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미학을 증언하는 자동차 디자인을 만나다, 독일 3대 자동차 박물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이 말하는 시대의 미학과 역사
독일의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박물관은 단순한 쇼룸이 아니다. 기계의 속도를 멈춤으로써 기능주의를 넘어 시대의 미학과 건축, 디자인 역사를 증언하는 복합 문화 기관이다.

속도를 박제하는 순간, 기계는 비로소 다른 무언가가 된다. 자동차 박물관의 전시장 안에 고정된 차들은, 바로 그 멈춤 덕분에 기능주의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읽히기 시작한다. 그것이 운송 수단이 아니라 어느 시대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증언하려는 지표라는 사실을, 독일의 세 자동차 박물관은 각자의 문법으로 설득한다. 뮌헨의 BMW,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뮤지엄은 단순한 브랜드 쇼룸이 아니다. 그보다 건축과 디자인 역사 그리고 동시대 미술이 교차하는 복합 문화 기관에 더 가깝다.
기술과 예술의 유기적인 만남, BMW 박물관

뮌헨 올림픽 공원 인근, 본사 건물 옆에 은빛 사발 모양으로 설계된 BMW 뮤지엄은 2008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재개관했다. 이곳에서 현재 진행중인 기획전 〈아름다운 기계: BMW의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Belle Macchine. Italian Automotive Design at BMW) 〉(이하 〈아름다운 기계〉전)는 BMW의 성취가 독자적인 독일식 기계공학에만 빚진 것이 아님을 솔직히 보여준다. 효율과 기능의 언어로 쓰인 독일의 엔지니어링이, 유기적인 선 처리와 감각적인 변주를 강점으로 삼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Carrozzeria)와 어떻게 교섭해왔는지 면밀히 살펴본다.


〈아름다운 기계〉전은 1930년대 공기역학적 유선형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BMW 328 투링 쿠페’로 문을 연다. 이어 1970년대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의 미래주의적 쐐기형 디자인을 복원해낸 콘셉트 카 ‘가르미슈(Garmisch)’로 이어지며, 날카로운 기하학적 비례와 격자무늬가 훗날 BMW 디자인에 어떤 변화를 남겼는지 드러낸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BMW M1’ 섹션이다. 미드엔진이라는 독일의 고성능 엔지니어링의 조건이 주지아로의 정제된 직선과 만나면서, 자동차는 단순한 공산품을 넘어 사유의 대상이 되는 미학적인 오브제로 격상된다.

뮤지엄 바로 옆, BMW 벨트(BMW Welt)로 발걸음을 옮기면, 이 미학적인 긴장은 동시대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BMW는 수십 년에 걸쳐 예술가들과 협업해 온 ‘BMW 아트카(BMW Art Cars)’ 프로젝트를 통해 자동차를 산업 제품이자 이동하는 캔버스로 전환해 왔다.



1975년 알렉산더 칼더가 BMW 3.0 CSL에 색과 형상을 입힌 이후,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줄리 머레투 등 20여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자동차의 표면을 재정의했다. 이는 자동차를 속도의 기계가 아닌, 동시대 시각문화의 한 장면으로 읽게 만든다. 특히 다음 달에 선보이는 전시에서는 아트 카 20여 대가 최초로 한 자리에서 소개될 뿐 아니라, 올라퍼 엘리아슨의 ‘BMW H2R 프로젝트’(2007)도 전시된다. 2008년 발표된 이 작업은 수소 레이싱 프로토타입을 둘러싼 외피를 걷어내고, 정교한 금속 구조 위에 얼음막을 입혔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소 에너지의 가능성과 환경 위기의 긴장을 동시에 드러낸다.
신호의 구조를 걷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슈투트가르트 네카어 강변에 우뚝 솟은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선언에 가깝다. 2006년 개관한 이 9층 건물은 암스테르담에 자리한 벤 판 베르켈 & 카롤린 보스의 운스튜디오(UNStudio)가 설계했으며, DNA 이중나선 구조를 공간의 기본 논리로 삼는다. 자동차를 발명한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는 기업이 자신들의 역사를 단순한 기업 연대기가 아니라, 인류의 이동성의 진화사로 위치하게 한다.



