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 베네치아에 재단을 열다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 개관전,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
지난 4월 25일 베네치아에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이 개관했다. 드리스 반 노튼과 패트릭 반헬루베가 매입한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는 15세기 고딕과 18세기 로코코 양식이 공존하는 건축물이다. 그랑 카날을 조망하는 이곳은 향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지난 4월 25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이 문을 열었다. 장소는 그랑 카날이 내려다보이는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 15세기 말 베네치아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18세기 로코코 양식으로 개조된 이 유서 깊은 팔라초를,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과 그의 파트너 패트릭 반헬루베(Patrick Vangheluwe)가 피사니 모레타 가문으로부터 직접 매입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드리스 반 노튼은 앤트워프 식스의 일원으로 1986년 런던 패션위크에 데뷔한 이래 38년간 파리 패션위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벨기에 출신 패션 디자이너다. 광고를 하지 않고, 트렌드보다 공예와 소재에 집중하며 독립 브랜드로 컬트적 지위를 쌓아온 그는 202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그가 선택한 다음 챕터가 바로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이다.
나는 내 삶에서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과 공예를 중심으로, 손과 마음과 머리로 만들어지는 것들, 즉 공예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재단을 시작했다.
드리스 반 노튼



드리스 반 노튼은 앤트워프 식스의 일원으로 1986년 런던 패션위크에 데뷔한 이래 38년간 파리 패션위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벨기에 출신 패션 디자이너다. 광고를 하지 않고, 트렌드보다 공예와 소재에 집중하며 독립 브랜드로 컬트적 지위를 쌓아온 그는 202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그가 선택한 다음 챕터가 바로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이다.
진정한 저항은 오직 아름다움뿐
전시 제목은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 1960년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정치 활동가 필 옥스(Phil Ochs)의 가사 ‘In such ugly times,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 (이토록 추악한 시대에, 진정한 저항은 오직 아름다움뿐이다)’에서 따왔다. 드리스 반 노튼이 앞부분을 의도적으로 덜어낸 것은 우리가 이미 충분히 상기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직접 큐레이션과 세노그라피를 맡았으며, 헤르트 브뤼로트(Geert Bruloot)가 큐레이션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전시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한 예쁨이 아니라 강렬함의 순간으로 이해된다. 낯선 것을 흔들고 깨우며, 새로운 것을 위한 공간을 여는 충전된 만남, 예기치 않은 조화, 미묘한 교란 그 자체로서 말이다.

전시는 팔라초의 지상층과 1,2층 피아노 노빌레(가장 화려하게 장식된 주요 공간)에 걸쳐 20개의 룸에 50여 명 작가의 200점 이상 작품을 펼쳐낸다. 패션, 주얼리, 도자, 유리공예, 사진, 콜렉터블 디자인을 망라하며, 장르의 위계 없이 나란히 놓인다. 전시에서 패션은 중심적이고 구조적인 역할을 맡는다. 화려한 색채와 공예적 정교함으로 오트 쿠튀르의 정수를 구현해온 크리스찬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 의 실루엣 15점, 특히 개인 컬렉션에서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포함해 팔라초의 장식적 언어와 깊이 공명한다. 라크루아는 반 노튼이 2019년 SS2020 컬렉션을 위해 직접 협업을 제안한 인연이 있는 디자이너로, 이번 전시에서 그 관계가 다시 소환된다.


