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습격한 서울의 패션 브랜드, <시대복장>전

지용킴 & 포스트아카이브팩션 & 혜인서

일민미술관에 한국 동시대 패션 브랜드가 들어섰다. <시대복장 Iconclash: Contemporary Outfits>(이하 시대복장)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용킴Jiyong Kim, 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 혜인서HYEIN SEO 세 스튜디오가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대 서울의 감각을 풀어낸 전시다.

미술관을 습격한 서울의 패션 브랜드, <시대복장>전

2025년 5월 30일부터 7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패션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 스튜디오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한자리에 모았다. 패션은 다양한 하위문화를 둘러싸고 유행을 창조하며, 서울은 이를 유연하게 수용해 새로운 미적 지형을 만들어왔다. 지용킴, 파프, 혜인서는 서울의 생동감을 반영하며 시대적 맥락을 담은 옷을 만들어왔다. 전시는 각 브랜드의 철학과 디자인 언어를 통해 서울의 다층적인 문화와 감각을 풀어내고, 미술관 공간에서 패션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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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복장> 전시가 열리는 일민미술관 외벽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Studio Oscilloscope))

이번 전시는 일민미술관의 세 층에 걸쳐 구성됐다. 1층은 지용킴의 공간으로, 자연의 시간과 힘을 옷에 담아내는 선블리치 기법을 선보인다. 동일한 패턴으로 제작된 검은 맥코트 22벌은 태양, 바람, 비 등 자연환경에 노출되며 각기 다른 무늬와 색으로 변화했고, 전시장 중앙의 반원형 구조물과 선블리칭 아트워크 연작은 옷의 물질성과 시간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2층은 파프의 공간이다. 아카이브의 무지개와 패턴의 바다 등 데이터와 패턴의 집합체를 통해 옷의 경계를 확장한다. 3층은 혜인서HYEIN SEO의 개방형 자료실과 퍼포먼스 공간으로, 지난 10년간의 리서치와 작업을 해체하고 그 속에 흐르는 서사를 풀어낸다. 퍼포머들은 옷을 착용한 채 공간을 누비며, 옷이 착용자를 통해 완성되는 순간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한다.


자연과 시간의 흔적을 입은 옷, 지용킴

지용킴은 2021년 서울에서 시작된 패션 스튜디오로, 태양, 바람, 비 등 자연환경의 힘을 옷에 개입시키는 선블리치(Sun-Bleach) 기법을 고유한 언어로 발전시켰다. 이 기법은 일정 기간 옷감을 자연에 노출해 흔적을 남기며, 모든 옷에 각각의 고유성을 부여한다. 이는 기존 패션 산업의 통상적인 생산 절차를 따르지 않고 옷의 물질성을 독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지용킴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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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킴, 흔적들 Traces, 2025, Sun-bleached coat 22 pcs, fabric, wood, dimensions variable

1층 전시실에 놓인 지용킴의 작업은 예술 작품과 의복 사이에 위치한 디자인 오브젝트로 제시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석운동과 협업해 제작한 반원형 목재 구조물 속에 <흔적들Traces>(2025)을 설치했다. 선블리치 기법으로 제작된 검은 맥코트 22벌은 각각 1일차부터 80일차까지, 일정 기간 자연환경에 노출되며 태양, 바람, 비에 의해 각기 다른 색과 무늬로 변화했다. 이들을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옷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흔적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한눈에 담아냈다.

잘린 반원 형태의 구조물은 계단이 있는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설계됐다. 처음에는 원통형으로 만들까 고민했으나, 전시장 공간의 흐름과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반원 형태로 완성했다고. 구조물은 옷을 축으로 삼아 태양이 이동하는 궤적을 따라 세워졌고, 실제 공정에서 사용되는 불투명한 천으로 감싸 내부와 외부를 부드럽게 연결하거나 때로는 미묘하게 어긋나도록 연출한 점도 인상적이다.

나무 프레임과 천 사이로 비치는 코트의 그림자가 서로 겹쳐지며 중첩된 실루엣을 만들어내고, 각 코트는 태양과 바람, 비를 견뎌낸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관객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조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둘러보고, 또 가까이 다가가면서 시간과 자연의 흔적이 겹쳐진 옷을 한 겹씩 들추듯 감각적인 전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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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킴, 선블리칭 아트워크 연작 Sun-bleaching Artwork Series, 2025, Sun-bleached fabric, 187×916cm

구조물 뒤에 자리한 전시장 벽면에는 지용킴의 <선블리칭 아트워크 연작Sun-bleaching Artwork Series>(2025)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컬렉션 제작 과정에서 남은 천을 활용해 제작한 대형 회화 작업으로, 선블리치 기법을 통해 자연의 힘과 시간의 흔적이 천 위에 추상적인 패턴으로 남겨진 모습이다. 특히 이 연작은 런웨이나 팝업처럼 화려한 방식이 아닌, 옷의 물질성과 제작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힘을 기록하려는 지용킴의 목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옷과 작품의 경계를 허물며, 새것과 헌것, 의복과 작품 사이에서 새로운 지위와 가치를 찾아가는 시도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워크 제작에 사용된 캔버스 원단, 코트를 만들고 남은 천, 현수막 제작 후 남은 천으로 만든 굿즈도 함께 선보인다.


