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디자이너 김민주: 진지하고 근본적인 디자인 방식으로 특별한 패션 IP를 만들다
김민주 디자이너·민주킴 대표
예술과 비즈니스 감각을 겸비한 패션 선구자. 김민주 디자이너는 2015년부터 패션 브랜드 민주킴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한편, 일관되게 쌓아온 아카이브를 통해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고 있다.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
editor’s note
여성복 브랜드 민주킴(MINJUKIM)을 이끄는 디자이너 김민주의 이름 앞에는 종종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에 재학 중이던 2013년, 차세대 디자이너를 뽑는 H&M 디자인 어워드에서의 우승과 2020년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Next in Fashion)〉 우승, 2023년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이 주최하는 ‘패션 인 모션(Fashion in Motion)’ 초청에 이르기까지 모두 김민주 디자이너가 한국인 최초로 이룬 성취죠. 대중에게 그는 아이브의 ‘해야’ 뮤직비디오 속 의상과 아일릿의 앨범 디자인, 영화 〈위키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도 친숙할 텐데요. 패션,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활발히 협업하는 디자이너로서도 그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어요. 수많은 프로젝트와 협업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도 뚜렷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브랜드 민주킴의 10주년을 앞두고 ‘하얀 한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민주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김민주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패션을 사랑하고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 김민주 디자이너가 걸어온 지난 여정과 협업, 세컨드 브랜드 파쿠아(PAKUA), 그리고 민주킴의 앞으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PLUS 1. 하얀 한옥이 품은 컬래버레이션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곳은 민주킴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에요. 안국역 부근에 자리를 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패션이 중심인 지역은 아니에요. 길을 지나며 들리는 사람들보다는 민주킴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죠. 8년 동안 매장 없이 쇼룸에 선보이는 형태로 세일즈를 해오다가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재작년이었어요. 저희와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 2022년 11월에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어떤 매장을 어디에 차릴까, 첫 매장이니만큼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앤트워프에서 한국에 들어온 직후부터 계속 종로에 살았어요. 물론, 사무실은 용산과 압구정 등 여러 곳을 다녔지만요. 그래서 항상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죠. 또 〈넥스트 인 패션〉으로 알려진 만큼, 해외에서 우리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함께 느낀다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하 1층은 디자인실 겸 민주킴의 아카이브 공간이에요. 아카이브 공간이 왜 필요했나요?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자료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그 태도가 제품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죠. 하나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벌을 제작해 제품화하고, 고객이 구매하도록 하는 거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없어요. 예를 들어, TV가 100만 원이고 저희 옷도 100만 원이라면, 저희는 얼마나 잘 만들어야 할까요? 물론 옷의 원가가 TV보다 높을 거예요. 하지만 고객들을 설득하려면 제품에 그만한 태도와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 순간 이를 리마인드하며, 팀원들 또한 이 기준에 맞춰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자료들은 결국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하고요.
최근 개봉한 영화 〈위키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도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는데요. 〈위키드〉와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나요?
두세 달 전 유니버설 픽처스 측에서 〈위키드〉를 민주킴이 재해석해줬으면 한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판타지적이고 동화적이면서 인간의 성숙을 다루는 〈위키드〉의 내용이 민주킴과 닮았다고 생각했대요. 저희가 만드는 패턴과 디자인이 지닌 귀여움과 성숙함도 좋아했다고 하고요. 저도 〈위키드〉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꼭 하고 싶었어요. 당시 영화는 보지 못한 상태에서 IP만을 참고해 작업을 진행했죠. 영화 속 튤립, 핑크와 그린의 조화 등을 조금 더 커머셜하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새로운 타이틀 폰트와 그래픽을 만들고, 민주킴의 디자인에서 엘파바와 글린다에게 어울릴 만한 제품을 선정해 디자인을 발전시켰습니다.
협업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최근 케이팝 걸 그룹 아일릿의 앨범 로고 디자인과 무대 의상에도 참여하셨죠.
