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위한 코펜하겐 공간 가이드
꼭 가봐야 할 건축 & 디자인 스폿 5
아름다움과 혁신, 지속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는 코펜하겐에서 디자이너의 감각을 깨워줄 필수 스폿 5곳을 소개한다.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덴마크 코펜하겐은 목적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도시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유산부터 도시의 실루엣을 새롭게 그리는 현대 건축까지, 곳곳에 영감이 흐르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은 새로운 쓰임을 얻고, 도서관은 지식과 휴식이 교차하는 공공의 장이 되며, 쇼룸과 서점은 다층적인 미학의 세계를 제안한다. 아름다움과 혁신, 지속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는 코펜하겐에서 디자이너의 감각을 깨워줄 필수 스폿 5곳을 소개한다.
빅(BIG)
Sundmolen 6, 2150 Nordhavn, Copenhagen


코펜하겐 북쪽의 노르하운(Nordhavn)은 지금 이 도시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지역이다. 과거 산업 항구였던 이곳은 주거, 업무, 문화 공간이 뒤섞인 새로운 도시 지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는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과 반듯하게 들어선 신축 건물들 덕분에, 때로는 신도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된 항만과 수변 산책로, 현대 건축이 나란히 이어지는 풍경의 끝자락에 빅(BIG)스튜디오가 모습을 드러낸다. 비야케 잉겔스 그룹(Bjarke Ingels Group)이 2024년에 완공한 본사 건물로, 날것의 콘크리트와 커다란 유리창, 수직으로 쌓인 매스, 항구를 향해 열린 테라스가 어우러져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사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내부의 여러 층은 계단과 동선, 시선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외부 테라스는 항구를 향해 열린다. 덕분에 건물 전체가 산책로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조경, 엔지니어링, 건축, 도시계획을 함께 다루는 빅의 접근법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된 사례로, 저탄소 콘크리트와 자연 환기, 태양광 및 지열 에너지 시스템 등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요소도 반영되어 있다. 다만 이곳은 일반 관람객에게 상시 개방되는 관광지는 아니니 참고할 것. 방문한다면 오리엔트카이(Orientkaj) 역에서 내려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보자. 빅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주변의 창고 건물, 수변 주거지, 새롭게 조성된 공공 공간을 함께 살피면 노르하운(Nordhavn)의 현재를 훨씬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덴마크 건축 센터(The Danish Architecture Center)
Bryghuspladsen 10, 1473 Copenhagen

코펜하겐에서 건축 여행을 시작한다면 덴마크 건축 센터(The Danish Architecture Center)를 먼저 들러도 좋다. 수변 복합 건축물 블록스(BLOX) 안에 자리한 이곳은 전시와 가이드 투어, 강연, 워크숍 등을 통해 덴마크 건축과 도시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건축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집과 도시, 공공 공간, 기후와 미래의 삶처럼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주제로 풀어내는 점이 특징이다. 코펜하겐을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는 도시를 읽는 좋은 입구가 되어준다.


공간을 품은 건물 자체도 관람 포인트다. 블록스는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오엠에이(OMA)가 설계한 복합 건축물로, 전시장과 사무실, 카페, 서점, 주거 공간, 공공 보행로가 한데 얽혀 있다. 전시 관람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방문 전 현재 진행 중인 전시와 프로그램을 확인해두면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가능하다면 주말 영어 가이드 투어도 함께 신청해볼 것.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에 진행되며, 입장권을 소지한 관람객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블랙 다이아몬드(BIack Diamond)
Søren Kierkegaards Plads 1, 1221 Copenhagen

코펜하겐 수변을 걷다 보면 검은 화강석 파사드가 항구의 물빛과 하늘을 비추는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블랙 다이아몬드(Black Diamond)는 왕립 덴마크 도서관(Royal Danish Library)의 신축 건물로, 코펜하겐의 하버프런트를 대표하는 건축 명소 중 하나다. 1999년 완공된 이 건물은 덴마크 건축사무소 슈미트 해머 라센(Schmidt Hammer Lassen)이 설계했다. 이름처럼 날렵하게 깎인 검은 보석을 닮은 외관이 인상적이며, 안으로 들어서면 도서관과 전시장, 콘서트홀, 카페, 서점, 열람 공간이 층층이 이어지며 지식과 예술, 휴식이 공존하는 문화 공간을 이룬다.

