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한국성 ③] 균형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소냐 박 × 홍성찬·초지혜
월간 〈디자인〉 Vol.581 | Special Feature
일본의 셀렉트 숍 아츠앤사이언스를 이끄는 소냐 박은 서로 다른 문화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물건과 공간,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감각을 키웠다. 좋은 물건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전하는 리테일의 역할을 고민하는 인포멀웨어의 홍성찬·초지혜 대표가 소냐 박을 만났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취향과 물건이 소비되는 시대다. 일본의 셀렉트 숍 아츠앤사이언스를 이끄는 소냐 박은 물건을 고르는 것이 곧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2003년 도쿄 다이칸야마에서 시작한 아츠앤사이언스는 옷과 생활용품, 공예품을 통해 기능과 아름다움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하와이를 거쳐 일본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소냐 박은 서로 다른 문화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물건과 공간,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감각을 키웠다. 좋은 물건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전하는 리테일의 역할을 고민하는 인포멀웨어의 홍성찬·초지혜 대표가 소냐 박을 만나 물건을 고르는 기준과 독립 리테일이 지켜야 할 가치, 그리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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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 경험한 것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열세 살 생일을 앞두고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그래서 서울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까지 남아 있다. 1977년에 이민을 갔으니 내 기억 속 서울은 1970년대의 모습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자주 찾는 문화가 아니었다. 대신 어머니를 따라 명동이나 백화점, 신라호텔 같은 곳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공간을 보며 ‘이런 곳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준 공간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라 백화점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물건과 공간을 경험하며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스타일리스트로 커리어를 쌓았다. 왜 일본이었나?
1970년대 미국에서 접한 패션과 대중문화는 상당히 서구적이었다.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같은 드라마를 보며 자랐지만 동양인인 나는 화면 속 사람들에게 온전히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버지 덕분에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됐다. 하와이에는 일본 문화가 비교적 많이 들어와 있었고 일본 서점도 많았다. 아버지를 따라 서점에 가서 〈앙앙anan〉이나 〈류코츠신流行通信〉 같은 잡지를 열심히 봤다. 미국 잡지에서 보던 미감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부터 ‘일본은 정말 멋진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 시절 샌프란시스코를 갔을 때였다. 우연히 들어간 꼼데가르송 숍이 굉장히 미니멀한 분위기였는데,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공간도 있구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 경험 이후 일본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에게 관심이 생겼고, 언젠가는 꼭 일본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대학을 다니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부모님께는 2년 정도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어도 배우고 경험한 뒤 다시 돌아와 대학을 마치겠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돌아가지 않았지만 말이다.(웃음)
아츠앤사이언스의 시작이 궁금하다. 처음 숍을 열 때 어떤 생각에서 출발했나?
처음 작은 가게를 열 때 많이 고민한 것이 이름이었다. 당시에는 패션 숍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생활용품, 타월이나 비누 같은 물건을 모아 작은 가게를 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물건에는 예술성과 기능성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도 예술적 감각뿐 아니라 캔버스나 물감 같은 재료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디자인만 뛰어나고 기능이 부족하면 좋은 물건이 될 수 없고, 기능만 좋고 아름다움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결국 좋은 제품은 예술성과 기능이 균형을 이룰 때 나온다. 또 한 가지는 대학에서 흔히 ‘아츠 & 사이언시스Arts & Sciences’라는 이름으로 예술과 과학을 함께 다루는 학부가 많다는 데서 영감을 받았다. 왜 이 두 영역을 같은 울타리 안에 두었을까 생각해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삶의 모든 것은 예술과 과학, 즉 아름다움과 기능의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츠앤사이언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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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렉트 숍으로 시작해 오리지널 의류를 만들고 이후 신발, 생활용품, 공예까지 아우르며 점차 영역을 넓혔다. 이러한 확장은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인가?
전혀 아니다. 처음 다이칸야마에 가게를 열었을 때 손님들은 ‘예쁜 가게’라고 칭찬했지만 정작 물건은 잘 팔리지 않았다. 들여온 타월이나 생활용품은 품질이 좋았기에 자연히 가격도 높았는데, 친구들마저도 “누가 타월 하나에 이렇게 큰돈을 쓰겠냐”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몇 달 동안 거의 아무것도 팔리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진열해 둔 빈티지 옷은 사 가는 거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그때부터 패션을 시작하게 됐다. 20여 년 전 일인데 그때만 해도 일본에서 생활용품에 기꺼이 돈을 쓰는 문화가 지금만큼 자리 잡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좋은 생활용품에 투자하는 문화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일본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당시에는 가게를 유지하려면 패션을 함께 해야 했고, 그렇게 지금의 형태로 조금씩 확장됐다.
