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 다시 발견하는 공간, MMCA 과천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빛을 매개로 공간과 작품, 관람객을 연결하며 과천관이 쌓아온 40년의 시간과 장소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빛을 따라 다시 발견하는 공간, MMCA 과천

서울의 도시적 활력과 과천의 자연 환경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은 1986년 건축가 김태수의 설계로 문을 열었다. 올해는 과천관 개관 4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전시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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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는 ‘광경’, ‘잔상’, ‘머무는 자리’ 세 개의 전시를 축으로 삼되 세 개의 특강과 밤의 미술관 탐사, 참여형 아카이브 ‘장면들’, 어린이미술관 교육 프로그램 ‘향기로 그리는 여름 미술관’, 개관 기념일인 8월 25일 전후로 열리는 특별 상영 프로그램 ‘조각공원의 예술가들’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참여 작가는 김아영, 필립 파레노, 제임스 터렐, 이반 나바로, 김하늘, 방효빈, 임정주, 하지훈, 황형신 등 9명. ‘빛의 상상들’이라는 부제처럼 전시는 빛을 공간과 작품, 관람객을 잇는 매개로 삼아 과천관이 쌓아온 40년의 시간과 장소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로비와 브릿지에 스며드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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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마퀴’, 2019, 투명 플래시 글라스, LED 조명, 네온, DMX 컨트롤러, 37x204x75cm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 로비와 브릿지 등 관람객 주요 동선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빛을 매개로 자연과 예술, 건축물의 내외부를 연결한다. 로비에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1964~)의 대표작 ‘마퀴’가 소장 이후 처음 공개된다. 영화, 설치, 퍼포먼스, 사운드, 조명 등 다양한 매체로 전시 자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처럼 구성해 온 작가는 극장 입구의 전광 간판(marquee)을 모티프로 삼아 투명 플래시글라스와 LED 조명, 네온, DMX 컨트롤러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점멸하고 밝기가 변하는 빛은 특정한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관람객은 어떤 사건이나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기대감을 느끼지만, 작품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파레노는 기다림과 예고, 가능성 자체를 경험의 대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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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3분43초, 가변크기, 《MMCA 과천 40주년 광경》을 위한 장소특정적 설치로 재구성 ©국립현대미술관

3층 브릿지에는 김아영(1979~)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선보인다. 기술과 데이터, 플랫폼 노동, 가상세계를 신화적 서사와 결합해 동시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탐구해 온 작가의 대표 연작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의 주요 작품으로, 가상의 도시를 횡단하는 두 인물의 여정을 통해 속도와 시간, 과거와 미래,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복합적 시공간을 그린다. 전시를 위해 LED 패널 기반의 장소특정적 설치로 새롭게 재구성된 이번 작품은 유리창 너머의 실제 풍경과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가 교차되며 기술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 속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되묻는다.

빛으로 채워지는 방

2원형전시실에서 열리는 ‘잔상’은 ‘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과 이반 나바로(Iván Navarro, 1972~)의 작품을 소개한다. 터렐의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MDC)가 2025년 기증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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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Imaginings, Wide Rectangular Curved Glass)’, 2021, LED 조명과 스크림을 활용한 공간 설치, 182.9×304.8㎝, 2h30m,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MDC)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2000년대 이후 진행해 온 ‘글라스워크(Glassworks)’ 연작 중 하나로, LED 조명과 반투명 직물 스크림(scrim)을 활용해 공간 전체를 빛으로 채운다. 서있는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서로 다른 감각적 경험을 주는 본 작품은 마치 숨을 쉬듯 2시간 30분 동안 천천히 변화하는 색채로 보는 이를 명상과 사색의 시간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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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경_잔상 ©국립현대미술관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이반 나바로는 네온과 거울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과 시각적 착시를 구현한다. ‘에코(벽돌)’는 끝을 알 수 없는 우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공간감 속에서 공포와 불안, 경이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민자로서 영어를 배웠던 기억을 작품 전면의 영단어로 드러낸다. ‘무제(쌍둥이 빌딩)’는 2001년 9·11테러로 사라진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두 개의 유리 상자 작업으로, 안쪽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깊이감은 사라진 대상을 향한 기억과 상실의 감정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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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나바로, ‘에코(벽돌)(Ecco(Brick))’, 2012, 네온 조명, 벽돌구조물, 거울, 반투명거울, 혼합재료, 81×180×180㎝, A.P.11 (ed.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조각공원에 앉아 쉬어가는 시간

