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의 50가지 도구 ③] 디지털 디자인의 도구

월간 〈디자인〉 Vol.576 | Special Feature

지금의 디자이너는 어도비의 인터페이스 안에서, 구글 폰트의 목록 안에서,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 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건대, 우리는 도구 밖에서 디자인할 수 없다.

[그래픽 디자인의 50가지 도구 ③] 디지털 디자인의 도구

매킨토시(Macintoshi)

1984년 1월 미국 애플사가 발표한 개인용 컴퓨터의 상품명. 아이콘, 메뉴, 마우스 등의 GUI 시스템을 구현함으로써 사용자가 더 쉽고 간편하게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매킨토시가 지향하는 그래픽 기반의 정보처리 방식은 특히 편집 디자인과 폰트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쳐 현재 전자출판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사용이 보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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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애플Ⅱ 퍼스널 컴퓨터 본체와 석영전자 모니터. ©민속박물관

1984년 애플 주주총회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보는 모든 이미지는 바로 이 가방 속의 물건에서 생성된다.” 뒤이어 그는 가방에서 작고 하얀 기계, 매킨토시 컴퓨터를 꺼냈고 그 순간 거의 모든 것이 변했다. 매킨토시는 누구나 구입해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저렴했으며, 알아볼 수 없는 부호로 가득 찬 화면 대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바로 화면에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출력해 확인할 수 있는 연결성 또한 뛰어났다. 매킨토시에 대한 반응은 세대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나이 든 디자이너들은 이를 디자인 품격을 떨어뜨리는 최악의 사건이며, 결코 연필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 저주를 퍼부었지만, 미국 서부의 젊은 디자이너였던 에이프릴 그레이먼은 “컴퓨터는 또 하나의 연필일 뿐”이라며 이들을 조롱했다.

대립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디자이너의 책상에 매킨토시 컴퓨터가 놓였다. 하지만 손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던 디자이너들에게 매킨토시는 쉽게 정이 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 안그라픽스에 재직했던 디자이너 홍성택은 매킨토시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예전에 사진식자로 일하던 때는 손이 굉장히 중요했잖아요. (중략) 그 뒤로는 기계가 대신하는 거였죠. 우리는 화면만 보고, 프로그램은 익혀야 하고. 기계… 되게 재미없죠. (중략) 정전되면 다 멈춰서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고 그랬어요. 새롭긴 했지만 사람들이 확 빠져들진 못했죠.” 지금 매킨토시를 새로운 연필이라 말하는 것은 거대한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디자인 과정 전체를 관장하고 정보를 구조화하는 매킨토시를 기껏해야 그림이나 끄적이는 연필과 비교하는 것이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매킨토시보다 연필이 더 급진적인 도구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


폰토그래퍼(Fontographer)

알트시스사의 제임스 폰 에르가 개발한 폰트 제작 프로그램. 포스트스크립트 폰트를 만들 수 있는 매킨토시용 프로그램으로 윤곽선 방식, 로고타이프, 외국어 글자 등을 타입1, 타입3, 트루타입 폰트 형태로 만들 수 있다. 폰토그래퍼에서 제작한 포스트스크립트 폰트는 매킨토시, 윈도, 윈도 NT 등 여러 운영체제에서 사용 가능하며 EPS 파일로 저장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벡터 기반의 프로그램에서 불러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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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그래퍼 작업 화면. 프로그램은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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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기능으로 전문가들의 필수 도구가 된 폰트랩.

과거 서체 제작은 자본과 설비를 갖춘 기업의 차단된 작업장에서 이루어졌다. 글꼴 디자이너라고 해도 자신이 그린 원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식판이나 활자가 되는지 알기란 쉽지 않았다. “활자를 만드는 과정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차단된 작업장이었다. 그래서 폰토그래퍼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그 차단된 영역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그래픽 민즈〉에 등장하는 이 말은 디지털 폰트 제작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이 벽을 무너뜨렸는지 여실히 증언한다. 폰토그래퍼는 혁명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베지어 곡선을 활용해 윤곽선을 따고 글자 간격을 조정하는 식으로 폰트 디자인의 표준이 되었다. 출시 당시 가격이 495달러였는데 그 시절 서체 회사들이 보유했던 이카루스 같은 디지털 글꼴 제작 장비가 10만 달러를 넘었으니 20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던 셈이다.

