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눈여겨볼 서울 전시 4
알렉스 카츠부터 조은까지, 전시장으로 떠나는 도심 속 피서
무더위를 피해 들어간 전시장에서 여름을 만나는 법. 지금 가볼 만한 서울 전시 네 곳.

짙어진 녹음과 강한 햇살이 계절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름. 무더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날, 전시장만 한 피서지도 없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부터 7월 개막을 앞둔 전시까지. 올여름 눈여겨볼 서울 전시를 모았다.
알렉스 카츠 〈Studies〉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기간 5월 22일 – 8월 1일



일상의 순간을 화폭에 담아 온 현대미술가 알렉스 카츠(Alex Katz). 카츠 하면 매끈한 대형 캔버스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소형 회화다. 야외에서 자연광을 바라보며 빠르게 그려 내려간 연구작들. 카츠에게 이 작은 그림들은 대형 작업의 출발점이자, 빛을 좇는 감각이 가장 날것으로 담긴 작업이다. 작가가 “뇌리에 박히는 첫 번째 섬광”이라 말한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연구작과 2025년 신작 ‘백합’ 대형 연작 세 점이 나란히 걸린다. ‘백합을 위한 연구’의 자유롭고 떨리는 듯한 붓질이 대형 화면에서 장엄하고 투명한 꽃잎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연구작에는 꽃과 숲만 있는 게 아니다. 주변 인물들의 초상도 함께 소개된다. 카츠는 인물의 윤곽을 타고 스며드는 빛을 포착하는데, 과감하게 화면을 잘라내는 구성이 영화의 클로즈업을 연상시킨다. 풍경화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 마르기 전 물감 위에 물감을 올리는 ‘웨트 온 웨트(wet-on-wet)’ 기법으로 그린 화면에는 채 마르지 않은 순간의 긴장감이 남아 있다. 찰나의 빛을 쫓는 98세 현역 화가의 시선이 담긴 전시. 올여름, 카츠의 백합을 직접 만나 볼 것.
로버트 메이플소프 〈형태의 시학〉
장소 국제갤러리 한옥
기간 6월 9일 – 7월 19일


“사진은 말하자면 조각을 만드는 완벽한 방법이다.” 미국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말이다. 그의 카메라 앞에서 인물이든 꽃이든 오브제든, 전부 고전 조각 같은 형태가 된다. 2021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 다양한 주제를 서사 중심으로 소개했다면, 이번엔 초점이 다르다. 장르를 가로지르는 그의 형식 언어 자체에 집중한 것.

1970~80년대 젤라틴 흑백사진과 함께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이 최근 제작한 54×54인치 오버사이즈 흑백사진 세 점이 국내 첫 선보인다. 인물, 꽃, 누드를 아우르는 그의 대표 소재들이 정제된 화면 속에 자리한다. 우연의 개입을 허용하는 ‘찰나의 미학’ 대신, 계산된 채광과 완벽한 구도에 천착한 사진들. 흑백과 그 사이 여러 회색 톤이 만드는 콘트라스트가 형태를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그 사진들을 만나는 공간이 한옥이라는 점도 포인트. 더운 날, 서늘한 흑백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코 마츠모토 〈자연의 시선에 놓이다〉
장소 화이트 큐브 서울
기간 6월 18일 – 8월 15일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올해 90세를 맞은 일본 추상화가 요코 마츠모토(Yoko Matsumoto)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린다. 60여 년간 색채와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요코 마츠모토. 얇은 안료층을 빠르게 겹겹이 쌓아 올리는 ‘헤이지 페인팅(Hazy Painting)’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물감의 물질성과 신체의 움직임이 함께 작동하는 회화 양식으로, 십여 년에 걸쳐 정립한 기법이다. 1967년 뉴욕에서 색면 추상을 대표하는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접한 뒤 독자적인 추상 언어를 구축했다고.


이번 전시에는 대표 연작 ‘핑크’의 초기작부터 ‘화이트’ 연작, 최근의 ‘울트라마린 블루’ 신작까지 40여 년에 걸친 작업이 나온다. 작가는 바닥에 앉아 오랜 시간 집중 상태를 유지하며 작업하는데, ‘핑크’ 연작은 이 방식을 통해 약 30년에 걸쳐 발전시켜 왔다. 그에게 핑크색은 흑백과 달리 어떠한 관념도 담고 있지 않은 색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서 ‘어둠은 하얀색, 푸른색 심지어 분홍색’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형상은 없지만 화면 속 색들은 빛과 공기, 시간의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도쿄 후추시 미술관의 첫 미술관 순회전과 같은 시기에 열린다. 색의 층위 속을 천천히 걸어 볼 전시.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
장소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기간 7월 17일 – 11월 29일

한국화를 좋아한다면 반가울 소식. 오는 7월 그라운드시소가 처음 선보이는 한국화 기획전이 열린다. 동양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은은 수묵 위에 아크릴과 구아슈를 얹어 현대적인 풍경을 그린다. 전통 수묵화의 여백 대신 화면을 촘촘하게 채우는 것이 작가의 방식. 작품 속 빼곡히 어우러진 인물과 식물들은 실제로는 한곳에 자생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작가의 시선을 거쳐 한 폭의 조화로운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도시와 숲, 사람과 자연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신작 30점을 포함해 총 80여 점의 원화가 ‘보물찾기’, ‘숲의 미로’, ‘공중산책’, ‘나의 정원’, 흑백 공간 ‘묵분오색’까지 다섯 챕터에 걸쳐 펼쳐진다. 디지털 세계에서 매일 지우고 다시 쓰는 데 익숙해진 눈으로, 한 번 붓끝을 대면 돌이킬 수 없는 먹과 한지의 물성을 마주해 보자. 같은 기간 열리는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과 함께 둘러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