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크로니클 ①] 1970~1980년대

창간 50주년을 맞은 월간 〈디자인〉은 1976년부터 2026년까지 반세기에 걸친 국내외 디자인 생태계를 다시 펼쳐본다. 시대의 변곡점을 관통하는 디자인 연대기부터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디자이너의 이야기까지, 매체가 기록해온 지난 50년과 그 기록을 함께 써 내려간 이들의 궤적을 되짚는다.

[디자인 크로니클 ①] 1970~1980년대

1970’s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디자인을 지배한 것은 합리주의와 기능주의를 앞세운 모더니즘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와 경기 침체를 거치며 전후 산업사회를 지탱해 온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디자인에서도 기존 질서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이탈리아의 안티 디자인과 스위스의 뉴웨이브 타이포그래피처럼 모더니즘의 규범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등장하면서 1970년대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충돌하는 전환기가 되었다. 반면 서구에서 모던 디자인의 한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할 때, 한국은 그 방법론을 기업 아이덴티티와 제품, 광고, 그래픽에 적용하며 모더니즘을 습득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조영제, 권명광, 안정언 등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가 등장했다. 디자인 환경은 척박했으나 이 시기의 디자이너들은 오히려 기업으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고, 기업의 디자인 안목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기에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이 탄생했다.

1976년|월간 〈디자인〉, 한국
1976년 한국 대중에게 디자인은 아직 낯선 개념이자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디자인’ 하면 양장점을 떠올리던 시대였고, 디자인 전담 부서를 둔 기업도 드물었다. 극소수의 전문가만 디자인을 실천하고 서로 격려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창간한 월간 〈디자인〉은 국내 디자인계의 소식과 움직임을 더 넓은 독자층에 전하고 동시대 디자인을 꾸준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의 산업적,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미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20260929072035 1977 pompidou center
퐁피두 센터. 디자인 렌초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1977년|퐁피두 센터, 프랑스
20세기 중후반 하이테크 건축을 대표하는 퐁피두 센터는 내부를 완전한 개방형 평면, 즉 빈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기둥,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배관, 공조 덕트, 전기 설비 등을 모두 외부로 노출한 끝에 공장을 닮은 미술관이 탄생했다.

20260929081746 1978 dangari
당가리 체어. 디자인 피에르 폴랭 제조 알리베르

1978년|당가리 체어, 프랑스
앞다리가 좌석 위로 이어져 팔걸이를 이루고 그 선이 다시 등받이로 연결되는 고전적 구조의 아웃도어 의자다. 좌석과 등받이에 홈을 내 재료 사용을 줄이고 통풍과 배수가 원활하도록 설계했다. 플라스틱 사출 성형 방식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 이후 ‘가든 체어’, 한국에서는 ‘편의점 의자’로 불리는 플라스틱 야외 의자의 원형이 되었다.

1979년|〈한국의 이미지전〉 포스터, 한국
군사 독재 시기였던 1970년대에는 한국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정부 주도 아래 건축, 제품, 그래픽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성’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는 한복 입은 여인, 부채춤, 농악대, 호랑이, 소나무, 오방색 등을 소재로 한 포스터와 캘린더를 많이 제작했다. 독재와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시절 한국 모더니즘의 독특한 흔적이다.



1980’s

1980년대 정치·경제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확산이었다. 정부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면서 금융 규제가 완화되고 국제 투자와 자본 이동이 활발해졌으며, 그에 따른 부의 집중과 소득 격차는 소비문화와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품의 기능보다 그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가 소비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럭셔리 브랜드가 성장했고, 포스트모던 건축과 디자인도 전성기를 맞았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다층적인 레이어 작업이 쉬워지면서 문자가 점차 이미지처럼 다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애플이 1984년 매킨토시를 출시하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대중화하는 등 컴퓨터가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개인의 도구로 확장되는 PC 시대가 열렸다. 한국에서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가 확산되고 납 활자 조판에서 CTS로 넘어가면서 글자와 지면을 둘러싼 기술과 형식이 빠르게 재편되었다. 여기에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이라는 대규모 행사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축적해 온 디자인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고, 한국 디자인은 그 토양 위에서 새로운 시각 질서를 만들어갔다.

20260929085023 1981 MTV
MTV 로고. 디자인 맨해튼 디자인

1981년|MTV 로고, 미국
브랜드 로고는 언제나 동일해야 하고 획일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깬 혁신적 디자인이다. M 자는 기하학적 선에서 벗어났고, TV 글자는 손으로 쓴 낙서 형식이다. 여기에 색상과 패턴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변형 로고의 선구자가 되었다.

20260929085344 1984 apple mackintosh
애플 매킨토시. 디자인 애플 산업 디자인팀(제리매녹, 테리 오야마)

1984년|애플 매킨토시, 미국
매킨토시는 컴퓨터를 전문가가 명령하는 기계에서 보통 사람이 보고 만지고 조작하는 도구로 바꾼 혁신적인 컴퓨터다. IBM PC를 비롯한 대부분의 컴퓨터가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이를 통합해 부피를 줄였다.

1985년|안상수체, 한국
한글은 모아쓰기라는 특징 때문에 서체를 한 번 개발하려면 2000자 이상을 디자인해야 한다.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 방식에 따라 자음과 모음의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상수체는 네모틀 안에 모아쓰는 방식에서 벗어난 탈네모틀 서체다. 이에 따라 자음과 모음 총 40개만 디자인하면 됐다.

1988년|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한국
호랑이로 마스코트가 결정되었을 때 호랑이의 용맹함이나 사나움, 맹수다움이 아니라 세계인을 반기는 친근한 이미지로 만들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무섭기보다 친근한 이미지의 전통 민화 속 호랑이를 차용했고, 한국성을 표현하고자 머리에 농악대의 상모를 씌웠다.

20260929090136 1989 Louvre Pyramid
루브르 피라미드. 디자인 I. M. 페이

1989년|루브르 피라미드, 프랑스
루브르는 미술관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증축된 궁전이다 보니 입구와 관람 동선이 복잡하고 현대적인 미술관으로 이용하기 불편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하에 거대한 허브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고안했다. I. M. 페이가 디자인한 유리 피라미드 구조는 명확한 입구의 표지로 기능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80호(2026.10)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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