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을 재정의하는 가구 브랜드, 바르니

바르니가 말하는 ‘핀란드다움’과 새로운 세대를 위한 디자인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인 유산은 어떻게 다음 세대와 호흡하며 새롭게 진화할 수 있을까.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의 계보를 대표하는 북유럽 디자인 신에서 핀란드 가구 브랜드 바르니(Vaarnii)는 독자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

핀란드 디자인을 재정의하는 가구 브랜드, 바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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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arnii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인 유산은 어떻게 다음 세대와 호흡하며 새롭게 진화할 수 있을까.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의 계보를 대표하는 북유럽 디자인 신에서 핀란드 가구 브랜드 바르니(Vaarnii)는 독자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 오직 핀란드산 소나무만을 사용하는 것. 거칠고 투박한 소나무의 물성을 숨기기보다, 순수한 질감과 강인한 존재감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재해석한다. 동시에 지역의 재료와 제작 기술에 기반한 책임감 있는 생산 방식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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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바르니의 공동 창립자 미클루 실반토와 안티 히르보넨. 실반토는 애플과 뱅앤올룹슨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히르보넨은 톰 딕슨과 아르텍에서 브랜드 경험을 쌓았다. © Vaarnii

국토의 약 75%가 숲으로 이루어진 핀란드에서 소나무는 가장 흔한 자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값싸고 투박한 소재로 여겨지며, 하이엔드 디자인의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바르니의 공동 창립자 안티 히르보넨(Antti Hirvone)과 미클루 실반토(Miklu Silvanto)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뉴 피니시 디자인(New Finnish Design)’이라는 비전 아래 2021년 바르니를 설립하고, 과소평가된 소재였던 소나무의 새로운 미감과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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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낭 부홀렉과 협업으로 완성한 ‘마스토(Maasto)’ 시리즈. © Vaarnii

바르니는 세실리에 만즈, 맥스 램, 필립 말루인, 로낭 부홀렉 등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소나무의 조형적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들의 작업에는 거친 질감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과 절제된 형태감, 그리고 긴 시간을 견디는 견고함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핀란드의 장인 정신을 바탕에 두되, 기존 북유럽 디자인이 보여주던 단정하고 절제된 이미지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보다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바르니의 모든 제품은 핀란드 현지에서 생산된다. 지역의 제재소와 공방, 제조업체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제작 과정을 이어간다. 우선 결이 좋은 소나무를 선별하는 것에서 시작해, 용도에 따라 적합한 부위를 고르고, 절단과 건조를 거쳐 완성도 높은 형태로 다듬는다. 소재를 숨기거나 과하게 가공하기보다, 소나무 본연의 질감과 특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방식에 집중한다. 이처럼 ‘정직함’은 바르니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제조와 포장, 배송,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투명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소재를 불필요하게 꾸미지 않는다. 대신 견고하고 실용적이며, 한 사람의 삶을 지나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이것이 바르니가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생산 방식이자 지속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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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니는 올해로 설립 5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재료 본연의 형태와 타협 없는 철학을 구축해 온 브랜드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4월 30일, 헬싱키의 갤러리이자 숍인 플레이그라운드 헬싱키(Playground Helsinki)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파예 투굿이 디자인한 아웃도어 체어를 비롯해, 바르니를 대표하는 가구와 조명 컬렉션을 전시했다. 특히, 디미트리 바흘러(Dimitri Bahler)의 ‘Vaarnii 002 Ast Stool(바르니 002 아스트 스툴)’은 이번 행사를 위해 아티스트 프레드릭 카렐(Fredrik Karell)의 특별 커스터마이징 버전으로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5년 동안 소나무라는 단 하나의 소재를 집요하게 탐구해 온 바르니. 공동 창립자 안티 하르보네를 만나, 브랜드의 시작점부터 그들이 정의하는 새로운 시대의 핀란드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안티 히르보넨(Antti Hirv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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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니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 안티 히르보넨 © Vaarnii
바르니의 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무엇인가?

