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조경가 이남진: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국내 유일의 초청 정원을 디자인하다

바이런 대표·조경가 이남진

조경가 이남진은 바이런의 작업을 통해 도시 풍경을 새롭게 해석하며 동시대 조경의 가능성을 넓혀왔다. 그는 도면을 그리기 전 공간에서 벌어질 ‘사건’과 ‘경험’을 글로 먼저 써 내려간다. 공공과 민간을 넘나드는 프로젝트 속에서 그의 작업은 장소의 맥락과 시간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누구나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풍경을 빚는다. 도시의 기억을 읽어낸 뒤 이를 살아있는 장면으로 구축하는 그의 방식은, 조경을 외부 공간 설계에 머물지 않고 도시의 일상을 서술하는 하나의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Creator+] 조경가 이남진: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국내 유일의 초청 정원을 디자인하다

editor’s note

2026년의 정원은 식물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원은 도시의 표정이자, 장소의 기억을 담는 하나의 서사입니다. 5월 1일 막을 올린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이러한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번 박람회의 국내 유일 초청 작가인 바이런 이남진 소장은 정원을 통해 도시의 감각을 해석하고 공간으로 번역합니다. ‘경의선숲길’을 통해 대중에게 풍경의 힘을 각인시켰던 그는, 이름에서 ‘조경’을 뺀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런(Viron)을 세워 창작 시스템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역동적인 성수동 한복판에 역설적인 ‘멈춤’을 제안한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초청작 ‘기다림의 정원’을 비롯해, 조경은 완성된 순간부터 성장이 시작된다고 믿는 그의 철학과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바이런의 조직 문화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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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국내 유일 초청 작가인 이남진 바이런 소장

PLUS 1. 도시의 리듬 위에 설계한 ‘기다림’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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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국내 유일한 초청작 ‘기다림의 정원’
5월 1일부터 서울숲에서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지는 이번 행사의 취지가 궁금합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오는 10월 27일까지 약 180일간 서울숲과 성수동 일대에서 펼쳐지는 도시 정원 축제입니다. ‘서울, 그린 컬처(Seoul, Green Culture)’라는 주제 아래, 정원을 단순히 감상하는 전시물을 넘어 도시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기획이죠. 서울숲공원부터 뚝섬한강공원, 성수동 골목까지 총 160개의 정원이 조성되는데, 정원을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닌 우리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인프라’로 체감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프랑스의 조경가 앙리 바바(Henri Bava)와 함께 국내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되셨어요.

저 개인보다는 바이런의 행보를 좋게 봐주신 덕분이겠죠. 앙리 바바는 아장스 테르(Agence Ter)를 이끌며 프랑스 생투앙 대공원이나 독일의 아크바 마기카처럼 시민들의 삶에 스며드는 공공 공간을 만들어온 분입니다. 국내 유일한 초청작가라는 자리는 부담이 되면서도 기대도 컸어요. 무엇보다 성수동 연무장길이라는 역동적인 장소에서 조경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드릴 수 있어 설렜습니다. 연남동 경의선숲길이 그 일대의 풍경을 바꿨듯, 이번 정원도 성수에 새로운 활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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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본 ‘기다림의 정원’
초청작 ‘기다림의 정원’은 성수동 연무장길의 성수근린공원에 자리합니다. 트렌드의 최전선인 성수에서 그 속도감과 대비되는 ‘기다림’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신 이유가 있나요?

성수동의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뭘까 고민했을 때 ‘웨이팅(Waiting)’이 떠올랐어요. 맛집이나 팝업 스토어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이미 성수를 대표하는 독특한 경관이 됐죠. 그 ‘기다림’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정원의 언어로 치환해보고 싶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기를, 꽃이 피기를, 혹은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기다림’은 정원의 본질과도 닮아 있거든요. 웨이팅이라는 행위가 품고 있는 여러 결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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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정원’ 벤치와 시설물
‘기다림’이라는 관념을 정원에 구현하기 위해 도입한 핵심 장치는 무엇인가요?