아카이브의 무지개 그리고 패턴의 바다, 포스트아카이브팩션

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은 2018년 서울에서 시작된 패션 스튜디오로, 실험적이고 조형적인 디자인을 통해 패션의 경계를 해체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파프는 패션을 단순한 생산-소비 구조가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유동적인 아카이브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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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 아카이브의 무지개 Rainbow of the Archives, 2025, 12-channel digital 4K video (color, sound), powder-coated steel, archival data (2016―2025), 60×1040×290cm

2층 전시실은 에리카 콕스가 디자인한 공간으로,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전시장 오른편에는 파프의 데이터 아카이브를 집약한 12채널 디지털 설치 작품 <아카이브의 무지개Rainbow of the Archives>(2025)가 설치되어 있으며, 팀 대화, 축적된 데이터, 무작위로 수집된 이미지, 미공개 영상 조각을 모아 파프가 구축해온 아카이브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한편, 그 아래 바닥은 의복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패턴을 소재로 한 설치 작품 <패턴의 바다A Sea of Patterns>(2025)로 덮여 있다. 이 패턴은 실제로 파프가 제작해온 옷의 디자인 데이터를 가져와 구현한 것으로, 옷의 구조적 요소를 공간에 시각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관객은 이 위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되며, 파프는 이를 통해 옷의 패턴과 관객의 움직임이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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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 투망 Casting the Net, 2025, Anodized aluminum, powder-coated steel, stainless steel, wire, hangers, garments, dimensions variable *detail

전시장 왼편에는 설치 작품 <투망Casting the Net>(2025)이 자리한다. 아노다이즈드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 행거, 의류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제작된 이 설치물은 과거의 파편과 현재의 요소를 엮어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마치 바다 위에 투망을 던져 패턴과 데이터를 건져 올리듯 연출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와 함께,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후원자들Patrons>(2025)도 눈여겨봐야 한다. 브랜드의 팬덤과 고객, 소비자에 대한 헌정사로, 그들의 이름을 각인하고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적어 넣어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를 기록하고 기념한다. 이는 브랜드 역사에 남는 일종의 흔적이자, 동시에 파프가 팬덤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옷에 담긴 이야기의 조각, 혜인서

이어지는 3층 공간에서는 혜인서HYEIN SEO를 만날 수 있다. 혜인서는 2015년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소설과 영화의 장면, 동시대 도시에서 포착한 서사적 파편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전개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22개의 컬렉션과 그에 연관된 다양한 캠페인과 협업을 선보여온 혜인서는 이번 전시에서 그중 8개를 선별해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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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IN SEO, 프로세스 보드 Process Board, 2025, mixed media, racks 4 pcs, 80×300×220cm each

3전시실은 혜인서가 지금까지 선보인 컬렉션 너머의 개방형 자료실로, 최종 디자인으로 귀결되지 않은 아이디어의 편린, 소재 탐구의 자취들을 한 벌의 옷이 탄생하기까지의 연쇄적 선택 과정으로 풀어낸다. 전시장 중앙에 자리한 <프로세스 보드Process Board>(2025)는 디자이너의 스케치, 드로잉, 참조 이미지, 그리고 그에 얽힌 잔존물들을 임시의 분류 체계로 정리해 미술관의 문법과 맞물리도록 구성했다. 또한, <만들기의 괴로움과 즐거움The Bittersweet of Making>(2025)에서는 혜인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지속하기 위해 공유해 온 장면들을 모은 이미지 슬라이드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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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IN SEO, 만들기의 괴로움과 즐거움 The Bittersweet of Making, 2025, 35mm film 80 photos multi-slide projection, dimensions variable

<시대복장>전 은 단순히 옷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용킴, 포스트아카이브팩션, 혜인서 세 스튜디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울의 동시대감각과 브랜드의 철학, 그리고 작업의 과정을 공간에 풀어냈다. 미술관이라는 틀 안에서 패션과 미술, 이야기의 경계를 허물며, 소비재로서의 옷을 넘어 시간과 서사를 품은 오브제로 확장해냈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계속되며, 관람객은 각기 다른 시선과 움직임으로 이 전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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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시대복장 Iconclash: Contemporary Outfits
장소 일민미술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52)
기간 2025년 5월 30일 – 7월 20일
운영 시간 11:00 – 19:00 (화요일 – 일요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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