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전략으로 읽는 동시대 모듈러 디자인
보편화된 방법론에서 차이를 만드는 법
보편화된 모듈러 디자인에서 결과의 차이는 형태가 아닌 해석에서 발생한다. 디자이너가 모듈을 대하는 각기 다른 태도와 전략이 중요해진 지금, 그 해석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다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모듈러 디자인만큼 빠르게 보편화된 개념도 드물 것이다. 획일화된 오피스 파티션, 끝없이 이어 붙이는 소파, 조립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유연한 디자인으로 불리는 제품들이 넘쳐난다. 모듈은 어느새 혁신의 언어가 아니라 기본값이 됐고, 그 과정에서 개념 자체는 닳아버렸다. 문제는 방법론이 소진됐다는 데 있지 않다. 모듈이 보편화될수록, 그것을 어떻게 읽고 어디까지 밀어붙이는가가 오히려 더 결정적인 질문이 된다. 동일한 구조를 공유하는 환경에서 결과의 차이는 형태가 아니라 해석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디자이너는 모듈을 통해 제품의 생애 주기를 설계하고, 어떤 이는 모듈의 경계를 지워 연속적인 형태를 구축한다. 구조와 기능을 통합하거나, 참여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는 언어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같은 방법론 아래 이토록 다른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듈 자체를 다시 발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태도를 정밀하게 살피는 일이다. 아래의 다섯 가지 사례는 그 태도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간을 설계하는 모듈
캠퍼, ‘로쿠’


스페인 슈즈 브랜드 캠퍼(Camper)는 최근 모듈형 트레이너 ‘로쿠(Roku)’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새로운 설계 방식을 제안했다. 프로젝트는 순환성과 생산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디자이너 엘리슈카 호르치코바(Eliška Horčičková)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을 것’, ‘최소한의 부품으로 구성할 것’과 같은 조건을 먼저 설정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모듈을 바라보는 접근 자체를 규정하는 출발점이 됐다.

여기서 모듈은 분해와 회수를 전제로 한 설계 단위로 작동한다. 신발은 여섯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며, 각 요소는 접착제 없이 끈과 밴드를 통해 연결된다. 이 방식은 사용자가 직접 제품을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도록 만들며, 개별 부품의 교체와 재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모듈은 사용 이후를 포함한 전 과정을 설계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해석은 모듈러 디자인의 범위를 생산에서 생애 주기 전반으로 확장시킨다. 로쿠는 수리와 회수, 재활용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전제로 설계되며, 브랜드의 회수 프로그램과 결합해 제품 이후의 경로까지 통제한다. 동시에 사용자의 직접적인 개입을 유도함으로써, 모듈은 단순한 구조적 단위를 넘어 경험과 관계 형성의 매개로까지 확장한다. 여기서 모듈은 물건의 끝이 아닌, 물건 이후를 포함한 시간의 단위가 된다.
형태를 감추는 구조
자하 하디드 디자인 ‘엔스 디스플레이 시스템’


사진 Luke Hayes
자하 하디드 디자인(Zaha Hadid Design)은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공개한 ‘엔스 디스플레이 시스템(Nth Display System)’을 통해 모듈러 디자인을 형태 중심의 접근으로 재해석했다. 시스템은 침식과 지층 같은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면과 리듬감 있는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총 12개의 모듈로 구성되지만, 각 요소는 개별 단위로 인식되기보다 하나의 연속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일부로 작동한다.


여기서 모듈은 끊김 없는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다. 볼록과 오목, 접힘과 돌출이 반복되는 표면은 개별 모듈 간의 경계를 흐리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이는 모듈러 디자인이 일반적으로 강조해온 분절성과 조합 가능성 대신, 연속성과 형태적 일관성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다. 그리고 이 역설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모듈로 이뤄졌지만, 모듈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용자는 이를 분해 가능한 시스템으로 인식하기보다,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조형적 구조로 경험하게 된다. 모듈은 독립적인 단위의 집합이 아니라, 공간과 오브젝트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기능한다. 자하 하디드 디자인의 이 같은 선택은 모듈러 디자인 내부의 논리를 뒤집는다. 모듈의 가시성을 지우는 것 자체가 전략이 된다.
구조가 기능을 겸하다
마리오 차이 스튜디오 ‘마자 라이팅 시스템 5.0’

중국 항저우 기반의 마리오 차이 스튜디오(Mario Tsai Studio)는 ‘마자 라이팅 시스템(Mazha Lighting System) 5.0’을 통해 모듈러 디자인을 구조와 기능이 통합된 시스템으로 해석했다. 조명 시스템은 비계(scaffolding)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최소한의 요소로 확장 가능한 프레임을 구축한다. 조명 튜브, 금속 폴, 와이어라는 세 가지 구성 요소만으로 이뤄진 시스템은 단순한 조합을 넘어, 전체 구조 자체가 작동 원리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마자 라이팅 시스템에서 모듈은 형태를 구성하는 단위를 넘어, 전기적 기능까지 수행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노출된 금속 구조는 별도의 배선 없이 전류를 흐르게 하는 회로의 일부로 활용되며, 각 요소는 구조적 지지와 동시에 기능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로 인해 시스템은 추가적인 연결 없이도 확장될 수 있으며, 그리드 구조를 기반으로 사실상 제한 없는 증식이 가능해진다. 모듈은 반복 가능한 부품이 아니라, 구조와 작동 방식을 동시에 정의하는 설계 단위다.


