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석재 수장고, ST01
돌의 물성으로 완성한 플래그십 스토어
학동역 인근 건축 자재 상가 밀집 지역에 돌을 닮은 공간이 들어섰다. 석재 전문 브랜드 ST01(에스티공일)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다.

학동역 인근 건축 자재 상가 밀집 지역에 돌을 닮은 공간이 들어섰다. 외벽을 감싼 어두운 블루 그레이 석재 기둥, 유리 너머 거대한 석재 패널, 은은한 실버 클라우드 석재 바닥. 이곳은 석재 외의 모든 요소를 덜어내 재료의 물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돌의 존재감 하나로 완성한 에스티공일(ST01)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다.

에스티공일은 이탈리아 석재 전문 기업 바냐라(Bagnara)를 주요 파트너로 둔 브랜드다. “Classic stone, Nothing else”라는 모토 아래, 오래 볼수록 깊이가 드러나는 석재를 선별한다. 서울 외곽에 대형 창고를 운영 중인 이들은 약 39㎡ 규모의 도심 매장을 브랜드의 기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설계는 서울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무소 오더 매터(Order Matter)가 맡았다.

도심 석재 매장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대부분 실제 크기의 슬라브 대신 작은 샘플이나 축소된 판재를 전시해 재료의 무게감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고, 슬라브를 벽면에 세우는 방식은 석재를 자연광에서 멀어지게 한다. 여기에 가구와 조명 등 여러 요소가 뒤섞이며 정작 ‘돌’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설계는 이 조건을 다시 설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석재 외 요소는 최대한 절제하고 재료를 공간 중심에 배치했다. 먼저 기존 구조를 정돈했다. 콘크리트 벽과 기둥, 보는 명확한 질서 없이 어설픈 균형 속에 놓여 있었다. 이를 정리해 공간의 기준선을 새로 잡고, 300mm 공통 그리드 안에서 천장, 벽, 바닥을 정밀하게 정렬했다.


공간 구성은 미술관 수장고 방식을 따른다. 작품이 패널에 걸린 채 보관되다 필요할 때 꺼내어 보이는 방식. 천장에 레일 시스템을 설치하고 그 아래로 1600×2750mm 크기의 금속 패널을 매달았다. 석재는 유리를 끼우듯 프레임에 고정된다. 탈부착이 가능한 이 시스템은 실제 슬라브에 가까운 크기를 유지하며 재료의 존재감을 온전히 드러낸다.

남향 사이트의 조건도 적극 활용했다. 패널을 정면 도로를 향해 배치해 내부에서는 재료를 근접하게 살필 수 있고, 외부에서는 자연광 아래의 석재를 거리 너머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시선과 거리에 따라 석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매장 전면 기둥에는 블루 그레이 석재의 뒷면을 사용했다. 슬라브 절단 과정에서 드러나는 거친 면. 콘크리트 색과 조응하면서도 간판을 제거한 자리의 녹슨 금속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기둥은 외부와 내부 사이의 경계(Threshol)로 작동한다. 천장의 비대칭 보는 패널 레일 앞뒤로 금속 파시아를 설치해 정리했으며, 그림자가 위쪽 공간의 깊이를 암시한다.


바닥 역시 그리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성했다. 150mm 모듈에서 시작해 150, 300, 450, 600, 900mm 패턴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규칙적인 구조 위에 CNC 가공으로 제작한 서로 다른 형태의 석재 조각을 배치해 정연한 골격과 자유로운 표면을 공존시켰다. 가공 후 남은 석재는 파쇄해 골재로 사용하고 콘크리트로 채워 넣었다. 이는 이탈리아 전통 바닥 마감인 ‘팔라디아나(palladiana)’ 방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이 정돈된 그리드 위에 느슨한 변화를 더했다. 알루미늄 주물 손잡이와 오더 매터의 가구 라벨 ‘애즈 파운드(As Found)’의 테이블과 스툴은 질서 위에 유연한 리듬을 더한다. 매트한 배경 속에서 이들의 폴리싱 표면은 미묘한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긴장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부여한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오더 매터는 영화 <노팅힐> 속 작은 서점을 떠올렸다. 주인의 취향으로 선별된 책들이 공간을 채우고, 방문객은 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책을 발견하는 장면. 논현동의 이 작은 매장 역시 석재를 찾아온 이와 브랜드가 서로의 기준을 공유하며 재료를 함께 고르는 장면을 상상하며 설계했다.

교외 창고가 방대한 슬라브의 집합이라면, 에스티공일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의 시선으로 엄선한 재료들이 잠시 머무는 아카이브다. 이곳에서 선택된 석재는 다시 이동하며 다음 여정을 시작한다. 교외의 창고로 혹은 더 멀리 채석장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