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로 기록한 잉카 일로리의 10년 〈Chairman〉
잉카 일로리 의자 아카이브 속 대표 프로젝트 3
영국계 나이지리아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잉카 일로리의 10여 년 의자 작업을 집대성한 첫 모노그래프 〈Chairman〉이 출간됐다. 그의 디자인 언어가 만들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 의자 프로젝트 세 점을 소개한다.

알록달록한 패턴과 대담한 색,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 영국계 나이지리아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잉카 일로리(Yinka Ilori)의 작업은 한눈에 알아볼 만큼 선명하다. 오늘날 그는 건축과 공공미술, 설치, 인테리어까지 넘나들며 도시 전체를 캔버스처럼 다루는데, 그 거대한 작업 세계의 시작점에는 아주 평범한 사물 하나가 있었다. 바로 의자다. 그는 런던의 거리와 중고 상점에서 버려진 의자를 찾아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그리고 그 위에 유년 시절의 기억과 우화, 이주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부여했다. 그렇게 의자는 그에게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잉카 일로리의 10여 년에 걸친 의자 작업을 집대성한 첫 모노그래프 〈Chairman〉이 출간되었다. 오알오 에디션스(ORO Editions)에서 올 가을 선보인 이 책은 그의 대표적인 의자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종합해 조명하는 작품집이다. 새롭게 촬영한 작품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 스튜디오 기록을 통해 버려진 가구가 수집되고 복원되어 전혀 새로운 오브제로 거듭나는 과정을 따라간다. 동시에 의자를 기억과 이주, 기쁨을 품은 하나의 ‘문화적 아카이브’로 바라보며, 영국과 나이지리아 두 문화 사이에서 그의 디자인 언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기억과 공동체의 광장
런던에서 나이지리아계 부모 아래 성장한 잉카 일로리는 영국과 나이지리아 두 문화의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만들어왔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가구와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의자에서 출발해 조각과 설치, 인테리어, 공공미술로 점차 작업의 스케일을 넓혔다. 그러나 크기가 달라졌을 뿐 작업을 관통하는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담한 색과 패턴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머물고 움직이며 서로 관계를 맺게 하는 것. 이제 그의 작업에서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장치가 됐다.

최근 작업은 이러한 확장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밀턴킨스 시의 관문인 스테이션 스퀘어를 재해석한 〈Walk With Your Dreams〉는 영국 최대 규모의 공공 공간 가운데 하나를 대담한 색과 형태로 채운 프로젝트다. 나이지리아 직물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과 꽃, 원형, 빔 등의 요소를 통해 움직임과 정체성, 공동체의 감각을 표현하고, 분주하게 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 주변을 바라볼 순간을 제안한다.
글로벌 바닥재 기업 타켓(Tarkett)과 함께한 〈Rituals For All〉에서는 카펫을 단순한 바닥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쉬며 자신만의 의식을 만드는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봤다. 가족이 둘러앉는 자리이자 기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여러 문화권의 카펫에서 착안해, 필요에 따라 조립하고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유연한 설치물을 완성했다. 집과 운동 공간, 모임의 장소 혹은 혼자 머무는 자리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공간이다. 한 사람의 몸을 받아주던 의자에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광장과 함께 머무는 장소로. 잉카 일로리가 의자 한 점에 담아왔던 기억과 공동체, 소속감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사람들이 직접 들어가 경험하는 공간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의자에서 시작해 도시를 채우기까지
그렇다면 지금의 잉카 일로리를 만든 의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수많은 작업 가운데 그의 디자인 언어가 만들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Parable Collection (2013)

잉카 일로리의 초기 작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나이지리아의 우화다. 〈Parable Collection〉에서 그는 우화를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핵심이 되는 단어나 인물, 몸짓에서 형태적 단서를 찾아 의자의 다리를 늘이고 구조를 비틀거나, 선명한 페인트와 더치 왁스 패브릭을 덧입혔다. 이미 누군가의 시간을 품고 있던 오래된 가구에 자신의 문화와 기억을 다시 포개는 방식이었다. 같은 해 열린 그의 첫 개인전 제목도 〈It Started With a Parable〉. 말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잉카 일로리의 디자인 언어는 하나의 우화에서 시작됐다.
If Chairs Could Talk (2015)

우화 속 인물에게 향하던 시선은 〈If Chairs Could Talk〉에서 실제 사람들의 삶으로 옮겨간다. 잉카 일로리는 학창 시절 알고 지낸 다섯 친구의 기억과 경험을 다섯 점의 업사이클 의자로 풀어냈다. 그중 파란색 프레임과 패턴이 돋보이는 〈Captain Hook〉은 힘든 시기에 주변 어른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했던 한 친구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다. 의자 뒤에 붙인 갈고리는 그가 당시 ‘left hanging’, 즉 도움 없이 내버려졌던 상황을 은유한다. 쉽게 버려진 의자에 다시 가능성을 발견했던 태도가, 한 사람을 현재의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은 현재 V&A가 소장하고 있으며 V&A 이스트 뮤지엄(East Museum)에서도 만날 수 있다.
A Large Chair Does Not Make a King (2017)

2017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아프리카 센터의 의뢰로 선보인 〈A Large Chair Does Not Make a King〉에 이르면 의자는 더 이상 독립된 가구에 머물지 않는다. 넓은 공간에 네 개의 거대한 계단 구조물을 세우고 그 꼭대기마다 화려하게 장식한 의자를 하나씩 놓았다. 관람객은 원하는 계단을 직접 올라 의자에 앉는다. 계단은 저마다 걸어온 삶의 여정을, 가장 높은 곳의 의자는 성공과 지위를 상징하지만, 막상 자리에 앉으면 네 사람의 눈높이는 모두 같아진다. ‘큰 의자에 앉는다고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제목처럼, 작품은 지위와 위계 너머에서 결국 사람은 동등하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전시 기간에는 워크숍과 영화 상영 등이 열리며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로 기능했다.
특히 이 작업은 지금의 잉카 일로리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야기를 담던 한 점의 의자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공간으로 확장된 것. 이후 거리와 놀이터, 파빌리온과 공공미술로 스케일을 키워온 그의 작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다시 이 작은 가구와 만나게 된다.
〈Chairman〉이 궁금하다면?
20쪽 하드커버로 구성된 《Chairman》에는 새롭게 촬영한 작품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 스튜디오 작업 과정까지 함께 담았다. 가격은 40달러. 자세한 책 정보와 구매 안내는 ORO 에디션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