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사람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무토×리세 베스터
EDIDA 2026 수상작 '드림뷰 벤치'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새로운 관점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무토가 5월 14일부터 6월 30일까지 대구 미래농원에서 한국 첫 전시를 선보인다. 디자이너 리세 베스터와 협업한 드림뷰 벤치를 중심으로, 그의 개인 작업과 무토 제품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대구의 북구 서변동의 복합문화공간 ‘미래농원(MRNW)’에 들어서면 시선이 자연스레 위를 향한다.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길목에서 창을 마주하게 된다. 창은 소나무와 하늘을 안으로 들인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과 정원이 맞물린 이 공간은 도심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린 호흡으로 흐른다.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무토(Muuto)가 5월 14일부터 6월 30일까지 미래농원에서 한국 첫 전시를 선보인다. 디자이너 리세 베스터(Lise Vester)와 협업한 ‘드림뷰 벤치(Dream View Bench)’를 필두로, 그의 개인 작업 5점과 무토의 제품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는 무토의 대구 공식 딜러 인스케일이 기획을 맡았다.

〈New Perspectives on Scandinavian Design(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라는 전시명처럼 2006년 코펜하겐에서 출발한 무토는 전통적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왔다. 가구, 조명, 홈 액세서리를 아우르며 익숙한 형태에 새로운 시선과 소재, 사용 경험을 더하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다. 전시 개막일에는 무토 APMEA 디렉터 재 하(Jae Hah)의 ‘신경미학(Neuroaesthetics)’ 토크와 리세 베스터의 디자인 토크가 진행됐다.

신경미학은 무토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핵심 키워드다. 뇌가 판단하기 전에 몸과 감각이 먼저 반응한다는 전제 아래, 공간을 이루는 감각적 요소가 인간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왜 우리는 특정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장소는 무심히 지나치게 될까?” 이번 전시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늘을 담는 디자인, 드림뷰 벤치

전시의 중심에는 드림뷰 벤치가 놓여 있다. 리세 베스터는 이 벤치를 구상하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들 수 있을까. 베스터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의 통찰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볼 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빛 자체를 경험하며, 일상의 맥락에서 벗어나 대기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벤치 이름에 담긴 ‘드림(Dream)’도 여기서 유래한다. 잠시 멈춰 공상에 잠길 때 활성화되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는 기억을 정리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에너지를 준다. 끊임없이 움직이기보다 잠시 멈추는 ‘퍼즈(Pause)’의 시간이 생각을 명료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회복시킨다는 의도다.

드림뷰 벤치의 유려한 곡선은 인체공학 서적이 아닌, 디자이너가 직접 덴마크 해변의 모래사장에 누워 찾아낸 가장 이상적인 자세에서 비롯됐다.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과 수차례 테스트를 거쳐 지금의 형태를 완성했다. 브러시드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은 은은하게 하늘빛과 주변 풍경을 반사하며 날씨와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한다. 특히 낮게 흐르는 등받이는 앉는 순간 시선을 자연스럽게 위로 이끈다. 드림뷰 벤치는 2026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중 발표된 엘르 데코 인터내셔널 디자인 어워드(EDIDA) 아웃도어 부문을 수상했다.
빛을 변주하는 다섯 가지 오브제

미래농원 2층에는 베스터의 개인 작업 5점이 전시되어 있다. 규모보다 밀도에 집중한 구성으로, 빛이 굴절하고 반사되며 왜곡되는 찰나의 순간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붙든다. 모듈형 거울 연작인 ‘프래그먼츠(Fragments, 2025)’는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반사 각도가 끊임없이 달라져 일종의 광학적 포털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에 수작업으로 은도금 처리를 한 ‘리플렉션스(Reflections, 2023)’는 오목함과 볼록함이 공존하며 상을 유연하게 뒤섞는다. 자연광을 활용해 외부 풍경을 내부에 투영하는 유리 구체 ‘드림뷰 스피어(Dream View Sphere, 2021)’는 바깥세상의 한 조각을 오브제 안으로 들여놓는다.


48개의 네온 유리관으로 이루어진 ‘아이디어 제너레이터(Idea Generator)’는 자극적인 사인 조명 대신 유리가 푸른빛을 머금은 듯 투명한 네온의 미학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라이트 랩(Light Lab)’은 솜메르소(Sommerso) 기법으로 유리에 색을 가둔 실험적 작업으로, 정교하게 깎아낸 면을 통해 반사각을 비틀며 투명함과 흐릿한 샌드블라스트 질감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 작업들은 차가운 물성을 지닌 소재 안에 자연의 빛을 담아내어 오히려 따뜻한 감각을 자아낸다. 관람자는 변화하는 상과 시점 속에서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고, 미래농원의 풍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 동선의 끝자락에는 ‘무토 라운지’가 자리한다. 앞서 경험한 감각의 여운을 이어가도록 섬세하게 기획된 공간이다.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좌석을 마주 보게 배치하지 않고,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1인석 위주로 구성했다. ‘천천히 바라보는 경험’을 확장하기 위한 장치다. 이곳에는 무토의 오랜 파트너인 세실리에 만츠(Cecilie Manz)가 디자인한 워크숍 테이블과 의자, 벤치가 놓여 있다. 단정한 만듦새와 정제된 형태의 가구에 머물며 조용히 차 한 잔의 휴식을 음미하기 좋다.

