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무브먼트] 메이커 무브먼트 스페셜 토크
한국형 제작 문화를 생각하다
메이커 무브먼트가 이끄는 예술·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디자인계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과 대응 전략을 모색했다.

메이커 무브먼트의 기류가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고 있는 요즘,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아직 미약하지만 제작 문화의 다양한 얼굴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것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진다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수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지닌 메이커 무브먼트가 국내에 건강하게 자리 잡으려면 다양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사물학Ⅱ: 제작자들의 도시〉(이하〈사물학Ⅱ〉)전을 기획한 손주영 학예연구관, 오토데스크 전 교육총괄 이사 진동환, 그리고 메이커들의 새로운 커뮤니티 ‘메이크 위드’ 론칭을 앞두고 있는 형용준 대표와 함께 예술과 산업 분야에서 메이커 무브먼트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에 관해 듣고 디자인계가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 분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메이커 무브먼트를 경험했습니다. 처음 이 흐름을 관측하게 된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볼까요?
손주영(이하 손) 저는 올해 2월에 열린〈사물학Ⅱ〉전을 기획하면서 제작 문화를 심도 있게 연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존 미술계의 전시가 미술 비평가나 이론가들이 정립한 이론을 토대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제작 문화의 경우 실천가와 행동하는 예술가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내는 움직임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죠. 낮에는 제작 기술을 공유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밤에는 제작 관련 이슈를 다루는 세미나를 여는 방식으로요. 전시를 통해 기존 미술관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이런 문화 현상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진동환(이하 진) 사실 저는 골수 프로그래머입니다. 아시아나항공, HP 등에서 줄곧 프로그래머 내지 프로그램 교육 관련 업무를 맡아오다가 오토데스크에서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메이커 무브먼트에 대해 알게 됐죠. 오토데스크에서 처음 디자인과 디자인 싱킹의 중요성을 깨달았는데 오브제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디자인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회사의 매력이었습니다. 오토데스크의 교육 프로그램을 총괄하며 많은 대학교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대학생들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친숙해질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전국 30개 대학교와 MOU를 맺어 ‘창의 메이커를 위한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오토데스크를 나와 메이커 무브먼트와 관련한 비즈니스를 구상 중입니다.
형용준(이하 형) 저는 주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를 창업해왔습니다. 싸이월드를 비롯해 이성 매칭 서비스인 세이큐피드, 주소록을 교환하는 쿠쿠박스 등을 론칭했죠. 메이커 무브먼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결국 이 문화 운동이 커뮤니티로 귀결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새롭게 사업을 준비하면서 메이커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데 결국 결론은 DIT(Do It Together)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토머스 트웨이츠의 토스터 프로젝트가 DIT의 필요성을 반증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3000원짜리 토스터 하나 만들지 못하는 게 바로 현대 사회죠. 남들이 만들어놓은 부산물을 가져와야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고, 따라서 플랫폼 혹은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 같은 경우 제작 자체보다는 커넥팅이라는 본질에 초점을 두고 메이커 무브먼트에 접근했습니다. 지금은 11월 말 내지 12월 초를 목표로 ‘메이크 위드’ 론칭을 준비 중인데 이것 역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메이커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메이커 무브먼트가 두각을 나타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형 요새 스타트업들 사이에선 초기 창업자에게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액설러레이터가 붐입니다. 페이팔(PayPal)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인터넷 벤처의 요체는 기술과 자금의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벤처 비즈니스에서 기술을 위한 투자를 받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메이커는 기술력을 갖기 위해 따로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어요. 대중의 필요와 아이디어로 시제품을 만들고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생산하니까요. 또 집단 지성을 가동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R&D 연구소 이상의 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생산과정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인데 여기에서 많은 이들이 비전을 본 것 같습니다.
진 대량생산 시스템에 종속된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맞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메이커 무브먼트의 미덕인 것 같습니다. 자동차 제조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죠. 지금은 자동차 생산 시스템에 소비자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외형이나 사이즈가 이미 공급자가 정해놓은 원칙 아래 규격화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모든 필요와 환경을 만족시킬 순 없습니다. 그런데 메이커 무브먼트는 이런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제작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공급자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출력 도구인 3D 프린터와 입력 도구인 3D 스캐너, 그리고 입출력 사이의 프로세스에 해당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 세상을 재미있게 바꿔놓을 것이라고 관측합니다. 물론 아직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요. 자동차를 예로 들면 안정성 문제 같은 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형 법규 문제도 걸려 있죠. 사실 해외에선 1600만 원이면 키트를 조립해 제작할 수 있는 수제 전기 자동차가 이미 나와 있어요. 공구 세트도 5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고. 아주 좁은 공간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는데, 문제는 차를 조립해도 국내에선 도로 법규상 운행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차가 차체가 낮아서 배기구가 옆으로 빠지도록 설계했는데 그 부분이 걸리거든요. 일본이나 독일에선 이미 이런 부분을 허용하고 있는데 말이죠.