이러한 접근은 ‘덜어내기’라는 스튜디오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구성으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유지 보수와 재구성, 운송까지 전반적인 효율성을 확보한다. 각 부품은 쉽게 교체되고 재배치될 수 있어 제품의 수명과 활용 범위를 확장한다.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것은 모듈이 형태와 기능 사이의 경계를 지울 때,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감당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참여를 여는 모듈
플레이라이즈 x 옴엑스 ‘모듈형 놀이터 시스템’
영국 기반 자선단체 플레이라이즈(Playrise)와 건축 스튜디오 옴엑스(OMMX)는 난민 캠프와 재난 지역을 위한 모듈형 놀이터 시스템을 통해 모듈러 디자인을 접근성과 참여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프로젝트는 에리트레아, 수단, 팔레스타인 출신 아동들과의 공동 디자인 과정을 통해 개발됐으며, 단순한 구조와 최소한의 부품으로 누구나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기서 모듈은 더 많은 사람이 디자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는 장치로 작동한다.

시스템은 하나의 빔과 판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구멍과 연결 부위를 통해 다양한 놀이 구조로 확장된다. 이러한 단순한 구성은 전문 기술 없이도 조립과 변형을 가능하게 하며,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목재를 활용해 제작될 수 있도록 한다. 모듈은 고정된 형태를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맞게 변형 가능한 프레임워크로 기능한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사용자 개념 자체를 재정의한다.

아이들은 놀이터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주체로 참여하며, 그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감각과 애착을 형성한다. 모듈은 구조적 단위를 넘어, 놀이와 학습, 공동체 경험을 연결하는 구조가 된다. 이 사례에서 모듈러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형태나 재료가 아니라 디자인의 저자를 누구로 설정하는가 하는 문제다.
조합이 표현이 되다
카오이 스튜디오 ‘에바 체어’

태국 디자인 스튜디오 카오이 스튜디오(Kaoi Studio)는 체어 컬렉션 ‘에바(Ebba)’를 통해 모듈러 디자인을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재해석했다. 이는 멤피스(Memphis) 운동의 영향을 받아 기능 중심 디자인에서 벗어난 형태와 색채의 자유로운 조합을 기반으로 한다. 멤피스는 1980년대 밀라노를 중심으로 전개된 디자인 운동으로, 모더니즘의 기능주의에 반기를 들고 원색과 기하학적 패턴, 유희적 형태를 전면에 내세웠다. 에바는 그 계보 위에서 조합을 통해 사용자가 디자인의 결과를 직접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의자는 세 가지 기본 구조 위에 네 가지 팔걸이 옵션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각 요소는 서로 다른 시각적 성격을 만들어낸다.


에바에서 모듈은 구조적 효율을 위한 단위가 아니라, 다양한 성격을 생성하는 표현의 요소로 작동한다. 곡선, 지그재그, 아치 형태의 팔걸이는 서로 다른 분위기와 리듬을 형성하며, 색상 선택과 결합 방식에 따라 동일한 구조의 의자도 전혀 다른 인상을 갖게 된다. 조합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디자인 결과를 만들어가는 행위다.
이러한 접근은 모듈러 디자인을 기능적 시스템이 아닌 감각적 경험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사용자는 제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반영해 형태를 구성하는 주체가 된다. 에바 체어는 모듈을 통해 디자인의 저자를 확장하고, 결과물을 개인화된 표현의 매체로 전환시킨다. 모듈이 개성의 언어가 되는 순간이다.

다섯 사례가 공유하는 것은 모듈을 어떻게 읽는가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애 주기를 설계하는 단위, 형태를 지우는 장치, 구조와 기능을 겸하는 요소, 참여를 여는 프레임, 표현의 언어. 같은 방법론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는 모듈러 디자인이 기술적 해법으로 완성된 개념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것은 해석을 요구하는 열린 구조다. 무엇을 단위로 삼을 것인가, 그 단위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누가 그 단위를 다룰 것인가.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모듈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 설계가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의 차이야말로, 보편화된 방법론 안에서 여전히 디자인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