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워프 식스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
앤트워프 식스 등장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
전설적인 앤트워프 식스 등장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가 ‘앤트워프 패션 박물관(ModeMuseum Antwerpen)'에서 열리고 있다.

2002년 벨기에 앤트워프의 유서 깊은 모데나티에(ModeNatie) 건물에서 문을 연 ‘MoMu’의 정식 명칭은 ‘앤트워프 패션 박물관(ModeMuseum Antwerpen)’으로, 벨기에 현대 패션의 정수를 마주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벨기에의 현대 패션, 특히 앤트워프의 패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전시하며, 도시를 세계적인 패션의 성지로 각인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박물관은 매년 매입, 대여, 그리고 기증을 통해 컬렉션을 확보해 왔으며 현재는 38,000점 이상의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현대 벨기에 패션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와 더불어 박물관 내 도서관 역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15,000권이 넘는 전문 서적과 희귀 아카이브, 수백 종의 패션 잡지, 그리고 방대한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어 복식사와 직물, 민족 의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이곳에서는 전설적인 앤트워프 식스 등장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가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지난 3월 28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앤트워프를 세계적인 패션 디자인의 중심지로 끌어올린 디자이너 집단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방대한 아카이브와 함께 구성된 전시는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이끌며, 도시가 지닌 창조적 에너지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패션계의 전설, ‘앤트워프 식스’에 대하여
1986년 런던에서 열린 브리티시 디자이너 쇼에서 한 대의 트럭이 도착했다. 트럭에는 벨기에 출신이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했던 여섯 명의 젊은 디자이너가 타고 있었다.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디르크 반 사에네(Dirk Van Saene), 디르크 비켄베르크스(Dirk Bikkembergs), 마리나 이(Marina Yee)는 당시 패션 시스템을 뒤흔드는 아방가르드한 감각과 신선한 비전을 선보이며 단숨에 쇼의 중심에 섰다.

이 디자이너들은 1980년대부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패션 철학을 선보이며 앤트워프를 세계 패션계가 주목할 만한 새로운 디자인의 중심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들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며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마틴 마르지엘라 역시 종종 이 그룹의 일원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그는 이들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패션계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후 파리로 이주해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하며 전혀 다른 길을 개척했다.

이 여섯 명이 런던에서 급진적인 패션 그룹으로 주목받고, 훗날 ‘앤트워프 식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과정은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라기보다 여러 상황이 겹쳐 만들어진 우연에 가까웠다. 1980년대 런던은 펑크, 뉴 로맨틱, 급진적인 스타일링 등이 뒤섞이며 실험과 혁신의 에너지가 넘쳐나던 도시였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벨기에에서 온 신진 디자이너 그룹이 공동으로 공간을 빌려 자신들의 컬렉션을 발표한 사건은 패션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의 이름이 지어진 방식 또한 주목받은 상황만큼이나 흥미롭다. 당시 기자들은 생소한 벨기에식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결국 이들을 한데 묶어 부를 명칭으로 ‘앤트워프 식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그렇게 우연이 겹치고 겹쳐 패션계의 전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룹으로 묶였지만, 여섯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는 서로 뚜렷하게 달랐다. 앤 드뮐미스터의 어둡고 시적인 실루엣, 드리스 반 노튼의 화려한 색채와 텍스타일, 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과감하고 유희적인 상상력이 녹아든 스타일 등은 하나의 공통된 스타일로 묶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을 연결한 것은 미학적 유사성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도시와 학교를 공유했다는 ‘공유된 맥락’이었다.
그들의 미래는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여섯 사람 모두 세계 패션계를 뒤흔들 만큼의 천재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들이 남긴 유산은 지금까지도 패션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들 일부는 여전히 현역 디자이너로서 강한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금 이들의 행보가 조명되는 이유는?
그룹이 탄생한지 40년이나 지난 지금, 패션 박물관이 이들을 다시 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그동안 이들의 행적을 다룬 공식적인 전시회가 지금까지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신화적인 지위에 오른 이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거의 아이콘처럼 소비되어 온 측면도 있다. 현재까지도 패션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어쩌면 가혹한 평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에 박물관 측은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에서 넘어서, 그들의 궤적을 통해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벨기에 패션 큐레이터 게르트 브룰루트(Geert Bruloot), 로미 콕스(Romy Cockx), 그리고 카트 데보(Kaat Debo)가 함께 참여해 기획했다. 디자이너들과 긴밀히 협업을 통해 완성된 전시는 최고의 작품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룹의 시작과 변화, 실험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들이 지내온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리지널 의상과 스케치, 액세서리, 그리고 미공개 아카이브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는 각 디자이너가 구축해온 고유한 논리와 시각적 언어 속으로 관람객을 깊이 끌어들인다.
사실, 이들의 성공은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패션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세계화되었고, 빠르게 변화하며,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여기에 경제적, 환경적 압박이 시스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패션계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출발했던 이들의 도약은 하나의 ‘기적’이자 현재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 된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카드 데보는 “패션은 문화적 실천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하고 상상하는 방식입니다.”라며 “그렇기에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전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결국 이 전시는 한 시대의 전설을 찬양하는 회고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재능이 꽃피는 조건이 무엇인지, 창의성이 발현되는 순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환기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창의성은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의 산물이 아니라, 충분한 자율성과 독창성이 허용되는 환경 속에서 가능해진다는 사실도 상기시키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날카로운 시선이 빛을 발하며, 동시에 이 전시가 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전시장을 나서는 이들의 마음속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창의성의 토양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화두가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