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의 포스터 100점을 만나다, 〈100 베스테 플라카테 25〉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에서 가장 뛰어난 포스터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의 우수 포스터 100점을 조명하는 〈100 베스테 플라카테 25〉가 바르샤바 비엔날레 60주년 특별전과 함께 오는 11월 1일까지 서울 두성페이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권역의 가장 뛰어난 포스터 100점을 조명하는 전시 〈100 베스테 플라카테 25(100 Beste Plakate 25)〉가 지난 2026년 10월 1일부터 오는 11월 1일까지 서울 서초구 두성페이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전시는 매년 선정되는 100점의 수상작과 더불어,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NEWSCHØØL of PØ5TER〉를 함께 선보이며 동시대 유럽 그래픽 디자인의 다채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포스터는 단순히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 디자이너의 미학적 태도와 조형적 실험이 응축된 독립적인 시각 매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포스터의 물성과 조형미를 온전히 체감할 수 있도록 공간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특히 세로로 긴 전시장 구조를 살린 대형 포스터 벽을 통해 작품을 연속적이고 개방적인 시선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으며, 전시장 중앙의 철제 테이블 게시대에는 동시대 유럽 학생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시도와 고민을 한곳에 모아 배치했다. 완성된 이미지 이면의 설계 과정과 조형적 판단을 들여다보는 ‘아나토미(Anatomy)’를 키 비주얼 테마로 설정한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에서 이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고 운영해 온 디자인 스튜디오 로호타입을 만나 올해의 전시 공간과 비주얼 아이덴티티에 담긴 고민, 그리고 종이 포스터가 지닌 동시대적 의미에 대해 물었다.
Interview
로호타입
매년 <100 베스테 플라카테> 전시를 선보인다. 올해 전시만의 특징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올해는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NEWSCHØØL of PØ5TER〉를 함께 선보인다. 본 전시와 더불어 폴란드 동시대 포스터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 구성에서도 몇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카테고리 C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작업을 한곳에 모아, 동시대 유럽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시도와 표현 방식을 집중해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수상작의 국가별 구성에도 변화가 있다. 지난해보다 오스트리아 수상작의 비중이 높아져, 오스트리아의 포스터 디자인을 보다 더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서체와 키 비주얼을 개발했다. 주제를‘아나토미(Anatomy)’로 설정한 이유는?
게시 이후의 포스터를 전시장으로 옮겨와 다시 바라보는 행위는 어떤 면에서 해부의 과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보통 포스터를 마주할 때 표면에 드러난 이미지와 메시지를 먼저 읽는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포스터를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면, 그 이미지가 만들어진 과정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어떤 의도로 형태를 구성했는지,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쳤는지, 완성된 결과물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조형적 판단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아나토미’는 완성된 이미지의 표면을 넘어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와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포스터를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대신, 그 안에 축적된 조형적 판단과 제작 흔적을 분해하고 관찰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고자 했다.

‘포스터 전시를 위한 포스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나?
로호타입은 매년 전시를 위한 고유한 서체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사용한 서체는 김기창 디자이너의 초기 작업 중 하나인 ‘Kontro’다. 기존에 레귤러 웨이트로 제작되어 있던 서체의 초기 스케치를 다시 검토하고, 글자의 골격과 획의 굵기, 세부적인 형태를 다듬어 새로운 라이트 웨이트로 확장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아나토미’를 포스터에도 적용하고자 했다. 완성된 이미지뿐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행한 자료를 함께 보여주는 방식이다. 서체 초기 스케치, 전시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100개의 그리드, 지면의 정보 체계를 설계한 도식과 그래픽 스케치 등을 포스터 구성 요소로 활용했다.


이러한 접근을 포스터의 물리적 구조에도 반영했다. 완성된 포스터의 이미지는 상단의 얇은 종이에, 그 이면에 존재하는 스케치와 설계의 흔적은 하단의 종이에 인쇄했다. 반투명 종이를 통해 두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중첩되도록 함으로써, 완성된 결과물과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이 한 화면에 공존하도록 했다.

한글날을 기념한 포스터도 눈길을 끌었다. 적용한 한글 서체는?
한글날 기념 포스터에는 ‘SM세명조’를 사용했다. 획의 끝맺음에서 나타나는 섬세한 형태적 특징이 이번 전시를 위해 다듬은 ‘Kontro’와 잘 어우러진다고 판단했다.

보여주기 방식의 관점에서 올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올해는 작품을 보다 개방적인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세로로 긴 전시장의 구조를 활용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대형 포스터 벽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작품들을 하나의 연속된 장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면서도, 개별 포스터의 조형적 특징과 실제 크기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철제 테이블을 새로운 전시 게시대로 활용했다. 특히 카테고리 C에 해당하는 학생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이곳에 모아 배치했는데, 국내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방문했을 때 동시대 유럽의 학생 디자이너들이 어떤 시도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집중해서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랐다.