성수의 공장 건물에서 흔히 보이는 산업적 재료로 만든 ‘그레이팅 플랫폼’과 시야를 조율하는 ‘여섯 개의 가벽’입니다. 가벽은 성수의 복잡한 풍경을 배경(Background)으로 정돈하거나 시야를 분절하는 창 역할을 해요. 이곳에 앉으면 앞사람의 뒷모습이나 흔들리는 잎사귀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기게 됩니다. 지루하게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대기 시간을, 타인과 풍경을 관찰하는 시각적 유희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한 장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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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로 지루함과 설렘을 동시에 머금은, ‘기다림의 정원’의 캐릭터 ‘기다리’
정원 곳곳에서 마주치는 순백의 캐릭터 ‘기다리’가 인상적입니다. 조경 디자인에 캐릭터를 도입한 시도가 신선하게 다가오는데요.

우리가 만드는 정원이 항상 식물과 나무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에요. 그 안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는 것도 조경가의 일이죠. ‘기다리’는 기다림의 지루함과 설렘을 동시에 머금은 무표정한 얼굴의 페르소나입니다. 복잡한 철학을 글로 설명하기보다 캐릭터의 직관적인 표정으로 대중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무표정한 기다리 곁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혼자만의 지루한 대기가 어느덧 누군가와 함께하는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골강판 같은 소재의 활용도 눈에 띕니다.

성수의 공장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조경의 언어로 재구성했어요. 여기엔 실무적인 이유도 큽니다. 조경에서 목재를 많이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거나 썩는 등 내구성이 좋지 않거든요. 반면 콘크리트나 FRP, 골강판은 식물과 함께 단단하게 나이 들어갑니다. 저는 새 프로젝트마다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새로운 재료를 써보려고 해요. ‘기다림의 정원’에서는 메탈패브릭 소재도 처음 도입했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질감이 기다림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기다림의 정원’은 박람회가 끝나도 성수동 시민들의 일상에 남는 공간인 만큼, 식재 역시 뿌리로 오래도록 생장하는 숙근초를 심어 여러 해 동안 제 모습을 유지하는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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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정원’은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시민들의 일상에 남게 된다. 시간을 견디기 위한 선택은 식재와 재료에도 반영되었다
‘기다림의 정원’을 통해 시민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 싶으신가요?

이번 작업은 조경이 도시의 빠른 속도를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단순히 꽃을 감상하는 곳을 넘어, 성수의 복잡한 맥락 위에 ‘기다림’이라는 느린 호흡을 얹었을 때 시민들이 느끼는 직관적인 즐거움이 궁금합니다. 이 정원이 일상의 소음을 잠시 걷어내고, 앉고 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풍경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PLUS 2. 풍경 뒤의 창작자, 경험을 문장으로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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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을 이끄는 소장이자 조경가인 이남진
서울의 대표적 명소인 ‘연트럴 파크(경의선숲길)’는 모두가 알지만, 정작 이곳을 설계한 조경가 이남진의 이름은 대중에게 다소 생소합니다.

유명한 건축가는 많지만, 조경계에서 대중에게 각인된 이름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크레딧 관리가 미흡한 측면도 있고, 건축가는 작품이 나오면 활발히 알리는 데 비해 조경가들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해서요. 저 역시 SNS도 안 하고, 상장도 구석에 쌓아두었다 가끔 꺼내 보는 편이거든요. (웃음) ‘경의선숲길’ 같이 공공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간일수록, 설계자의 의도와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이런 기회가 그 실마리가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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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설립 전, 동심원조경(대표 안계동)에 몸담았을 당시 진행한 ‘경의선숲길’. 이남진 소장의 이름을 조경계에 알린 초기 대표작으로, 설계의 논리보다 사람들이 모여 머물고 즐기는 장면을 우선하는 그의 작업 방향을 형성한 계기가 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조경 설계라는 길로 들어서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해 막연히 건축가를 꿈꿨는데요. 입시를 마치고 점수에 맞춰 임학과(현 산림자원학과)에 진학했어요. 나무와 생태를 배우는 게 꽤 즐거웠고, 군 복무를 거치면서 행정직보다는 설계가 제 성격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조경대학원에 진학해 더 깊이 공부했죠. 처음엔 백지 앞에 서는 게 불안하고 무섭기도 했는데요. 계속 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재미도 붙었어요. 제가 그린 도면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고, 몇 년 후에 항공 사진으로 보게 되니 성취감이 컸습니다.

