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만난 두 거장, 안드레아 브란치 X 이토 도요
〈안드레아 브란치 바이 이토 도요: 흐르는 현재〉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안드레아 브란치의 대규모 회고전 〈안드레아 브란치 바이 이토 도요: 흐르는 현재〉가 열린다. 오랜 친구이자 협업자였던 건축가 이토 도요가 공간을 설계해, 브란치의 60여 년 작업 세계를 시간순이 아닌 ‘흐르는 현재’라는 개념 아래 11개 섹션으로 풀어냈다.


밀라노 트리엔날레(Triennale Milano)와 퐁다시옹 카르티에(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가 손잡고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거장 안드레아 브란치(1938~2023)의 대규모 회고전 〈안드레아 브란치 바이 이토 도요: 흐르는 현재(Andrea Branzi by Toyo Ito. Continuous Present)〉를 3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개최한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교육자, 이론가, 큐레이터, 아티스트로 활동한 브란치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가 전시 공간을 직접 구상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브란치와 오랜 협업 관계이자 친분을 쌓아온 이토는 브란치를 “메타디자인의 이론가”로 규정하며, 디자인과 그 역할을 사상가의 관점에서 사유한 인물로 평가한다. 전시는 니나 바솔리(Nina Bassoli, 트리엔날레 건축·도시재생·도시 부문 큐레이터)와 미켈라 알레산드리니(Michela Alessandrini, 퐁다시옹 카르티에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했으며, 브란치의 딸 로렌차 브란치(Lorenza Branzi)와 평생의 동반자이자 협업자였던 니콜레타 모로치(Nicoletta Morozzi)가 함께했다.


브란치는 1966년 피렌체에서 아르키줌 아소치아티(Archizoom Associati)를 결성하며 급진적 실험을 시작한 인물이다. 1968년 발표한 ‘노스톱 시티(No-Stop City)’는 그의 사유를 압축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공장과 슈퍼마켓만으로도 도시 공간이 성립할 수 있다는 도발적 주장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도시 공간은 균질하며 무한히 확장한다’, ‘도시 공간에는 시작도 끝도 없이 스스로 끊임없이 변형된다’, ‘도시 공간은 건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명제로 요약된다. 이토는 이러한 브란치의 사유를 ‘컨티뉴어스 프레즌트’, 즉 ‘흐르는 현재’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며, 가모노 초메이(鴨長明)가 〈호조키(方丈記)〉(1212)에서 강물의 흐름에 빗대어 무상함을 노래한 것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다만 이토는 브란치의 철학에는 무상함에 대한 정서적 체념이 빠져 있으며, 오히려 “영원하고 지속적이며 발전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자리한다고 분석했다.


(오른쪽) Andrea Branzi, Animali domestici, Zabro Zanotta, 1985 Foto Jürgen Hans. Courtesy Vitra Design Museum
이후 브란치는 1985년 아내 니콜레타 모로치와 함께 가공되지 않은 원목을 활용한 가구 프로젝트 ‘아니말리 도메스티치(Animali Domestici)’를 발표하며 네오원시주의로 방향을 전환했고, 2009년에는 자신의 철학을 정리한 〈아테네 신헌장을 위한 열 가지 소박한 제안(10 modesti consigli per una nuova Carta di Atene)〉을 출간했다.

