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의 실험가들 ⑤] 한복으로 보여준 오래된 미래, 서담화 송혜미

월간 〈디자인〉 Vol.579 | Special Feature

서담화는 새로운 한복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을 더 깊이 파고든다. 한복 브랜드 서담화를 이끄는 송혜미 디자이너는 미세한 차이를 살피고 전통 궁중 복식의 주름을 하나씩 해체해 연구하며 얇은 노방을 여러 겹 포개 새로운 색을 찾는다. 변화를 서두르기보다 오래된 복식 안에 축적된 구조와 기술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쪽을 택했다.

[K-헤리티지의 실험가들 ⑤] 한복으로 보여준 오래된 미래, 서담화 송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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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며 한복의 오늘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국가무형유산 침선장 이수자 김명자의 만남을 계기로 바느질을 익히며 한복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20여 년간 한복을 지었으며 2014년 서담화를 론칭했다. 현재 영부인의 한복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와 화보의 의상을 제작한다. ‘우리의 영역은 좁은 듯하지만 깊다’는 믿음 아래 오랜 복식의 구조와 기술을 탐구하며 한복만이 보일 수 있는 미감을 길어 올린다. @seodamhwa

사실 송혜미가 처음부터 한복에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다소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옷이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국가무형유산 침선장 이수자 김명자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선생 곁에서 원단을 정리하고 옷 짓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석대로 지은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고 바느질을 익히며 한복 디자인의 길에 들어섰다. 직접 그린 디자인을 들고 광장시장과 동대문을 오가며 옷을 만들었고 이후 한복 대여업체 대상의 도매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사업은 성장했지만 자신의 디자인에 다른 브랜드의 이름이 붙는 경험은 ‘내 옷’에 대한 갈증을 남겼다. 2년여의 준비 끝에 자신의 브랜드 서담화를 론칭한 이유다. ‘천천히 담아 조화롭다’라는 뜻의 이름에는 오래 보고 충분히 익힌 뒤 결과물을 내놓는 송혜미의 성정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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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담화의 주요 컬렉션.

서담화 한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방이다. 얇고 투명한 노방은 겉감 아래 감춰지기 쉬운 봉제선과 시접, 면과 면이 맞닿는 자리까지 드러낸다. 그래서 송혜미는 노방이야말로 우리 옷 고유의 선을 가장 잘 보여줄 소재라고 생각했다. 노방 특유의 투명성은 색에도 활용한다. 100가지가 넘는 색의 노방을 마치 물감을 조색하듯 여러 겹 포개면 천과 천 사이에서 빛깔이 섞이며 한 장의 원단으로는 얻기 어려운 미묘한 색과 깊이가 생긴다. 이미 존재하는 한복 고유의 선은 이로써 더욱 뚜렷해지고 색도 한층 풍부해진다. 다만 투명한 소재는 작은 오차까지 그대로 드러나는 만큼 0.1mm의 차이에도 기민하게 반응해 봉제와 간격을 면밀히 살핀다. 그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차이가 켜켜이 쌓여 한복의 선과 실루엣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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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 노방을 겹쳐 깊이 있는 색을 표현한 서담화 컬렉션. 투명한 원단 사이로 색이 중첩되며 청명하고 오묘한 빛깔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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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노방을 여러 겹 포개 완성한 서담화 컬렉션. 얇은 천이 중첩되며 희고 투명한 색조와 풍성한 부피감을 만든다.

형태를 변주할 때는 원형을 더 오래 들여다본다. 어디에서 시작된 디자인인지 짚어줄 수 있는 ‘맥락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전행웃치마를 새롭게 풀어낸 작업에는 약 6개월이 걸렸다. 앞이 짧고 양옆이 길게 떨어지며 여러 겹의 주름으로 이뤄진 전통 궁중 복식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주름을 하나씩 해체하며 구조를 살폈다. 무엇이 이 옷을 전행웃치마답게 만드는지 알아야 비로소 변형할 지점도 찾을 수 있었다. 송혜미가 패션 디자이너와 한복 디자이너의 문법이 다르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복에는 오랜 시간 다듬어진 복식의 구조가 있고 그 안에서 색과 소재를 고르고 선과 비례를 조율한다. 그는 자신의 일을 두고 “좁은 듯하지만 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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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짧고 양옆과 뒤는 길게 늘어지는 조선 시대 궁중 여성 예복인 전행웃치마를 변주한 서담화 한복. 원형의 특징을 살리면서 검은 노방을 층층이 겹쳐 풍성한 볼륨을 만들었다.

