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누벨, 자신의 건축 안에서 첫 개인전을 열다
상하이 푸동미술관 〈장 누벨: 예술가가 없다면 건축은 사라진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상하이 푸동미술관에서 그의 건축 철학을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8월 31일까지 열린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은 언제나 건축을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장소와 환경, 역사, 문화가 축적된 결과로 이해해 왔다.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대신 각각의 부지와 도시가 지닌 조건에서 새로운 해답을 도출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반세기 넘게 세계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6월 27일부터 8월 31일까지 중국 상하이 푸동미술관(Museum of Art Pudong, MAP)에서 열리는 〈장 누벨: 예술가가 없다면 건축은 사라진다(Jean Nouvel: Without the Artist, Architecture Disappears)〉는 이러한 건축 철학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영상, 건축 모형, 설치, 드로잉, 설계 아카이브, 작업실 재현 등을 통해 장 누벨의 50여 년 작업 세계를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회고전에 그치지 않는다. 푸동미술관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장 누벨이 자신이 직접 설계한 건축물 안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상하이의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구상된 푸동미술관은 더 이상 전시를 담는 배경이 아니라 전시의 일부가 된다. 관람객은 건축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그가 설계한 공간 안을 직접 경험하며 건축과 전시가 어떻게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지 체감하게 된다.
건축은 건물이 아니라 ‘도메인’이다

장 누벨은 건축가가 건물 하나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와 역사, 문화가 교차하는 환경 전체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러한 철학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된 푸동미술관 프로젝트에서 ‘도메인(Domain)’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그는 미술관을 하나의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황푸강 수변까지 확장되는 약 4헥타르 규모의 문화적 영역으로 계획했다. 주변의 나무들은 초고층 빌딩 숲과 미술관 사이에 완충 공간을 형성하며 독립적인 장소성을 부여하고, 번드(Bund)를 향해 열린 유리홀은 도시 풍경과 전시를 서로 연결한다. 특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대표작 ‘큰 유리(The Large Glass)’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공간은 도시의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전시 역시 도시를 향해 열어 놓으며 안과 밖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문다.

푸동미술관은 개관 이후 상하이를 대표하는 문화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공간 자체를 가장 중요한 전시 작품으로 삼는다.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오후 4시에는 유리홀의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미술관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특별 영상이 상영되며, 건축이 완성되기까지의 사고 과정과 장소의 형성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동시에 전시는 푸동미술관을 출발점으로 장 누벨이 중국에서 이어온 작업도 함께 조명한다. 상하이 스타트 미술관(Start Museum), 텐센트 광저우 본사, 선전 오페라하우스 프로젝트 등은 도시와 기후, 문화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적 해법을 제시한 사례들이다. 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도시 환경 속에서도 장소마다 다른 건축 언어를 만들어온 장 누벨의 지속적인 실험을 보여주며, 앞으로 이어질 그의 중국 프로젝트에 대한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아이디어가 건축이 되는 순간

전시는 완성된 건축물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제목인 〈예술가가 없다면 건축은 사라진다〉는 장 누벨이 2025년 프랑스에서 출간한 ‘장 누벨: 나의 신념(Jean Nouvel: Mes Convictions)’의 부제에서 가져온 것으로, 건축과 예술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공간의 감정과 정체성은 예술적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신념을 담고 있다. 이러한 철학 아래 이번 전시는 장 누벨가 직접 전시 구성을 맡아 건축 결과물보다 그 이면의 사고 과정과 창작 방식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관람은 3층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유리 영상 설치는 장 누벨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으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최근 프로젝트들의 콘셉트 이미지를 활용했다. 이어지는 대형 영상들은 유럽, 아시아, 중동, 북미 등 다섯 대륙에서 진행된 대표 건축 프로젝트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며, 관람객이 실제 건축 공간 안을 이동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건축을 사진이나 도면이 아닌 시간과 움직임, 빛의 변화 속에서 경험하도록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아틀리에 장 누벨(Ateliers Jean Nouvel) 작업실을 실제 규모로 재현한 공간이다. 전시장에는 16대의 컴퓨터가 설치돼 있으며, 관람객은 이를 통해 장 누벨가 수십 년 동안 진행한 건축과 디자인 프로젝트의 수백 건에 달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직접 열람할 수 있다. 설계 과정에서 축적된 자료와 스케치, 프로젝트 파일은 물론 인터뷰 영상까지 함께 공개돼 세계적인 건축가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완성된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공개하는 이러한 구성은 일반적인 건축 전시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시도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푸동미술관을 비롯해 파리 필하모니(Philharmonie de Paris), 카타르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Qatar),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팔레 루아얄(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 Palais Royal) 등 장 누벨의 대표 프로젝트 모형과 설계 자료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공개된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장소와 빛, 문화적 맥락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보여주며, 동일한 스타일을 반복하기보다 매번 새로운 건축 언어를 만들어온 장 누벨 작업의 특징을 드러낸다.
에메르장스와 디자인

장 누벨의 건축 세계는 실현된 프로젝트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시에는 그의 ‘에메르장스(Emergences)’ 시리즈 여섯 점도 함께 소개된다. ‘에메르장스’는 건축적 아이디어가 하나의 공간으로 구현되기까지의 탄생 과정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머릿속 개념이 현실의 건축으로 발전하는 창조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초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프로젝트와 뉴욕 53W53 타워, 갤러리 라파예트, 스위스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KKL)뿐 아니라 끝내 실현되지 못한 투르 상 핑(Tour Sans Fins), 테트 데팡스(Tête Défense) 계획안도 포함된다. 비록 건설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미완의 프로젝트들은 장 누벨의 건축적 사고와 실험 정신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작 못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전시는 건축가가 아닌 디자이너 장 누벨의 면모도 함께 조명한다. 그는 1987년 첫 가구 디자인을 선보인 이후 ‘장 누벨 디자인(Jean Nouvel Design)’이라는 이름 아래 100여 점이 넘는 가구와 제품을 제작해 왔다. 리옹 국립오페라(Opéra National de Lyon)와 소피텔 비엔나 슈테판스돔(Sofitel Vienna Stephansdom) 등 자신의 건축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한 가구 역시 이번 전시에서 아카이브와 함께 소개된다. 장 누벨은 가구를 건축 내부를 완성하는 ‘마이크로 아키텍처(Micro-architecture)’라고 정의한다. 건물과 분리된 독립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과 경험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건축 요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건축과 디자인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그의 창작 세계가 하나의 일관된 철학 아래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푸동미술관 개관 5주년에 맞춰 열린 이번 전시는 특정 건축가의 업적을 정리하는 회고전에 그치지 않는다. 장 누벨이 평생 탐구해 온 장소성과 빛, 도시와 건축, 예술의 관계를 미술관이라는 실제 공간 안에서 다시 경험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건축적 실험에 가깝다. 건축은 인간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조형물이 아니라 토지와 역사, 기후,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며 비로소 완성된다는 그의 철학은 푸동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시 한번 설득력을 얻는다. 나아가 MAP는 세계적인 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건축과 예술, 도시를 연결하는 국제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이곳에서 미술관은 더 이상 작품을 담는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도시의 공공성과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매개하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건축과 도시, 그리고 관람객 사이에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낸다.
〈Jean Nouvel: Without the Artist, Architecture Disappears〉
주소 상하이 푸동미술관(Museum of Art Pudong, MAP) 3층
기간 2026년 6월 27일 – 8월 31일
협력 아틀리에 장 누벨 @ateliersjeannouvel
웹사이트 상하이 푸동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