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월간 〈디자인〉 Vol.577 | Special Feature
적응적 재사용은 더 이상 건축계만의 용어가 아니다. 기후 위기와 자원 순환, 도시 재생과 브랜드 전략이 맞물리면서 그 의미와 역할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리모델링이나 재생 사업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적응적 재사용은 무엇이며, 왜 지금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을까? 도시사회학자 김정후 박사, 7월호 객원 편집장 백종환 소장과 함께 적응적 재사용의 개념과 건축적·환경적 가치, 기술과 재료의 진화, 그리고 이를 둘러싼 도시와 제도의 과제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 20260701022221 20260701 022221](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12222/20260701022221-20260701_022221-832x416.jpg)
백종환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실무 경험을 쌓고, 2015년 WGNB를 설립했다. WGNB는 ‘접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건축, 인테리어, 가구, 제품 등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공간의 맥락과 형태, 기능, 구조, 디테일, 재료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공간 내부의 근본적인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2018년 iF 디자인 어워즈 골드 수상을 시작으로 독일 아이코닉 어워즈, 프레임 어워즈를 잇달아 수상하고 2021년 디진 어워즈 ‘올해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로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적응적 재사용 대신 재생 건축, 리노베이션, 리모델링 등 여러 용어와 개념을 혼재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개념들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백종환 이번 대담을 준비하면서 리서치를 해보니 문화비축기지 같은 사례도 공식적으로 ‘재생 건축’이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용어가 늘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재생’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손상된 것을 회복하거나 다시 살린다는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과연 적응적 재사용을 재생 건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지, 또 두 개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정후 저도 같은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재생 건축이라는 용어가 정착했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2000년대 이후 도시 재생 담론이 확산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 재생이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재생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졌고, 이후 건축 영역에서도 용도가 다했거나 사용되지 않는 건물을 다시 쓰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재생 건축이라고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적응적 재사용은 단순히 건물을 회복시키는 개념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역할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2 20260701055045 126 CP 005 701 MS.tif](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45047/20260701055045-126_CP_005_701_MS.tif-832x889.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3 20260701055052 126 CP 005 718 MS](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45054/20260701055052-126_CP_005_718_MS-832x1089.jpg)
백종환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건축가나 디자이너 사이에서는 오히려 재생 건축이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쓰지 않습니다. 리노베이션이나 리모델링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쓰죠. 그런데 이런 개념 또한 적응적 재사용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리노베이션은 오래된 건물의 성능을 개선하거나 수리하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내부 마감이나 설비를 교체하고 외관을 정비하는 식으로, 기능은 그대로 두고 성능을 개선하는 쪽에 가깝죠.
김정후 세 용어는 어느 정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 현장에서는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요. 리모델링은 한국에서 인테리어 개념에 가깝게 쓰이는 경향이 있는 반면, 리노베이션은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을 보수하거나 증축하거나 개선하거나 확장하는 등 일련의 행위를 모두 포함하죠. 그래서 리노베이션과 적응적 재사용은 일부 겹치는 영역은 있지만, 리노베이션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종환 결국 핵심적인 차이는 기존 건축물이 가진 정체성과 역할이 바뀌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존 기능은 유지하면서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 리노베이션이라면, 적응적 재사용은 건물의 역할 자체를 전환하는 데 더 무게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김정후 맞습니다. 저는 적응적 재사용의 핵심을 ‘창의적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노베이션에도 물론 창의성이 있지만, 적응적 재사용은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공간의 쓰임 자체가 바뀌고, 프로그램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죠. 반면 리노베이션은 기존 기능과 형태를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 개선과 보완을 더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응적 재사용은 단순한 수선이나 개선을 넘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개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응적 재사용은 일부 겹치는 영역은 있지만, 리노베이션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4 20260701054904 FRAC Nord Pas de Calais 1 web](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44906/20260701054904-FRAC-Nord-Pas-de-Calais-1_web-832x555.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5 20260701054904 FRAC Nord Pas de Calais 3 web](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44906/20260701054904-FRAC-Nord-Pas-de-Calais-3_web-832x555.jpg)
적응적 재사용이 최근 도시와 건축 분야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배경은 무엇일까요?
