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스파이어드 100+α ①] 영감을 만드는 디자이너들

월간 〈디자인〉 Vol.578 | Special Feature

영감.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단어다. 월간 〈디자인〉은 이번 호에서 그 실체를 추적했다. 객원 편집장 유영규와 국내외 디자이너 30여 명이 자신에게 영감을 준 브랜드와 제품 등 50여 개를 선정했고, 그 창작의 주역들에게 다시 영감의 원천을 물었다. 그렇게 완성한 100개의 영감 아카이브. 그 첫 번째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들이 직접 말하는 영감의 이야기다.

[더 인스파이어드 100+α ①] 영감을 만드는 디자이너들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재스퍼 모리슨은 화려한 시각적 장식과 노이즈가 지배하는 현대 디자인 신에서 사물의 담백한 일상성을 정제해 내는 ‘슈퍼 노멀super normal’의 미학을 보여 준다. 첫눈에 시선을 끄는 화려함 대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삶의 조용한 배경이 되는 그의 작업은,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 더해지는 인위적인 기교를 걷어낸 평범함의 정수다. 자본의 논리와 상업적 요구 속에서 디자인이 점점 과잉으로 치닫고 미적 기준을 잃어가는 시대에, 그의 사물은 디자인의 본질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다시 짚어주는 기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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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니 T&O 테이블. 목재 상판과 컬러 스틸 프레임을 조합해 익숙한 테이블 형태를 간결하게 재해석했다. 자료 제공 마루니
당신이 일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영감은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나?

영감은 모든 창조적인 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영감이 없다면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모든 디자인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연료가 바로 영감이다.

누군가 당신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 그 영감은 어디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나?

그건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내 작업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준다면 기쁜 일이지만, 디자인이 완성된 뒤에는 그 디자인과 그것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 사이의 관계일 뿐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작업하는 동안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기준이나 감각이 있다면?

디자인이 스스로 갖춰야 할 모습에 이를 때까지 계속 다듬는 것이 목표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의 아이디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아무리 다듬어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잘 풀릴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형태가 완성됐다고 느껴지는 순간까지 계속 작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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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코 1인치 리클레임드 체어. 폐플라스틱과 폐목재 섬유를 혼합한 재생 소재로 제작해 에메코의 상징적인 사각 튜브 구조를 가볍고 단순한 형태로 구현했다. 자료 제공 재스퍼 모리슨 스튜디오
시간이 흘러도 당신의 작업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감각이나 판단이 흐려졌다고 생각될 때, 되돌리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나 기준이 있나?

그럴 때는 차라리 일하지 않는 편이 낫다. 디자인에서 잠시 멀어져 명확함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반대로, 당신의 감각과 영감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너무 많은 디자인을 보는 것이다. 매년 밀라노에 가면 워낙 많은 디자인을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 감각이 흐려질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재스퍼 모리슨 Inspired by
1979년 V&A에서 열린 아일린 그레이 전시와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프랑코 알비니의 작업을 다룬 중고 서적을 발견했던 경험이다. 아일린 그레이의 가구를 본 뒤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프랑코 알비니의 디자인은 내게 하나의 계시와 같았다. 그의 시적이면서도 합리주의적인 접근 방식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숄텐 & 바잉스(Scholten & Baijings)

숄텐 & 바잉스는 직접 조색한 수채화 톤 색조와 선명한 네온 빛 그리드를 정교하게 직조하며 사물의 표면에 시적인 깊이와 투명한 입체감을 부여했다. 지극히 담백한 형태에 심어놓은 위트 있는 그래픽 언어는 전통 공예 오브제부터 최첨단 디지털 가전까지, 대량생산 제품이 지닌 침묵을 깨고 일상의 공간에 경쾌한 숨을 불어넣는다. 미니멀리즘과 화려한 색채, 전통 공예와 현대 산업이라는 모순된 가치를 우아하고 균형 있게 융합해 일상의 도구를 예술적 오브제로 격상시키는 미학적 기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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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아리타 재팬의 컬러 포슬린. 아리타 도자기의 전통 색과 문양을 기하학적 패턴과 새로운 색 조합으로 재해석했다.
당신이 일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영감은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나?

내 작업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우리는 이를 ‘스튜디오 메서드studio method’라고 부른다. 모든 모형을 종이와 판지 같은 단순한 재료로 직접 만들고, 기존 색상 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섞어 우리만의 색을 만들어낸다. 그래야만 진정성 있는 색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산 방식의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디자인을 시작하면, 실제 생산 단계의 조건을 고려하기 전에 충분히 실험할 자유가 생긴다. 나는 이 방식을 1995년에 졸업한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에서 배웠고, 이후 6년간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교와 함께 발전시켰다.

누군가 당신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 그 영감은 어디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나?

내 디자인과 색채 작업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색 조합과 그러데이션, 색의 스펙트럼을 꾸준히 연구했고, 그 결과를 다양한 산업 파트너와의 프로젝트에 적용했다. 예를 들면 삼성 더 프레임의 컬러 블록, 마하람의 블록스와 그리드 텍스타일, 블레오 컬렉티브의 페인트 컬렉션, 나니마르퀴나의 카펫, 1616/아리타 재팬의 컬러 포슬린 등이다.