숍을 운영하다 보면 좋아하는 물건을 발견하는 일과 숍에서 소개할 물건을 선택하는 일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츠앤사이언스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 초대장에 딱 한 줄 적었다.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모아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져다 놨다. 물론 장사가 잘되지 않아 컬렉션을 확장하긴 했지만, 지금도 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팔기 위한 컬렉션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백화점이나 다른 큰 매장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쓸 수 없는 물건이라도 ‘이건 이런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고른다. 물론 현실적인 가격도 고려한다. 무조건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국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개인적인 취향과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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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확신은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어떤 순간에 ‘이 물건을 소개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나?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작품이라도 내게 영감을 주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굉장히 직관적인 일이다. 감각적으로 ‘맞다’는 느낌이 먼저 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가게를 운영하며 손님을 기다리는 일은 그림을 걸고 관객을 기다리는 예술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까. 그런 점에서 아츠앤사이언스도 하나의 ‘관점’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안목을 믿고 그 믿음을 꾸준히 보여주는 일이다.
아츠앤사이언스의 공간과 큐레이션을 보면 공예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어쩌면 미술을 대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술 작품은 좋아하지만 현실적으로 소장하기에 너무 비싸다. 물론 유명한 작가의 작품 중에는 갖고 싶은 것도 있지만 요즘은 미술 시장 자체가 너무 커져서 주로 감상하는 정도다. 오히려 나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나 공예, 디자인에 더 관심이 많다. 디자이너 중에 예술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도 있는데 나는 예술은 예술대로, 디자인은 디자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디자인에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그 기능 안에서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자 하나, 생활 속 물건 하나에도 기능을 고민한 결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미학이 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순수 예술뿐 아니라 일상 속 디자인과 물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아츠앤사이언스가 하는 일도 결국 리테일 안에서 좋은 물건을 선별하고, 그 물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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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ohei Omachi대형 리테일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에 아츠앤사이언스 같은 독립 셀렉트 숍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독립 리테일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이 운영하는 리테일과는 차별점이 있어야 하고, 독립적인 시각을 보여줘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이미 거대한 기업과 유통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관점과 개성이 공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창조의 자유이자 생각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만약 작은 숍이 모두 사라진다면 사회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갈 것이다. 나는 그런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독립 리테일을 지키는 일은 사업을 이어가는 것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자신만의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이어가야 한다.
아츠앤사이언스는 매장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에서 오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일본은 완벽함이 일상인 사회다. 어디에 가든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그런 환경에 오래 있다 보니 나 역시 자연스럽게 기준이 높아졌다. 손님들도 그 수준을 기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완벽을 추구하게 된다. 물론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적당한’ 문화가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근 최욱 건축가와 대담을 나누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일본에서는 완벽함을 추구하다 융통성이 없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정교해지면서 오히려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 때가 있다. 반면 한국에는 좋은 의미의 ‘적당함’이 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유연한 태도랄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완벽함만 추구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공예와 건축에서 불완전함의 미와 자유분방한 매력을 느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국의 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주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친근함이 있는 것 같다. 할머니가 내주는 음식처럼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느낌이다. 일본 문화가 정제된 아름다움과 도시적인 에지, 날카로운 감각을 지녔다면 한국적인 것은 조금 더 모나지 않고 둥글다. 어디를 가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도 괜찮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조금 투박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서울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실제로 살아보면 또 다른 면이 있겠지만. 반면 한국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서울에서도 일본의 상점처럼 공간을 꾸미거나 일본적인 요소를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풀어내느냐다. 좋아하는 것은 괜찮지만,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거나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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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빠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한편, 전통 기술과 제조 기반이 이어지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일본에서 장인과 생산 체계가 유지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바라보나?
일본은 전후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기반을 잘 갖춰온 것 같다. 패션 산업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 이세이 미야케, 겐조 같은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패션 산업 전체가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제조 기반도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었다. 공예 역시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과 산업을 꾸준히 보호하며 이어왔다. 백자처럼 한국에서 비롯된 문화가 일본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계승된 사례를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 밖에서 그 전통이 더 잘 보존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이 일본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두 나라가 걸어온 역사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한국은 일본이 만들어낼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빠른 변화 속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직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지금의 한국을 지켜보며 앞으로 기대하는 변화나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파리와 베니스를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일본을 주로 방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울에 가고 싶어 한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일본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앞으로 10년, 15년, 20년 뒤를 생각한다면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은 아직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 긴 시간을 바라보며 시작하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많은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젊은 사람들이 공예나 디자인 분야에서 열심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간다면 정말 흥미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은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 한국의 가능성을 더 크게 생각하고 그것을 키워나가야 하는 시기다.
최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이 소비 트렌드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본인에게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라이프면 라이프지, 스타일이 따로 있겠나? 어떤 가게를 ‘라이프스타일 숍’이라고 부르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어떻게 하면 세련된 사람이 될 수 있나요?” 하고 묻기도 하는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라이프스타일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과 개성, 퍼스널리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까사 브루투스Casa BRUTUS〉 같은 매체는 아름답고 세련된 인테리어나 공간을 많이 소개한다. 그런 공간이 보여주는 완성도와 정제된 아름다움도 매력적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공간이 어떠해야 한다는 어떤 이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캐릭터와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아츠앤사이언스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테일러가 모두에게 같은 옷을 권하지 않고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주듯, 우리도 사람마다 다른 취향과 기준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다. 중요한 것은 트렌드를 만드는 것도,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관점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발견하도록 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아츠앤사이언스를 통해 이어가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독립적인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대와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면 자연스럽게 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라질 수도 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잘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