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라티가 제안한 서울의 주거 타워

카를로 라티 아소시아티가 한국 건설사 GS E&C와 협력해 서울에 새로운 형태의 주거 타워를 제안했다.

카를로 라티가 제안한 서울의 주거 타워

카를로 라티 아소시아티(Carlo Ratti Associati, 이하 CRA)가 한국 건설사 GS E&C와 협력해 서울에 새로운 형태의 주거 타워를 제안했다. ‘A High Rise on High Heels’​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140m 높이의 건물을 지상에서 들어 올려, 그 아래 공간을 빗물과 녹지, 보행자와 시민을 위한 열린 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의 고층 건물은 대개 지상부에 포디움이나 주차장, 상업시설 등을 배치해 대지를 넓게 점유한다. 반면 CRA의 제안은 타워의 하중을 여러 개의 대형 구조 기둥에 집중시키고 건물의 주요 매스를 지상에서 띄우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건물이 ‘하이힐’을 신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확보된 지상 공간에는 물과 식물이 자유롭게 흐르고 자랄 수 있는 개방형 조경 공간이 들어선다. 특히 프로젝트는 서울의 도시 홍수와 집중호우에 대응하기 위해 스펀지 시티(Sponge City)’​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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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들어 올려 빗물을 위한 공간을 만들다

‘스펀지 시티’는 도시가 빗물을 빠르게 배수하는 대신 현장에서 저장하고 흡수하도록 만들어 집중호우에 대응하는 도시 설계 개념이다. CRA는 이를 건축물의 구조와 결합했다. 건물의 지상부 점유 면적을 최소화함으로써 빗물이 머물고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강우 시 한꺼번에 도시 배수망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을 줄이는 방식이다. 건물 아래의 열린 공간은 단순한 조경 공간을 넘어 도시의 물순환을 지원하는 기후 적응 인프라로 기능한다.동시에 기존의 성숙한 수목을 최대한 보존하고 새로운 식재 공간을 마련해 녹지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건물로 가려지는 면적이 줄어들면서 지상부에는 더 많은 햇빛과 공기가 들어오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공간도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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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아래에 펼쳐지는 새로운 공공 공간

들어 올려진 타워 아래와 주변에는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이 배치된다. 조경된 정원을 중심으로 식음 공간과 티하우스, 도시 농업을 위한 공간 등이 들어서며, 주민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을 형성한다. 이는 고층 주거건물의 저층부를 단순한 진입 공간이나 상업시설로 사용하는 기존 방식과 차별화된다. 건물이 대지를 차지하는 대신, 건물 아래의 공간 자체를 도시의 새로운 공공 영역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CRA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고층 주거건물이 주변 도시와 단절된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물과 녹지, 사람의 활동이 연결되는 도시 구조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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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층’을 공동 정원으로 재해석

타워 중간중간에는 한국의 건축 규정에서 요구되는 피난층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비상시 대피를 위해 마련되는 피난층을 식재된 공동 테라스로 재해석해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야외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타워 곳곳에 마련된 테라스는 수직적으로 이어지는 정원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하늘과 녹지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 같은 전략은 고층 건물에서 흔히 발생하는 ‘수직적 단절’을 완화하고, 지상뿐 아니라 건물 중간과 상부까지 커뮤니티 공간을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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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파사드

건물의 외피 역시 하나의 동일한 커튼월을 반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난다. CRA는 각 입면이 받는 햇빛의 방향과 강도를 고려해 방향별로 서로 다른 환경 대응 전략을 적용했다. 남향 입면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동쪽과 서쪽 입면에는 수직 루버를 적용해 낮은 각도로 들어오는 강한 일사를 차단한다. 즉, 타워의 파사드는 단순히 건물의 외관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햇빛과 기후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환경 장치로 설계된다.

건축물을 넘어 도시 인프라로

‘A High Rise on High Heels’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고층 주거건물을 단순히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수직적 주거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물을 들어 올려 대지의 상당 부분을 비우고, 그 공간에 빗물 관리와 녹지, 보행, 커뮤니티 기능을 결합함으로써 건축물 자체를 도시의 기후 대응 시스템으로 확장한다. 특히 집중호우와 도시 열섬, 녹지 부족 등 복합적인 도시 환경 문제가 부각되는 서울에서 이러한 접근은 건축과 도시 인프라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CRA가 제안한 이 타워는 결국 얼마나 많은 면적을 건물이 차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건물이 차지하지 않은 공간을 도시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140m 높이로 들어 올려진 주거 타워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며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고층 건축의 구조적 기술을 도시의 기후 적응과 공공성으로 연결한 새로운 도시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제안이다.

클라이언트 GS E&C
디자인 카를로 라티 아소시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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