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띄운 조각, 바랑가루의 기억을 담다
시드니 하버에 등장한 기념비, ‘Monuments for Fishes’
시드니 도심 해안가 바랑가루 지역의 워터먼스 코브에 최대 높이 22.6m에 이르는 조각 다섯 점이 떠 있다. 호주 작가 미칼라 드와이어의 공공미술 작품 ‘Monuments for Fishes’다.

시드니 도심 해안가 바랑가루(Barangaroo) 지역의 워터먼스 코브(Watermans Cove)에 거대한 조각 다섯 점이 떠 있다. 호주 작가 미칼라 드와이어(Mikala Dwyer)의 공공미술 작품 ‘Monuments for Fishes’로 최대 높이 22.6m에 이르는 부유형 조각이다. 알록달록한 줄무늬와 독특한 실루엣을 지닌 조각들은 물 위에 고정된 기념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람과 물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흔들린다.

작품의 출발점은 작가의 작업실에 있던 작고 평범한 줄무늬 낚시찌였다. 일상적인 사물에서 발견한 형태를 거대한 조형물로 확장한 이 작품은 바랑가루의 해안 풍경에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더한다. 동시에 이 지역에서 이어져 온 낚시의 역사와 원주민 여성들의 삶, 시드니 하버의 생태적 환경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예술적 상상력과 해양 기술이 만난 이 작품은 도시의 공공공간이 어떻게 지역의 기억을 담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낚시찌에서 22.6m의 조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는 낚시찌다. 드와이어는 작업실에 있던 작은 줄무늬 낚시찌에서 형태적 영감을 얻어 다섯 개의 거대한 조각으로 발전시켰다. 각 조각은 위로 길게 뻗은 형태와 선명한 색상, 반복되는 줄무늬를 특징으로 한다. 높이가 최대 22.6m에 이르는 구조물은 멀리서도 시선을 끌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실루엣을 드러낸다.

조각의 형태는 토템이나 첨탑, 볼링 핀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전달하기보다 주변 환경과 함께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작은 낚시 도구가 해안의 대형 공공미술로 확장되는 과정은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디자인적 접근을 보여준다. 작가는 조각과 설치, 회화,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 왔으며 이 작품에서도 형태와 움직임을 결합해 장소에 어울리는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 낸다.
바람과 물살을 견디는 해양 엔지니어링


‘Monuments for Fishes’는 시각적인 형태뿐 아니라 실제 해양 환경에서 작동하는 구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다섯 조각은 수면 위에 떠 있는 형태로 설치돼 바람과 조수의 변화에 따라 흔들리고 움직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작품에는 탄소섬유와 유리섬유, 강철 등 요트 제작에 활용되는 재료와 해양 엔지니어링 기술이 적용됐다.

거대한 조각을 물 위에 설치하려면 형태를 구현하는 조형 기술뿐 아니라 해상 환경을 고려한 구조 설계가 필요하기에 작가의 시각적 구상과 기술적 조건이 함께 이루어졌다. 수면 아래 구조물 역시 작품의 중요한 부분으로 해양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암초와 유사한 서식 환경을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작품은 해안의 경관을 바꾸는 동시에 조각의 설치 방식과 해양 환경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바랑가루의 낚시 역사와 장소의 기억
작품의 의미는 설치 장소인 바랑가루의 역사와 연결된다. 오늘날 바랑가루는 시드니의 대표적인 수변 개발 지역이지만, 이곳의 물과 해안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생활과 낚시 활동이 이어진 공간이었다. ‘Monuments for Fishes’는 이 바다에서 오랜 낚시 전통을 이어 온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 여성들에게 특히 경의를 표한다. 또한 이 작품은 호주 시인 케네스 슬레서(Kenneth Slessor)가 시드니 하버에서 친구를 잃고 지은 시 ‘Five Bells’와 연결되는 맥락도 있다. 이처럼 작품은 낚시 도구에서 출발한 조형적 발상에 지역의 역사와 문학적 기억을 더한다. 방문객은 해안 산책로에서 조각의 색과 움직임을 감상하면서, 같은 장소가 서로 다른 세대와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지녀 왔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Monuments for Fishes’는 시드니 하버의 풍경과 도시 공간 사이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상적인 낚시찌에서 출발한 디자인은 익숙한 사물의 형태를 새로운 맥락으로 옮겨 놓으며 기능적인 물건이 공공미술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도시의 수변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일상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Monuments for Fishes’는 형태적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장소와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다. 익숙한 사물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디자인과 공공 공간, 환경에 대한 관심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디자인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주변의 사물과 장소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