반면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의 꼼 데 가르송 아카이브 실루엣(2015년 이후)은 정반대의 언어로 말을 건다. 1981년 파리 데뷔 이래 아름다움과 신체에 대한 통념을 끊임없이 해체해온 카와쿠보의 작품들은 의복과 조각의 경계를 지우며 형태 자체를 질문으로 삼는다. 라크루아의 화려함과 카와쿠보의 해체가 같은 공간에 나란히 놓이는 순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선명해진다.
600년 역사와 동시대 공예의 만남
팔라초의 역사적 공간은 전시의 수동적 배경이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다.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프레스코와 초상화, 가문의 유물들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단순히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읽어내는 맥락이 된다. 1층 피아노 노빌레의 첫 번째 살롱에서는 18세기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 잠바티스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의 제자 야코포 과라나(Jacopo Guarana)가 그린 천장화 〈The Victory of Light over Darkness〉 아래, 캐나다 출신 작가 스티븐 쉬어러(Steven Shearer)의 잠든 인물들을 담은 대형 프린트 작업들이 베네치아 귀족 가문의 18세기 초상화들과 나란히 걸린다. 삶과 죽음, 덧없음에 대한 성찰이 공간을 채운다.


(오른쪽) Steven Shearer On Grass, 2024 UV print on canvas © Steven Shearer Courtesy the artist, Galerie Eva Presenhuber, and David Zwirner © Matteo de Mayda
가오리 쿠리하라(Kaori Kurihara)의 도자 작품들은 벽을 뒤덮은 로코코 프레스코와 대화하며 유기적 형태와 물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옆에는 알렉산더 커크비(Alexander Kirkeby)의 무연 크리스탈 유리 작품들이 팔라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피사니 가문의 18세기 유리 컬렉션과 나란히 놓이며 수백 년을 가로지르는 공예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오른쪽) Alexander Kirkeby, Vase, Candelabra and Tumbler, 2026 Lead-free Crystal glass Courtesy of artists studio and Uppercut © Matteo de Mayda
16세기 토스카나 화파의 <Crucifixion with the Mourning>이 걸린 알코브(예배실)에는 미샤 칸(Misha Kahn)의 조각적 앙상블과 아서 반더구흐트(Arthur Vandergucht)의 알루미늄 캐비넷이 함께 놓이며 성스러운 공간에 유쾌한 이질감을 들여온다. 앤 캐링턴(Ann Carrington)은 버려진 금속 식기류로 만든 오브제로 그 뒤를 잇는다.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는 조제프 아르주마노프(Joseph Arzoumanov)가 제작한 <L’Échiquier des Songes>. 금, 은, 보석, 무라노 유리, 자수, 목재, 상감 등 열 가지 이상의 소재로 정교하게 완성한 체스 세트다. 체코 출신 작가 바츨라프 치글레르(Václav Cigler)의 광학 유리 구체 <Panorama>는 팔라초의 천장과 바닥, 창문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공간 자체를 오브제로 전환한다. 의자를 주제로 한 룸에서는 팔라초의 고가구와 웬디 앙드뢰(Wendy Andreu), 니페미 마커스 벨로(Nifemi Marcus-Bello)의 현대 작품들이 나란히 놓이며 기능과 개념, 컬렉터빌리티의 경계를 탐색한다.


(오른쪽) Virginia Leonard, Manifattura Briati Glassware set with the Pisani family crest, 18th century A Frock Will Hide All Those Sticky Out Bits He Said, 2026 Clay, tin, lustre, resin Courtesy of Virginia Leonard and Side Gallery © Matteo de Mayda
우리는 아름다움을 답이 아닌 질문으로서 탐구한다. 아름다움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이 모호함과 느림과 모순을 허용할 때, 해결하기보다 교란할 때, 그때 비로소 아름다움은 미묘한 형태의 저항이 된다.
드리스 반 노튼 & 패트릭 반헬루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은 단순히 패션 디자이너의 새로운 행보가 아니다. 유서 깊은 팔라초에서 펼쳐지는 이 모든 행위는 인간이 재료와 시간, 몸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즉 공예 그 자체에 집중한다.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는 인간의 역사와 행위 안에 축적된 문화와 손의 기억을 함께 감각하기 위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THE ONLY TRUE PROTEST IS BEAUTY>
주소 폰다지오네 드리스 반 노튼 (Palazzo Pisani Moretta San Polo, 2766, 30125 Venice, Italy)
기간 2026년 4월 25일 –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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