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디자인 뮤지엄 겐트
120년 역사의 벨기에 최대 디자인 뮤지엄 재개관
벨기에의 디자인 뮤지엄 겐트(Design Museum Gent)가 4년간의 보수·증축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하고 지역 건설 폐기물로 만든 벽돌을 활용해 신관 ‘딩(DING)’을 증축한 것이 특징. 새롭게 개편한 상설전시와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디자인을 경험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지난 10월 3일, 벨기에 겐트의 디자인 뮤지엄 겐트(Design Museum Gent)가 4년간의 보수·증축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1903년 설립된 이곳은 약 2만 4,000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벨기에 최대 규모의 디자인 뮤지엄으로 가구와 도자기, 섬유 등 전통적인 공예품부터 현대 제품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이번 재개관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기존 건축물을 복원하고 신관을 더해 전체 면적 약 6,500㎡, 전시 공간 약 3,700㎡ 규모로 확장했다. 전시와 교육 시설은 물론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도 새롭게 마련했다.

디자인 뮤지엄 겐트의 시작은 1903년 설립된 ‘모델 뮤지엄(Model Museum)’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람객은 물론 동시대 장인들에게 우수한 디자인을 소개하고 제작에 영감을 주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이후 18세기 직물 상인의 저택인 호텔 드 코닝크(Hotel de Coninck)로 자리를 옮겼다. 1992년에는 새로운 전시동을 증축하며 규모를 키웠지만,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진 건물들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관람 동선과 접근성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이처럼 흩어져 있던 공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동시에 전시와 교육, 시민 참여를 위한 공간을 확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6세기 건물부터 21세기 신관까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신관 ‘딩(DING)’의 완공이다. 영국 건축사무소 카모디 그로크(Carmody Groarke)와 벨기에 건축사무소 아타마(ATAMA)가 신관 설계를 맡고, 기존 역사적 건축물의 복원은 벨기에 건축사무소 ‘RE-ST’가 담당했다. 약 2,200㎡ 규모의 신관은 기존 건물 사이의 빈 부지에 들어서 16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특히 18세기 호텔 드 코닝크의 중심이었던 중정은 정원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중정을 관람객의 이동을 안내하는 중심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주변 공간에서도 중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확보해 복잡했던 관람 동선을 한층 명료하게 정리했다.


신관에는 지하부터 지상 4층까지 여섯 개의 주요 공간이 들어섰다. 지하에는 소장품을 다루는 작업 공간을 마련하고, 지상층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스타츠카머(Stadskamer)’를 배치했다. 강연과 토론을 위한 포럼(Forum), 워크숍 공간인 아틀리에(Atelier), 임시 전시 공간인 비트린(Vitrine)을 비롯해 최상층에는 겐트의 구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행사 공간 로프트(Loft)가 자리한다. 이를 통해 미술관은 기존의 전시 기능에 더해 교육과 토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됐다.
도시의 폐기물로 만든 벽돌 8만 2,000장
신관의 건축에서 주목할 부분은 외벽에 사용된 밝은색의 벽돌이다. 겐트 지역에서 발생한 건설 폐기물을 재활용해 특별히 제작한 ‘겐트 웨이스트 브릭(Gent Waste Brick)’으로, 고온에서 굽는 대신 석회로 양생해 탄소 배출을 줄였다. 벨기에의 건축 소재 기업 비시 머티리얼스(BC Materials)가 8만 2,000장 이상 생산했으며, 제작 과정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공개됐다. 벽돌의 크기는 인접한 18세기 호텔 드 코닝크에 사용된 벽돌을 참고했고, 흰색은 드라브스트라트(Drabstraat)의 역사적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선택했다.


신관의 파사드는 겐트의 오래된 길드 하우스와 상류층 저택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깊숙이 들어간 창문과 섬세한 마감 디테일이 특징이다. 신관의 주요 구조에는 목재를 사용했고, 기존 건물의 복원 과정에서도 가능한 한 재료를 재사용하는 등 지속 가능한 건축 방식을 도입했다.


내부 공간 곳곳에는 현대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반영됐다. 큐레이터 시그리드 데미테나레(Siegrid Demyttenaere)의 기획 아래 진행된 약 15개의 ‘스페셜 디자인 프로젝트(Special Design Projects)’를 통해서다. 벨기에 디자인 스튜디오 언폴드(Unfold)는 3D 프린팅 기술로 알루미늄 출입구 ‘프리즈 프레임 82.2(Freeze Frame 82.2)’를 제작했고, 조경 건축가 바스 스메츠(Bas Smets)는 정원에 숲 공간을 조성했다. 디자인 듀오 슈발리에 마송(Chevalier-Masson)이 제작한 음향 커튼과 카시미르(Casimir), 브람 반더베케·웬디 앙드레우(Bram Vanderbeke & Wendy Andreu)가 디자인한 가구도 미술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품뿐 아니라 방문객이 직접 사용하는 가구와 시설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끌어들인 셈이다.
알바 알토부터 소트사스까지, 2만 4,000점의 디자인 컬렉션

건축과 함께 소장품을 선보이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새롭게 개편한 상설전시 〈Collection. Models from the Past for the Future〉은 약 2만 4,000점의 소장품 가운데 500여 점을 선별해 소개하며, 이 중 약 40%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알바 알토(Alvar Aalto), 찰스·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헨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작품부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디자이너들의 작업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전시는 작품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대신 ‘모방(Copy)’, ‘편안함(Comfort)’, ‘이주(Migration)’, ‘접기(Folding)’, ‘연결(Connections)’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해 과거의 디자인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본다. 전시 공간 역시 건축사무소 노르트(Nord)와 라우라 마일더르만스(Laura Muyldermans)가 설계해 전통적인 점토 미장 벽과 벨기에의 순환형 철골 시스템 스켈렛(Skellet)을 함께 사용했다.

재개관을 기념한 특별전도 마련했다. 〈Public Matter(s): Design and Democracy〉는 투표용지와 의회 건축물부터 선거 제도와 시민 참여 방식까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디자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시다. 아멜리 클라인(Amelie Klein)과 베라 사케티(Vera Sacchetti)가 기획했으며 2027년 4월 11일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도 디자이너와 지역 커뮤니티의 협업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코랩(CO-LAB)〉,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만지고 경험하는 〈커넥트(CONNECT)〉,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장품 사이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탐색하는 ‘스튜디오 디지털(Studio Digitaal)’ 등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번 디자인 뮤지엄 겐트의 재개관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고 증축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발생한 건설 폐기물을 새로운 건축 소재로 활용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디자인을 경험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120년 넘게 디자인을 수집하고 소개해 온 미술관이 이제는 도시와 시민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선 셈이다.
디자인 뮤지엄 겐트(Design Museum Gent)
장소 Drabstraat 10, 9000 Gent, 벨기에
운영 시간 월·화·목·금 09:30–17:30 / 토·일 10:00–18:00 (수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