이토는 이번 전시 공간을 벽으로 구획하지 않은 유동적 환경으로 설계했다. 입구에는 ‘노스톱 시티’를 1:1 스케일로 재현한 실물 공간이 배치되어 관람객이 균질한 환경을 먼저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이후 공간은 “흐름과 소용돌이(flow and eddies)”로 이루어진 유동적 영역으로 전환된다. 정체된 공간들은 마치 흐름 속에 떠 있는 섬처럼 배치되어, 각 섬마다 주제에 맞는 드로잉과 모형, 회화 등이 전시된다. U자형 동선은 크게 세 구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노스톱 시티’와 관련 도시 프로젝트, 두 번째는 2008년 퐁다시옹 카르티에에서 선보인 설치작 섹션, 세 번째는 자연과 관련된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기획을 맡은 알레산드리니와 바솔리는 브란치의 방대하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작업 세계를 감안해 시간순이 아닌 주제별 ‘군도(archipelago)’ 형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총 11개 섹션, 40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도입부에는 1966년 아르키줌과 수페르스튜디오(Superstudio)가 피스토이아에서 처음 선보인 설치전 ‘수페르아르키테투라(Superarchitettura)’가 재구성되어 있으며, 대표작 소파 ‘사파리(Safari)’와 ‘수페론다(Superonda)’, 1968년작 자화상 등이 함께 전시된다. 이어지는 ‘메트로폴리 테오리케(Metropoli teoriche, 이론적 메트로폴리스)’ 섹션에서는 ‘노스톱 시티’ 이후 브란치가 수십 년에 걸쳐 발전시켜 온 도시 모형들을, ‘데코라티보(Decorattivo)’와 ‘수페르피치 아티베(Superfici Attive, 활성화된 표면)’ 섹션에서는 몬테피브레 디자인센터와의 협업, 뉴욕 워터프론트 공모전, 포솔리 강제수용소 복원 프로젝트 등 표면과 경관을 다룬 작업들을 소개한다. ‘카사 아 피안타 첸트랄레(Case a pianta centrale, 중심형 평면의 집)’ 섹션에서는 대표적 가구 시리즈 ‘아니말리 도메스티치’를 포함한 실내 프로젝트를, 전시의 중심부인 ‘암비엔티 에 디스포지티비 에스포지티비(Ambienti e dispositivi espositivi, 환경과 전시 장치)’ 섹션에서는 2008년작 ‘엘립스(Ellipse)’와 ‘가제보(Gazebo)’,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산 로렌초 성당 제단 위에 설치되었던 ‘레코드 에 파라디소(Record e Paradiso)’를 재구성해 선보인다.



이 밖에도 일본 경험에서 비롯된 ‘라 치빌타 델라스콜토(La civiltà dell’ascolto, 청취의 문명)’, 박물관·광장·전시·무대 프로젝트를 다룬 ‘무제이, 피아체, 모스트레, 팔키(Musei, piazze, mostre, palchi)’, 종(種) 간 공존을 다룬 ‘오스피탈리타 코스미카(Ospitalità cosmica, 우주적 환대)’, 사물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을 보여주는 ‘오제토 이브리도(Oggetto ibrido, 혼성 사물)’ 섹션이 이어지며,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진행한 미공개 인터뷰 영상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기획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기억과 망각이라는 두 축이었다. 브란치의 아카이브가 보관된 스튜디오 브란치(Studio Branzi)에는 그가 평생 써온 노트와 ‘치료적’ 성격의 일기들이 남아 있는데, 니콜레타 모로치는 브란치가 생전 스스로 “기억력이 짧다”고 자주 말했다고 전한다. 하나의 준거점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이러한 성향은 오히려 그의 사유를 자유롭게 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 싱어송라이터 바스코 로시(Vasco Rossi)의 노래를 들으며 디자인 이론을 쓰고, 플렉시글라스 속에 유목(流木)을 담그는 식의 작업 방식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알레산드리니와 바솔리는 오래된 작업을 다시 마주하고 “내가 정말 이걸 만들었나? 나쁘지 않은데?”라며 놀라워하던 브란치의 모습을 전하며, 이번 전시 역시 시간순으로 정리된 회고전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흐름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접근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브란치의 첫 대규모 전시라는 상징성과 맞물려, 아이러니하면서도 관대했던 사상가의 단편들을 자유롭게 마주하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 Andrea Branzi by Toyo Ito. Continuous Present〉
장소 밀라노 트리엔날레(Triennale Milano)
기간 2026년 3월 19일 – 10월 4일
주최 라노 트리엔날레, 퐁다시옹 카르티에(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전시 콘셉트·디자인 Toyo Ito & Associates, Architects
큐레이터 Nina Bassoli, Michela Alessandrini
홈페이지 triennale.org
글 김정아 해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