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공존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 김성천

디자인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모으는 일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자 디자인 기록에 앞장서는 CDR의 대표 김성천, 그에게 아카이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과거와 공존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 김성천

김성천 CDR 대표는 민간 차원의 디자인 아카이빙 활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다. 전문 아키비스트는 아니지만 1세대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교육받고 자란 디자이너로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디자인에 대한 증거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그의 사무실은 각종 매뉴얼 북과 수집품으로 번잡하지만 여느 디자인 회사만큼이나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CDR이 내년에 50주년을 맞는다. 어떻게 기념할 계획인가?

특별한 행사는 준비하고 있지 않다. 대신 〈20세기 한국의 디자인 매뉴얼 베스트 20선〉(이하 〈매뉴얼 베스트 20선〉)과 1945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에서 제작한 로고를 집대성한 책을 낼 생각이다. 〈매뉴얼 베스트 20선〉은 1974년 〈OB 데코마스 매뉴얼〉부터 1999년에 기획해 2000년에 완성한 〈한글라스 매뉴얼〉까지 총 20권을 소개하는 것으로 정했다. CDR의 전신인 조영제디자인연구소에서 조영제 교수를 중심으로 양승춘 교수 등이 참여해 디자인한 〈OB 데코마스 매뉴얼〉은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 매뉴얼 북이라는 점에서 가장 아끼는 수집품이다. 〈한글라스 매뉴얼〉은 보기 드물게 완성도 높은 수제 매뉴얼로 이상철 디자인 이가스퀘어 설립자의 장인 정신이 엿보인다. 원래 프로파간다 출판사와 올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선보일 신간을 내보자는 이야기가 오갔지만 본업으로 그때까지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웃음) 또한 50주년이 되는 2024년을 회사 차원에서 기념하는 대신 1월부터 12월까지 CDR의 1년을 기록해 51주년 되는 해에 기록집을 내려고 한다.

올해 47주년인 디자인하우스보다 창립 연도가 몇 년 빠르다.

CDR의 창립 연도는 사실 꼭 집어 말하기 어렵다. 설립자 조영제 교수가 화신산업을 퇴사하고 을지로2가에 개인 사무실을 차린 1961년으로 할지, 아니면 다른 기준을 정해야 할지 애매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내가 CDR 대표를 맡은 후 1974년을 창립 연도로 정했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던 〈OB 데코마스 매뉴얼〉이 세상에 나온 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제일제당(지금의 CJ) 아이덴티티 디자인 개발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해이기도 하다. 조영제 교수는 늘 그 계약서가 늘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계약서라고 말했다. 나도 타자기로 쓴 1장짜리 종이 계약서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는 디자이너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구두 계약으로 일하는 게 흔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CDR 창립 연도를 그때로 정하자고 했더니 조영제 교수도 흔쾌히 찬성했다.

자료를 비교적 잘 보관하고 있다.

원래는 역삼동에 1980년대 중반에 마련한 CDR 사옥이 있었다. 하지만 1995년 복스앤콕스와 합병 후 몇 차례 이사를 다녔다. 가장 마음이 쓰렸던 순간은 새로 이사 간 사무실에 매뉴얼 북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건물 옥상에 방수 천을 덮어 보관했는데 어느 날 장마로 비가 많이 내렸다. 이튿날 서둘러 가보니까 곰팡이가 다 피어 있어서 거의 다 버려야만 했다. 그래서 온습도 장치가 있는 보관 장소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포스터나 잡지 같은 지류와 달리 오브제와 굿즈는 적재 공간의 한계로 신중하게 골라서 수집한다. 김현 디자인파크 설립자에게 받은 호돌이 인형은 양산에 들어가기 전 제작한 프로토타입으로 의미가 있다. 또 양승춘, 민철홍 교수가 패키지 및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장호익 교수가 병을 디자인한 마주앙 와인병과 패키지 샘플도 갖고 있다.

“한국 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자료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시작했다.”