조경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해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경의선숲길’은 제가 꿈꾸던 장면을 이른 나이에 경험하게 해준 프로젝트였어요. 완공 후 잔디마당에 앉아 조용한 저녁을 즐기는 시민들을 보면서, 조경가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큰지 눈으로 확인했죠. 의사나 변호사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조경가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수만 명을 단번에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 뒤로는 작가의 미학을 뽐내기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실제로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당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기엔 경력이 부족했는데, 기회를 믿고 맡겨주신 전 회사 대표님과 선배들 덕분에 협업의 힘이 얼마나 큰지도 배웠어요. 고집 센 아티스트보다 ‘동글동글한 코디네이터’가 되는 게 조경가의 길이라는 방향을 그때 확실히 잡은 것 같아요.

조경이 건축이나 다른 설계 분야와 구별되는 가장 결정적인 속성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조경은 ‘살아있는 것을 디자인하는 일’이에요. 건축이나 시설물은 완공되는 순간부터 노후가 시작되지만, 조경은 완성된 순간부터 비로소 성장이 시작됩니다. 식물은 계절과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매일매일 자라나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요. 제가 설계한 공원이 완성된 후 “이곳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공간이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완성되는 것, 그것이 조경만이 가진 힘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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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숲길’로 인해 연남동 일대는 밤낮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머무는 활기 있는 거리가 되었다.
조경을 건축과 연결된 하나의 파트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습니다. 계약 구조에서 비롯된 오해이기도 할 텐데요.

많은 조경 사업이 건축 프로젝트의 하도급 계약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조경을 건축의 마무리 화장술 정도로 보는 시선이 생겨난 것 같아요. 건축가와 조경가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파트너에요. 건축가가 건물의 형태와 내부 기능에 집중할 때, 조경가는 땅의 전체 맥락과 도시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프로젝트의 방향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곤 하니까요.

사실 사용자가 공간을 경험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도 조경이죠.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정원을 지나고 보도블록을 딛는 행위는 필연적이니까요. 조경은 공간 경험의 시퀀스에서 가장 앞단에 있습니다.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공간에 들어서며 느끼는 첫 번째 감각과 생명력 있는 시간성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자부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실제로 건축가들과 협업할 때, 대지 위에서 건물의 위치를 잡는 초기 단계부터 조경가의 관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대지 위에서 건물 배치를 결정하는 단계부터 건축가분들이 조경가의 시각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이 건물이 주변 가로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도시의 흐름을 대지 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한 조경가의 제안에 신뢰를 보내고요. 조경가의 전략이 건축 공모의 당락을 가르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노후가 시작되는 건축이나 시설물과 달리,
조경의 식물 소재들은 땅에 심기는 순간부터 성장합니다.”

건축이나 토목과 비교했을 때, 조경만이 갖는 고유한 역할이나 분위기가 있다면요?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얹는 작업이죠.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식물을 통해 장소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핵심 인프라라고 봐요. 건축이나 토목 미팅은 안전과 예산 같은 무거운 의사결정이 많아 분위기가 경직되곤 하는데요. 조경 차례가 되면 “자, 이제 재밌는 얘기를 해볼까요?” 하며 다들 표정이 밝아집니다. 어떤 꽃을 심을지, 벤치를 어디에 둘지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에요. 맨땅에 생명을 심고 쉴 곳을 만드는 일은 결국 좋아질 일밖에 없는 영역이에요. 말 그대로 ‘플러스(+)’의 작업입니다.

사람들이 자연과 정원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요. 푸른 잔디와 숲에서 느끼는 감각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거든요. 사람들이 골프를 즐기는 이유도 운동 자체의 재미만큼이나, 탁 트인 자연 속에 머무는 해방감이 크기 때문일 거예요.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조경이 갖는 사회적인 파급력입니다. 의사는 한 번에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지만, 조경가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제가 설계한 공원에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게 될 때, 그 공간이 일상에 작은 여유나 즐거움을 보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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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설계의 시작 단계에서 디자이너들에게 ‘경험을 문장으로 먼저 써보라’고 강조하신다죠?

