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의 50가지 도구 ②] 인쇄와 출판의 도구

월간 〈디자인〉 Vol.576 | Special Feature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한편으로 도구의 역사다. 도구 자체가 디자인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없다면 디자인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인의 50가지 도구 ②] 인쇄와 출판의 도구

사진식자판(Phototypesetting Plate)

사진식자기에 사용하는 글자판.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네거티브 글자 필름을 밀착시켜 만든다. 빛을 통과시키면 글자 모양이 렌즈를 거쳐 인화지에 노출된다. 글꼴, 글자 크기, 용도(본문용· 제목용·받침용 등)에 따라 별도로 제작하며 한 판에 수백 자가 배열된다. 사진식자기의 핵심 부품으로, 디지털 폰트 파일의 전신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일본 샤켄이나 모리사와의 규격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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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복이 개발한 ‘태시스템체’의 유리 식자판용 필름과 자막 필름은 사진식자기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한글 서체 자료다.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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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태그래픽’은 사진식자 시대의 한글 서체 체계로, 다양한 조판 환경에 대응하는 글자군으로 구성됐다.

국립한글박물관에는 ‘식자판’이라는 명칭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두 장의 유리 사이에 네거티브 글자 필름을 밀착시켜 만든 이 유물은 금속활자 대신 사진 기술로 글자를 조판하던 사진식자 시대에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됐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식자판에 빛을 쏘이면 글자 모양의 빛이 렌즈를 통해 암상자 안에 있는 인화지에 노출되고, 그것을 현상해 출력물로 만드는 과정이다. 사진식자 시대엔 이 네거티브 필름이 곧 폰트였다. 분실되거나 조금이라도 긁히면 그 글꼴은 다시 제작해야 했다. 붉은 선으로 자음군을 나누고, 치(0.25mm) 단위로 글자 간격을 둔 식자판 위에 특정 글꼴의 글자가 적게는 몇백, 많게는 몇천 개씩 늘어서 있다. 1924년 모리사와 노부오와 샤켄의 이시이 시게요시가 함께 전 세계 최초로 특허를 출원한 이 장치는 이후 오랫동안 일본과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인쇄계를 지배했다. 이후 전산사식기로 형태가 바뀌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됐다.


리소그래피(Risography)

일본의 리소과학공업이 출시한 소형 인쇄기 ‘리소’를 이용한 인쇄. 마스터 용지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이미지를 표현한 뒤, 그 사이로 잉크가 통과하면서 인쇄되는 스텐실 원리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자동화한 인쇄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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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과정에서 미세하게 어긋난 오차를 확인하기 위해 루페로 인쇄물을 확대한 이미지. ©코우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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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양행의 리소그래프 광고.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더 선명하고 빠르며 오차 없는 복제를 향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 진화의 정점에서 디자이너들은 뜻밖에도 가장 불완전하고 투박한 인쇄 방식인 리소그래피로 눈을 돌렸다. 1980년대 일본의 리소과학공업이 학교나 관공서에서 쓰는 문서를 저렴하게 복사할 수 있도록 개발한 기계식 공판 인쇄기 리소는 21세기 한국 디자인 신에서 독립 출판과 대안적 미학의 상징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효율을 위해 태어난 도구가 비효율과 불완전의 미학을 전파하는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 실크스크린의 원리를 자동화한 이 기계는 미세한 구멍이 뚫린 마스터판을 통해 종이에 잉크를 직접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학교 시험지나 가정통신문을 찍어낼 때 쓰던 이 공판 인쇄기는 결코 정교한 도구가 아니었다. 잉크가 종이 위에 완전히 고정되지 않아 손에 묻어나기 일쑤였고, 두 가지 이상의 색을 겹쳐 찍을 때는 매번 핀이 어긋나곤 했다. 상업 인쇄의 기준에서 보면 리소그래피는 실패한 복제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아마추어의 도구였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매료된 건 바로 이 실패의 흔적이었다. 리소그래피 특유의 질감은 매끈한 오프셋인쇄와 차가운 디지털 레이아웃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정교함과는 거리가 먼 기계는 조금씩 다른 이상한 복제물을 만들어냈다. 대량생산의 관점에서는 실패였지만 창작의 관점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결과였다. 무엇보다 리소그래피는 디자인의 공예적 성격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직접 기계를 조작하며 잉크 드럼을 교체하는 풍경, 화면 속 CMYK 수치가 아니라, 실재 존재하는 잉크 드럼을 교체하며 얻는 물리적 감각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새로운 차원의 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박(Foil Stamping)