무엇보다 오래된 도서관과 현대 건축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나는 방식이 흥미롭다. 유리로 덮인 아트리움은 항구를 향해 열려 있고, 내부의 브리지와 계단은 건물 곳곳을 입체적으로 연결한다.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카페에 머물고, 수변을 바라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도서관을 열린 문화 공간으로 확장한다. 건축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외관만 보고 지나치기보다 내부 동선까지 천천히 경험해볼 것.

방문 전에는 왕립 덴마크 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와 이벤트를 확인해두면 좋다. 블랙 다이아몬드에서는 상설전과 기획전, 강연,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며, 현재 왕립 덴마크 도서관의 보물을 소개하는 상설전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반 개방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일요일에는 단축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 사전 확인을 권한다.
스튜디오 올리버 구스타브(Studio Oliver Gustav)
Kastelsvej 18, 2100 Copenhagen

스튜디오 올리버 구스타브(Studio Oliver Gustav)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이자 디자이너, 앤티크 딜러인 올리버 구스타브(Oliver Gustav)가 이끄는 쇼룸이자 갤러리다. 가구와 조명, 예술 작품, 오브제를 여유로운 밀도로 엮어낸 이곳은 외스터브로(Østerbro) 지역의 카스텔스베이(Kastelsvej), 1920년대에 지어진 뮤지엄스뷔그닝엔(Museumsbygningen) 안에 자리한다. 신고전주의 건축의 단정한 질서 위로 석재와 금속, 패브릭, 고재, 낮은 채도의 오브제가 층층이 놓이며, 공간 전체가 한 폭의 정물화처럼 완성된다.

북유럽 디자인을 떠올릴 때 흔히 연상하는 밝고 기능적인 이미지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분위기는 더 어둡고, 느리며, 사색적이다. 맞춤 제작 가구와 빈티지 피스, 조각적인 오브제, 예술 작품을 엄격하게 큐레이션해 마치 예술 작품 처럼 펼쳐 보인다.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가 그린 고요하고 정적인 실내 풍경이 떠오르는 공간이랄까. 이곳의 방문을 계획한다면 운영 시간을 미리 확인할 것. 일반 방문 가능 시간도 목요일과 금요일 11시부터 17시, 토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로 제한적이므로 사전 예약을 권한다.
뉴 맥스(New Mags)
Ny Østergade 28, 1101 Copenhagen

‘지구상에서 가장 쿨하고 스타일리시한 서점’을 표방하는 뉴 맥스(New Mags). 코펜하겐 구도심의 뉘 외스터가데(Ny Østergade)에 자리한 이곳에는 패션, 건축, 디자인, 예술, 미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과 오브제가 세심하게 큐레이션되어 있다. 공간 디자인은 놈 아키텍츠(Norm Architects)가 맡았으며, 전통적인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아 천연 오크 패널과 황금빛 사암, 목재 서가가 어우러져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 특징. 특히, 접이식 오크 패널이 서가와 디스플레이 월, 파티션, 숨겨진 수납공간의 역할을 겸하며 높은 천장의 공간을 한층 아늑하게 나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점도 뉴 맥스만의 매력이다. 아파르타멘토 퍼블리싱(Apartamento Publishing)과 함께 유명 셰프 프레데릭 빌레 브라헤(Frederik Bille Brahe)의 요리책 〈Apollo: State-of-the-Art Cooking and a Party〉 출간 기념 이벤트를 열었고, 매년 ‘3daysofdesign’ 기간에는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쇼케이스 무대로 변신한다.

올해는 세락스(Serax)의 오브제와 뮬러 반 세베렌(Muller Van Severen)의 가구가 책과 나란히 놓이며, 서점과 갤러리, 살롱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특히 코펜하겐의 공간을 테마별로 소개한 <The Copenhagen Series>는 이 도시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여행자에게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준다. 여정의 끝자락에 이곳에 들러 책 한 권을 골라보는 건 어떨까. 도시에서 받은 영감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