시각적인 논리에 빠지기 전에 공간의 목적을 명확히 정의하라는 뜻이에요. 도면을 그리기 전, 공간에서 유도하고자 하는 경험을 글로 먼저 써보게 하는 거죠. 가령 아이들을 위한 공원을 설계할 때 ‘이곳에서 아이들의 학창 시절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글로 먼저 정의해봅니다. 단순히 ‘예쁘니까 동그란 벤치를 놓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늑한 모서리를 만든다’와 같은 문장이 선행되도록 하는 거죠. 디자인은 그 문장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해 나가는 과정이에요. 이처럼 가독성 높은 컨셉이 먼저 세워져야만, 시공이나 예산 문제로 흔들릴 때도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설계가 나옵니다.

그렇게 쓰인 ‘경험의 문장’이 관념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대상지가 정해지면 평일과 주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찾습니다. 공간의 결이 시시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고, 주민들에게 슬쩍 말을 걸어 그들의 진짜 일상을 듣기도 하죠. 그 땅에 완전히 감정이입해서 ‘내가 여기 살면 어떨까?’를 치열하게 상상합니다. 심할 때는 그 동네로 이사할 궁리를 하며 부동산 시세까지 알아볼 정도로 몰입하기도 해요. (웃음) 이렇게 발로 뛰어 얻은 생생한 데이터들이 모여야 관념에 머물지 않는 설득력 있는 경험의 문장이 완성됩니다.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지키는 조경가로서의 윤리가 있다면요?

직원들에게 항상 ‘대상지 바로 옆에 내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는 마음으로 설계하자’라고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걷는 길이라면 보도블록의 단차 하나, 조명 밝기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으니까요. 그저 예쁜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 집안에만 계시던 분들이 밖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싶게 만들고, 평소 잘 걷지 않던 사람도 한 걸음 더 내딛고 싶게 만드는 것, 사람을 밖으로 이끄는 공간을 만드는 일. 그것이 조경가가 가져야 할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윤리라고 봐요.

PLUS 3. 공공의 소명과 민간의 미학

바이런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대규모 공공 공원부터 민간의 정원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조경은 발주처의 성격에 따라 설계의 문법과 난이도가 크게 달라져요. 공공 프로젝트는 보고회와 주민공청회, 수많은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시공 품질을 통제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지만, 예산 집행이 안정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열정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무대입니다. 반면 민간 프로젝트는 의사결정이 유연해 높은 미학적 완성도를 구현하기 유리하지만, 클라이언트의 의중에 따라 변수가 많다는 리스크가 있죠. 현재는 공공 70%, 민간 30%의 비중을 유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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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터 감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챙기고, 기성품 대신 시설물 디테일까지 직접 설계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장과 맞닿은 실시설계와 감리는 고된 작업이지만, 조경가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에요. 실시설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세운 기본 계획은 무책임해지기 쉽고, 실행 단계에서 흔들리는 순간 조경 마스터플랜 전체의 신뢰도도 함께 무너집니다. 공간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곳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디테일이 필요해요. 기성 제품을 선택하면 어디에나 놓일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쉬우니까요. 여기에, 조경에서 흔히 쓰지 않는 재료를 발굴하고 디테일을 직접 디자인해 설계 의도를 끝까지 구현하려고 애써요. 우리의 아이디어가 가진 설득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삼기 위해서라도, 전 과정을 직접 다룬 완공 프로젝트를 매년 최소 하나 이상 만들어내는 것을 철칙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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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파리공원은 ‘행위의 밀도’를 높이는 전략을 바탕으로 리노베이션한 바이런의 대표적인 공공 조경 프로젝트다. 바이런은 이 프로젝트로 2023 서울시 조경상 대상을 수상했다.
목동 파리공원 리노베이션’은 바이런의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공공 조경 사례입니다. 35년 된 노후 공원을 다루며 가장 고심했던 지점은 무엇인가요?