관객은 캡슐 형태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 오른 뒤, 두 갈래로 교차하는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유영하듯 내려오게 된다. 이 여정은 1886년 칼 벤츠가 특허를 낸 삼륜 자동차에서 시작해 오늘날 전기차와 수소차에 이르는 자동차의 역사적 궤적을 한 번에 관통하게 만든다.
16,500제곱미터 규모의 전시 면적에는 160여 대의 차량과 1,500점 이상의 자료가 ‘신화 공간(Mythos rooms)’과 ‘컬렉션 공간(Collection rooms)’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공간은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서사의 동선으로 짜여 있으며, 관람객은 차를 보는 동시에 브랜드가 자기 역사를 어떻게 조직해왔는지 읽게 된다. 무엇보다 경사로를 따라 마주하는 레이싱카 섹션은 압도적인데, ‘블리첸-벤츠(Blitzen-Benz)’와 ‘실버 애로우(Silver Arrows)’의 계보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송도와 승리의 상징을 어떤 방식으로 축적해왔는지 보여준다.

현재 이 곳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아트 컬렉션 4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Now on View〉가 진행 중이다. 혹자는 “자동차 박물관에서 왜 굳이 현대미술작품을 소개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 홍보의 부속물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을 어떤 관점으로 수집하고 후원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료의 정직함과 문화적 오브제 사이, 폭스바겐 뮤지엄
독일 북부의 볼프스부르크는 도시의 역사 자체가 자동차의 역사와 맞물려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1938년 나치 정권이 이른바 ‘국민차(Volkswagen)’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황무지에 세운 이 계획도시는 전후 독일 경제 재건을 의미하는 ‘라인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서 폭스바겐 그룹은 서로 다른 성격의 두 문화기관을 운영하며 자신들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설명한다.

먼저 아우토뮤제움(Stiftung Automuseum Volkswagen)은 폭스바겐 브랜드의 역사와 기술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는 BMW의 현란한 공간 연출도, 벤츠의 압도적인 건축미도 없다. 하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자동차 마니아들이 왜 이곳을 ‘성지’라 부르는지 단번에 깨닫게 된다. 초기 비틀(Beetle)의 전 생산 연식 모델부터 시작해 골프(Golf)의 발전사, 공개된 적 없는 프로토타입과 ‘콘셉트 카’까지 폭넓은 자료가 전시된다. 현재 이 박물관에서는〈르망의 아우디(Audi at Le Mans)〉전이 진행 중이며, 아우디가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축적해온 기술적인 성취를 다룬다. 그룹 산하 브랜드의 레이싱 역사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이 박물관의 아카이브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반면 박물관 근처에 위치한 VW 차이트하우스 뮤지엄(VW ZeitHaus Museum)는 기존 박물관과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이곳은 폭스바겐이라는 단일 브랜드의 울타리를 넘어, 자동차 역사 전반을 가로지르는 시대의 이정표들을 큐레이션한다. 재규어, 시트로엥, 포르쉐 같은 타사 브랜드의 역사적인 명차가 폭스바겐의 기념비적인 모델들과 같은 수준에서 전시되며, 자동차는 브랜드의 소유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인 언어로 읽힌다. 특히 페터 코글러의 벽면 작업은 이 공간의 시각적인 긴장을 강화하는데, 끝없는 반복과 증식의 패턴 속에 놓인 차들은 시대의 시각 문화와 속도의 욕망을 드러내는 오브제로 자리매김 한다.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동차의 형태를 다시 쓰는 지금, 자동차 박물관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단순한 향수로 읽는다면 그것은 절반만 맞는 해석일 것이다. 내연기관이 한 세기에 걸쳐 축적한 것은 기계적 성능의 역사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가 속도와 자유와 욕망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에 대한 물증이기도 하다. 캠샤프트의 곡선, 보닛 위를 흐르는 공기역학의 흔적 계기판 서체가 담은 시대의 흔적은 기술이 미학으로 번역되는 경로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다. 기술이 욕망이 되고 욕망이 형태가 되는 전환을 직접 마주하는 장소로서, 독일의 이 박물관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