김정후 크게 세 가지 맥락으로 봅니다. 첫 번째는 역사적 측면입니다. 적응적 재사용은 기존 건물이나 공간이 가진 시간의 층위, 그리고 장소가 품고 있는 지역적 가치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건물 하나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기억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 본다면, 적응적 재사용은 그 시간을 지우지 않고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환경적 측면입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기후변화와 탄소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식 자체가 환경적으로 큰 부담이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적응적 재사용은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환경적 이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디자인적 측면이 더해지면서 이 개념이 더욱 확장되는데요. 기존 건물을 활용한다는 것은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조건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신축과 달리, 이미 구조와 형태, 시간의 흔적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기능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제약이 생기지만, 그 제약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적응적 재사용은 단순히 기존 건물을 재사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기반으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신축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기존 구조나 재료, 공간의 흔적이 새로운 디자인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용자 입장에서도 적응적 재사용 프로젝트를 매력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 건물의 흔적이나 분위기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신축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니까요.
백종환 결국 핵심은 시간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된 건물이 가진 물리적 흔적뿐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기억과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서사를 더해 간다는 점이 적응적 재사용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축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간의 결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거죠.
김정후 지금처럼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시간의 층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장소성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기억이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감정적인 연결이 생기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적응적 재사용은 단순한 물리적 보존이 아니라, ‘장소가 가진 시간성이 계속 드러나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백종환 앞서 말씀하셨듯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기존 구조에 존재하는 제약 자체가 오히려 공간의 매력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은 층고나 구조 그리드, 재료의 흔적 같은 요소가 새로운 개입과 만나면서 더 입체적인 공간이 만들어지는 거죠. 신축에서는 의도적으로 구현하려 해도 자연스럽게 나오기 어려운 요소입니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6 20260701055439 arario jeju dd 050](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45441/20260701055439-arario_jeju_dd_050-832x555.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7 20260701055501 arario jeju dd 038](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45503/20260701055501-arario_jeju_dd_038-832x558.jpg)
김정후 건축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잖아요. 조건이 안 좋은 땅에서 오히려 더 재미있는 건물이 나온다고요. 산업 유산이나 오래된 건물을 다룰 때도 비슷합니다. 기존 구조를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새로운 기능을 담아야 하니까 시작부터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작업하게 되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제약 때문에 신축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적응적 재사용이 꼭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교적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유럽의 경우, 이 개념이 훨씬 더 일상생활에 가까운 방식으로 안착했습니다. 카페나 상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건축가에게 따로 의뢰하지 않고 직접 공간을 바꾸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적응적 재사용은 생각보다 훨씬 일상적인 개념입니다. 신축은 개인이 접근하기엔 장벽이 있지만, 기존 공간을 바꿔 쓰는 방식은 훨씬 자연스럽고 익숙한 선택이 되는 거죠.
