 먹고 모이는 방식을 바꾼다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구와 맺는 관계 역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를 묻는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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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a Ghotmeh – Architecture / Serpentine 사진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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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a Ghotmeh – Architecture / Serpentine 사진 Iwan Baan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외에도 다양한 파빌리온을 설계했습니다. 파빌리온 설계에서 지키는 원칙이나 철학이 있나요? 일반 건축물을 설계할 때와 접근 방식이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파빌리온 설계에서는 물성과 가벼움, 문화적 서사를 보다 실험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존재하고, 주변 환경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며,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도 비교적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오사카 엑스포 기간에 선보인 바레인 파빌리온은 구조용으로 가공하지 않은, 재사용이 가능한 목재 부재 3000여 개로 지었습니다. 현재 이 부재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에 재사용되고 있죠. 이러한 순환성이 가능한 것은 파빌리온의 일시적 속성 덕분입니다. 파빌리온 건축은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 건축의 가벼움과 가역성을 좀 더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반면 영구적인 건축물에는 시간과 쓰임, 보존에 대해 전혀 다른 관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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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오사카 엑스포 ‘바레인 왕국관’. 바레인의 전통 목선과 해양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바다를 연결하다’라는 주제로 파빌리온을 디자인했다. ©Lina Ghotmeh – Architecture 사진 Iwan Baan
2023년에 문을 연 에르메스 가죽 공방 ‘마로키네리 드 루비에르(Maroquinerie de Louviers)’에서도 당신의 또 다른 화두인 지속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프로젝트는 과거 산업 지대였던 장소를 세심하게 읽어내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견했는데, 그중에는 바로 이곳에서 가죽을 다루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도구도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이 건물을 프랑스 최초의 저탄소·에너지 포지티브 생산 시설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열 에너지와 태양광 패널, 자연 환기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건물 형태는 간결하면서도 원형적(archetypal)입니다. 에르메스의 상징적 스카프 ‘까레(Carré)’를 연상시키는 정방형 구조로, 중앙에는 장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중정이 자리합니다. 건축자재 역시 이 지역에서 난 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벽돌 제작자와 함께 현지 흙으로 만든 벽돌을 50만~55만 장 생산했습니다. 이로써 건축이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리는 동시에, 구조적 방식으로 벽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전통 기술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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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마로키네리 드 루비에르’(2023). 프랑스 노르망디에 지은 6200m² 규모의 가죽 공방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벽돌 55만 개를 쌓아 만든 아치형 구조가 인상적이다. ©Lina Ghotmeh – Architecture / Hermès 사진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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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마로키네리 드 루비에르’는 산업 건물 최초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건물에 부여하는 E4C2 라벨을 획득했다. ©Lina Ghotmeh – Architecture / Hermès 사진 Iwan Baan
벽돌 아치 구조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아치 형태 역시 재료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도출한 것입니다. 벽돌이라는 재료는 본질적으로 아치와 조화를 이룹니다. 벽돌에 가장 논리적이면서도 표현력이 풍부한 형태이기 때문이죠. 억지로 형상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재료 안에서 발견한 셈입니다. 동시에 이 아치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에르메스가 마구 제작업체로 출발한 역사와 깊이 연결된 말의 질주를 연상시키며, 파사드가 이어져 마치 움직임의 연속 장면처럼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50년 뒤 사람들이 이 건물을 바라보며 이것이 결국 ‘돌봄’에 관한 건축이었다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사람과 환경을 돌보며 자원을 소중히 다루는 건축 말입니다.

‘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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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선수촌(2024). 2024 파리 하계 올림픽 기간에 선수들이 머물 주거 공간을 설계했다. 파리 근교 센생드니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목재와 친환경 자재를 사용했다. ©Lina Ghotmeh – Architecture 사진 Takuji Shimmura
아랍 현대미술관 증축 프로젝트 역시 몹시 기대됩니다. 사실 중동 지역에서 속속 공개하는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모두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비록 국제 정세는 혼란스럽지만 말이죠. 건축가로서 이 지역의 건축적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남은 진짜 과제이자 기회는 우리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기후에 세심하게 대응하며 환경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데에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조형을 차용하는 데 있는 게 아니고요. 즉 땅에 깊이 뿌리내린 건축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가 존엄성을 회복하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애착을 다시 일깨우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랍 세계는 광대한 지역과 다양한 전통을 아우르지만, 역사와 언어를 공유합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다시 연결하고 되살려야 할 풍요로운 유산이 여전히 무궁무진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대영박물관 서측 갤러리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역사적 건축을 재해석하는 작업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쩌면 ‘미래의 고고학’이라는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시험하는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는 고고학이 말 그대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시간의 층위와, 문명 전체의 무게를 품은 유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업하려면 소장품과 우리가 개입하는 맥락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역사의 층위뿐 아니라 유물 자체가 지닌 층위까지 파고들어야 하죠. 유물에는 때로 서로 모순되는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평화의 순간과 갈등의 순간이 나란히 존재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과제는 하나의 유물이 자신이 속했던 시대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말을 걸게 하는 것입니다. 라마수(Lamassu)를 예로 들어보죠. 그것을 단순히 아시리아 왕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로만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이라크에서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과거를 보존하는 일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있습니까?

보존과 동시대적 개입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건물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그대로 얼려두는 것도, 새로움을 위해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그 안에 자리할 동시대의 아고라입니다. 하늘을 향해 열리고, 박물관의 중심부에 다시 빛과 개방감, 숨 쉴 여백을 불어넣는 공간이죠. 이 프로젝트는 10년에 걸쳐 진행되며, 그동안 박물관은 대중에게 개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프로젝트에 주어진 시간 자체가 디자인의 일부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곳이 21세기, 그리고 미래의 박물관이 어떤 모습일지를 구현하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대화와 교육의 장소이자, 비범한 것과 일상적인 것이 함께 존재하는 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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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morphosis in Motion〉(2026).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모스카파트너스(MoscaPartners)와 협업한 설치 작품이다. 팔라초 리타 중정에 ‘공간’, ‘기억’, ‘감각’ 등을 주제로 미로 같은 공간을 연출해 화제가 됐다. ©Lina Ghotmeh – Architecture 사진 Takumi 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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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a Ghotmeh – Architecture 사진 Nathalie Krag
건축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간 존재합다. 훗날 누군가가 당신의 건축을 다시 ‘발견’한다면,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나요?

글쎄요, 저는 건축물을 영속적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되어가는(becoming)’ 과정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자체가 선형적이라기보다 순환적인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수십 년 뒤 누군가 제가 설계한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느꼈으면 합니다. 그 위로 자연이 계속 자라나고 여러 세대의 사람이 그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가꿔왔으며, 건물을 지은 사람들의 손길과 이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함께 새겨져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들이 건축에 깃든 돌봄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돌봄, 건축이 태어난 환경에 대한 돌봄, 건축을 이루는 자원에 대한 돌봄 말입니다. 좋은 건축은 단순히 과거를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하나의 건축물이 계속 삶을 만들어내고 대화를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가 건축으로 이루고자 한 바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9호(2026.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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