제가 직접 그래픽을 만들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의상이 아닌 다른 협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아일릿의 두 번째 미니앨범 로고 디자인 작업에서는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혼란스럽고 장난스러운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빠른 시간 안에 아일릿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저 또한 컬렉션마다 컨셉을 설정하고 이를 그림과 그래픽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로고 디자인을 자세히 보면, 하트를 중심에 두고 눈물방울 같은 형상이 떨어지면서 모래시계 형태를 이루고, 그 주변에는 좋아하는 감정과 연관된 화살 같은 요소들이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도록 표현했어요. 이를 통해 감정의 혼란과 설렘을 담았죠. 의상은 유니폼 같은 단체 룩을 시도하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민주킴 스쿨룩’을 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 학생이라면 이 유니폼은 무조건 입고 싶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웃음)
손으로 드로잉한 로고 디자인의 오리지널 스케치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그려 완성한 뒤 이를 그래픽화해요. 그래야만 오리지널리티가 담긴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로잉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선과 디테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정말 좋아해요. 그 과정에서 ‘예쁘다’는 직감이 제 안에서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요. 마치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요. 이번 협업에서 행복했던 점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업이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협업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귀여운 소녀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니, 너무 기쁘고 즐거웠어요.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 스타일링과 이를 바탕으로 한 미니 컬렉션과 전시회, BTS의 월드 투어 의상 등 패션계를 넘어서 다양한 영역에서 협업을 진행해왔어요. 협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지금까지의 협업 제안들은 대부분 저희와 잘 맞는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사실 어렸을 때는 제안이 들어오면 무조건 했죠. 이 비즈니스를 지속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많은 일을 해왔고, 그렇게 버텨온 시간이었어요. 요즘에는 우리와 잘 어울리는지, 우리가 상대에게 좋은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과 성장이 될 수 있는지를 보는 것 같아요. 의류가 아닌 새로운 아이템이라면, 그 작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회사 대 회사로 일하는 과정에서 팀원들 또한 새로운 방식과 태도를 경험할 수 있고요. 여러 방면에서 협업은 좋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개봉을 앞둔 〈위키드 파트 2〉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물론, 다양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요. 브랜드들은 왜 민주킴을 좋아할까요?
저희만큼 정체성이 뚜렷한 디자인이 없다고 생각해요. 직접 드로잉하고 그래픽과 프린트를 만들어내며, 탄탄한 아카이브까지 갖추고 있잖아요. 컬래버레이션은 기존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한 스푼 더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라고 봐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가진 IP는 제품에 색다른 존재감을 부여하죠. 그리고 여러 기업과 협업하며 쌓아온 성공 사례들이 있고,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디자인하고 만들어요.
PLUS 2. 민주킴과 파쿠아
민주킴의 2024 F/W 컬렉션의 주제가 ‘버드(Bud)’였어요. 어떤 스토리를 담았나요?
저는 컬렉션에 저의 정체성과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해석을 담으려고 하는데요. 이번 시즌은 ‘버드’라는 주제를 정하기 전, 우리의 모든 아카이브를 다시 꺼내 보자는 결정을 했어요. 이번 시즌이 민주킴의 10주년을 앞둔 마지막 컬렉션이었으니까요. 그동안의 아카이브를 정리하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고, ‘버드’라는 주제 안에서 활짝 피어 있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번 컬렉션의 메인이 되는 패턴은 꽃 같기도 해요.
차가운 눈 위로 올라온 열매 같은 꽃봉오리를 상상하며 그린 거예요. 대략 20개의 그래픽을 디자인했는데, 그중에서 선택된 것이죠. 이번 컬렉션에서는 옷의 형태감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특히 디자인의 시작점이었던 미니 케이프는 이파리가 닫혀 있는 듯해 ‘버드’라는 주제를 잘 전달한다고 생각했죠. 요즘에는 케이프를 잘 입지 않지만, 케이프가 가진 우아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그리고 아카이브에서는 솔드아웃되었던 디자인을 가져와 처음으로 새롭게 재정비해 선보였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만든 옷은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꼈죠.
2022년 S/S와 F/W 컬렉션은 한국적인 요소가 전면으로 드러난 첫 컬렉션이지 않나 싶어요. 당시 바리공주를 주제로 가져온 이유가 궁금해요.
〈넥스트 인 패션〉 이후 ‘나는 어떤 디자이너인가’ 고민할 때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결심했죠. “나는 이제 한국 디자이너가 될 거야.” 제가 가진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녹여낸다면, 비슷한 장르와 선상의 디자이너들과 차별화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바리공주를 주제로 정했죠. 정말 철저하게 한국을 깊이 파고들어 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시작했어요. 박물관에 다니며 우리나라의 유산을 공부했고요. 일본이나 중국과 구분되는 우리만의 디테일을 알아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잖아요.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한국적이되 지나치게 한국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단순히 전통 의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고, ‘바리(BARI)’라는 이름을 쓰는 만큼 신중하고 철저하게 접근해야 했죠. 쉽지 않았지만 민주킴의 독창성을 증명하는 작업이 되었고, 그 결과물이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이하 V&A)과 이어졌죠.
