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수상자는?
한국 도예가 박종진, '착각의 층위(Strata of Illusion)' 수상
한국의 도예가 박종진이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1846년 가죽 공방으로 출발한 로에베의 장인 정신을 계승하며, 현대 공예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세계적 권위의 무대다.

지난 5월 12일, 9회를 맞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의 수상자가 싱가포르에서 발표됐다. 1846년 가죽 공방으로 시작한 로에베의 뿌리에 대한 경의에서 출발한 이 상은 동시대 공예의 새로운 흐름과 가능성을 조망하는 가장 중요한 무대 중 하나다. 올해 수상의 주인공은 한국의 도예가 박종진이다.
층층이 쌓인 환영의 흔적
서울여자대학교 도예과 조교수로 재직 중인 박종진은 전통 공예의 규율과 콜렉터블 디자인의 개념적 접근을 결합한 작업으로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도예가다. 의자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수상작 ‘착각의 층위(Strata of Illusion)'(2025)은 채색 도자 슬립을 코팅한 수천 장의 종이를 층층이 쌓아 만든 조밀한 직육면체 구조물이다.


가마에서 소성하는 과정에서 종이는 타 없어지고, 구조체는 열과 중력에 의해 서서히 내려앉고 뒤틀리며 최종 형태가 완성된다. 도자에 뿌리를 두면서도 여러 공예 기법을 아우른다는 점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제어와 붕괴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면서 도자라는 재료의 관습적 경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의 재료와 기법으로 정의되지 않는 이 작품은 공기를 활용해 형태를 만드는 방식에서 글라스블로잉(glassblowing)을 층층이 쌓인 종이에서 제본 기술을 환기시킨다.

심사위원단은 소성 과정에서 종이가 사라지는 순간을 마치 시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했고, 내려앉은 형태가 지닌 불완전함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위험을 감수하는 제작 과정과 재료의 물성이 의미의 중심에 놓이는 이 작업의 진정성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단이 특별한 주목한 작가는?


(오른쪽)Portrait of Graziano Visintin. Courtesy LOEWE FOUNDATION
올해 특별상(Special Mention)을 수상한 두 팀은 전통 기술을 동시대적 언어로 확장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가나와 스페인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 ‘Frafra Tapestry'(2024)는 바바 트리 마스터 위버스(Baba Tree Master Weavers)와 스페인 디자이너 알바로 카탈란 데 오콘(Álvaro Catalán de Ocón)의 공동 작업이다.


가나 구룬시 지역 전통 마을의 항공 사진을 바탕으로 알바로는 마드리드에서 건축 도면을 그렸고, 가나에서는 마스터 위버들이 코끼리풀을 엮어 대형 태피스트리로 완성했다. 건축, 지도, 직조가 서로 다른 대륙을 오가며 하나의 구조로 결합된 이 작업은 사라져가는 전통 건축과 공동체 기억을 직물의 언어로 기록했다. 심사위원단은 전통 직조 기술과 현대적 시각화 방식이 결합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 다른 특별상은 이탈리아 보석 작가 그라치아노 비신틴(Graziano Visintin)에게 돌아갔다. ‘Collier'(2025)는 얇은 금판으로 만든 정육면체 구조에 고대 금속 세공 기법인 니엘로를 적용한 두 개의 목걸이다. 비신틴은 니엘로 기법을 금 표면에 회화적으로 확장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미니어처 회화 같은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전통 금속 세공 기술을 동시대 조형 언어로 확장한 점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 공예의 존재감
올해 파이널리스트 30인 중 한국 작가는 박종진을 포함해 총 6명으로, 단일 국가 기준 가장 많은 수다. 한국 공예의 존재감이 국제 무대에서 한층 또렷해졌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코코성(Coco Sung)의 ‘Shadow Kkokdu'(2025)는 한국 전통 장례 인형인 꼭두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점토, 옻칠, 철사, 비즈로 제작된 다섯 개의 작은 인물상으로 구성된 이 연작은 탈리스만(talisman)적 존재감을 지니면서도 기묘하고 유머러스한 생기를 품고 있다.


금속의 물성과 표면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금속 공예 작가 조수현의 ‘Reconstructed Perspective Vessel 3C1L'(2025)은 자체 개발한 모듈형 몰드 주조 기법으로 제작한 세 점의 연작이다. 두 가지 다른 몰드 세트의 요소를 결합해 복잡하고 역동적인 형태를 만들어 냈으며, 각 형태 안에는 구리 내벽이 삽입되어 이중 레이어 구조를 이룬다. 표면은 화학 산화를 통해 빛에 따라 변화하는 깊은 검은색 패티나로 마감됐다.


목가구 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손으로 익혀온 이종인은 ‘Baeheullim'(2025)을 선보였다. 호두나무 두 덩어리로 만든 이 조각적 벤치는 위쪽은 통나무를 깎아 결의 질감을 드러내고, 아래쪽은 수직 결로 방향성을 강조했으며, 한국 전통 목조 기둥에서 영감을 받아 제비꼬리 이음으로 결합했다.


이소명은 새가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버려질 법한 가늘고 긴 오크 조각들을 증기로 구부리고 엮고 묶어 ‘Chronicle of Matter'(2025)를 완성했다. 사소한 파편들이 모여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수천 개의 수제 스털링 실버 조각을 리넨 실로 하나하나 연결한 박지은의 ‘Seed of Circulation'(2025)은 조밀하고 구형에 가까운 조각이다. 팽창과 수축이라는 자연의 리듬을 닮은 이 작업은 씨앗처럼 유연하면서도 견고하고, 그 안에 확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전환점




올해 공예상에는 133개국 이상에서 5,100점 이상이 출품됐고, 심사위원단이 30인의 파이널리스트를 선정했다. 파이널리스트 30인의 작품은 5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아울러 선정된 작가들에게 로에베가 속한 LVMH 그룹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 벨몬드(Belmond)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마요르카의 라 레시덴시아(La Residencia)에서 두 달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새롭게 제공된다. 특히 올해는 로에베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잭 맥컬로(Jack McCollough)와 라사로 에르난데스(Lazaro Hernandez)가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합류해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 상을 처음 시작한 조나단 앤더슨이 떠난 지금, 앞으로 공예에 대한 로에베의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2026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주소 National Gallery Singapore
기간 2026년 5월 13일 – 6월 14일
운영 시간 매일 10:00 – 19:00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