손 두 분이 산업적 관점에서 메이커 무브먼트를 바라봤다면, 전 예술계에서 그 흐름을 읽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운동으로서의 제작 문화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930년대 뉴욕에서 생겨난 예술인 노동자 연합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들이 직접적으로 메이커 무브먼트를 주창하진 않았지만, 예술가 스스로가 자신을 노동자이자 생산자로 규정하고 예술을 하는 노동에 대한 주권을 주창했다는 점에서 생산 주체나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메이커 무브먼트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당시 예술인 노동자 연합의 형성은 부르주아 미술을 타도하자는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요즘 현대미술 작가 중에는 공장을 세워 몇 백 명의 인부에게 작품을 만들게 하고 자신은 개념만 제시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런 시스템이 바로 부르주아 미술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벳시 그리어(Betsy Greer)의 크래프티비즘(craftivism: ‘craft’와 ‘activism’을 결합한 문화·예술 운동)에서는 좀 더 구체화된 문화 운동으로서의 제작 문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뜨개질 등 제작 행위를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자는 운동이었는데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전 세계로 확산됐죠.
형 뜨개질을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올해 메이커 페어 서울에서도 경력 단절 여성 한 분이 손쉽게 뜨개질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를 들고 나오셨더군요. 참, 올해 메이커 페어 서울에 관람객이 1만 명 가까이 몰렸다고 해요. 미국에서 페어가 열리면 많아야 10만 명 정도 온다고 하는데 인구를 대비해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수가 몰린 거죠. 아직 작품 수준은 미흡한 편이지만 이런 부분에서 메이커 무브먼트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그렇다면 메이커 무브먼트가 앞으로 산업 체계와 소비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 같나요?
형 1970년대에 전자 경제를 정확히 예견한 MIT의 토머스 말론(Thomas Malone) 교수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과 이탈리아 직물 산업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말론은 그것을 ‘가상 기업’이라고 표현했어요. 예를 들어 제일모직이 이탈리아의 어느 제조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고 치면, 외관상으론 한 업체와 계약을 맺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탈리아 직물 생태계 전체에 외주를 맡긴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산업 시스템 때문이죠. 이탈리아 직물 생태계는 2만 개의 마이크로 팩토리와 200개의 코디네이터로 이뤄져 있는데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기업이 계약을 맺은 뒤 촘촘하게 연결된 2만 개의 마이크로 팩토리 중 해당 프로젝트에 최적화된 제작소에게 생산을 맡깁니다. 그곳에서 단추나 가죽을 생산해 오면 이것을 사용해 옷을 만들어요. 말론교수는 이를 예로 들며 미래 사회의 주도권이 이 같은 가상 기업에 있다고 봤습니다. 메이커 무브먼트는 전 세계를 단일화된 마이크로 네트워크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전 세계 메이커들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진 저 역시 플랫폼에서 메이커 문화의 가능성을 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요즘 특정 플랫폼에 접속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어요. 구글이나 애플의 플랫폼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플랫폼이 메이커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산업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이 외에 메이커를 지원해주는 플랫폼, 팀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 등도 등장하지 않을까요? 플랫폼끼리 연합해 또 다른 형태의 플랫폼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요.
형 메이커 무브먼트의 또 다른 강점은 별도의 시장 조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에요. 애초에 실수요를 기반으로 생산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25년 안에 어마어마한 경제 생태계의 변혁이 일어날 겁니다.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저서〈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앞으로 초과 이윤을 내기 어려운 사회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메이커 무브먼트가 이런 사회를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메이커들이 마진을 낮추고, 그러면 대기업도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마진을 낮출 수밖에 없으니까요. 알리바바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부품을 구매해본 분들은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부품값이 몇 십 원에 불과한데 이걸로 과연 남는 게 있을까 싶죠. 이런 일이 일반화되면 결국 영리 조직은 운영비를 충당하는 수준에 만족하는 사회적 기업과 유사한 형태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는 맹점도 존재합니다. 미국의 기술 중심 구인·구직 사이트 일랜스(Elance)나 오데스크(oDesk)에서 서로 임금이 너무 비교되다 보니 인건비가 턱없이 낮아지게 되는데 이것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가 인건비에 작용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급자족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얼핏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최근 국내에선 IoT 기술을 활용해 수경 재배 방식으로 쌀을 생산하는 방식이 고안됐습니다. 집 안에 이 시스템을 설치해놓으면 쌀뿐 아니라 채소, 과일 등도 평생 재배할 수 있죠. 결국 메이커 무브먼트의 최종적 비전은 산업혁명 이전 단계로 돌아가 경제적 자주권을 가정에 돌려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만 관점을 달리해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주 모 기업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본에서는 담벼락에 자기가 먹을 상추를 직접 수경 재배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식량계의 메이커 무브먼트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분은 이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라보더군요. 당뇨나 고지혈증 등 특정 질환이 있는 이들에게 좋은 농작물의 씨앗을 판매해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메이커 무브먼트를 단순히 대량생산에 반대되는 개념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이를 이용해 고부가가치 사업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생겨날 거예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저는 각 산업군에 따라 메이커 무브먼트가 달리 작용될 것이라고 봅니다. 말씀드렸듯이 식량 등 나의 건강과 직결된 산업에서는 메이커 무브먼트가 좀 더 강세를 띠지않을까 생각하고요.