백종환 실제로 홍대나 연남동만 봐도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건축가 도움 없이 운영자가 직접 손을 보는 경우가 많고, 결과도 꽤 좋게 나올 때가 많고요. 기능은 바뀌지만 기존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성격을 덧입히는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적응적 재사용을 전략적 접근이라기보다 현실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백종환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불가피하게 적응적 재사용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비용, 법규, 시간 측면에서 신축보다 이점이 많기 때문이죠. 우선 기존 구조를 활용하면 공정이 줄고 초기 비용이 낮아집니다. 다만 구조를 많이 손댈 경우 오히려 신축보다 비용이 더 들기도 해 일률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법규 측면에서는 기존 건물을 활용할 때 적용 기준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해석되거나 일부 완화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주차, 용적률, 지구단위계획 같은 조건도 기존 건물을 기반으로 할 경우 부담이 줄어들죠. 마지막으로 공사 기간 단축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특히 상업 공간의 경우 신축은 인허가부터 준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기존 건물을 활용하면 오픈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이점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적응적 재사용이 기대만큼 다양하게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김정후 국내에서 산업 유산 재활용과 관련한 초기 제안에 참여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프로그램이 특정 기능으로 지나치게 좁게 수렴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업 시설을 전환할 때 박물관이나 미술관, 복합 문화 공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해외 사례를 보면
문화 시설은 일부에 불과하고 주거, 업무, 상업 등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집니다. 국내에서는 산업 유산이라고 하면 문화 시설이라는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면서 선택지가 제한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적응적 재사용의 가능성을 좁히는 요인이 됩니다. 또 하나는 구조와 시공, 디테일의 문제입니다. 적응적 재사용은 기존 구조를 활용하기 때문에 신축보다 훨씬 복잡한 조건을 다루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완성도의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고, 시공 디테일이나 구조 보강 부분에서 기대 수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사용자 경험의 만족도가 낮아지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단순히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구현 역량의 문제이기도 한 거죠. 경제적 논리도 작동합니다. 개인 소유든 공공이든 운영 가능한 모델을 찾다 보니 선택지가 특정 유형으로 쏠리는 것이고요. 이제는 그 몇 가지 유형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더 다양한 전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입니다. 그래야 디자인 방식이나 공법, 재료 접근도 함께 확장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아직 그 다양성이 충분히 열려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8 20260701060139 silo cobe architecture residential apartments dezeen 2364 col 1](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0142/20260701060139-silo-cobe-architecture-residential-apartments_dezeen_2364_col_1-832x819.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9 20260701060139 silo cobe architecture residential apartments dezeen 2364 col 7](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0144/20260701060139-silo-cobe-architecture-residential-apartments_dezeen_2364_col_7-832x1165.jpg)
그럼에도 최근 흐름을 보면 전환 대상이 되는 건물의 범위가 점차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주로 산업 유산 중심의 논의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보다 일상적인 건축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후 적응적 재사용이 특정 유형에만 한정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훨씬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했고요.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산업 유산 중심으로 이해해 온 측면이 있지만, 조금만 넓게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전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건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과거에는 일상적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이용 방식이 바뀌었거나 기능이 약화된 시설, 역할 자체가 축소된 공간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거든요. 파출소, 소규모 공공시설, 통신사 건물처럼 전국적으로 상당수 존재하지만 실제 활용도는 낮아진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공간을 얼마나 폭넓게 바라보느냐,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전환의 가능성을 발견해 내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백종환 무엇보다 생활 인프라의 변화가 도시 공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 변화뿐 아니라 온라인 기반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죠.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교육 시설은 점차 줄어들 테고, 숙박 시설도 이용 패턴이 바뀌면서 역할이 축소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대형 마트는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면서 폐점이나 재편이 이어지고, 주유소 역시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되면 역할이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산업 유산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익숙했던 시설까지 전환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0 20260701060356 143 P6 LH 08 web](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0358/20260701060356-143_P6_LH_08_web-832x752.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1 20260701060402 143 P6 LH 17 web](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0405/20260701060402-143_P6_LH_17_web-832x921.jpg)
김정후 도시 재생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부분인데, 그런 변화가 지금 한국 원도심이 겪는 문제와도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같은 구조적 변화로 인해 원도심의 건물이 과거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생겨나고 있거든요. 시장, 상가, 지하상가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과거에는 도시 기능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활용 방식이 크게 달라졌거나 기존 방식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은 지하상가 규모가 상당히 큰 편으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주요 도시마다 긴 구간에 걸쳐 지하상가가 형성돼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공간을 민간이나 공공 어느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재편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철거도, 전면 재개발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아 결국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죠. 이런 맥락에서 적응적 재사용은 도시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접근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 공간을 어떻게 다시 읽고 재해석할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최근에는 기술적 조건의 변화도 적응적 재사용의 확산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언급됩니다.