바이런 설립 1년 차에 한 프로젝트인데요. 40대 초반 조경가로서의 모든 에너지를 갈아 넣은 작업이었어요. 파리공원은 한국 조경사에서 공원이 하나의 ‘설계 작품’으로 인정받은 첫번째 사례라는 역사적 무게감이 있는 곳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초기 설계의 ‘기념비적 상징성’과 주민들의 ‘일상적 사용’ 사이에 간극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원안의 가치를 존중하되, 설계의 무게중심을 상징에서 ‘장소’로 옮겨 현대적인 근린공원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어요. 시민들이 그곳에서 더 많은 행위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행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세대를 섞는 건 기존 공원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접근 방식인데요.

유아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 시니어 쉼터처럼 연령별로 공간을 나누는 것이 공원 설계의 관행인데요. 외부 공간에서만큼은 각 그룹을 고립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공원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멀티 코트를 계획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결국 공원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머물고 움직일 때 비로소 살아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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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 깊이의 얕은 수공간 ‘영지’ 역시 일반적인 분수와는 다른 접근이에요.

화려하고 압도적인 음악 분수나 강한 바닥 분수를 의도적으로 지양해요. 그런 장치들은 ‘이제 물놀이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이벤트적인 공간이 되기 쉽거든요. 어릴 적 관악산 아래 도랑에서 가재를 잡으며 놀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누구나 맨발로 서슴없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얕은 수공간을 만들었어요. 특별한 준비 없이도 일상 속에서 물과 맞닿는 경험을 영지를 통해 구현하려고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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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사진도 인상적입니다. 공간을 비운 채 찍은 게 아니라 이용자가 가득 차 있어요.

제가 아무리 만족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한들, 사람들이 와서 쓰지 않으면 그 공간은 의미를 갖기 어려워요. 그래서 사진 촬영을 의뢰할 때도 공간이 가장 잘 사용되고 있는 순간을 담아달라고 부탁해요. 사람들이 머물고, 움직이고, 서로 얽히는 장면 속에서 공간의 생명력이 드러나니까요.

한편, ‘차담 by 갤러리 더 스퀘어’는 민간 프로젝트입니다. 공공 조경과 비교했을 때,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어떻게 달랐나요?

‘차담 정원’은 국민대학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전통 카페의 외부 공간이에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공 조경이 ‘모두를 위한 활기’를 설계한다면, 이곳은 민간 정원인 만큼 장소에 깊이 머무는 ‘사유와 품격’을 다루는 작업이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정자와 연못이라는 기존 요소를 정원의 핵심으로 삼되, 전통 기법인 화계(꽃계단)와 돌쌓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통과 현대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메우는 데 집중했어요.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책임지며 집요하게 매달렸고, 그만큼 부담도 컸던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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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담 by 갤러리 더 스퀘어’는 국민대학교 내에 자리한 전통 카페의 정원이다. 사유와 품격을 누릴 수 있는 장소로 기획되었으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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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세계조경가협회 주관 ‘2025 IFLA APR Award’에서 최우수상(Award of Excellence)도 받았습니다.

공들여 만든 완공작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었을 때,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어요. 중대형 공공 프로젝트뿐 아니라, 밀도 있는 정원을 다루는 작업에서도 저희의 방식이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고요.

PLUS 4.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시스템 디자인, 바이런이 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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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플러스와 인터뷰 중인 이남진 바이런 소장
스스로를 ‘시스템 디자이너’라고 정의하며, “내가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하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전통적인 설계실은 소장의 스케치를 직원이 구현하는 위계적 구조가 많은데요. 그게 지속 가능한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줄곧 의문이 있었어요. 소장 한 명의 능력으로 유지되는 집단보다, 저와 흡사한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 10명을 양성하는 쪽이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봐요. 그래서 디자인 작업만큼이나 ‘일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겨요. 세상에는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많으니, 그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판을 짜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의 관여가 적다면, 바이런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최종적인 기준은 무엇인가요?

‘처음에 세운 경험의 문장이 공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가’를 가장 먼저 확인해요. 또한 디자이너만 이해하는 난해한 디자인을 지양하고, 기성품에 의존하기보다 그 공간에 맞는 시설을 직접 설계하는 문화,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새롭게 적용하는 태도를 공유하죠. 이런 무형의 합의와 태도가 바이런의 정체성을 만드는 기준입니다. 우리의 포트폴리오가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라는 생각으로 매년 다르게, 더 나은 디자인을 하려고 해요.