100점의 포스터를 배치하고 분류하는 기준은?
100점의 수상작에 부여된 번호는 작품의 순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에서도 특정한 위계나 관람 순서를 설정하지 않고, 작품들을 의도적으로 무작위 배치하고 있다. 관람객이 어느 지점에서 관람을 시작하더라도 무방하다. 정해진 순서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유롭게 작품을 발견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전시 공간의 물리적 조건은 고려했다. 1층 아카이브 공간은 지류함을 활용해 작품을 게시하기 때문에 큰 판형의 F4 포스터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1층에는 스위스의 포스터가 주로 배치되었다.
실물 종이 포스터의 해외 운송과 컨디션 관리도 쉽진 않겠다.
전시 작품은 해외에서 직접 배송받는다. 대부분 크기가 큰 인쇄물이기 때문에 거대한 원통형 포장재에 말린 상태로 도착한다. 포스터는 장시간 말려 있으면 종이 자체에 곡률이 남는다. 때문에 배송받은 직후부터 종이를 안정적으로 펴는 과정이 중요하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한 달 이상 포스터를 평평한 상태로 눌러두며 종이 형태를 최대한 안정화한다.
전시 공간 동선 뿐만 아니라 조명 설치도 중요하지 싶다.
포스터는 작품마다 색상과 인쇄 기법, 종이의 질감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들이 최대한 왜곡 없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특정 부분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조명보다는 빛이 넓고 고르게 퍼지는 LED 조명을 활용해, 작품 본연의 색상과 그래픽을 가능한 한 중립적인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간 구성에서는 작품을 바라보는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거대한 크기의 포스터를 한눈에 감상하려면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충분한 여유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매년 게시대의 위치와 각도를 여러 차례 조정하며 작품들이 공간 안에서 적절한 거리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고민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포스터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사이안(cyan)’의 작업이 특히 흥미로웠다. 스튜디오 사이안은 1992년 독일 베를린에서 설립된 스튜디오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하며 활동해 왔다. 디자인의 경향과 제작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자신들만의 조형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동시대성을 지닌 작업을 선보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시를 준비하며 파악한 그래픽 디자인의 최신 경향은?
최근에는 특정 스타일이나 유행만으로 동시대 포스터 디자인 경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디자이너 개개인의 미학적 관점과 조형적 태도가 한층 다채롭게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포스터는 정보 전달이라는 본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경계도 느슨해지는 분위기다.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포스터가 있는가 하면, 어떤 포스터는 조형적 실험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독립적인 시각 표현으로 기능한다. 포스터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과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 포스터를 하나의 정해진 형식으로 규정하기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시도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동시대 그래픽 디자인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이 종이 포스터에 반응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온전히 경험하기 어려운 물리적인 매체의 힘이 있다. 작은 화면 안에 갇혀 있던 이미지가 커다란 물질의 세계로 펼쳐졌을 때,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인식한다. 제한된 화면의 경계에서 벗어나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고, 포스터의 실제 크기를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선은 이미지의 규모와 거리를 신체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단순히 이미지를 확대해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상을 경험할 수 있다.

색상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 화면의 색은 설정된 코드와 데이터값에 따라 구현되지만, 인쇄물의 색은 종이 질감과 잉크 두께, 빛의 반사 등 다다양한 물리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와 인상을 자아낸다. 하나의 색상 데이터가 종이와 잉크, 빛이라는 물리적 요소와 결합하면서 복합적인 감각의 결과물로 구현되는 것이다. 같은 색이라도 어떤 종이 위에 어떻게 인쇄되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색채 경험을 안긴다는 점은 종이 포스터만의 매력이다.
나아가 종이 포스터는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고유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다. 포스터 앞에서 체감하는 시간은 시선이 머무는 곳과 몸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멀리서 이미지의 전체를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가 종이의 결이나 잉크의 흔적을 살피는 사이, 일상의 속도와는 다른 새로운 호흡이 생겨난다.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각 속에서, 이미지는 관람자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인상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100점의 포스터가 국내 디자이너 또는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는?
“포스터는 앞으로 어떤 형태와 형식으로 존재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될까?” 등의 질문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매년 선정되는 100점의 작품은 동시대 시각 경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포스터라는 매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보 전달을 위한 인쇄물에서 출발한 포스터가 이제는 독립적인 시각 표현이자 실험의 장으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관람객이 작품 감상을 넘어, 앞으로 포스터가 어떤 역할과 가능성을 지닌 매체로 자리 잡게 될지 함께 고민하고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도 있나?
다양한 인쇄 기법으로 제작된 포스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인쇄 결과물은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종이의 질감이나 인쇄의 차이를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실제 작품을 통해 이러한 차이를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전시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전시를 준비하며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3개국의 수상 디자이너들을 초청해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해 보고 싶다.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던 디자이너들의 작업 방식과 생각을 직접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국내 디자이너와 관람객들에게도 더욱 풍부한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내년은 한국 전시가 1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동안 소개해 온 수상작들을 어떤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지난 10년을 단순히 회고하는 데 머무르기보다는, 그간 축적된 작품과 전시의 경험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형식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전시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100 베스테 플라카테 25〉
기간 2026년 10월 1일 – 11월 1일
장소 서울시 서초구 사임당로23길 41 두성페이퍼갤러리(두성종이 서초 본사 2층)
운영 시간 12:00 – 18:00(월요일-금요일), 10:00 – 19:00(토요일, 일요일)
주관 100 베스테 플라카테 협회
주최 로호타입, 두성종이
후원 제로랩
인스타그램 @100besteplakate_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