김정후 적응적 재사용은 건축가나 디자이너만의 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나 공법, 재료 기술이 뒷받침될 때 훨씬 다양하고 혁신적인 시도가 가능해지는 분야입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보면 단독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구조 엔지니어링, 시공, 재료 기술 등 다양한 영역이 결합된 팀 단위 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 아룹(Arup)에는 적응적 재사용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적응적 재사용보다 레트로핏retrofit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레트로핏은 쉽게 말해 컴퓨터나 제품의 ‘버전 업’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버전 1에서 2, 3으로 업데이트하듯 건축도 하나의 모델을 계속 갱신해 나간다는 관점이죠.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을 적용해 건물의 성능 자체를 업데이트하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적응적 재사용은 단순한 재사용이 아니라 기술 발전과 함께 건축의 모델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나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친환경 기술과도 맞물리면서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존 자재를 단순히 재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적으로 재사용하거나 새로운 공법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 계속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구조가 함께 개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백종환 현장에서는 흔히 ‘해체가 잘되면 공사의 절반은 끝난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과거에는 철거가 부수는 행위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필요한 부분을 정밀하게 분해하고 보존하는 과정으로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종종 정형외과 수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진단한 뒤 필요한 부분만 드러내고, 보강하거나 새로운 구조를 덧대어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죠. 이런 접근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기술 발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슬라브를 일부 걷어내거나 기둥을 제거하는 작업 자체가 큰 위험을 수반했지만, 지금은 구조공학 기술이 크게 발전했죠. 3D 레이저 스캐닝, 비파괴 검사, 디지털 기반 구조 분석 등을 통해 건물 상태를 훨씬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고, 보강 기술도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탄소섬유 보강, 강재 브레이싱, 외부 프레임 보강, 기초 보강 같은 방법을 이용해 오래된 건물도 신축 건물에 가까운 수준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프로젝트도 이제는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만큼 적응적 재사용 역시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정후 AI 기술과의 결합도 중요한 흐름으로 보입니다. 기존 건물을 진단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과정 자체가 점점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훨씬 더 정밀한 판단과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현장에 들어가 해체를 진행해야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사전에 구조를 스캔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에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디자인이나 구조적 해법까지 확장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백종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재료 기술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폐기물로 처리했던 것들을 구조재로 다시 쓸 수 있게 되면서 순환 자원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가령 벽돌이나 철거 자재를 선별하고 세척한 뒤 재가공해서 사용하는 방식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기술들이 결합되면서 기존 건축의 새로운 성능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2 20260701060643 20260701 060643](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0645/20260701060643-20260701_060643-832x555.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3 20260701060747 2023 08 08 Google SJT 6308 web](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0748/20260701060747-2023_08_08_Google-SJT-6308_web-832x555.jpg)
해외에서는 이러한 기술 발전과 맞물려 적응적 재사용이 기업의 브랜딩 전략이나 도시 재생 전략과 결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김정후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공간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특히 주목했던 사례가 구글입니다. 구글은 전 세계에 수십 개의 헤드쿼터와 여러 캠퍼스를 운영하는데, 조사해 보니 캠퍼스는 대부분 기존 건물을 재활용한 사례였고, 헤드쿼터 역시 상당수가 신축보다 적응적 재사용 방식을 택했습니다. 왜 그럴까 살펴보니 이유는 의외로 명확했습니다. 구글 같은 기업에는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축 건물을 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기존 건물을 활용하면 훨씬 빠르게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동시에 기존 공간이 가진 맥락을 바탕으로 더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구글은 적응적 재사용을 통해 더 빠르고, 더 창의적이며, 더 친환경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죠. 나아가 지역의 역사와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까지 구축하게 됐고요. 흥미로운 것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오히려 가장 전통적인 건축 방법론 중 하나인 적응적 재사용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적응적 재사용이 건축적 가치뿐 아니라 경영적·전략적 가치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아직 국내에는 그런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성수동을 중심으로 성장한 플랫폼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기존 공장과 창고를 활용해 브랜드 공간을 조성하는 사례가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처럼 기업 정체성과 도시의 장소성을 결합한 전략적 접근은 아직 제한적인 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적응적 재사용이 보다 활성화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요?
