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전시를 읽는 다섯 가지 키워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서도호 대규모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은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유년기의 드로잉부터 최근 작업까지 50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짚어본다.

서도호 전시를 읽는 다섯 가지 키워드

천으로 집을 짓는 작가 서도호(b.1962). 실제 건축 공간을 실측해 반투명한 천으로 옮긴다. 자신이 살았던 집과 방, 문과 복도를 새로운 장소에 재현하는 작업은 그를 국제 미술계에 각인시킨 방법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서도호 Do Ho Suh〉 개인전은 익숙한 ‘집의 작가’라는 수식어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예술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20260828020231 20260828 020231

이번 전시는 특정한 시기나 매체, 주제로 작업을 구획하지 않는다. 3, 4, 5전시실과 MMCA스튜디오, 공용공간, 서울박스에 걸쳐 드로잉과 조각, 영상, 설치, 아카이브 등 500여 점을 선보인다. 대학 시절 작품부터 대표작, 최근 작업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200여 점의 드로잉을 비롯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20260828020301 20260828 020301
〈서도호〉 전시 전경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설원지 학예연구사는 관람객이 ‘서도호의 예술은 곧 집이다’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원형으로 흐르는 동선은 하나의 질문이 어떻게 반복되고 변주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을 따라가다 보면 집은 건축물을 넘어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에 관한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그 여정을 다섯 개의 키워드로 짚어본다.


기억의 씨앗

시드 뱅크

20260828020514 20260828 020514
‘516호_516호-I_516호-II’, 1994–995, 옥양목, 지퍼, 266.7 × 213.4 × 365.8 cm. 작가 제공. © 서도호

첫 번째 키워드는 서도호 예술의 출발점이다. 전시는 전시장 바깥 복도에 마련된 ‘시드 뱅크(Seed Bank)’에서 시작한다. 유년기의 드로잉과 조각, 대학 시절 작업, 작가 활동 이전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모은 공간이다. 이후 30여 년에 걸쳐 전개될 예술 세계의 씨앗을 품은 사유와 실험의 저장소라는 의미다. 몸과 옷, 이동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이미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평면에서 시작된 실험은 재료와 규모를 달리하며 점차 공간 전체를 다루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그 끝에 놓인 ‘516호/516호-I/516호-II’(1994~1995)는 유학 시절 거주하던 방을 실측해 옥양목으로 옮긴 최초의 천 작업이다. 지금의 서도호를 만든 관심과 방법론의 단서가 이곳에 놓여 있다.

공간을 기억하는 몸

3전시실

20260828021302 20260828 021302
〈서도호〉 전시 전경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20260828021310 20260828 021310
‘자화상’, 2026, 수제 종이에 실, 167.6 × 132.1 cm. 작가, STPI,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 서도호

두 번째 키워드는 공간을 기억하는 ‘몸’이다. 3전시실 입구에는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성북동 한옥의 대문을 1:1로 재현한 ‘작은 문, 서울 성북구 성북동 260-10’(2017)이 놓인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문은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기억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통로가 된다. 문을 지나면 200여 점의 드로잉이 펼쳐진다. 섬세한 선 드로잉부터 대형 실 드로잉, 탁본 드로잉까지 다양한 작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2009년부터 발전시킨 실 드로잉은 젤라틴 티슈와 수제 종이를 활용해 실을 종이 섬유 속에 매립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종이 아래 스며든 실이 은은한 부조와 같은 깊이를 만들며,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흐린다.

마주 보는 기억

4전시실

20260828021451 20260828 021451
‘러빙러빙_서울 집’ 2013-2022, 닥지에 흑연, 스테인리스 철사, LED 조명, 534x866x802.5cm. 시드니 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2022.© 서도호
20260828021519 20260828 021519
‘Rubbing/Loving Project: 광주극장 사택’ © 서도호

세 번째 키워드는 집과 기억의 관계다. 4전시실에는 ‘러빙/러빙’ 연작 두 점이 마주 본 채 놓인다. 떠나왔거나 곧 사라질 장소의 벽과 바닥, 문과 창에 닥지를 밀착시킨 뒤 흑연과 색연필로 문질러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다. 작가는 성북동 한옥을 탁본한 ‘러빙/러빙: 서울 집’(2013~2022)을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한옥을 짓고 살아온 아버지의 시간과 그곳에서 성장한 자신의 시간이 집 표면 위에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맞은편의 ‘러빙/러빙: 광주극장 사택’(2012)은 참여자들이 눈을 가린 채 공간의 표면을 함께 더듬으며 그곳에 축적된 시간을 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한 작업은 이처럼 공동체의 기억으로 옮겨간다.

집에서 세계로

5전시실

20260828021604 20260828 021604
‘완벽한 집_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2024,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455×1,237×575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 서도호
20260828021618 20260828 021618
‘다리 프로젝트’, 2024, 애니메이션,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약 24분.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네 번째 키워드는 확장이다. 5전시실에서 집이라는 개념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세계로 나아간다. 가장 최근의 천 작업인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2024)은 작가가 살아온 여섯 곳의 집에서 문손잡이와 콘센트, 스위치 등 건축의 세부를 가져와 하나의 공간에 중첩시킨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이 교차하는 건축적 자서전이다. 1999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다리 프로젝트’는 서울과 뉴욕을 잇는 상상의 다리에서 출발해 건축가,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며 집이라는 개념을 사회와 환경, 전 지구적 공존의 문제로 밀고 나갔다. 서도호의 예술에서 집은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는 질문이다.

