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방식으로 거주를 위하여, 임스 하우스

트리엔날레 밀라노에서 열린 '임스 하우스' 전시

트리엔날레 밀라노(Triennale Milano)에서 열리고 있는 ‘임스 하우스(The Eames Houses)’는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중심을 잡고있다.

더 나은 방식으로 거주를 위하여, 임스 하우스

밀라노의 4월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디자인 전시장으로 변하고, 쇼룸과 갤러리, 역사적 건축물과 임시 구조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새로운 이미지를 쏟아내는 기간이다. 트램이 지나는 곳마다 디자인 위크 방문객들이 이동하고, 브레라 지구부터 토르토나, 포르타 베네치아까지 도시 전체가 국제 행사를 치루느라 신속한 흐름으로 연결된다. 그 속도감 속에서, 오히려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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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tory Eames Pavilion, 2026. © Yosigo, Rocafort, courtesy of Kettal, 2025.

트리엔날레 밀라노(Triennale Milano)에서 열리고 있는 ‘임스 하우스(The Eames Houses)’는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중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브랜드의 화려한 설치와 신제품 발표 사이에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주거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임스 하우스에서 시작되는 긴 재해석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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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모습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이번 프로젝트는 찰스와 레이 임스가 1941년 설립해 가구, 건축, 영화, 전시, 그래픽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20세기 디자인의 문법을 새롭게 정의해온 스튜디오 – 임스 오피스(Eames Office)가 주도한다. 전시의 출발점은 가장 잘 알려진 주거 프로젝트인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Case Study House No. 8)’, 즉 임스 하우스(Eames House)다.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이 건물을 단순히 아이콘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 오히려 프로토타입으로 명시하며 계속해서 변형되고 확장될 수 있는 시스템의 출발점으로 바라보도록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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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모습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자는 먼저 실물 크기로 구현된 구조물과 마주하게 된다. 이 워크인 파빌리온은 임스 하우스를 직접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공간 개념과 건축 언어를 압축한 형태로, 관람자가 ‘임의 건축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물리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전시는 점차 임의 건축적 사고가 형성된 과정을 드러낸다. 파빌리온을 둘러싸듯 배치된 드로잉과 아카이브 자료, 사진과 영상, 그리고 새롭게 제작된 스케일 모델들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확장되어온 사고의 축적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공간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집’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동하게 된다.

고정된 형태가 아닌 살아있는 구조로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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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story Eames Pavilion, 2026. © Yosigo, Rocafort, courtesy of Kettal, 2025.

찰스와 레이 임스는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가구와 건축, 전시,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 생산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임스에게 건축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고 변형되는 유연한 구조였다. 그들의 관심은 언제나 관계에 있었다.

1940~50년대에 걸쳐 진행된 다양한 주거 실험들은 철제 프레임 구조의 실험 주택, 목재 기반의 쉘터 하우스, 그리고 빌리 와일더를 위해 제안된 두 개의 주택안까지, 모든 프로젝트는 하나의 연속된 연구 과정처럼 존재한다. 그렇게 임스의 건축은 하나의 스타일로 보는 것 보다 반복과 변형을 전제로 작동하는 방법론으로 해석해야 한다.