감사하다. 정말 영광스럽다! 지난 5년은 굉장히 치열하면서도 보람찬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훨씬 커졌고, 활동 범위도 역시 국제적으로 확장됐다. 작업의 복잡성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니의 핵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주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출발했으니까. 핀란드 소나무라는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고, 그 소재를 진지하게 탐구하겠다는 것. 이러한 방향성은 현재도 모든 결정의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바르니는 단일 재료를 중심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왔다. 어떻게 소나무가 바르니의 출발점이 되었는지, 또 어떠한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소나무는 핀란드 어디에나 존재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수종이자 비교적 빠르게 자라는 나무이고, 핀란드의 풍경과 문화에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디자인의 맥락에서는 역사적으로 소나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자작나무와 다르게 특정 래커의 노랗고 번들거리는 마감 때문에 외면받기 일쑤였다. 우리를 매료시킨 건 바로 그 모순이었다.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한 소재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소나무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제약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사용할 수 있는 팔레트를 제한할수록, 오히려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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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의 바르니를 어떤 브랜드로 정의하고 있나?

바르니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직함’에 대한 믿음이 있다. 소재, 구조, 표현의 정직함이다. 소나무는 하이엔드 디자인 분야에서 다소 과소평가되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그런 인식을 뒤집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르니는 소나무를 본래의 모습과 다른 무언가로 억지로 다듬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소재가 가진 개성, 불완전함, 그리고 강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소나무는 결이 굉장히 강하고 옹이도 많아서, 때로는 사이키델릭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의 바르니를 설명하자면, 거칠음(brutal)과 세련됨(sophisticated) 사이의 균형이라고 하고 싶다.

바르니는 로낭 부홀렉, 파예 투굿, 맥스 램, 세실리에 만즈 등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왔다. 디자이너를 선택할 때 중시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관점’이다. 소나무라는 소재를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 그 재료와 진정으로 관계를 맺고, 작업 과정 속에서 소재 자체가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도록 열어둘 수 있는 사람. 디자이너에게 특정한 하우스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목소리와 태도를 자유롭게 가져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결과가 자연스럽게 탄생하길 기대한다. 물론 동시에, 바르니라는 브랜드 자체가 이미 매우 강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핀란드 소나무라는 명확한 출발점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에게도 오히려 더 단단한 기준과 방향성을 제공해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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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과정에서 추구하는 태도나 작업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협업은 결국 실험하려는 의지, 그리고 기존의 가정을 기꺼이 의심해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바르니는 열린 대화와 유연한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시에 소재 자체에 대한 일종의 겸손함 역시 중요하다고 느낀다.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협업이나 순간이 있다면 들려달라.

모든 협업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프로토타입이 ‘딱 맞아떨어지는’ 때다. 수많은 대화와 실험, 시행착오 끝에 하나의 형태가 선명하게 완성되면서, ‘정말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했구나’ 하고 직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경험은 언제나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만약 바르니를 가장 잘 대표하는 하나의 작품을 꼽아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가장 좋아하는 자식이 누구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다!(웃음) 당연히 우리는 모든 작품을 똑같이 사랑하고, 또 모두를 동등하게 자랑스럽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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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니는 스스로 새로운 핀란드 디자인 언어를 만든다고 소개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핀란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아주 로컬한 요소들, 이를테면 소재나 기술, 전통 같은 것들을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 핀란드 디자인은 이미 강력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르니는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지금 이 시대, 지금의 맥락 안에서 오늘날의 기술과 아이디어 안에서 그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책임 있는 생산은 오늘날 모든 디자인 브랜드가 마주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바르니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가치들은 실제 브랜드 운영 방식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

지속가능성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접근 방식 안에 자연스럽게 내재된 가치에 가깝다.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재생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그 중요한 일부이지만, 동시에 ‘오래 지속되는 것’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바르니는 물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오브제를 디자인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복잡함은 피하고, 명확함과 내구성에 집중한다. 결국 가장 지속가능한 오브제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곁에 두고 살아가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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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바르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가?

무작정 영역을 넓히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욱 깊이 탐구해나가고 싶다. 소나무라는 소재 안에는 여전히 발견하고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에 있다.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작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나, 새로운 맥락으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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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곧 공개를 앞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현재 몇 가지 흥미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모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소나무라는 소재에 도전하는 작업들이다. 또 가구를 넘어 보다 건축적이거나 공간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프로젝트들도 준비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일정으로는 오는 6월, 3데이즈 오브 디자인(3daysofdesign)에서 새로운 액세서리 컬렉션을 공개할 예정이다. 바르니가 소나무를 어떻게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지 기대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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