과천관 야외에서 열리는 ‘머무는 자리’는 40년간 축적된 조각공원의 역사와 공공적 가치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신작 프로젝트다. 조각공원에 설치된 기존 작품 대부분이 돌과 금속, 콘크리트 등 견고한 재료로 만들어진 기념비적 조각이었다면 이번 신작들은 기대고 머물 수 있는 ‘앉을 수 있는 조각’으로 공원을 감상의 공간에서 머무름과 경험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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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빈, ‘고리의 궤도’, 2026, 스테인레스 스틸, 1200x700x150cm,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김하늘(1998~)의 ‘스티로폼 소파(어상자)’는 수산시장에서 버려진 폐스티로폼으로 만든 모듈형 의자로 빠르게 소비되고 폐기되는 재료를 새로운 물성과 구조로 전환해 순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방효빈(1997~)의 ‘고리의 궤도’는 반복되는 고리 구조가 사람과 공간, 작품과 풍경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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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주, 〈논엘로퀀트〉, 2026, 유리섬유, 30×30×40cm(x4),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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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신, ‘재구성된 풍경’, 2026, 스테인레스 스틸, 126x57x72cm(x2), 90x57x72cm(x2), 66x57x72cm(x2), 57x54x36cm(x2), 117x54x36cm(x2), 90x54x36cm(x2),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임정주(1985~)의 ‘논엘로퀀트’는 목선반 기법으로 만든 구조물에 정해진 기능을 부여하지 않아 관람객이 앉고 기대는 방식에 따라 스스로 작품과 관계를 맺도록 유도한다. 돗자리에서 영감받은 하지훈(1972~)의 ‘자리’는 한국 좌식 문화와 현대적 휴식의 방식을 연결하며, 황형신(1981~)의 ‘재구성된 풍경’은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에 하늘과 나무, 관람객의 움직임을 담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담는다.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이번 프로젝트는 하나의 전시실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관람객은 조각공원에서 시작해 미술관 로비와 공용공간, 전시실을 따라 이동하며 자연과 예술, 빛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순서대로 경험한다. 야외의 ‘앉을 수 있는 조각’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면 파레노의 ‘마퀴’가 예술적 사건의 시작을 알리고, 브릿지에서는 김아영의 작품이 유리창 밖 실제 풍경과 디지털 이미지를 겹쳐놓는다. 2원형전시실에 이르면 터렐과 나바로의 빛이 관람객을 명상과 착시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빛은 이 모든 구간에서 과천관의 건축과 자연환경을 드러내는 물리적 요소이자 소장품과 보는 이 사이의 감각적·정서적 상호작용을 촉발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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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마퀴’, 2019, 투명 플래시 글라스, LED 조명, 네온, DMX 컨트롤러, 37x204x75cm ©국립현대미술관

이로써 미술관은 공간과 신체, 기억과 경험이 서로를 비추고 반응하는 관계적 장으로 다시 놓인다. 전시 동선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40년간 쌓인 과천관의 장소성과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개관 40주년을 맞아 새로 선보인 그래픽 아이덴티티는 과천관의 건축적 구조와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대공원역부터 미술관 진입로와 내부까지 신규 그래픽을 적용해 사이니지를 전면 개편했다. 여기에 가구를 배치해 공간과 어우러지는 휴식처도 함께 마련했다.

디자이너의 눈에 오래 남는 것들

이번 프로젝트가 디자이너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40년 된 공간을 완전히 처음부터 짓지 않고도 어떻게 다시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레노와 터렐, 나바로는 모두 벽을 세우지 않고도 공간의 인상을 완전히 바꾸는 재료 즉, 빛을 다룬다. 미술관의 오래된 로비, 전시 공간을 리노베이션할 때 조명 설계 하나로 장소의 성격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다는 점은 예산과 시간이 한정된 공간 디자인 현장에서 특히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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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훈, ‘자리’, 2026, ABS, 100x200x72cm(x7), 가변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조각공원 프로젝트 ‘머무는 자리’는 재료를 다루는 태도 면에서 실용적 인사이트가 가득하다. 버려진 산업 부산물을 새로운 용도로 탈바꿈 시킨 김하늘의 ‘스티로폼 소파(어상자)’, 전통적인 좌식 문화를 현대적 소재로 재해석한 하지훈의 ‘자리’는 지역성과 현대성을 함께 담아야 하는 브랜딩·공간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기념비적이고 손대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지던 기존 조각들 옆에 앉고 기댈 수 있는 작품을 나란히 놓은 구성은 오래된 자산과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모든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실질적 힌트가 된다. 이렇게 본 전시는 대규모 철거나 신축이 아니라 빛과 재료, 동선을 다시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공간이 새로운 영감의 공간으로 다시 읽힐 수 있음을 증명한다.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광경·잔상·머무는 자리)

주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기간 2026년 7월 10일 – 11월 29일 (‘광경’, ‘머무는 자리’)
2026년 7월 10일 – 2027년 10월 31일 (‘잔상’)
운영 시간 화 – 일 10:00 – 18:00
참여 작가 김아영, 필립 파레노, 제임스 터렐, 이반 나바로, 김하늘, 방효빈, 임정주, 하지훈, 황형신
웹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인스타그램 @mmca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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