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전시의 언어로 번역하는 큐레이터, 정다영 CAC 대표

정다영 CAC 대표는 한국에서 건축 큐레이팅이 자리 잡기 이전부터 활동을 이어왔다. 당시 별다른 기반이 없던 건축 전시에 뛰어들어 건축을 해석하는 방식을 스스로 구축해 왔다. 이런 그에게 ‘막’은 태도에 가깝다. 경로를 따르기보다 먼저 뛰어들어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었기 때문. 디자인하우스의 50주년 캠페인 ‘막, 크리에이티브’ 시리즈 인터뷰를 통해 그가 ‘막’을 어떻게 실천해 왔는지 짚었다.

건축을 전시의 언어로 번역하는 큐레이터, 정다영 CA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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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영 건축과 도시, 시각 문화에 관한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쓴다. 〈공간〉 에디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CAC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5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공동 예술감독으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을 기획했으며, 최근 〈힐튼서울 자서전〉을 피크닉과 공동 기획했다. @cac_seoul
자인하우스 50주년 기념 캠페인의 주제가 ‘막, 크리에이티브’다. 정다영의 커리어를 이야기하기에 좋은 키워드가 아닐까 싶은데.

〈공간〉 기자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큐레이터로 전향하게 됐다. 당시 정기용 선생의 아카이브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면서, 이를 전시로 풀어낼 건축 전공 학예사를 뽑고 있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건축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없어서 모든 게 막연했다. 그냥 막 뛰어들어 부딪히며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부 설득도 쉽지 않았다. 스케치나 원고 같은 자료를 두고 이게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자료를 오래 들여다보면서 맥락을 이해하려 했고, 선배들의 전시를 가까이에서 보며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아카이브를 기증한 유족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첫 전시를 마친 뒤, 여러 전시를 거치며 건축 전시는 이래야 한다는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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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 사진 이미지줌
그렇게 만들어가는 건축 전시의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건축 전시라고 하면 사람들이 ‘건축’에 더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전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이든 디자인 전시든, 전시라는 매체에 걸맞은 형식과 격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것이 전시장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국 어떤 전시를 하든 전시 자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고 그다음 건축 전시만의 특수성을 고민하게 된다. 건물은 전시장 안으로 그대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자료를 통해 보여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설명적이고 나열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건축 전시는 태생적으로 그런 조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고민한다. 건물은 건축가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런 다층적인 요소들을 전시에 함께 담아내려고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관람객이 전시를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한 방식이 실제 전시에서는 어떻게 구현됐는지 궁금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단계별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큐레이터로서 내 역할을 자각하게 된 전시는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다. 두 번째는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이다. 이 전시 전까지는 아카이브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면서, 큐레이터로서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원자료의 질서를 잘 보여 주려 했다. 그런데 이 전시를 계기로 아카이브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됐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건축 집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도시의 변화와 사회적 맥락을 함께 드러내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아카이브를 편집하고 영상으로 확장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됐다. 그러다 팬데믹 이후 생각이 또 바뀌었다. 건축가에 대한 조명뿐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 변화 속에서 진행한 작업이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아진 과천관을 탐색하며, 이 건물이 지닌 가치와 이야기를 다시 드러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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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사진 김진솔
최근 성황리에 마친 〈힐튼서울 자서전〉과 2025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는 작업처럼 보인다.

맞다. 〈힐튼서울 자서전〉은 건축계가 여러 차례 보존 운동을 시도했지만 결국 철거될 운명에 놓인 힐튼서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 마련한 전시였다. 역사적 건물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조적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한국은 끊임없이 짓고 허무는 일이 반복되는 환경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전시라는 방식으로라도 하나의 개입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단순히 사라짐을 아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건물은 우아하게 작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싶었다. 또 전통적 건축이나 근대건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현대건축이 사라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인식 역시 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포럼을 열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했다.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 역시 한국관 건축물 그 자체를 이야기한 작업이다. 전시를 구성하기 쉽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 배경에는 냉전, 김석철 건축가의 비전, 백남준의 영향 등 다양한 조건이 겹쳐 있다. 그래서 이 건물을 물리적 공간을 넘어 다층적인 이야기가 쌓인 장소로 드러내고 싶었다.

202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와 현재는 CAC를 운영하고 있다.

이 역시 건축 큐레이팅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미술관에서 건축 전시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작가주의적 관점을 포함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 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전시장 안 예술로서의 건축뿐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의 사연을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보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건축을 다루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도 바깥에서의 활동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CAC는 그런 고민 속에서 형성된 흐름에 가깝다. 미술관에서 함께 일했던 김희정, 정성규와 2018 베니스비엔날레 전시를 계기로 다시 모이게 됐고, 건축 큐레이팅에 대한 생각과 비전을 나누게 됐다. 그 대화를 외부로 확장해 보고 싶었고, 그렇게 연구 모임 형태의 CAC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CAC 리딩룸’을 열어 포럼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곽승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포함해 4명이 CAC를 구성하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아무 기반 없이 막 시작했던 일이 지금은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부와 실천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큐레이터는 열망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는 결국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그래서 계속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이상적으로는 이미 연구된 토대 위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기존 시각을 비트는 전시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한국의 건축 전시 환경은 아직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판을 벌이고,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정리해 이야기를 붙이는 방식으로 대안적인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소 거칠더라도 그런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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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다이얼로그〉전. 사진 김익현
실천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결국은 ‘막’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건축 아카이브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건축 디자인 큐레이터 아릭 첸이 비슷한 질문에 대해 “Just do it”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결국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 다음이 이어진다. 그렇게 막 시작된 일들이 쌓이면서 하나의 흐름과 생태계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일해 온 것 같다. 한 작업의 시작은 또 다른 작업을 이끈다. 그 사이에 무엇이 놓일지는 시작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나의 경험을 ‘막’이라는 개념과 연결해 본다면, 그 막은 아카이브라는 외롭고도 불가해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용기였다.

건축 큐레이터로서, 앞으로 또 막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전시장을 벗어난 전시를 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도시 큐레이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미술관이나 전시장이라는 제도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환경에서 건축과 디자인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시는 일정한 보호막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는 보다 거칠고 생생한 환경에서 그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5호(2026.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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