집을 시스템으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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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시스템의 구성 요소를 전시한 모습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전시의 축은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인 ‘임스 파빌리온 시스템(Eames Pavilion System)’이다. 임스의 건축적 사고를 현재의 기술과 산업 구조로 확장한 ‘리에디션’ 시스템인 셈인데, 바르셀로나 기반의 디자인 제조 기업 케탈Kettal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알루미늄 구조, 유리, 폴리카보네이트, 목재 등 산업 재료를 기반으로 하지만 공간은 가볍고 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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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시스템의 구성 요소를 전시한 모습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핵심은 ‘조합의 가능성’이다. 반복 가능한 구조 모듈과 교체 가능한 외피 시스템을 통해 단층 파빌리온에서 복층 주거 공간까지 확장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건축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조합 가능한 언어로 해석한 것. 이 ‘리에디션’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는 약 3년에 걸친 연구와 개발 과정을 기반으로 하는데, 1945년부터 1954년 사이의 미공개 주거 연구를 포함한 거대한 아카이브 전반을 재검토하며 임스의 건축 언어를 구조적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프로토타입으로 존재하던 아이디어를 실제로 작동하는 산업적 구조로 옮기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단순화와 규칙화에 대한 고민이 그 중심에 있다. 이에 대해 카텔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안토니오 나바로(Antonio Navarro)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로토타입에서 제품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표준화와 산업화를 의미합니다. 시스템의 경우, 구성 요소의 수를 줄이고 조합 규칙을 단순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이러한 규율을 통해 더 사용하기 쉬워지고, 동시에 가능성은 오히려 확장됩니다. 새로운 시스템은 찰스와 레이 임스가 지녔던 본래의 의도와 현대적 혁신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고정밀 알루미늄 프로파일, 엔지니어링된 데킹, 바이오클라이메틱 루프, 통합 조명과 HVAC 시스템, 그리고 디지털 구성 도구는 그들의 문법 위에 더해진 현대적 레이어가 되었어요. 목표는 스타일의 재현이 아니라 진화이니까요.

카텔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오 나바로(Antonio Nava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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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시스템의 구성 요소를 전시한 모습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그렇게 현대 기술이 적용된 신소재들은 임스가 세운 언어 위에 추가된 새로운 레이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파빌리온 시스템’은 과거의 재현을 넘어 과거의 사고를 현재의 산업 조건 속에서 다시 작동시키게 한 의미있는 ‘리에디션’으로 완성됐다.

아카이브와 공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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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방문자들은 실제 규모로 구현된 파빌리온 내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라 체험을 위한 전시이고, 중앙에 세워진 구조물은 실제 건축 시스템의 테스트베드로 작동한다. 이 물리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전시는 점차 임스의 건축적 사고가 형성된 과정을 드러낸다. 파빌리온을 둘러싸듯 배치된 드로잉과 아카이브 자료와 새롭게 제작된 스케일 모델들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확장되어온 사고의 축적을 보여준다. 그렇게 관람자들은 공간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집’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의 이해를 경험하게 된다. 이 전환은 찰스와 레이 임스의 손자이자 임스 오피스의 디렉터인 임스 드미트리오스(Eames Demetrios)가 설명하듯 큐레토리얼적 장치가 아니라 임스 유산 자체가 지닌 DNA다.

지난 40여년 동안 임스 오피스의 디렉터로 있으면서, 임스 하우스를 재생산하고 구매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아왔습니다. 일대일 복제도 흥미로울 수 있지만 우리는 국제적으로 확장 가능한 진정한 시스템적 접근이 더 중요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은 임스의 건축을 프로토타입에서 제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복제품이나 컬렉터 에디션이 아니라, 완전히 공학적으로 설계된 건축 생태계라고 할 수 있어요. 임스 하우스를 비롯한 많은 건축들은 실제로 지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만, 항상 이러한 진화를 위한 이정표이자 프로토타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기록을 보면 특정 장소를 위해 설계되었더라도 그 의도는 항상 ‘인간을 위한 거주지의 연속적 생산’에 있었기 떄문입니다.

현재형으로 다시 작동하는 임스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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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크기의 임스 하우스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임스의 유산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임스 데메트리오스가 강조했 듯, 임스의 주거 프로젝트들은 처음부터 단일 건물이 아니라 연속 생산이 가능한 인간의 거주 방식을 향한 실험이었다. 이번 파빌리온 시스템은 그 개념을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현대화한 결과물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끊임없이 선별하는 장이기도 하다. 그 기준에서 이번 전시는 명확했다. 제품 대신 시스템을 보여주면서 건축의 사고방식을 전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자인을 장식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구조로 짜임성있게 설명하고 정의했다. 화려한 이미지와 빠른 소비가 지배하는 디자인 축제의 한가운데서 오히려 느리게 사고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반드시 봐야 할 전시라는 평가가 과장 없이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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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크기의 임스 하우스 © Salva López, courtesy of Kettal, 2026

〈임스 하우스 (The Eames Houses)〉
주소 Triennale Milano, Viale Alemagna 6, 20121, Milan
기간 2026년 4월 21일 – 5월 10일
웹사이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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