매 시즌 컨셉에 기반한 원단을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요?
민주킴이 어떤 형태의 브랜드인지 설명하기 위해 여러 단어를 찾아보곤 하는데요. 결국 ‘부티크’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 같은 디자이너와 부티크가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저희처럼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브랜드는 점점 드물어졌죠. 가끔은 지치고 소진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이겨냅니다. 모든 건 엉덩이 싸움이죠. (웃음) 끝까지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민주킴은 지금까지 20개의 컬렉션을 쌓아왔고,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엄청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담겨 있어요. 이 과정을 반복하며 쌓아가는 재미를 알고 있고, 그것이 민주킴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라는 것 또한 잘 알기에 다시 한번 해보자, 하며 계속 나아갈 수 있어요.
“모든 과정에는 힘듦과 실수, 실패가 있죠. 그래도 결국 만들어내고 고객이 옷을 입고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 그 모든 노력이 온전히 전해졌다는 것을 느끼며 행복해져요.”
프리젠테이션 방식도 독특해요. 2024년 S/S 컬렉션 오픈데이는 플로리스트 박소희의 전시와 함께, 이번 F/W 컬렉션 오픈데이는 플래그십 스토어에 ‘카페 모멘티(CAFÉ MOMENTI)’라는 팝업 카페를 오픈했어요. 매 시즌 새로운 방식의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열심히 만든 것을 잘 보여주는 것까지도 디자인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옷을 사는 경험도 크리에이티브하게 전달하는 브랜드이고 싶어요. 이번 시즌에는 공간을 새롭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매번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이곳을 새롭게 리프레시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죠. 그동안 많은 분들이 저희 공간에 대해 ‘카페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10일 동안 카페로 운영하며 실제로 커피를 판매했어요. 그 결과 민주킴을 잘 모르던 분들도 자연스럽게 공간을 방문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오신 손님들도 많았어요. 정말 카페처럼요. 그 복작복작한 활기가 너무 좋았고, 저희 공간의 또 다른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모멘티’는 이곳을 찾는 분들이 편안하고 따뜻한 순간을 느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한 이름이에요.
지난 5월 세컨드 브랜드 ‘파쿠아’를 론칭했어요. 지금 시점에 파쿠아를 선보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해 제가 대표로서 비즈니스를 책임지기로 결심하며 해외 세일즈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 민주킴을 비즈니스적으로 체계화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세컨드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 10주년을 앞두고 있었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팀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파쿠아에 민주킴의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요?
민주킴이 김민주의 세계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라면, 파쿠아는 민주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세계예요. 파쿠아에서 선보이는 디자인의 많은 부분이 민주킴에서 왔죠. 민주킴에는 자연스럽게 졸업해야 할 디자인들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며 저도, 민주킴도 성숙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변화 속에서 제가 어렸을 때 만든 아름다운 디자인이나 아카이브를 민주킴에서 졸업시키고, 이를 파쿠아로 넘겨주는 거예요. 파쿠아는 그런 디자인을 조금 더 이지하고 캐주얼하게 풀어내며,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도록 하고 있어요. 파쿠아는 캐주얼과 데일리웨어에 맞춘 브랜드예요. 민주킴에서 다루지 않았던 스웻 셔츠, 후디, 조거 팬츠, 운동복, 수영복 같은 실용적인 아이템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민주킴의 아이디어와 감각이 담겨 있다 보니, 처음 예상했던 연령대뿐 아니라 더 폭 넓은 고객층을 아우르고 있어요.
현재 한남동에 파쿠아 단독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12월 중순에 오픈 예정이에요. 파쿠아 매장은 저희가 원하는 조건을 완벽히 충족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춘 결정이었어요. 몇 번의 팝업을 통해 파쿠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느꼈고, 파쿠아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 있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한남동 메인 스트리트의 2층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비록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파쿠아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PLUS 3. 김민주의 변곡점
학창 시절에는 미술과 만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고 들었어요. 패션에는 언제 매력을 느꼈나요?