무토가 제안하는 ‘새로운 관점’은 거창한 혁신이 아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빛이 바뀌는 찰나를 응시하는 것, 매일 마주하는 공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 일상에 필요한 작고 느린 전환의 순간을 건넨다.
Interview
리세 베스터(Lise Vester)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런던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디자인 프로덕트 석사를 마치고 2022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신경미학과 힐링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가구, 조명, 오브제를 아우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무토와 협업한 드림뷰 벤치로 EDIDA 2026 아웃도어 부문을 수상했다.

신경미학과 힐링 아키텍처를 작업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두 개념이 실제 디자인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궁금하다.
두 원리는 내 작업의 토대다. 형태, 색, 질감, 소재 같은 선택을 이끄는 기준이자, 심미적 경험과 자연이 정서적 웰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틀이기도 하다.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학생 시절 한 호스피스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돌아가신 이모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죽음과 맞닿은 공간이었지만 일반 병원의 차갑고 삭막한 분위기 대신 따뜻함과 환대가 느껴졌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지 탐구하다가 힐링 아키텍처를 접하게 됐다. 사람을 신체적·사회적·정신적·영적 존재로 바라보는 디자인이 회복과 웰빙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기능에 머무는 디자인을 넘어, 사람들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리고 디자인이 어떻게 부드럽게 관점을 전환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게 됐다.

무토와의 협업은 어떻게 성사되었나?
2022년 한 박람회에서 무토 팀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코펜하겐 본사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전부터 무토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특히 2019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구글과 함께 선보인 〈A Space for Being〉 전시가 인상 깊었다. 관람객이 손목 밴드를 착용한 채 서로 다른 공간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체 반응을 측정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전시를 보며 무토가 웰빙과 신경미학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는지 알 수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도 무토는 신경미학과 디자인을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의 학제적 접근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방향과도 무척 닮아 있었다. 마침 그 무렵 드림뷰 벤치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처음 코펜하겐에서 만났을 때 여러 조각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토는 드림뷰 벤치라는 아이디어에 구조와 완성도, 생산의 전문성을 더해주었다.

드림뷰 벤치를 구상하던 시기에 인지행동치료(CBT)를 경험했다고 들었다.
팬데믹 시기 런던에 머물던 때였다.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고립을 경험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처음으로 인지행동치료를 받았다. 그 경험은 디자인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디자인이 사람들의 웰빙을 돕고 회복의 루틴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그 무렵 사람들은 저마다 자연을 찾고 있었다. 공원을 걷고, 하이킹하고, 잠시라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그러다 가장 가까운 자연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답은 하늘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의외로 자주 올려다보지 않는 존재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늘로 이끄는 가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소재로 브러시드 스테인리스 스틸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단지 실용적인 이유로 스테인리스를 고른 것은 아니다. 물론 내구성이 뛰어나고 실내외 모두에 적합한 소재다. 하지만 그보다 이 소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감각에 매력을 느꼈다. 부드럽게 브러시 처리한 표면은 하늘의 색을 은은하게 반사하고, 날씨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벤치가 하늘을 더 가까이 경험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단단한 금속과 부드러운 곡선이 만들어내는 대비를 좋아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드림뷰 벤치로 EDIDA 2026 아웃도어 부문을 수상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정말 벅차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이번 수상은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가능성을 다시 확인해 줬다. 아웃도어 디자인은 날씨와 시간을 견디는 것을 넘어 웰빙과 사색, 그리고 일상 속 작은 멈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이 벤치는 코펜하겐 공항 내부에도 설치돼 있다. 분주한 움직임과 소음 한가운데서 여행객들에게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다.

벤치가 대중에 공개된 이후 흥미로운 사용자 반응이 있었다면 소개해달라.
드림뷰 벤치는 현재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Designmuseum Danmark)에 상설 설치돼 있다. 이 건물은 본래 병원이었다. 정원은 환자들이 자연광과 바깥공기 속에서 회복하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어떤 사람은 혼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벤치를 놀이 기구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길 바라며 디자인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다양한 방식의 휴식과 멈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가장 기쁜 부분이다.

궁극적으로 디자인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은 무엇인가?
고정된 종착지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방향은 확고하다. 디자인이 웰빙을 위한 부드러운 도구로 작동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규정하기보다 일상에서 현존과 사색, 정서적 균형을 지지하는 조건을 자연스럽게 마련해 주는 방식이다.

가구든 조명이든 오브제든 내가 계속 붙드는 질문은 같다. 디자인은 어떻게 관점을 바꾸고, 작은 회복의 순간을 만들 수 있는가. 앞으로도 힐링 아키텍처의 감수성을 공공 공간, 일터, 주거 환경 등 일상의 전반으로 확장하고 싶다. 웰빙이 특별한 장소에서만 찾는 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란다.
〈New Perspectives on Scandinavian Design〉
기간 2026년 5월 14일 – 6월 30일
주소 대구 북구 호국로 300-22 mrnw(미래농원)
운영 시간 11:00 – 19:00
인스타그램 @miraenong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