김정후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제도적 기반도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이 분야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정책이나 조례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 프로젝트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기존 공장 건물의 일부 구조를 활용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경우에도 그것이 가능한지 여부가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고, 적응적 재사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도적으로 분명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보니 애매한 지점이 계속 발생합니다. 실제로 제가 자문했던 영등포 대선제분 공장 재생 프로젝트에서도 소방법 적용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목구조로 된 기존 건물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수용 인원이나 용도 변경에 따라 요구되는 기준이 달라지는데, 이런 규정이 적응적 재사용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자이너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더라도 그것을 기존 법규 안에서만 해석하다 보면 구현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제도적 기준이 보다 유연하게 정비되거나, 적응적 재사용을 전제로 한 조례나 정책이 마련된다면 훨씬 더 다양한 창의적 시도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백종환 유럽의 경우에는 탄소 절감량에 따라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제도를 한국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면, 적응적 재사용을 촉진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주차장 규제 완화 같은 부분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상당수의 법규가 주차 대수나 복도 폭, 계단 규격처럼 정량적인 기준 중심으로 되어 있는데, 기존 건축물의 경우 이러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규격 중심의 접근에서 성능 중심의 규제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치수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안전성과 기능이라는 성능 기준 안에서 유연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주차 기준 역시 보다 현실적인 조건을 반영해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후 말씀하신 것처럼 적응적 재사용에 기존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성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기준과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제도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적응적 재사용을 선택할 당위성이 생기고,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백종환 소재와 자재 측면에서도 이미 유럽에서는 그런 시장이 상당히 활성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후 맞습니다. 특히 이탈리아나 스위스,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해체된 건축 자재를 단순히 폐기물로 보지 않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에서도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자재를 선별하고 정제해 새로운 건축 자재로 재가공하는 사례가 많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벽돌은 물론이고 콘크리트, 목재, 금속 자재까지 재활용, 업사이클링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내죠. 일부 기업은 100% 재생 자원을 활용한 건축 자재로 특허를 확보하기도 하고, 그런 재료를 사용한 프로젝트에 별도의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신뢰 체계입니다. 재사용 자재가 구조적으로 안전한지, 품질은 검증됐는지 인증해 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건축주나 설계자도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죠.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4 20260701061157 20260701 061157 1](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1159/20260701061157-20260701_061157-1-832x555.jpg)
![[적응적 재사용 ④] 적응적 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15 20260701061157 20260701 061157](https://design-plus.storage.googleapis.com/wp-content/uploads/2026/07/01151159/20260701061157-20260701_061157-832x555.jpg)
백종환 현장에서도 그런 필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오래된 석재나 목재, 벽돌 같은 재료를 다시 활용하고 싶어도 국내에는 아직 품질을 인증하고 유통하는 체계가 부족하다 보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재사용 자재를 전문적으로 선별하고 인증하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인식도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해체 작업 역시 더 정밀해질 것이고, 자재의 가치도 높아지겠죠. 결국 해체, 재사용, 재가공, 설계와 시공이 하나의 순환 구조 안에서 연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결국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려면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백종환 장기적으로는 적응적 재사용이 건축법 안에서 하나의 독립된 카테고리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신축, 증축, 개축, 대수선 같은 범주 안에서 설명되지만, 적응적 재사용은 이 중 어느 하나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거든요. 단순히 기존 분류 안에서의 변형이나 예외적인 방식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별도의 건축적·제도적 영역으로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정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적응적 재사용은 이제 개별 프로젝트 차원의 실험을 넘어 도시 전략이자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 역시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건축법이나 지자체 조례에서 적응적 재사용을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된다면 훨씬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백종환 지금은 아직 개념 자체가 조금 낯설고,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분야로 자리 잡아서 전문가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일반 시민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도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김정후 오늘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적응적 재사용을 하나의 트렌드나 디자인 기법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은 기술과 산업, 도시와 환경, 그리고 법과 제도가 모두 연결된 훨씬 큰 주제입니다. 앞으로 이런 논의가 계속 이어지면서 한국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