작업하는 동안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기준이나 감각이 있다면?

나는 표준 색상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 색 견본으로 작업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때때로 그 색을 기존 색상 체계에 맞춰 변환하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방대한 색상 시스템이라도 결국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색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래서 함께 작업하는 기업들은 우리가 만든 색 견본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것을 실과 페인트, 도자기 유약, 디지털 컬러 등으로 옮겨 가는 과정이 끝까지 제대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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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더 프레임에 적용한 ‘Extraordinary’ 아트워크. 색면 위에 선과 격자를 겹쳐 깊이 있는 색의 층위를 만들고, 옅은 파란색 래커 프레임으로 완성했다.
시간이 흘러도 당신의 작업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색에는 저마다의 필체handwriting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흉내 내거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색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서로 어우러지는 원리, 강도와 비례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깊이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이해는 결국 나 자신의 성격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점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감각이나 판단이 흐려졌다고 생각될 때, 되돌리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나 기준이 있나?

색에 대한 내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색은 언제나 그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소재와 생산 기술, 디지털 화면처럼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끊임없이 나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변화 자체를 되돌아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당신의 감각과 영감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트렌드 리포트를 절대 보지 않는다. 그 일은 이미 클라이언트들이 하고 있으며, 그들은 나에게 진정성과 독창성을 기대한다. 트렌드 리포트는 특정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건축과 패션, 디자인, 예술 등 하나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정리한 결과일 뿐이다. 디자이너인 나는 그런 방식으로는 작업할 수 없다. 클라이언트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2년 뒤 출시되어, 다시 10년 이상 살아남을 디자인과 형태, 색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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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 레이 임스의 작업은 언제나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찰스 & 레이 임스는 영화와 콜라주, 회화, 드로잉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가처럼 작업하는 동시에, 허먼 밀러 같은 산업 브랜드와도 긴밀히 협업했다. 그들의 유희적인 태도와 색과 형태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감각이야말로,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작업이 살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다.


세실리에 만즈(Cecilie Manz)

세실리에 만즈는 차갑고 엄격한 미니멀리즘 대신 사물에 온기와 깊이를 불어넣는 디자이너다. 프리츠 한센의 카라바조 조명부터 뱅앤올룹슨의 베오플레이 A1 스피커까지, 그가 구사하는 절제된 곡선과 자유로운 비례, 따뜻한 소재와 주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색채는 공간에서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고 풍경의 일부가 된다. 형태의 과장을 덜어내고 매일 마주하는 일상에 차분한 숨결을 더하는 세실리에 만즈의 디자인은 쓰임을 넘어 사물이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을 섬세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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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에어리 커피 테이블. 얇은 스틸 프레임 위에 상판이 떠 있는 듯한 구조로 가볍고 절제된 인상을 준다. 자료 제공 무토
당신이 일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영감은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나?

나는 영감을 만들어가고 영감을 얻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냅킨에 몇 줄 적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식의 이야기는 별로 믿지 않는다. 물론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거나 산을 걷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생각과 스케치, 모형 작업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아주 작은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모든 것이 갑자기 명확해질 때가 있다. 돌고 돌아 결국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 당신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 그 영감은 어디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나?

기능이 잘 드러나고, 그 안에 담긴 고민과 노력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업하는 동안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기준이나 감각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막연한 느낌일 수도 있고, 스케치 한 장이나 거친 모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다. 프로젝트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나는 처음 느꼈던 분위기와 감각을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물론 과정 중에는 유연함과 단호함이 필요하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애정을 쏟았던 아이디어를 버리기도 하며, 몇 달간의 작업을 통째로 없애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처음 느꼈던 반짝이는 감각만큼은 끝까지 붙잡으려 한다. 그 안에 대상의 성격이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당신의 작업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의도다. 기능적으로도, 미적으로도 그렇다. 50년이 지나도 숟가락은 여전히 숟가락이고, 의자는 여전히 의자다. 내가 제대로 디자인했고 품질 또한 충분히 좋다면, 숟가락과 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흔적을 품게 될 뿐 여전히 아름답고 쓰임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내 작업 방식도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품질과 기능을 고집하며, 종이에 스케치하고 손으로 모형을 만든다. 물론 경험이 쌓이면 조금은 지름길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종이에 옮기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스케치를 걸러낼 수 있게 되는 정도다.

