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느와의 작은 은신처, 연진영 〈이불집〉
송지오 원단으로 완성한 이불 설치 작업, 유년의 기억을 담다
도산공원에 위치한 갤러리 느와에서 가구 디자이너이자 설치 작가 연진영의 개인전 〈이불집〉이 9월 13일까지 열린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면 빛이 희미해지고 소리가 멀어진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던 그 순간, 이불은 침구가 아니라 세상과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공간이었다. 그 사적인 공간을 유년의 기억으로 소환하는 전시가 있다. 도산공원에 위치한 갤러리 느와(GALERIE NOIR)에서 연진영 작가 개인전 〈이불집 IBULJIP : BLANKET FORT〉이 7월 10일부터 9월 13일까지 열린다.

전시 제목 ‘이불집’은 작가의 실제 삶에서 비롯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운영해왔고, 작가는 그곳에서 자랐다. 사람들의 온기를 짓는 장소이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세계였다. 그러나 화재가 그 공간을 앗아갔다. 남은 것은 사라진 것들의 자리와 흔적뿐. 이후 연진영은 사물 자체보다 그 안에 스며 있던 시간, 사라진 뒤에도 오래 남는 감각을 작업 언어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 관점은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말한 ‘친밀한 공간’과도 맞닿아 있다. 바슐라르는 가장 작은 공간조차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기억과 상상이 머무는 존재의 장소라고 설명한다. 연진영 역시 이를 직접 재현하기보다 섬유의 질감과 형태, 공간의 밀도를 통해 기억을 환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전시에서 연진영은 브랜드 송지오의 지난 시즌 원단을 활용한 신작 설치를 선보인다. 그동안 작가는 패딩, 에어백, 산업용 직물 등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산업 소재를 활용해 인간의 몸과 보호라는 감각을 탐구해왔다. 그 관심은 전시를 통해 더욱 내밀한 기억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남겨진 원단을 퀼트 방식으로 엮어 이불 형상의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패션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소재는 버려지는 대신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얻는다. 화려한 직물 아래 드러나는 실루엣은 어린아이가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부 작품에는 실제로 불에 그을린 흔적과 비를 맞아 젖은 질감이 남아 있다. 따뜻함과 안식을 상징하는 이불의 또 다른 면이다. 기능을 위해 존재했던 산업 소재는 기억과 공간을 잇는 매개가 되고, 이불은 보호와 상실, 위안을 함께 품은 심리적 공간이 된다.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저마다의 경험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연진영은 2021년 밀라노 디자인위크 크리스찬 디올의 ‘Dior Medallion Chair Project’를 시작으로 파리와 뉴욕 등 국내외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 개인전 〈Skinship〉과 올해 프리즈 하우스 서울 릴레이 전시 〈Summer Sparks I: Impulse〉를 통해 산업 소재와 섬유를 활용한 설치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느와는 송지오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현대미술 갤러리가 결합된 아트 패션 스페이스로, 패션과 동시대 예술을 연결하는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Mini Interview
연진영 작가
연진영(b.1993)은 가구 디자이너이자 설치 작가다. 에어백, 텐트 천, 자동차 부품 등 산업 현장에서 쓸모를 다한 재료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오브제, 가구, 설치 작품을 만든다. 과잉 생산과 폐기의 문제를 환기하면서도 버려진 재료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와 미학을 찾아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패딩이나 에어백 같은 산업 소재를 주로 다뤄왔다. 이번에 ‘이불’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하다.
패딩 같은 껍데기가 현대인의 피부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해왔다. ‘왜 그럴까’를 더 파고들다 보니 이불 가게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 나는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랐다. 다양한 소재와 몸을 감싸는 구조, 화려한 색감까지, 지금의 작업에 영향을 준 것들이 모두 그 공간에 있었다.

어머니의 이불 가게에서 특별한 기억이 있나?
이불이라고 하면 보통 따뜻하고 안식처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이불로만 이루어진 공간에서 살다 보면 다른 면이 보인다. 장마철에 물에 약하고, 불이 나면 너무 잘 타는 취약한 존재라는 걸 많이 느꼈다. 실제로 화재가 두 번 있었고, 그 경험을 이번 전시에 반영했다. 불에 탄 이불, 젖어서 눅눅하고 쾌쾌한 느낌의 이불까지, 따뜻함만이 아닌 다양한 면을 담으려 했다.
전시 작품에 송지오의 원단이 쓰였다고 들었다. 이 재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에도 남겨진 산업 소재나 잉여 생산물에 관심을 가져왔다. 과잉 생산으로 남겨진 것들에도 고유한 에너지와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같은 맥락에서 송지오의 지난 시즌 원단을 활용했다. 남겨진 재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특히 눈여겨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렉에 걸려 있는 이불 설치 작품이다. 실제로 불에 태우고, 장마 기간에 비도 일부러 맞췄다. 이불 가게에 비가 새거나 침수되면 곳곳에 이불을 펼쳐놓고 말렸던 기억에서 온 작업이다. 이불은 우리를 보호하면서도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존재다. 그런 점이 오히려 인간과 닮아 있다. 완벽하게 강하지 않아서, 그 연약함이 도리어 위로가 된다.

관람객이 전시에서 어떤 경험을 하길 바라나?
이불을 뒤집어쓰는 행위 자체가 누구나 해봤을 것 같다. 어렸을 때뿐 아니라 지금도, 완전히 혼자이고 싶을 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의 형상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유령 같은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관람객도 ‘나도 그렇지’ 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좋겠다.
〈이불집 IBULJIP : BLANKET FORT〉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2길 54
기간 2026년 7월 10일 – 9월 13일
운영 시간 매일 11:00 – 20:00
웹사이트 갤러리 느와
인스타그램 @galerie.n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