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치마는 어떻게 동시대 패션이 되었나
2026 아름지기 기획전 〈치마, 겹 위에 펼쳐진〉
한국 전통 치마의 구조와 미학을 세 개의 장으로 풀어내는 〈치마, 겹 위에 펼쳐진〉전이 11월 15일까지 아름지기 통의동사옥에서 열린다. 동시대 패션 디자이너 르쥬, 제이든 초, 지용킴이 전통 치마를 재해석한 신작도 함께 선보인다.

한국 여성의 삶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치마. 우리 전통 치마는 형태가 고정된 서양의 치마와 다르다. 겹 사이로 공기가 흐르며 층을 이루고, 착용자의 움직임과 바람결에 따라 실루엣이 달라진다. 입기 전에는 그 모양을 온전히 가늠할 수 없다. 한복 특유의 넉넉하고 풍성한 미감은 바로 이 유연함에서 비롯된다. 아름지기 통의동사옥에서 열리는 〈치마, 겹 위에 펼쳐진〉은 한국 전통 치마의 ‘겹’에 주목하는 전시다. 수천 년 세월 동안 여성의 삶과 함께해 온 치마를 매개로 그 안에 축적된 시대적 규범과 장인의 집념, 주체적인 미의식을 세 개의 장으로 펼쳐낸다.
아름지기의 여덟 번째 ‘의(衣)’ 전시

2001년 설립된 아름지기는 해마다 의식주(衣食住) 중 하나의 테마를 선정해 전통 장인, 현대 작가,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기획전을 이어왔다. 의(衣) 분야에서는 쓰개, 배자, 포, 저고리, 바지 순으로 우리 복식의 주요 요소를 깊이 연구하고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치마, 겹 위에 펼쳐진〉은 그 계보를 잇는 여덟 번째 전시다.


치마는 여성 복식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다양한 부피감과 매무새로 옷 전체의 인상을 좌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 한복뿐 아니라 삼국시대의 주름치마, 모직과 펠트로 지은 치마, 비단벌레 날개로 수놓은 통일신라 옥충식 치마 등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치마 21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통 치마의 구조와 제작 방식은 온지음 옷공방과의 연구 협력을 통해 세심하게 고증했다. 여기에 동시대 패션 디자이너 르쥬(LEJE), 제이든 초(JADEN CHO), 지용킴(JiyongKim)이 참여해 전통 치마에 각자의 해석을 더했다.
세 개의 장으로 읽는 전통 치마


첫 번째 장 ‘치마가 지어진 자리’에서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치마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치마의 길이와 폭, 착용 방식에는 당대의 기후와 종교, 생활 방식,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 시대적 조건이 반영됐다. 여성의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고려시대에는 바지와 치마를 접목한 ‘선군’이 등장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절제미와 보온이라는 실용적 기능이 결합한 ‘누비치마’가 자리 잡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주름치마부터 문헌을 통해 짐작해 온 옥충식 치마까지, 재현된 치마를 통해 시대의 규범이 어떻게 미감을 형성하고 의복의 형태로 자리 잡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치마의 겹을 한 장 더 들추면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해 아름다움을 좇았던 사람들의 마음도 스며 있다. 두 번째 장 ‘치마에 새기는 마음’은 염색과 제직, 재단, 침선으로 이어지는 제작 과정에 담긴 장인의 헌신과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들의 마음을 조명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지나친 화려함을 경계하며 자수 치마의 착용을 금지하는 영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욕구는 법도만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규제 속에서도 꽃과 새를 정교하게 수놓은 여섯 폭의 자수 치마가 만들어졌고, 이는 당대 여성들이 옷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을 보여준다. 전시장에서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자수 치마 ‘성산 이씨 화조문 자수 스란치마’를 비롯해, 시대의 제약 속에서도 지켜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동시대 패션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치마

과거의 복식이 신분과 시대적 상황이라는 제약 속에서 만들어졌다면, 오늘날의 창작자들은 그 안에 축적된 지혜와 미감을 자유롭게 취사선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마지막 장 ‘치마, 오늘을 펼치다’에서는 르쥬, 제이든 초, 지용킴 세 팀의 디자이너가 전통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신작을 선보인다.



서울과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브랜드 르쥬(제양모·강주형)는 자수 치마 위에 자생식물과 나전을 얹어 전통 공예의 감각을 실험적으로 확장했다. 과거 복식의 조형성을 탐구해 온 제이든 초(조성민)는 옛 귀족 문화의 화려함을 현대적인 자수와 스팽글 기법으로 재탄생시켜 복식의 장식적 가치를 현대 패션으로 끌어온다.

한편 지용킴(김지용)은 인위적인 공정 대신 햇빛에 원단을 노출해 탈색하는 고유의 ‘선 블리치(Sun-Bleach)’ 기법에 원단을 자르지 않는 무재단 기법을 접목했다. 시간과 자연이 빚어내는 우연성의 미학을 전통 치마의 구조 위에 더했다. 세 디자이너의 작업은 전통 미감이 오늘의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 기간 중인 9월 12일에는 참여 디자이너 세 팀과 함께 전통 치마를 현대 패션으로 해석한 과정을 나누는 아티스트 토크가 마련된다. 이 밖에도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야간 개장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전통 치마에 쌓인 한국의 미감과 시간을 돌아보고, 이를 동시대 감각으로 다시 펼쳐 보이는 전시 〈치마, 겹 위에 펼쳐진〉은 11월 15일까지 아름지기 통의동사옥에서 열린다.
2026 아름지기 기획 전시 〈치마, 겹 위에 펼쳐진〉
주소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7, 아름지기 통의동사옥
기간 2026년 8월 27일 – 11월 15일
운영 시간 매일 10:00 – 17:00
협력 중앙화동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후원 까르띠에, 이건박영주문화재단,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안아이티 빔플
참여 연구소 온지음 옷공방
참여 디자이너 르쥬(LEJE), 제이든 초(JADEN CHO), 지용킴(JiyongKim)
홈페이지 재단법인 아름지기
인스타그램 @arumji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