손 사실 메이커 무브먼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도 많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하위문화와 연계된 풀뿌리 제작 운동이긴 하지만, 메이커 무브먼트가 원래 북미권에서 시작된 문화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물질을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물질문화로부터 스스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르주아들이 허탈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메이커 무브먼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창작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고 노동 주권으로부터의 소외를 보상받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도구로 메이커 문화가 작용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인지한다면 이 문화에 온전히 동조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메이커 무브먼트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한국에서 메이커 무브먼트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애초에 DIY 제작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는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죠.
형 실제로 앞서가는 메이커들은 메이커 무브먼트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초기 혁신이 이뤄질 때는 개인 메이커들이 돋보이기 마련이지만, 결국 파이가 커지면 대기업이 경쟁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이윤이 모두 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사실 생산 능력과 납기 능력, 마케팅, 유통, 고객 응대 등은 개인 메이커가 대기업에 맞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요.
손 제작 문화 고유의 매력이 살아남으려면 제작 문화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본이 유입되더라도 메이커들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형 제 생각에는 쌀처럼 생산품 자체에 혁신성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대기업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 같고,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아이템에서는 메이커들이 대세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짝 아이템처럼 판매하고 나서 인기가 사그라들면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사이클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마치 유행가처럼요. 만약 메이커가 자기 제품을 독점하려고 욕심을 부리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대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오히려 승산이 있다고 보는데, 각국의 메이커들이 그의 디자인을 복제하고 이에 따라 단가가 저렴해질 테니 기업 입장에선 경쟁을 할 수가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진 결국 남과 다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품앗이나 두레 같은 우리 고유의 문화가 녹아들면서 한국형 메이커 문화가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 한국형 메이커 무브먼트의 촉발점은 30~50대 기혼 여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경력 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했는데 셀프 인테리어 팀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삶 속에서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문화를 기점으로 메이커 무먼트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한편에서는 메이커 무브먼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나라가 아직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해요. 사농공상에 관한 시대 의식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멘토링했던 경력 단절 여성들은 3D 프린터에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런 필요성을 자극해주고 정부 정책이 잘 뒷받침되면 의외로 빠르게 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손 제 생각에는 한국의 제작 문화는 일종의 기술 놀이인 것 같아요. 제 주변의 메이커 중에는 기술을 놀이처럼 흥겹게 즐기는 분이 많거든요. 산업에서의 메이커 무브먼트는 제 영역에서의 제작 문화와는 결이 다르겠지만, 제게도 플랫폼이라는 요소는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이것이 일종의 연대의식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역사가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사회운동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 몇 가지를 규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집단적 정체성의 형성이었어요. 저는〈사물학Ⅱ〉전시를 준비하면서 집단적 정체성의 기반이 될 연대 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어요. 보통 단체전에선 자기 작품을 설치하면 철수를 하는데 이 전시에서는 먼저 설치를 마친 팀이 다른 팀을 도와주더군요.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 상대가 날 도와주면 되니까요. 전 바로 이런 점이 제작 문화의 매력인것 같아요.
형 그것 역시 일종의 품앗이 내지 또 다른 형태의 물물교환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진 최근 정부가 각 지자체에 제조 혁신 센터를 활성화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공장이나 수요가 많은 경부선 라인을 따라 서울, 대전, 대구, 울산, 부산 등에서 먼저 메이커 스페이스들이 활기를 띠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이커 스페이스 다음에는 팝업 갤러리같은 형태가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낼 거라고 봐요. 그저 대장간에 불과한 메이커 스페이스와 달리 팝업 갤러리에는 ‘예술’이라는 요소가 녹아 있습니다. 일본 혼다 자동차의 경우 1인용 자동차를 제작해 팝업 갤러리에서 전시하는데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또 다른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손 제 생각에는 콘텐츠가 예술적이기 때문에 팝업 갤러리가 인기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곳에서는 일종의 소셜 액티비티가 일어나죠. 감상을 통한 교감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메이커 스페이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앞서 말씀드린 연대 의식과 교감의 부재 때문 아닌가 싶어요.