인쇄물 표면에 색다른 컬러나 안료 따위를 찍는 후가공 기법. 핫 스탬핑, 포일 스탬핑이라고도 한다. 데이터를 포지티브 필름으로 출력해 동판을 제작한 뒤 이것을 박 기계에 필름과 이어 붙여 박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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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창금박지의 포일 컬러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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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록, ‘축첩도’(2022). 여덟 가지 컬러와 32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금박 실크스크린 작품이다. 스크린 프린팅 프로덕션 스튜디오 SAA(Screen Art Agency)가 작업에 참여했다.

인쇄가 종이 위에 정보를 입히는 과정이라면 후가공은 그 위에 촉각적 서사와 입체적 깊이를 부여하는 공정이다. 이중 박은 인쇄 역사상 가장 오래된 후가공 기법 중 하나로, 고전적이면서도 여전히 사치스러운 표현 방식이다. 과거엔 순금을 얇게 펴 만든 진짜 금박을 사용했지만 오늘날엔 금속 성분을 증착시킨 착색박 필름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공정의 핵심인 동판의 존재감은 여전하다(동판이라고 통칭하지만 마그네슘, 아연, 구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자이너의 도안대로 정교하게 깎은 동판은 후가공 기계의 고열을 견디며 박 필름을 종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인쇄물 표면을 보호하고 광택을 내는 코팅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후가공 방식이다. 얇은 투명 필름을 입히는 라미네이팅, 필름 대신 도공액을 덮어 피막을 형성하는 UV 코팅과 바니시 모두 디자인 결과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시각적 위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1970년대 중반에는 주로 PVC 필름을 접착제로 붙이는 초기 라미네이팅 형식을 사용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액체 용액을 자외선으로 굳히는 UV 코팅이 대중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무광 코팅이 유행하면서 한국 북 디자인의 주류를 형성했다.


샤와 실크스크린(Mesh and Silkscreen)

틀에 견포絹布나 기타 스크린 재료를 팽팽하게 고정한 뒤 손작업이나 사진 제판 방식으로 이미지 외의 부분을 막아 스크린 판을 만들고, 이후 스퀴지로 잉크를 압출해 인쇄한다. 예전에는 전부 견직물을 썼기 때문에 ‘실크스크린 프로세스’라 했으나, 현재는 실크스크린에 한정하지 않고 나일론 스크린, 폴리에스테르 스크린, 금속 스크린 등을 쓴다. 거친 표면이나 곡면체에도 인쇄하기 쉽다. 잉크의 선택 폭이 넓고 잉크층이 두꺼워 플라스틱, 유리, 도자기에도 인쇄 가능하며 프린트 배선, 눈금판 제작 등 공업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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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월간 〈디자인〉에는 다양한 실크스크린 제판 종류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도구를 다룬다 – 실크스크린(Silk Screen) 3’, 월간 〈디자인〉 198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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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와 7명의 참여 작가가 함께한 TP 프린트 메이킹 레지던시 현장.

거대한 오프셋 기계가 통제하기 어려운 블랙박스라면 실크스크린은 디자이너가 직접 핸들을 쥐고 운전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직관적인 인쇄 도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샤’라고 불리는 천이 있다. 비단이나 나일론 실을 이용해 격자 모양으로 팽팽하게 짠 이 그물망은 잉크가 종이 위로 내려앉는 통로이자 해상도를 결정하는 필터다. 디자이너들이 실크스크린에 매료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특유의 ‘쨍한’ 색감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셋 기계가 흉내 내지 못하는 잉크의 물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실크스크린의 매력이다. 실크스크린에선 샤의 밀도를 뜻하는 ‘목’을 조절하고, 구멍 사이로 잉크를 직접 밀어 넣어 인쇄물의 물리적인 두께감을 확보한다. 색의 선명도와 잉크의 질감 등 결과를 어느 정도 설계할 수 있는 셈이다. 과거 한국 디자인 현장에서 실크스크린은 소량 제작물이나 실험적 대형 포스터에 사용하는 대안적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끈한 디지털 이미지를 대체하는 적극적 도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6호(2026.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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