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전시를 넘어 정체성 경험으로, 유럽 가구 쇼룸의 진화

람훌츠 쇼룸 & 산칼 콜랩

최근 유럽 가구 브랜드들은 제품 나열식 쇼룸에서 벗어나 브랜드 철학과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녹여낸 ‘경험 중심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통합 전략을 시각화한 스웨덴의 람훌츠와 친환경 건축 실험을 실현한 스페인의 산칼 콜랩을 소개한다.

제품 전시를 넘어 정체성 경험으로, 유럽 가구 쇼룸의 진화

최근 유럽 가구 브랜드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제품을 나열해 보여주던 기존의 쇼룸 형태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철학과 공간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녹여낸 ‘경험 중심의 쇼룸’을 선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람훌츠 디자인 그룹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칼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스웨덴 가구 그룹 람훌츠 디자인 그룹(Lammhults Design Group)이 지난 2026년 2월 스톡홀름 노를란스가탄(Norrlandsgatan) 20번지에 새 쇼룸을 열었다. 설계는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Note Design Studio)가 맡았다. 한편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가구 브랜드 산칼(Sancal)이 디자이너 루카스 무뇨스(Lucas Muñoz)와 함께 완성한 쇼룸 겸 작업 공간 산칼 콜랩(Sancal CoLab)을 2025년 공개했다. 두 쇼룸은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철학과 방향성을 공간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개방형 협업 거점이 되다, 람홀츠 쇼룸

람훌츠 디자인 그룹은 람훌츠(Lammhults), 아브스트락타(Abstracta), 포라 폼(Fora Form), 라그나르스(Ragnars) 등 네 개의 북유럽 가구 브랜드를 산하에 둔 스웨덴 그룹이다. 이번 쇼룸은 그룹이 새로운 통합 전략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멀티플라이드(Scandinavian Design. Multiplied)’를 발표하며 함께 공개됐다. 각 브랜드의 개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강화하는 것이 이번 전략의 핵심이다.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의 공동창립자 크리스티아노 피가치니(Cristiano Pigazzini)는 쇼룸 설계를 맡는 동시에 그룹 전체의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로 임명됐다. 그는 각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꼼꼼히 살피며 소재, 제조 방식, 디자인 철학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 설계에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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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에 자리한 람훌츠 쇼룸 자료 제공 © Lammhults Design Group / Note Design Studio

스튜디오는 기존 내부 구조물을 걷어내 원형을 드러낸 뒤, 크고 작은 방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구조로 쇼룸을 설계했다. 소프트 그린과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뮤트 컬러 팔레트, 라탄 카펫, 목재 섬유와 천연 안료를 압축해 만든 친환경 보드재인 발크로맛(Valchromat) 패널, 친환경 브라운 타일이 공간의 배경을 이루며 가구 자체가 돋보이도록 했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중립적인, 가구 자체가 돋보이는 색채를 찾고 싶었다”라고 피가치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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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Lammhults Design Group / Note Desig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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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Lammhults Design Group / Note Design Studio

조명은 색온도 조절이 가능한 LED 튜브 조명을 일렬로 매달아 공간에 절제된 리듬을 더했다. 쇼룸에는 디자이너 아냐 세브턴(Anya Sebton)이 설계한 지오판티(Geofanti) 소파와 노트가 람훌츠를 위해 설계한 모듈형 바오(Bao) 소파 시스템 등 그룹 산하 브랜드의 주요 제품이 전시돼 있다. 공간 구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설계된 이 공간은 제품 전시를 넘어 고객과의 대화, 창의적 협업, 영감을 나누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버리지 않고 새로 짓다, 산칼 콜랩

스페인 가구 브랜드 산칼의 마드리드 쇼룸 겸 작업 공간 산칼 콜랩은 건축가 루카스 무뇨스가 설계를 맡았다. 장소는 1966년 안토니오 라멜라(Antonio Lamela)가 설계한 스페인 최초의 현대식 오피스 빌딩 오도넬 34(O’Donnell 34) 4층이다. 라멜라는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Adolfo Suárez Madrid–Barajas Airport) T4 터미널을 설계한 것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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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 자리한 가구 브랜드 산칼 콜랩의 쇼룸. 건축가 루카스 무뇨스가 설계를 맡았다. 사진 © Asier Rua

무뇨스가 이 공간에 세운 원칙은 단 하나다. ‘현존하는 것으로부터 창조한다’, ‘버릴 수 없는 것은 남는다’. 300㎡의 공간에서 무뇨스와 팀은 1990년대 공증사무소 리모델링 당시 더해진 요소들을 걷어내고 원형 테라조 바닥과 콘크리트 기둥을 복원했다. 해체 과정에서 나온 소재는 하나도 버려지지 않았다. 천장 패널을 잘게 부수어 석고와 혼합한 뒤 입구 벽 마감재로 만들었고, 기존 바닥판 아래면의 알루미늄은 광택을 내어 채광을 반사하는 벽 패널로 재활용했다. 기존 형광등 케이스에 우드 프레임을 더하고 LED 광원으로 바꾸는 작업은 비영리 단체 아소시아시온 노르테 호벤(Asociación Norte Joven)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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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sier Rua

쇼룸에는 산칼의 신제품과 클래식 라인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복원된 테라조 바닥과 콘크리트 기둥이 그대로 드러난 공간 안에 산칼 특유의 컬러풀하고 유쾌한 가구들이 자리했다. 오래된 건물의 구조와 현대적인 가구가 나란히 놓이면서 형태·질감·색채의 대비가 공간 전체에 흥미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코뮤니티(CO-mmunity)와 실험실(LAB-oratory)’을 합친 이름 콜랩(CoLab)처럼, 이 공간은 산칼의 가구를 선보이는 쇼룸이면서 동시에 건축가, 디자이너, 크리에이터가 모여 실험하고 협업하는 창의적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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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sier Rua

브랜드의 철학을 공간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두 쇼룸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한다. 람훌츠 쇼룸은 여러 브랜드의 통합 전략을 공간 설계에 녹여냈고, 산칼 콜랩은 재료를 낭비하지 않는 설계 철학과 실험 정신을 공간 그 자체로 증명했다. 두 곳 모두 쇼룸이라는 형식을 넘어 브랜드 정체성이 된 공간이다. 결국 이들이 보여준 공간의 진화는 가구 브랜드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단순한 제품 정보는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오프라인 쇼룸이 가져야 할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두 공간은 명확히 짚어낸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공간의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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