형 미국 테크숍은 월 회비가 50만 원이나 되는데 그 비용이 오히려 사람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공짜로 풀어놓은 공간이 오히려 집단적 정체성이나 커뮤니티를 약화시킨다는 거죠. ‘밸브의 신’이라는 IoT 프로젝트로 스타메이커가 된 김규호 박사는 한국 메이커 무브먼트가 성공하려면 소위 뚜쟁이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파티장에 대충 풀어놓으면 알아서 잘 섞이는 미국인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풀어놓는 순간 경직이 돼요(웃음). 디자이너나 개발자도 똑같거든요. 그래서 이들을 연결시킬 허브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연대 의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테크숍을 찾는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면 대부분 킥스타터에 시제품을 올리기 위해 메이커 스페이스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좋은 목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재미 요소 또한 간과할 수 없죠. 결국 하나의 범위 안에서 연대 의식과 목표, 그리고 재미 세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메이커 무브먼트의 이슈 중 하나가 바로 교육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교육 체제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손 오늘날의 창의 교육 인재는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다중 지능 이론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처음에는 스템(STAM,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교육이 각광받다가 예술(Art)이 포함되면서 스팀(STEAM) 교육이 주목 받게 됐죠.
진 엔지니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겐 디자인 교육을,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겐 엔지니어링을 가르치는 융합 교육이 시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소프트웨어를 갖고 노는 것에 친숙한 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오토데스크나 어도비 등 다양한 툴이 있는데도 말이죠. 특히 오토데스크는 자사 소프트웨어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도네이션했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아요. 이건 교육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나오는 소프트웨어 중 하드웨어의 스펙이 높아야 구동되는 것이 많은데 지금 대학에 가보면 컴퓨터가 6~7년 전 사양이라 최신 소프트웨어로 수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문학과에는 아예 그조차도 없고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융합형 창의 인재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혹은 미술관이나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대기업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발 벗고 나섰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메이커 문화가 앞으로 디자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진 제 생각에는 메이커 무브먼트가 활성화되면서 디자인 직군 안에서 새로운 업종이 부상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의 미래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3D 프린터 확산과 맞물려 제품의 원형을 만들어주는 원형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원형사를 만났는데 그곳에서 수요가 워낙 많아 한국으로 돌아올 마음이 없다고 하더군요. 특히 원형사 중에서도 3차원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모델러가 각광받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감각 있고 경험 많은 디자이너는 제작을 코칭해주는 직업으로도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 저는 메이커 무브먼트의 대두를 기점으로 디자인 자체에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났으면 합니다. 메이커 무브먼트로 인해 제작 생태 환경뿐 아니라 시간의 쓰임새나 공동체의 재구성도 일어날텐데 디자인 방법론과 맞물리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디자인이 생산·제조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춰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이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주장했던 ‘노동을 통한 삶의 예술화’를 하나의 덕목으로 여기죠. 하지만 그렇다고 산업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작 문화로 인해 달라지는 환경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형 디자인은 메이커 운동의 선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메이커 무브먼트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기반의 메이커가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것을 인간에 비유하자면 피부 조직 하나 없이 뼈나 핏줄, 눈알로만 이뤄진 신체에 불과합니다. 대중이 보기엔 흉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란 거죠. 앞으론 디자이너가 메이커계에 유입되고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뉴욕도 그런 역사를 거쳐왔다고 하죠. 공간이나 미디어, 페어 등을 통해 조금씩 대중화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형용준 1968년생. (주)메이크위드 공동 대표.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학부와 경영공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싸이월드, 세이큐피드, 쿠쿠박스, 스토리블렌더 등을 창업했는데 이 중 스토리블렌더는 한국 최초로 미국 최대 스타트업 행사 ‘테크크런치 40(Techcrunch40)’에 선발됐다. 삼성전자, SKT, 미국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의 컨설팅을 맡은 바 있고 현재는 신뢰 기반의 메이커 플랫폼을 구축해 론칭을 앞두고 있다.
진동환 1974년생. 중앙대학교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을 졸업했다. 아시아나항공 시스템 엔지니어, 한국 HP 에듀케이션 컨설턴트 등으로 근무했고 최근까지 3D 디자인 및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에서 교육 총괄로 재직하기도 했다. 학생과 교육기관, 스타트업을 위해 여러 3D 프린터 전문 업체와 디자인 싱킹 & 메이커 관련 교육 프로그램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손주영 1978년생.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킹스턴 대학(Kingston University London)에서 디자인물질문화사와 전시기획론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영국 문부성 장학생(예술 분야)으로 선정됐고 2005년과 2006년에는 산업자원부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선정됐다. 지난 2월 열린 전시〈사물학Ⅱ: 제작자들의 도시〉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