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브루탈리즘 건축이 가구가 될 때, 메이드×바비칸 컬렉션
바비칸에서 발견한 삶의 디자인
브루탈리즘의 아이콘이자 런던의 랜드마크인 바비칸이 가구로 새롭게 태어났다. 영국 가구 브랜드 메이드와 협력해 ‘MADE × Barbican’ 컬렉션을 선보였다.

브루탈리즘의 아이콘이자 런던의 랜드마크인 바비칸이 가구로 새롭게 태어났다. 영국 가구 브랜드 메이드(MADE)는 바비칸과 협력해 가구와 조명, 텍스타일 등 총 23개의 제품으로 구성된 ‘MADE × Barbican’ 컬렉션을 선보였다. 바비칸 특유의 콘크리트 구조와 기하학적 형태를 단순히 차용하는 대신, 아카이브와 당시 도면, 1960년대 후반 바비칸의 쇼 플랫(모델하우스)을 꾸민 미리암 호윗(Miriam Howitt)의 작업까지 들여다봤다. 바비칸의 외형뿐 아니라 그 안에서 제안된 생활 방식까지 컬렉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도시를 재생하는 주거 실험

바비칸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런던 시티의 크리플게이트(Cripplegate) 일대가 폐허가 되자, 런던시는 이곳에 새로운 주거 지역을 조성하기로 했다. 당시 유럽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동주택 모델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프랑스 마르세유에 선보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공동주택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상점과 공공시설, 여가 공간까지 갖춘 하나의 ‘수직 도시’로 구상한 것이다.


바비칸 역시 이러한 전후 도시계획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그룹 챔벌린, 파월 앤 본(Chamberlin, Powell and Bon)은 주거와 문화, 교육 시설을 한데 배치하고 자동차와 보행자의 동선을 분리한 거대한 복합단지를 구상했다. 1965년 공사를 시작한 바비칸 에스테이트의 주거 블록은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차례로 완공됐고, 이후 1982년 바비칸 센터가 문을 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익숙한 주거 형태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도시 생활을 제안하는 야심찬 실험이었다.
흥미로운 건 건축가들이 이곳에 살 사람의 모습까지 꽤 구체적으로 그려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상상한 바비칸의 거주자는 “지중해에서 휴가를 보내고, 프랑스 음식을 즐기며,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좋아할 법한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이처럼 구체적인 거주자에 대한 상상은 개별 주택의 인테리어에도 이어졌다.
바비칸이 제안한 라이프스타일

인테리어를 맡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미리암 호윗은 집을 보기 좋게 꾸미는 데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먼저 그곳에 살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지적인 부부, 젊은 임원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여동생, 세계 각국의 친구와 비즈니스 파트너를 자주 초대하는 은행가 부부처럼 각 플랫에 서로 다른 거주자의 직업과 가족 구성, 취향과 생활 방식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설정에 맞춰 가구와 카펫, 조명과 소품을 달리했다.
결국 바비칸이 제시한 것은 획일화된 공동주택이 아니라, 같은 프레임 안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른 삶이었다. 정해진 구조 안에서도 누가 살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집이 될 수 있다는 것. 규격화된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어떤 가구를 놓고, 어떤 조명을 켜고, 어떤 색과 물건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집은 전혀 다른 모습을 갖는다.


메이드 디자인팀이 바비칸의 아카이브에서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접근법이었다. 디자인을 이끈 베아트리스 누노(Beatriz Nuno)는 바비칸의 건축과 인테리어에 담긴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조사했고, 특히 미리암 호윗의 쇼 플랫에서 영감을 얻었다. 1967년 호윗이 쇼 플랫에 사용한 대담한 패턴의 카펫은 ‘브루트 러그(Brute Rug)’로 재탄생했다. 당시의 기하학적 패턴을 단순화해 버건디와 크림 컬러의 긴 파일 울 러그로 재해석했다.
바비칸의 건축적 디테일을 옮긴 제품도 있다. ‘커브 테이블 램프(Curve Table Lamp)’는 바비칸 홀의 튜브형 음향 패널에서, ‘티어(Tier)’ 컬렉션은 1966년 테라스 블록의 입면 드로잉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플린스 커피 테이블(Plinth Coffee Table)’은 바비칸 호숫가의 원형 좌석에서 형태를 가져왔다. 두 개의 반원형 테이블은 하나의 원으로 합치거나 따로 배치할 수 있어 공간에 따라 구성을 달리할 수 있다. 같은 플린스 시리즈의 선반과 사이드보드에는 바비칸의 타일로 마감된 오버행과 콘크리트 타워, 발코니의 실루엣 같은 요소가 반영됐다.


소재와 색에서도 바비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따뜻한 톤의 우드와 크롬을 중심으로 버터밀크 옐로, 버건디, 올리브 그린, 더스티 블루를 더했고, 깊은 파일의 러그와 직조 패브릭, 질감을 살린 표면을 함께 사용했다. 거친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바비칸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안에서 발견한 형태와 색, 질감을 오늘의 주거 공간에 맞는 언어로 바꾼 것이다.


이번 컬렉션은 9월 12일부터 20일까지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에 맞춰 바비칸 센터 레벨 G 허브 스페이스에서 설치 전시로 공개될 예정이다. 컬렉션과 함께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 바비칸의 인테리어 아카이브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