사실 사디(SADI)에 다니던 시절까지만 해도 패션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못했어요. 중간에 계속 전공을 바꾸고 싶었고, 저는 결국 교육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 교육 방침이 하나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다음을 도전하라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열심히 임했지만 한편으로는 늘 끝나면 다른 걸 해야지, 생각했죠. 그러다 앤트워프에서 공부하면서 점차 패션을 좋아하게 됐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3학년 때 패션 학과장이었던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를 만나면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은 티칭과 자신의 컬렉션을 병행하며, 본인의 정체성과 내면의 이야기를 컬렉션에 담아내는 분이셨어요. 상상력과 꿈, 모든 것을요. 그 표현 방식이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과감함이 선생님을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앤트워프 식스(Antwerp Six)의 1인자이시잖아요. 아티스트처럼 패션을 통해 나를 말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또 사람들이 그 패션을 사랑하면서 그들도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요. 그리고 선생님은 항상 쇼에서 선생님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나타나셨어요. 과하고 화려한 디자인도 너무 멋지게 소화하시면서요. 내가 만든 옷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잘 소화할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선생님을 통해 그런 태도도 배웠죠. 그리고 당시 옷을 만드는 과정도 점점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패션을 비즈니스나 아이템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업 같았어요. 옷은 걸어 다니고 움직이며 다양한 공간에 존재하면서 사람과 공간을 변화시키기도 하잖아요. 내가 만든 옷으로 무언가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느낌이 그때 잘 와닿았죠.
디자이너님의 졸업 컬렉션 주제도 〈위키드〉의 ‘엘파바’였다고요.
영국에서 〈위키드〉를 처음 접했어요. 당시 뮤지컬을 좋아하던 시기로 〈라이언킹〉, 〈오페라의 유령〉 같은 작품들을 연이어 보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위키드〉를 보는 순간,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겪으며 자라죠. 저도 학창 시절에는 외모와 관련된 편견과 시선을 겪었어요. 특히 한국에서 패션을 시작하고 나서는 제 겉모습이 패션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무시하는 일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들이 상처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엘파바의 이야기가 더 깊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결국 그 감정을 이어서 졸업 컬렉션의 주제를 엘파바로 정했어요. 컬렉션 이름은 ‘Be Cover’로, 엘파바 이야기와 함께 ‘우리는 다 포장에 쌓여 있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그래서 포장지 같은 소재와 고무로 만든 리본,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둥근 실루엣의 피스들을 디자인했었죠.
아티스틱한 접근에서 비즈니스 단계로 넘어가며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지금도 혼란스럽고, 여전히 숙제예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비즈니스와 마케팅 방식도 함께 변하니까요. 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상과 발맞춰 나가야만 이 패션이 이어지고, 저희 옷을 사랑해주시는 분들도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고요. 그것이 크리에이티브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매년 깨닫고 있어요.
2023년 V&A에서 주최하는 ‘패션 인 모션(Fashion in Motion)’에서 선보인 바리 컬렉션은 2013년 H&M 디자인 어워드 우승, 2020년 넷플리스 〈넥스트 인 패션〉의 우승에 이은 또 하나의 꿈 같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해요. V&A 패션쇼가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V&A ‘패션 인 모션’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순수하게 디자이너로서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느낀 순간이고요. 라파엘로 작품이 걸린 공간에서 쇼를 하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이 쇼는 일반적인 패션쇼처럼 바이어가 앞줄에 앉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틱한 감성을 느끼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티켓을 구매해서 오는 쇼예요. 하루에 네 번 연달아 진행되고요.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모든 좌석이 솔드아웃됐어요. 한국도 아닌 해외에서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모인 공간, 거기에 가득했던 기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어요. 너무나 감동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울어주시고 박수를 보내주셔서 정말 행복했어요.
‘준비된 자에게 도전은 두렵지 않다, 그런데 준비는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빛나는 순간을 위해 디자이너님이 해온 노력에 대해 듣고 싶어요.
모든 것들이 항상 그런 것 같아요. 기회 자체도 중요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을 잡을 수도, 자신을 제대로 보여줄 수도 없어요. H&M 디자인 어워드, LVMH 프라이즈, V&A, 그리고 〈넥스트 인 패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제가 저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정말 미친듯이 작업에 몰두하고 나를 계속 패션으로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빛나 보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해요.
PLUS 4. 용기, 사랑, 그리고 꿈
디자이너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저의 하루는 작업, 작업, 작업, 그리고 운동, 다시 작업의 연속이에요. (웃음) 눈을 뜨자마자 작업을 시작해요. 일이 일상이자 삶이라고 느낄 정도죠. 그런 와중에 변화를 시도한 게 2년 전부터 시작한 운동이에요. 체력과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해요. 저는 디자인할 때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자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요. 목표치 그 이상의 디자인을 해야만 ‘했다’고 느끼고요. 그런데 저에게 “힘을 빼고 쉬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팀원이 있어서 최근에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도 가며 일상의 여유를 더하는 중이에요.