송혜미가 오래 들여다본 것은 옷의 형태만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 의상을 맡으면 대본을 읽으며 인물의 성격과 장면을 파악하고 화보에서는 헤어와 메이크업, 촬영 분위기까지 살핀다. 초창기에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옷이 이미지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익혔고 지금은 의상 디자인부터 화보와 영상, 촬영 디렉팅까지 서담화의 시각 언어 전반을 조율한다. 정구호와 함께한 국립정동극장의 전통 연희극 〈단심〉도 이러한 관심이 무대로 확장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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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연출한 국립정동극장 전통 연희극 〈단심〉 포스터와 공연 의상. 서담화는 흑백 대비로 색을 절제하고 풍성한 치맛자락으로 극적 실루엣을 완성했다.

공연에서는 배우가 움직이고 조명이 달라지면서 옷의 선과 실루엣도 끊임없이 변한다. 한복 구조를 바탕에 두되 무대와 움직임 안에서 옷이 어떻게 보일지까지 살폈다. 검고 흰 한 쌍의 옷은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서로 다른 선을 그리며 무대 위에서 대비를 이뤘다. 작업 반경이 넓어지는 동안에도 옷을 만드는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필요한 옷을 그때그때 지으며 한 벌의 완성에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 그렇게 만든 옷은 다음 일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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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과 푸른빛 색감을 조합한 서담화 컬렉션. 색 대비와 비치는 물성을 활용해 치마의 겹과 구조적인 윤곽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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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과 옥빛, 노랑 등 다양한 색의 노방을 포개 미묘한 농담과 깊이 있는 색감을 표현했다.

송혜미는 지난 시간을 두고 ‘옷이 옷을 부른다’고 표현한다. 하나의 작업을 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하고 한 벌의 옷이 새로운 화보와 공연, 사람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이어진 작업 가운데 하나가 2025년 4월 방한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위한 선물 의상이다. 영조의 도포를 바탕으로 변형한 옷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로고의 색을 고름에 적용하고 금박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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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방한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위해 서담화가 제작한 도포. 영조의 도포를 바탕으로 푸른빛 노방을 사용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로고의 네 가지 색을 고름에 적용했다.

해외 인사에게 선보인 이 작업은 서담화가 한복을 세계에 소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해외에 한복을 선보일 때도 송혜미는 상대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미리 바꿔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한복의 원형과 고유한 선을 그대로 보여줄 때 낯선 아름다움이 더 선명해진다고 한다. 이 한복을 어떻게 조합해 입을지는 오롯이 사용자의 몫이다. 최근에는 한복다움을 지키되 새로운 해석의 여지는 남겨두는 서담화의 방식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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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여사가 공식 석상에서 착용한 서담화 한복. 맑은 노란빛과 넉넉하게 펼쳐지는 치맛자락이 단아한 실루엣을 이룬다

“K-컬처의 핵심 자산인 한복이 현대인의 일상과 함께하는 생활 문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혀온 영부인 김혜경 여사도 공식 석상에서 서담화 한복을 입는다. 화보와 공연, 결혼식과 공적 자리까지 서담화의 옷이 놓이는 장면은 다채로워졌지만 송혜미가 옷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재를 매만지고 작은 차이를 조정한 뒤 한 벌의 옷을 완성하는 과정은 늘 같다. 서담화 한복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과 실루엣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인상을 만드는 것은 노방 너머로 드러나는 오래된 선과 이를 정확히 구현한 바느질이다. 서담화가 보여주는 새로움은 이미 오래된 것들 안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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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화보 ‘화용월태: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의 여인’. 흑백 치마저고리, 당의에 꽃무늬를 포개 서담화의 풍성한 실루엣을 해변의 풍경 속에 펼쳐 보였다. ©W Korea

김세음 객원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9호(2026.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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