아이디어를 도면으로 옮길 때, 바이런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 있다면요.

디자인만큼이나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보라매공원 풍경놀이터’ 공모 당시, 고정 시설물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유로운 행위 27가지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준 ‘놀이 활동 유형 다이어그램’이 대표적이에요. 소장의 거친 아이디어를 실무진이 센스 있게 다듬어 가독성 높은 시각 언어로 번역해내는 능력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이런 유연한 협업도 바이런의 힘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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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공원 풍경놀이터 설계를 위해 바이런이 그린 ‘놀이 활동 유형 다이어그램’
프로젝트 배당 원칙은 ‘안 해본 프로젝트’라죠? 회사 전체의 효율 측면에서는 무모해 보이기도 합니다.

골프 선수가 팔 운동만 해서는 안 되잖아요. 코어, 하체, 멘탈까지 몸 전체가 건강해야 공을 제대로 칠 수 있는 거죠. 조경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기본 계획만 하고 실시 설계를 모르는 조경가는 무책임한 설계하기 쉬워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바이런의 모든 디자이너들은 10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부터 10만 평 이상의 마스터플랜까지, 컨셉 디자인부터 감리까지 전 과정을 경험해가고 있어요. 당장의 효율보다 각 디자이너가 하나의 완결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한 달 유급 안식월’이나 ‘출퇴근 시간을 없앤 유연 근무제’ 같은 파격적인 제도도 이어가고 계십니다. 디자인 근육을 키우기 위해선 ‘쉼’도 전략이라는 뜻인가요?

잘 놀고 잘 쉬어본 사람이 사람들에게 진짜 휴식을 주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에요. 1년 내내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감동을 주는 설계를 하겠어요. 한 달간의 충전 시간은 남은 11개월을 빛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사실 제가 처음 일을 배울 때만 해도 ‘설계가 이렇게 재밌는데 왜 유급 휴가가 필요해?’ 같은 인색한 인식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열정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가 3년, 6년마다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업계를 떠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그게 늘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적어도 바이런의 직원만큼은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이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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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도들이 실제 조직의 경쟁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나요?

처음엔 경영적인 측면에서의 걱정이 없진 않았는데요. 지금은 이 방식이 실력 있는 인재를 끌어모으는 가장 확실한 유인책이자 바이런의 경쟁력이 되고 있음을 느껴요. 각 학교에서 ‘가장 가고 싶은 회사’로 바이런이 거론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실제로 최근 공채 모집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지원자가 몰려 애초 계획보다 많은 인원을 채용하기도 했거든요. 지난 3년 사이 서울시 조경상 대상을 두 차례 수상하는 등 대외적인 성과도 이어지고 있고요. ‘건강하게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결국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런 실험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이런 내부에서 이어온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독립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구조로까지 확장되고 있다죠.

이 시스템을 조직 내부에만 두지 않고 외부로 확장하려는 거죠. 바이런에서 독립한 직후에도 사무실에 머물면서 공간을 공유하다가, 지금은 각자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요. 일종의 인큐베이팅 같은 이 흐름은 계속 이어갈 생각이에요. 이건 단순히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조경 시장의 전체 파이를 함께 키워가는 방식이라고 봐요. 카페 옆에 다른 카페가 생기면 경쟁이 심화하는 게 아니라 카페 거리가 생기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게 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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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에서 직접 기획, 운영하고 있는 블랭크 하우스. 일상의 ‘빈칸’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운다는 컨셉 하에 대관, 워크샵 등으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직접 땅을 사고 기획해 꾸려가시는 ‘블랭크 하우스’ 역시 즐거운 실험의 연장선이겠군요.