다시, 나에게로

MMCA스튜디오

20260828021729 20260828 021729
‘둥지/들’, 2024,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410.1×2,148.7×375.4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사진 전택수 © 서도호
20260828021942 20260828 021942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 2026, 모직, 나일론 의류, 93 x 45 x 30 cm. 작가 제공 © 서도호

마지막 키워드는 시간이다. 전시장을 나서면 여러 도시의 집에서 떼어온 복도와 문을 하나의 통로로 연결한 22m 길이의 ‘둥지/들’(2024)이 이어진다. 관람객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건축을 직접 통과하며 공간을 몸으로 경험한다. 이어지는 MMCA스튜디오에서는 대형 작품의 미니어처와 함께 ‘부성애’를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2026)은 작가 자신의 코트로 만든 작업이다.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함께한 시간이 담긴 사물을 넣었다. 공간에 대한 탐구가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관계로 되돌아오며 전시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20260828022002 20260828 022001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 번가 348 번지, NY 10011(가나자와 버전)’, 2012,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아파트 690×430×245cm, 복도, 계단 1,328×179×1,175cm.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LA 카운티미술관 소장 © 서도호 사진 전택수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할 대형 유닛 설치작품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2012)는 2026년 12월 18일부터 서울박스에 공개된다. 전체 유닛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에서의 여정을 마친 전시는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MOT)과 홍콩 M+로 이어갈 예정이다.

옷을 짓고, 집을 입으며, ‘나’이면서 동시에 ‘우리’인 존재를 탐구해 온 서도호의 예술 세계. 이번 전시는 서도호의 예술을 ‘집’이라는 단일 개념으로 규정하기보다, 그가 지나온 시간과 변화의 궤적을 따라간다. 개인의 기억에서 시작해 집과 가족, 공동체와 세계로 나아갔다가 다시 내밀한 관계로 돌아오는 여정. 전시장을 걷다 보면 관람객 역시 각자의 ‘집’과 ‘기억’에 관한 고요한 질문에 가닿게 될 것이다.


Mini Interview

지난 8월 26일, 전시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 질의응답을 바탕으로 서도호 작가의 주요 답변을 정리했다.

서도호 작가

20260828022109 20260828 022109
서도호 © Gautier Deblonde
전시 초입에 30여 년 전 학생 시절의 작업이 등장한다. 초기작을 마주한 소감이 궁금하다.

솔직히 옷을 홀딱 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시를 준비하며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30년 동안 해온 작업의 ‘씨앗’이 그곳에 다 있었다. 당시에는 어떻게 발아할지 몰랐던 아이디어들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전시를 회고전이 아니라 현재 작업들의 시원(始原)을 모아놓은 자리라고 말하는 이유다.

20260828022330 20260828 022330
‘쫓아오는 집’, 2019, STPI 수제 종이에 실, 131.5 × 167 cm, 작가, STPI,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 서도호
3전시실 입구에 놓인 ‘작은 문’은 유년기를 보낸 성북동 한옥의 대문을 재현한 작품이다. 아버지가 지은 그 집에서 자란 경험은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1960~70년대, 모두가 서양식 아파트를 부러워할 때 부모님은 반대로 한옥을 지으셨다. 조선조 마지막 대목장을 모셔다 6년에 걸쳐 집을 지었고,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 경험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간적으로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겪은 한옥의 경험과 전통을 다음 세대에 남겨야겠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20260828023338 20260828 023338
© 조재이
기억은 불완전하기에 반투명한 천을 쓴다고 했다. 그런데 문손잡이나 스위치 같은 세부 요소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다.

빈 방을 관찰해 보면 벽 자체에는 디테일이 없다. 디테일이 모인 곳은 문손잡이나 조명 스위치다. 뉴욕의 작은 원룸에서 25년을 살며 매일 아침 불을 켜고 화장실에 가는 루틴을 반복했다. 방 안에서 내 움직임을 결정한 건 내 의지가 아니라 그 스위치와 문손잡이의 위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25년간 만진 문손잡이라면 내 에너지가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됐다. 현실에 가깝게 재현하겠다는 목적보다는, 그 안에서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기억한다.

20260828022800 20260828 022800
〈서도호〉 전시 전경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집에 대한 개념에도 변화가 있었나?

끊임없이 변한다. 천으로 만든 집 작업은 대부분 내가 독신일 때 나왔다. 빈 방에 혼자 앉아 그 방과 나눈 대화가 작품이 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섰다. 사람과 방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이야기가 쌓이면서 집의 개념이 학교, 사회, 우주로 포괄적으로 넓어졌다. 그 변화가 새로운 작업의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과 뉴욕, 런던을 오가며 작업해왔다.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작가로도 불린다. 차세대 한인 작가에게 조언한다면?

내게 디아스포라는 삶이자 작업의 일부일 뿐, 깊이 생각해 본 주제는 아니다. 과거 한옥 작품을 두고 성공을 위해 한국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만약 아파트에서 자랐다면 아파트를 천으로 옮겼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틀에 얽매이기보다 유연하게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20260828022851 20260828 022851
〈서도호〉 전시 전경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서울박스에 집을 지은 이후 13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이번 전시가 관람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나?

전시를 준비하며 불교 용어인 ‘회향(廻向)’을 떠올렸다. 본뜻과 다를 수 있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대중과 나눈다는 의미로 새겼다. 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집과 인생을 떠올린다. 내가 살던 집을 옮겼을 뿐인데도 관람객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긍정적인 일이다. 이번 전시가 우리 미술을 아껴온 한국 관객에게 작품 뒤의 이야기와 제작 과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나누고 소통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서도호 Do Ho Suh〉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기간 2026년 8월 27일 – 2027년 2월 9일 (서울박스 2026년 12월 18일 – 2027년 3월 28일)
운영 시간 월, 화, 목, 금, 일 10:00 – 18:00 수, 토 10:00 – 21:00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에르메스, 제네시스, 신한라이프, 해암문화재단, 신영증권
홈페이지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mmcakorea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