감각이나 판단이 흐려졌다고 생각될 때, 되돌리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나 기준이 있나?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문제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이다. 시간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커피를 한잔 마시는 짧은 휴식이든, 일주일 정도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든, 잠시 떨어져 있으면 훨씬 선명하게 보일 때가 많다.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영감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당신의 감각과 영감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방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생각하는 것, 이메일, 인스타그램, 각종 모임. 이런 것들은 모두 잠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생각이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깊이 집중할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들은 창작자를 계획 없이 사는 자유로운 히피처럼 생각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겐 그런 자유로운 사고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세실리에 만즈 Inspired by
코르크에 낚싯줄과 바늘만 연결된 아주 단순한 낚시 도구.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만들라는 일깨움으로 이 물건을 곁에 두고 있다. 또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것을 참고 자료로 삼는다. 흥미를 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온다. 아름다운 이음새, 몰딩의 디테일, 강렬한 색, 라탄을 엮는 방식, 예쁜 조약돌, 영리한 회전 구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는 늘 내 취향을 기준으로 삼는다. ‘내가 집에서 쓰고 싶지 않은 물건이라면 다른 사람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되면 만들지 않는다. 또 시제품은 집으로 가져와 시각적·기능적으로 충분히 검증해 본다.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

미켈레 데 루키는 빠르게 바뀌는 취향과 트렌드의 소음 속에서도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디자인의 기준을 보여 준 인물이다. 그가 디자인한 아르테미데의 톨로메오가 증명하듯 그의 작업은 치밀한 구조와 기능 위에 인간적인 온기와 생활의 감각을 섬세하게 겹쳐 놓는다. 유행에 쉽게 닳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물의 본질이 더 또렷하게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지금도 유효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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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로메오는 스프링과 와이어를 이용해 균형을 이루는 구조로, 한 손으로도 높이와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사진 Luca Tamburlini
당신이 일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영감은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나?

영감은 통제할 수 없기에 아름답다. 통제된 것과는 다른 무엇이다. 방법론과 연구, 훈련이 통제라면 영감은 무언가 불현듯 찾아와 놀라게 하고, 예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짜릿한 경험이다. 그래서 언제든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작업은 영감을 찾아다니는 데 있다기보다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있다. 나는 종종 나와 내 정신의 관계, 이성적이고 인과적인 사고와 직관과 상상으로 이루어진 보다 자유로운 영역 사이의 관계를 생각한다. 내가 ‘거짓말하기’를 하나의 연습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도 속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명백한 거짓말을 상상해본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내는 거짓말 말이다. 내게 디자인은 바로 그런 일이다. 다른 가능성을 찾고, 새로운 관점을 구축하며, 사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 그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사물이나 건축, 아이디어는 시간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때로 오래전에 디자인한 것이 다른 시대에 재조명되어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어쩌면 영감은 어떤 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과, 훗날 재해석되며 새로워진 모습 사이의 거리에서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고, 마주한 대상과 고유한 관계를 맺는다. 그렇기에 하나의 작업은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까지 포함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업하는 동안 끝까지 지키고자 한 기준이나 감각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모두가 옳고 정상적이며 적절하고 익숙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아주 조금 더 나아가려 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방향 너머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빗나감과 이동, 궤도의 변화는 불확실하기에 오히려 매우 생산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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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레 데 루키가 그린 톨로메오의 초기 스케치. 자료 제공 Archivio Michele De Lucchi
시간이 흘러도 당신의 작업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정성 있는 관점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서 나는 치수와 거리, 관계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관점이란 단순히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가능한 한 열린 시선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위치를 찾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도,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사물을 ‘마음의 눈’ 앞에 가져다 놓는 일이다. 나는 ‘마음의 눈’이라는 개념이 정말 놀라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인식과 명료함, 또렷하게 보이는 것과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것까지 말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의식과 개인적 판단, 윤리적이고 미적인 평가에 관한 문제다.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지만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나에게 옳은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 마음에는 들지만 실제로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어쩌면 놓아주는 편이 낫다.

감각이나 판단이 흐려졌다고 느낄 때 다시 돌아가는 영감의 원천이나 기준이 있나?

두 가지다. 더 깊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방향을 바꾸어 다른 무언가를 찾거나. 나는 늘 세렌디피티라는 개념을 매우 의미 있고 긍정적이며 매혹적으로 느꼈다. 다른 것을 찾는 과정에서 뜻밖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 들어올 여지를 남겨두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 사고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자, 인간의 지성과 인공적인 사고를 구분하는 차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당신의 감각과 영감을 흐리게 하거나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소화불량이다. 나는 소화하는 사람이고, 내 삶 전체는 끊임없이 소화하고 또 소화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입과 귀와 눈,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안에 들어온 것을 소화한다. 그것은 위장을 위한 음식일 수도 있고, 정신을 위한 음식일 수도 있다. 이미지와 말, 경험, 칭찬과 비판, 모욕과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모두 세계를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하지만 진정한 진화는 경험을 단순히 축적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다. 인식은 무엇을 흡수할 가치가 있는지, 무엇을 놓아주어야 하는지를 구분하게 해주는 효소다.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근본적인 조건이다. 우리는 세계와 그 안의 이야기, 소재와 복잡성, 한계를 집어삼킬 줄 알아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새로운 무언가로 바꿔내야 한다. 좋은 프로젝트는 언제나 성공적인 대사의 결과다.

미켈레 데 루키 Inspired by
명상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어느 정도 바꾸어놓았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생각을 흘려보내고 마음의 길을 비우며 더 열린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낯설고 먼 곳에서 무언가를 찾을 필요는 없다. 자전거를 타는 일 역시 내게 매우 중요한 실천이다. 그것 또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나는 놓아주는 일이 어쩌면 가장 정교한 탐색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탐색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사물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허용하는 일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8호(2026.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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