‘블랭크 하우스’는 클라이언트의 땅이 아닌, 우리 땅에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보기 위해 만든 공간이에요. ‘조경가가 자신의 땅에 개입하면 어떤 풍경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루를 하나의 빈칸(Blank)으로 보고, 그 시간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운다는 개념 아래 건물과 정원, 다목적 코트를 함께 구성했어요. 현재 상업 촬영이나 가족 모임, 동호회 행사를 위한 대관 공간으로 쓰이고, 바이런 멤버들이 모여 새로운 영감을 나누는 워크숍 공간으로도 활발히 활용하고 있어요. 조경가가 단순히 정원이나 공원을 만드는 기술자를 넘어, 일상의 풍경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증명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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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사무실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탁구대와 운동기구를 마주치게 된다. 틈틈히 몸을 풀며 쉼을 채우는 것이 업무 효율과 이 업을 지속해나가게 해준다고 이남진 소장은 믿는다. 휴식 공간의 비율을 더 넓힐 사옥을 꾸리겠다는 목표도 품고 있다.
바이런이 그리고 있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어떤 모습인가요?

바이런(Viron)이라는 이름은 ‘Environment(환경)’의 중심 글자에서 따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조경’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동그란 환경’을 디자인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어요. 회사 이름에 ‘조경’을 붙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새로운 설계 방식, 새로운 공간 유형, 새로운 틀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을 챌린지 삼아, ‘게임 체인저’가 되고자 합니다. 그 실험은 결국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닿아 있어요. 업무 중간에 탁구를 치고, 운동을 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을 꾸려온 것도 그 때문이고요.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의 비율은 5대 5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사옥을 언젠가는 꼭 짓고 싶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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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완공작인 ‘기다림의 정원’에 바이런 식구들이 모였다.
이러한 실험 끝에 앞으로 어떤 풍경에 도달하시게 될까요?

한국의 환경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해요. 농어촌 인구의 급감이나 출산,양육 기피, 국내보다는 해외 여행을 선택하는 등의 사회적 흐름에는 일상에서 머무는 공간에서의 만족감이 충분치 못한 탓도 있다고 봐요. 조경가가 나무를 심는 기술자를 넘어, 이러한 문제에 색다른 방식으로 개입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그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보려고 합니다.

PLUS LIST

흔해서 놓쳐왔던, 그러나 주목받아야 할 식물 3

맥문동

우리나라의 뚜렷한 사계절은 식물에겐 척박한 환경인데요. 한약 재료로도 쓰이는 맥문동은 이런 환경에서도 사시사철 푸르고 꽃과 열매도 보여주는 소재에요.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잘 살기에 평범해보일 수 있지만, 묵묵하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생장하는 맥문동의 강인함 덕분에 신뢰하는 초화류를 꼽으라면 단연 맥문동입니다.

느티나무

파고라 같은 인공 시설물보다 살아있는 나무가 주는 생명력 있는 그늘을 제일 좋아해요. 특히 어떠한 제약도 없이 온전히 자라났을 때 거대한 우산 모양으로 아름다운 수형을 펼치는 느티나무를 참으로 애정합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편익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수목입니다.

철쭉

철쭉은 가장 저평가받는 식물 중 하나에요. 빽빽하게 모아 심는 ‘아메바형 식재’를 하고 수시로 가지치기를 해 그 온전한 아름다움을 볼 기회가 좀처럼 없지만, 철쭉 한 그루를 독립해 심으면 꽃도 오래 피우고 당당하고 멋지게 자라납니다. 회양목과 사철나무도 마찬가지에요. 익숙한 식물을 군집의 형태에 가두어 심는 관행에서 벗어나, 식물 고유의 아름다움을 펼칠 수 있는 식재 방법을 고민해보곤 합니다.

TIPPING POINT

이남진 소장이 말하는 조경은 건물에 들어가기 전 사용자가 마주하는 ‘첫 번째 감각’이자, 도시의 속도를 조율하는 ‘살아있는 인프라’다. 그의 설계는 도면 위에 선을 긋기보다, 공간에서 벌어질 장면을 미리 써 내려가는 ‘경험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회사 이름에서 ‘조경’을 덜어내고, 성수동의 웨이팅 문화를 정원의 언어로 번역하는 등 예쁜 풍경을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익숙한 문법을 비껴서며 조경의 가능성을 넓혀왔다. 이전의 작업들을 넘어서는 흐름 속에서, 그의 조경은 우리의 일상의 빈칸을 조금씩 더 풍요로운 경험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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