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2026 영 디자이너 멘토 ② 최지연 카바라이프 대표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데 유연함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장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 영역을 확장해 온 카바라이프는 이러한 태도를 대변하는 브랜드다. 아트 커머스 플랫폼으로 출발해 전시, 콘텐츠, 공간 큐레이션까지 영역을 넓히며 동시대 창작자들을 연결해 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유연하게 모색해 온 카바라이프의 최지연 대표를 올해의 영 디자이너 멘토로 초대했다.

SDF 2026 영 디자이너 멘토 ② 최지연 카바라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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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아트 & 디자인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홍디자인 편집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삼성전자 애뉴얼 리포트, 롯데 에비뉴엘, 신라호텔 패키지, 아름지기 뉴스레터 등 편집 디자인 위주의 작업을 진행했다. 카바라이프 브랜드 론칭 이후 라이즈호텔, 신한카드, 현대카드, 프리즈 아트페어, 현대자동차 등 국내외 다양한 행사 및 큐레이션을 진행했으며, 각종 기관에서 다수의 심사 및 멘토링을 맡고 있다. ca-va.life
카바라이프가 어느덧 설립 8주년을 맞았다. 초창기 아트 커머스 플랫폼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지금은 비슷한 브랜드가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카바라이프는 신개념 플랫폼이었다. 온라인에서 패션, 가구, 그래픽 디자인, 오브제, 회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를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새로운 예술 소비 경험을 제안했다. 그중에는 디자이너가 만든 도어 매트도 있고 비디오 아티스트가 만든 영상물, 뮤지션이 만든 비트와 음원 파일도 있었다. 다양한 것들을 위계 없이 한곳에 모아 보여 주고자 했다. 기존 아트와 디자인 분야에서는 비슷한 장르끼리 묶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우리는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았을 때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했다. 그렇게 취향과 미감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편집해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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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라이프 초기 온라인 플랫폼. 그리드 형식의 웹에서 패션, 가구, 그래픽 디자인, 오브제, 회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를 소개하며 새로운 예술 소비 경험을 제안했다.
패션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새로운 길로 전향한 셈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언젠가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종이나 문구보다는 오브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픽 디자이너임에도 다른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브랜딩에 가까웠던 것 같다. 카바라이프를 함께 설립한 최서연 이사와 박치동 건축 디자이너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뚜렷한 방향성을 정하기보다는 일단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다만 예술적이면서도 반짝이고 세련된, 패셔너블한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지향점 정도는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향만으로 브랜드를 지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처음에는 비주얼적 접근에서 출발했지만 브랜드를 운영하며 되짚어 보니 서로 연결되는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취재하듯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작업의 다음 단계,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작품 안에 잠재된 더 깊은 아이디어까지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기획을 좋아하는 팀인지라 그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고, 그것이 다시 작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동시에 이런 창작자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기보다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각자 전시를 하긴 하지만, 동시대 창작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염두에 두고 플랫폼을 택한 거다. 물론 지금의 시장에서 플랫폼 구조는 대형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이라 순수한 의미의 플랫폼만으로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전시와 커머스를 결합한 방식으로 출발해 나름의 플랫폼을 구축했고, 현재는 또 다른 형태의 플랫폼으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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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라이프가 자체 굿즈로 선보인 티셔츠.
그 변화의 첫 단계가 최근 선보인 카바 저널인가?

맞다. 플랫폼의 개념을 콘텐츠 중심으로 확장해 보고자 한 시도다. 창작자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바라보며 기존의 아트와 디자인 영역뿐 아니라 음악가, 작가, 시인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자 했다. 창작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서로 다른 영역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또 이들의 생각이 모였을 때 어떤 흐름이 만들어질지를 고민한 것이 저널을 시작한 배경이다. 현재는 글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전개하고 있고, 점차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연결과 만남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에는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구체적인 형식은 아직 고민 중인 단계지만, 올해는 테스트 성격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예정이다.

카바라이프는 브랜드이면서도 활동 범위가 상당히 넓다. 스튜디오에 가까운 성격도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형태에 머무르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확장해 왔다.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영역을 탐색하고, 그 관심사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익숙하다.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다양한 흐름을 축적해 온 점이 지금의 카바라이프 색깔이 됐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공통적으로 유지하는 관점은 있다. 하나의 작업을 시작하면 항상 브랜드 관점에서 결과가 어떻게 구현될지를 중심에 둔다. 기획부터 제작, 브랜딩, 공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며 프로젝트를 풀어가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영역을 유연하게 확장하는 구조다. 이러한 접근은 큐레이션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공예 작가와의 협업 비중이 높은데, 커머스와 프로젝트를 통해 연결된 작가들 가운데 공예 분야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공예는 전통적인 범주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각, 회화,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포함해 공간 전체의 맥락 속에서 접근하며, 특정 장르를 구분하기보다 공간과 브랜드의 성격에 맞게 여러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을 취한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카바라이프의 작업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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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 아트 팝업 셀렉트 숍. ‘조각과 수집’을 주제로 서울의 젊은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했다.
최근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나?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13개 지방 박물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유물이 많다. 최근 이 유물을 현대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늘고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굿즈와 달리 공예적 완성도를 갖춘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이는 데 목적이 있다. 카바라이프는 선정된 유물마다 어울리는 작가를 매칭하고 브랜딩과 비주얼 디렉션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선정된 유물을 토대로 작가 매칭, 제작 과정, 매장에서의 전시 방식까지 전반을 총괄한다. 현재는 샘플 수정과 보완을 거치는 단계로 올해 6월경 완성된 결과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너나없이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지만, 카바라이프처럼 활동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방향성 설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브랜드를 운영할 때 견지해야 할 관점이 있다면?

지금은 누구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디자인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디어만으로도 다양한 툴을 활용해 결과물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그런데 진입 장벽이 낮아질수록 브랜드의 본질은 더욱 중요해진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는 브랜드는 그 안에 단단한 코어가 있다. 시대가 변하고 고객이 바뀌더라도 중심이 되는 철학이 분명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다. 코어가 단단하면 가지를 어떻게 뻗어도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 반대로 트렌드나 판매만을 목표로 접근하면 단기간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지속성은 떨어지기 쉽다. 그래서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좋아서 하는지, 잘해서 하는지, 혹은 단순히 유행이나 수익 때문인지 돌아보는 것이다. 이런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세계관과 철학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벽하게 계획되어 있지 않더라도 메시지가 분명하면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더라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소양이나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교과서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방향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여러 시도를 하다 보면 그 경험들이 쌓여 자신만의 기준과 방향을 만들어가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속도가 빠르고 결과를 즉각적으로 소비하는 환경일수록 끈기와 지구력이 더욱 필요하다. 또 책을 읽거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고의 폭을 넓히는 과정도 중요하다. 디자이너들은 비슷한 분야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은 훨씬 넓고 다양하다. 특정 영역에 머무르기보다 다른 분야를 경험하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길 권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5호(2026.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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