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규

출판사 '정병규 에디션' 낸

국내 1세대 북 디자이너 정병규는 한국 인문학 서적의 시각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을 주도적으로 출간하며, 삶을 영위하는 방식으로서의 '동사로서의 디자인'을 강조했다.

정병규

“한국의 인문학은 시각적인 차원에서의 고려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984년 정병규 출판디자인, 2011년 정병규 학교, 그리고 지난 5월 정병규 에디션까지, 국내 1세대 북 디자이너 정병규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담백하게 내건 일련의 ‘운동’을 이어가느라 분주하다. 1977년 한수산의〈부초〉를 시작으로 황석영의〈장길산〉,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등 3000권이 넘는 책을 매만진 미다스의 손이 칠십 평생 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식대로 작업한 〈치양지(致良知)-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를 출간했다. 국내 최고의 양명학자로 꼽히는 최재목 교수의 이 저서는 2006년 일본에서 선보인뒤 뒤늦게 역수입된 700페이지가 넘는 학술서다. 편집 디자인 작업만 꼬박 6개월이 걸렸다.

“한국의 인문학은 시각적 차원에서의 고려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아쉬움에 구조적 모델을 제시한 첫 행동 개시다. 그는 편집자이자 디자이너로서 특히 주석 분량에 따른 들쭉날쭉한 각주 구분 선을 사용하는 학술 서적이 거슬렸다. 여기서는 전체 페이지의 아래 1/3 정도 지점에 가로 수평선을 긋고, 주석이 없는 페이지는 여백을 두는 식으로 전체 양식을 통일했다. ‘문헌 찾아보기’와 같이 흔히 사용하는 제목 하나를 두고도 “‘문헌’이 제목이 고 ‘찾아보기’는 제목의 영역이라 폰트 크기를 달리하는 게 옳지요” 하고 세심한 논리를 들었다.

〈치양지〉는 지난 30여 년간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과 바람으로 ‘이런 책이 한국에도 소개됐으면’ 하던 100여 권 중 하나일 뿐이다. 한평생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 원고 장르, 시간, 디자인 표현 방법에 대한 구속을 감내해야 했던 그는 그 어떤 간섭도 없이 모든 걸 직접 해보고 싶었고,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다. 또한 “요즘 인기인 ‘독립 출판’을 보면 흔히 신변잡기적 주제의 서적이 많던데, 나는 내가 정립한 페뎀(PEDem)을 토대로 한 실천법을 보여주려는 것이 분명한 차별점이라 할 수 있지요. ‘독립 출판’보다 ‘자유 출판’이라 명명되길 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라며 정병규 에디션의 존재 이유를 짚었다. 페뎀이란 그가 2003년 기획(Planning), 생산(Editing), 디자인(Design), 마케팅(Marketing)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로 통합적 사고의 가능성을 모색한 개념이자 당시 발행하던 실험적인 계간지 제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늘날 사회적 의미가 급격하게 변해가는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묘하게도 디자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굉장히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습니다. 음악 전공자가 피아니스트나 성악가가 되지 못했다고 그렇게 느끼나요? 음악을 매개로 남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교양을 겸비하고 그 자체를 즐기면서 풍부한 삶을 영위하는 것 아닌가요? 이제는 삶의 질을 ‘디자인적’으로 영위하는 ‘동사’로서의 디자인의 시대입니다.” 고희가 넘은 디자인계 어른은 누구보다 진보적인 시각으로 오늘날의 디자인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57호(2016.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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