아카이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디자인계 일원으로 제대로 된 한국 디자인 연표가 없다는 게 늘 아쉬웠다. 정부 기관에서 발행한 각종 보고서, 디자인 전시에서 공개한 연표를 비교해보면 조금씩 다르다. 1~2년의 오차를 대수롭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 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자료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시작했다. 부정확한 기록과 정보 때문에 웹상에서 자꾸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김진평 교수가 1983년 미진사에서 펴낸 〈한글의 글자표현〉에 사례로 수록된 로고타이프를 전부 그가 디자인한 것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각각 크레디트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생긴 문제인데 ‘버킹검’과 ‘마주앙’은 양승춘 교수, ‘한국투자신탁’과 ‘대림산업’은 구동조 디자이너의 작업이라고 밝히고 싶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는 몇몇 디자인 연구자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표 작업에 공들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디자인재단 주최로 열린 〈DDP 디자인 아카이브 KSVD: 1972~1993〉전의 기획과 진행을 맡았는데 그때 김상규 교수와 1970~1980년대를 정리한 연표를 야심 차게 선보였다. 그가 참여해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전에서 선보였던 연표의 업데이트 버전이다. 각각의 기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월간 〈디자인〉 기사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시 도록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 관계자 구술 인터뷰를 통해 크로스 체크했다. 궁금한 점을 묻고 싶은 분들이 많이 작고하셨고 살아 계신 분들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할 때 안타깝다. 앞으로도 KSVD와 KOGDA의 활동을 중심으로 시각물을 수집하면서 그래픽 디자인 연표를 더 정교화할 계획이다.

앞서 매뉴얼 북 출간을 위해 1970년대 매뉴얼부터 살펴보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본다면 어떤가?

기업이 CI를 도입하던 초창기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이 제작 과정에서 비례나 컬러를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과거에는 다소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 매뉴얼 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졌기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기업도 다양한 매체에 자사의 CI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통제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넘어간 셈이다. 한편 요즘에는 브랜드 로고를 패러디하는 유머를 기꺼이 수용하고 오히려 이를 나서서 장려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팬데믹 기간 중 ‘사회적 거리 두기’를 테마로 아우디나 맥도날드 같은 브랜드에서 로고 플레이를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예전 같으면 브랜드가 앞장서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앞서 〈매뉴얼 베스트 20선〉외에도 한국의 로고를 집대성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출판사 타셴에서 펴낸 〈로고 모더니즘Logo Modernism〉은 1940년부터 1980년까지 개발한 전 세계 로고 6000여 개를 모은 책인데 주로 미국과 유럽, 일본의 사례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조영제 교수의 ‘국민은행’ 로고 단 하나뿐이다. 이에 한국의 로고 디자인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에서 지난해부터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해당 디자인을 한 회사나 디자이너에게 연락해 파일을 받기도 하고, 디지털 파일이 없다고 하면 직접 디지털 툴로 형태를 따내는 작업을 한다. 지금까지 3500여 개 로고 디지털 파일을 모았다. 나는 작도기와 컴퍼스, 빵빵자 같은 도구로 로고 디자인을 하는 법부터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법까지 두루 익힌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 로고 디자이너들이 각각의 로고를 왜 그렇게 디자인했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몸으로 체득한 감각은 컴퓨터로 로고 디자인을 하는 법을 배운 디자이너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날 디자인 아카이브의 현실을 냉철하게 짚어본다면?

디자인을 대량생산물로 여겨 갖고 있는 귀한 자료를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아카이빙하는 입장에서 너무 안타깝다. 디자인 관련 정부 기관이든 아키비스트든 누군가가 이런 것을 모아 DB화하면, 디자인 연구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연구하는 방식으로 선순환 체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또 돈이 되는 작품은 보관하고 디자인 시각물은 아카이빙하지 않는 상황도 바뀌어야 한다. 수년 전 홍콩 M+ 뮤지엄에서 찾아와 1988 서울올림픽 공식 포스터(교정쇄본), 엠블럼 포스터(한정판 실크프린트), 올림픽 매뉴얼 북, 대전 엑스포 포스터(교정쇄본) 등을 수집했다. 나는 무상 기증이 아니라 구매를 통해 뮤지엄 컬렉션에 포함되도록 요청했고 원하는 대로 높은 가격대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판매가는 희소성과 저작자, 전문가의 평가로 결정된다. 아카이브 자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러면 폐기 처분하지 않고 중고 사이트에라도 올린다는 얘기다. 조금은 씁쓸한 현실이다.

김성천에게 아카이브란 어떤 의미인가?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소스. 1995년 CDR 대표직을 맡아 회사를 운영하면서 고민이 하나 있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데 회사의 헤리티지로 인한 인상이 강해서다. 처음에는 클라이언트에게 CDR이 올드한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줄까 봐 드러내고 아카이빙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50년 역사를 가진 회사라는 자부심으로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에 기여해야겠다고. CDR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아카이빙은 아카이빙대로 하고, 또 바쁘게 클라이언트들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묵묵하게 나아가는 중이다.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 기록을 제공하는 데 앞장서고 싶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01호(2023.10)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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