지금 디자이너님의 관심사가 궁금해요.
요즘에는 그림에 더 관심이 가요.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디자인하는 것도 더 즐겁게 느껴지고요. 그리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대화 같은 내용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패션에 대한 생각,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이들,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내년이면 민주킴 론칭 10주년이에요. 10년간 브랜드를 유지한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일단 부모님으로부터 버티는 힘을 배운 사람이죠. (웃음) 그런데 정말 힘든 순간이 많아요. 갑자기 매출이 떨어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구매 패턴도 순식간에 바뀌고요. 팀원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지만, 역시 불안함을 느끼고 흔들릴 때도 있죠. 그 사이에서 항상 아름다운 걸 만들어야 하고요. 그 괴리가 너무 커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실적인 기한을 설정한 거예요. 처음 시작할 때는 ‘10년만 하자’고 결심했고, 지난해에는 ‘마흔다섯까지 하겠다’는 목표를 한 번 더 세웠죠. 그리고 항상 그랬어요. 힘든 시기가 있으면 좋은 시기가 있어요. 고객분들이 민주킴을 좋아해주고 가치 있다고 느껴줄 때도 너무나 기쁘고요. 할 수 있는 한 민주킴을 오래하고 싶어요. 민주킴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고, 지금까지 쌓아온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요.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많고요.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10주년을 맞이하며 민주킴이 어떤 브랜드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가 멀리서 바라본 민주킴은 진정성 있는 아카이브를 쌓아왔고, 모든 작업에 분명한 의미와 이야기를 담아내며, 좋은 태도로 옷을 만들어온 브랜드예요. 이러한 민주킴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앞으로 많이 하고 싶어요. 일러스트나 스케치를 선보이거나, 스테이셔너리처럼 누구나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제작하거나, 전시를 통해 만날 수도 있고요. 민주킴이 지닌 고유한 자산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갈 계획이에요.
민주킴의 세 가지 키워드로 브레이브(Brave), 러브(Love), 드림(Dream)을 꼽아 주셨어요.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도 중요하죠. 특히 무언가를 시도할 때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저도 매일 저를 사랑하는 데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려는 마음을 계속 되새겨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꿈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소망이라도요. 그런 꿈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니까요. 저는 패션을 통해 이 세 가지를 실현하며 살고 있어요. (웃음) 그래서 저희 옷을 입는 분들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더 당당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디자이너님은 어떤 작업자인가요?
저는 아름다운 작업자인 것 같아요. 아름다움은 과정과 태도, 그리고 진심을 포괄하는 단어예요. 항상 팀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해요. “과정이 아름다워야 옷이 아름답다.”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진심을 가지고 작업해야 한다고요. 그런 기운이 옷을 통해 전달된다고 믿으니까요. 저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요.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이 강박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저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제품을 만들어 사진으로 포장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단추 하나, 포장 하나까지도 신경 쓰고 싶어요. 물론, 부티크로서 한계는 분명 있을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 안에서 아름다움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해요.
PLUS LIST
김민주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 만화 3
- 〈천공의 성 라퓨타〉
- 〈마녀 배달부 키키〉
- 〈블루 피어리드〉
“〈천공의 성 라퓨타〉와 〈마녀 배달부 키키〉를 너무 좋아해요. 작업할 때마다 그냥 틀어 놓기도 합니다. 제 손을 움직이게 해주거든요. 〈천공의 성 라퓨타〉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그 안에는 전쟁과 미움이 있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희망과 아름다움, 모든 것을 치유하는 순수한 마음이죠. 〈마녀 배달부 키키〉는 주인공 키키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 때 빛과 능력을 잃어버리잖아요. 민주킴의 용기, 사랑과 비슷한 것 같아요.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데, 그래서 더 좋아요. 〈블루 피어리드〉는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만화책을 추천해요. 미술을 하지 않던 주인공이 미대를 준비하는 내용인데, 예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요. 저도 보면서 ‘그렇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스토리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TIPPING POINT
스무 살 무렵 패션을 시작한 김민주 디자이너에게 패션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더 배우고 공부해야 했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의 말처럼, 한 번에 이뤄진 일은 없었다. 꾸준한 노력은 어느새 그의 삶에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는 오히려 그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