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마틴 파의 시선, 일상의 풍경이 되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7월 16일부터 10월 18일까지 회고전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전관에서 진행되며 초기작부터 말년까지 14개 시리즈의 작품 500여 점과 사진집 90권을 선보인다.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은 흑백의 엄숙함, 대상과의 절제된 거리감, 그리고 역사적·사회적 대사건을 객관적으로 증언하는 태도와 결부되어 왔다. 사진가는 모름지기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실을 냉철하게 기록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평범한 소시민의 사소해 보이는 일상은 주요한 기록의 대상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2025년 작고한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마틴 파(Martin Parr)는 이러한 전통적 관습에 정면으로 균열을 낸 인물이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오는 7월 16일부터 10월 18일까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예술 세계를 동시대 시각문화 안에서 새로이 조명하는 대규모 순회 회고전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를 개최한다. 작가 사후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이번 대규모 전시는 초기 흑백 작업부터 말년에 이르는 14개의 주요 연작, 총 500여 점의 방대한 작품을 선보이며, 그가 평생에 걸쳐 출판한 90권의 사진집을 한자리에서 모두 소개한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포착한 남한과 북한 관련 작업이 포함되어 국내 관람객들에게 더욱 뜻깊고 생생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강렬한 색채와 직설적인 시선, 마틴 파의 대표 연작은?
마틴 파의 독자적인 사진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핵심은 그가 1980년대에 과감하게 시도한 ‘컬러사진으로의 전환’과 ‘극단적 근접 촬영’이다. 그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평범한 현대인의 여가와 소비문화를 카메라 렌즈 바로 앞으로 끌어당겼다. 이번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 연작들은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동시대 시각문화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의 작품 세계가 구축되는 초기 흐름을 이해하는 단초는 흑백 연작 시기의 명작인 ’10월의 아일랜드 더블린 오코넬 브리지(O’Connell Bridge, Dublin, Ireland, October)'(1981)에서 발견된다. 이 작품은 비가 내리는 더블린의 다리 위를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 행인이 상자를 머리에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걸어가는 불완전하고도 기묘하게 조화로운 찰나의 구도는 엄숙한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비틀어, 일상적 공간에 숨겨진 연극적이고 위트 있는 순간을 직설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작가가 일상의 하찮은 표면에서 현대인의 무의식적인 행동 양식을 얼마나 집요하게 관찰했는지 증명하는 대표적인 초기작이다.

그의 이름을 세계 사진 역사에 결정적으로 각인시킨 컬러 연작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의 핵심 작인 ‘뉴브라이턴, 영국(New Brighton, England)'(1983-85)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영국의 쇠락해 가는 노동자 계급이 모이는 해변 휴양지의 거친 현실을 드러낸 이 사진에는 햇살 아래 붉은 자동차 옆에 선 채 얼굴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묻히고 흘리며 먹고 있는 두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제되고 낭만화된 휴양지의 정취 대신, 링 플래시와 천연색 컬러 필름의 강렬한 인공 빛으로 포착된 아이들의 모습은 대량소비와 여가문화의 이면에 내재된 적나라하고 불완전한 현실을 여과 없이 투영하여 당시 사진계에 거대한 논쟁과 충격을 안겼다.

대중관광의 글로벌한 확산과 허상을 예리하게 해부한 ‘작은 세계(Small World)’ 연작의 기념비적 작품인 ‘클라이네 샤이덱, 스위스(Kleine Scheidegg, Switzerland)'(1994)는 풍경을 대하는 현대인의 모순을 정교하게 시각화한다. 눈 덮인 거대한 알프스 설산의 웅장함 한가운데, 수많은 관광 엽서가 가득 꽂힌 회전식 스탠드가 이질적으로 우뚝 서 있다.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가는 스키어들의 모습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마주하기보다 관광 상품과 박제된 이미지로 자연을 빠르게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 대중관광의 표준화된 풍경을 지극히 유머러스하게 폭로한다.

이러한 풍자적 시각은 2000년대 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대형 쇼핑카트 안에 원색의 과자 상자와 장난감 등 자극적인 포장의 상품들과 함께 담겨 있는 어린아이를 찍은 ‘남한(South Korea)’ 연작 중 ‘서울, 대한민국(Seoul, South Korea)'(2004)는 급속도로 확장된 한국의 소비문화와 대형마트라는 자본주의 공간을 냉정하고 유쾌한 프레임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카트 안 가득 찬 원색의 상품들과 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은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욕망과 일상적 단면을 정면으로 증언한다.

말년의 작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테마의 그리션스 무도회, 크라이스트 호스피털 스쿨, 웨스트서식스, 영국(The Grecians´ Ball with Alice in Wonderland theme. Christ´s Hospital School, West Sussex, England)'(2010)에서는 한층 정교하게 조율된 시각적 위트가 돋보인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인물의 붉은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과, 그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미니어처 찻잔과 딸기 한 알의 강렬한 보색 대비는 유머를 자아낸다. 정제된 미감 뒤에 가려진 삶의 연극적인 요소와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추적해 온 작가의 후기 시각 언어를 한눈에 체감할 수 있는 수작이다.
디자이너의 시선을 이끄는 마틴 파의 사진 문법
생성형 인공지능이 매끄럽고 완벽한 비례의 이미지를 쏟아내는 지금, 왜 디자이너는 거칠고 불완전한 마틴 파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까? 알고리즘이 도출한 균질한 결과물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오늘날, 그의 사진이 스크린 중심의 그래픽 작업이 놓치기 쉬운 매체의 물질성과 현장성을 환기하는 까닭이다. 마틴 파의 작업은 조명과 보정을 배제하고 필름의 질감, 태양광, 플래시 빛으로 현실의 날것을 기록하는 특성을 지닌다. 인공적 픽셀 구성을 벗어난 원색과 텍스처는 규격화된 디지털 환경에 시각적 해방구를 제공하는 요소인 셈이다.


또한, 정돈된 그리드 레이아웃 대신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간 구도와 인물의 불완전한 포즈는 시각적 충돌을 유도하며 화면에 의외성의 미학을 부여한다. 이는 비례만을 계산하는 디지털 툴의 범위를 넘어서는 조형적 대안이 된다. 또한 대상을 미화하는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소비 형태, 취향, 행동 방식을 수집하는 인류학적 관찰 방식은 대상의 사회적 맥락을 디자인적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통찰력의 근거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틴 파가 남긴 유산은 개별 사진의 조형성에 머물지 않고, 시각 매체가 시대를 어떻게 기록하고 편집할 수 있는지 방법론도 제시한다. 스위스 설산의 엽서 스탠드나 한국 대형마트 쇼핑카트 속 원색의 소비재들처럼, 그가 담아낸 일상의 단면들은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본질을 투영한다. 이처럼 디지털 문법을 벗어나 시각문화의 표면을 관통하는 거장의 시선은 알고리즘 속에서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고민하는 창작자에게 해답과 다르지 않다. 스크린 위 균질한 픽셀에 피로감을 느끼는 디자이너라면 지금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틴 파의 전시를 관람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다.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주소 서울시 도봉구 마들로13길 68
기간 2026년 7월 16일 – 10월 18일
운영 시간 10:00 ~ 20:00(화요일-금요일), 10:00 ~19:00(토·일,공휴일) *동절기(11-2월)는 18:00까지 운영.
그래픽 디자인 박선경(이엠씨)
공간 디자인 이세영(논스탠다드)
협력 매그넘 포토스, 마틴 파 재단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인스타그램 @seoulmuseumof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