이어 등장한 폰트랩은 더욱 강력한 기능을 무기로 전문가들의 필수 도구가 되었다. 다만 폰트랩은 기능이 방대하고 구조가 복잡해 ‘개발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1년 게오르크 자이페르트가 개발한 글립스의 등장은 또 한 번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글꼴 디자이너 윤민구가 “폰트랩이 윈도라면 글립스는 맥과 같다”고 평가한 것처럼 글립스는 철저히 ‘디자이너를 위한 직관적 환경’을 제공했다. 코딩하듯 글자를 설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만지고 그리는 감각을 극대화한 글립스는, 특히 한글을 포함한 다국어 폰트 제작에서 압도적 효율성을 발휘했다. 폰토그래퍼가 닫힌 문을 열었다면, 폰트랩은 장치를 정교하게 다듬었고, 글립스는 이것에 누구나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유연함을 부여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한글 폰트의 다채로운 풍경은 이 세 도구가 열어놓은 배경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쿼크익스프레스(QuarkXpress)

미국의 쿼크사가 개발한 편집 전용 탁상 출판 소프트웨어. 정밀한 글자 형식, 컬러 분판 등의 기능뿐 아니라, 베지에 곡선을 이용한 삽화 작성 도구 등을 갖춘 통합 출판 시스템이다. 문서에 입력된 텍스트 하나하나에 고유한 특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상자 단위로 레이아웃 구분이 가능해 텍스트와 그림을 자유자재로 결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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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P 편집 디자인의 역사는 3개의 이름으로 요약된다. 페이지메이커, 쿼크익스프레스, 인디자인. 이 세 소프트웨어의 흥망성쇠가 곧 탁상 출판 30년의 연대기다. 이 소프트웨어들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하며 디자인 공정을 조판에서 편집으로 진화시켰다. 1987년 쿼크사가 맥 전용으로 출시한 쿼크익스프레스는 정밀한 타이포그래피 제어, 빠른 컬러 분판, 안정적인 인쇄 출력으로 순식간에 전문가들의 선택을 받았다. 모든 새로운 도구가 그렇듯 초기 반응엔 냉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인들은 “생산성만 따지는 조판업자들의 도구” 혹은 “유행병 환자들이 퍼뜨린 엉성한 자동화”라고 말하며 경계했다. 실제로 초기 쿼크익스프레스는 한국어의 복잡한 조판 규격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해, 수준 높은 타이포그래피를 얻으려면 ‘오히려 손으로 잘라 붙이는 것이 낫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쿼크익스프레스는 모든 편집 디자이너의 기본 도구가 되었다. 특히 3.3버전과 4.0버전은 충무로 인쇄 생태계의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 잡아 후반 과정을 책임지는 모든 기기가 쿼크익스프레스를 기준으로 대거 조정되었다.

균열은 방심에서 왔다. 독점적 지위에 안주한 쿼크사는 6년간 업데이트를 등한시했고 사용자들의 불만은 쌓여 갔다. 어도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1994년 페이지메이커를 인수한 어도비는 5년 뒤 인디자인 1.0을 출시했고 빠르게 쿼크익스프레스를 대체했다. 페이지메이커가 길을 열고 쿼크익스프레스가 영토를 확장했다면 인디자인은 디지털 편집의 정교함을 완성한 셈이다. 소프트웨어는 디자이너를 물리적인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지면 위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막대한 권한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 지금의 디자이너는 조판부터 제판까지 모든 기술적 책임 또한 떠안은 처지가 되었다.


어도비(Adobe)

1982년에 설립한 미국의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프린터 출력 언어인 포스트스크립트와 타입 1 등을 개발했다. 그 외에도 2D 그래픽 소프트웨어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동화상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 편집 프로그램 인디자인 등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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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문구 그대로, 오늘날 어도비는 전 세계 모든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다. 월간 〈디자인〉 199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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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출시한 어도비 포토샵 4.0 작업 환경. ‘어도비 포토샵 4.0 등장’, 월간 〈디자인〉 1996년 11월호.

“어도비, 알두스 그리고 애플이 있었다. 그건 마치 다리가 3개 달린 스툴 같았다.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넘어지니까.” 1985년 탁상 출판 혁명을 목격한 한 디자이너가 다큐멘터리 〈그래픽 민즈〉에서 한 말이다. 어도비가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 프로그램 공급자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1982년 존 워녹과 찰스 게슈케가 설립한 어도비의 첫 번째 핵심적 기여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언어였다. 포스트스크립트는 글자, 선, 이미지 등 페이지 위 모든 요소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페이지 기술 언어로 화면의 해상도와 무관하게 인쇄물의 품질을 결정했다. 레이저 프린터와 결합한 포스트스크립트는 탁상 출판의 기술적 토대였고, 어도비는 이 언어의 개발 주체로서 1980년대 인쇄 산업 전환의 핵심에 있었다.

소프트웨어로서의 어도비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으로 대표된다. 1990년에 출시한 포토샵은 사진과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고, 일러스트레이터는 벡터 기반 그래픽 작업의 표준이 됐다. 어도비는 지난 30여 년 사이 경쟁 소프트웨어를 잇달아 밀어내며 디자인 도구 생태계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2016년에 등장한 브라우저 기반 협업 도구인 피그마가 그나마 어도비 제국 밖에서 고군분투할 뿐이다. 2021년 어도비는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를 출시하며 소프트웨어 패키지 박스를 종료하고 온라인 구독 서비스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제 그래픽 도구는 점차 소유가 아닌 구독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6호(2026.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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