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시대, 화제의 패키지 디자인 5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언박싱의 힘

언박싱이 강력한 콘텐츠가 된 시대, 브랜드들은 상자를 여는 경험 자체를 디자인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미우미우, 젠틀몬스터, 헤라, 조선미녀, 29CM×나이키 등은 기발한 시딩 패키지로 제품의 가치와 스토리를 각인시킨다.

언박싱 시대, 화제의 패키지 디자인 5

요즘 패키지는 상자를 여는 순간까지 디자인한다. 기대와 설렘, 기발함, 브랜드 고유의 철학까지 담아내는 언박싱은 이제 하나의 강력한 콘텐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아이디어 경쟁은 미디어와 인플루언서를 겨냥한 패션 & 뷰티 시딩 패키지(Seeding Package)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 과자종합선물세트를 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커다란 손잡이를 손에 쥔 순간부터 들떴던 마음은 비닐을 벗겨 상자를 여는 동안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빼곡하게 들어있는 과자들을 하나씩 꺼내며 어떤 것부터 먹을지 고르는 재미도 남달랐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익숙한 과자들이었지만, 그 커다란 상자가 전해주는 설렘만큼은 늘 특별했다.

돌이켜보면 오래 남는 건 물건 그 자체보다 그때의 기분이다. 뚜껑을 열기 전의 기대감, 무엇이 들어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 손끝으로 하나씩 꺼내며 발견하는 재미는 내용물 못지않게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요즘 브랜드들이 패키지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력의 평준화로 좋은 제품은 이미 당연한 전제가 되었다. 이제 진짜 승부는 제품을 처음 마주한 순간 어떤 기분을 남기고, 그 느낌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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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패키지로 화제를 모았던 자크뮈스의 패션쇼 초대장. 출처 자크뮈스 인스타그램

패키지는 그 첫인상을 좌우한다. 제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운반하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브랜드의 개성과 제품의 콘셉트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특히 언박싱 영상이 큰 인기를 끌면서 완성된 모습만큼이나 열고 꺼내는 과정까지 중요해졌다. 자연스럽게 패키지 디자인의 영역도 포장 자체에서 상자를 여는 모든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딩 패키지다. ‘씨앗을 뿌린다’는 뜻의 시딩(Seeding)은 브랜드가 인플루언서와 에디터, 크리에이터에게 제품을 먼저 전달해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만드는 마케팅 방식이다. 여기서는 제품 못지않게 패키지의 기발함이 승패를 가른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언박싱 경험 자체가 곧 브랜드의 독창적인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상자를 여는 몇 분을 특별한 경험으로 바꾼, 인상 깊은 최신 패키지 디자인 5가지를 모았다.

미우미우 플뢰르 드 레, PR패키지

“향수를 샀는데 아이스크림이 왔다”

상자를 열었는데 향수는 없다. 대신 아이스크림처럼 소복하게 담긴 조각용 모래와 스쿱이 눈에 들어온다. 스쿱을 푹 꽂아 한번, 두 번 떠내다 보면 모래 속에 숨겨진 플뢰르 드 레 향수가 깜짝 선물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향수를 샀는데 보물찾기 같은 재미있는 놀이가 덤으로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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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우미우 인스타그램

이유도 재치 있다. ‘망고 포멜로 사고’ 디저트에서 영감받은 달콤하고 크리미한 향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듯한 동작과 손끝의 감촉으로 먼저 상상하게 한 것이다. 덕분에 향을 맡기도 전에 그 맛과 향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더 주목할 점은 올해 공개된 이 시딩 패키지가 2023년 출시된 향수의 인기에 다시 불을 붙였다는 것. 언박싱 영상이 SNS를 타고 빠르게 퍼지며 플뢰르 드 레는 신제품 못지않은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같은 제품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젠틀몬스터, 베지 컬렉션 시딩 패키지

“선글라스를 수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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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젠틀몬스터 인스타그램

시딩 패키지에 진심인 브랜드를 꼽자면 젠틀몬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제니를 비롯한 셀럽들에게 보낸 독특한 아이웨어 패키지가 SNS에서 화제를 모든 뒤, 새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는 ‘이번에는 또 어떤 상자가 올까’ 기대를 한몸에 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번 2026 베지 컬렉션도 마찬가지. 채소의 비정형적인 형태와 색감에서 영감받아 접고 펼치는 폴딩 구조까지 유쾌하게 풀어낸 디자인 감각은 시딩 패키지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시딩 패키지는 채소에 출발한 컬렉션의 상상력을 한발 더 밀어붙였다. 채소 오브제 사이에 폴딩 아이웨어를 숨겨두고 직접 찾아 꺼내는 과정을 마치 채소를 ‘수확’하는 행위처럼 연출한 것. 단순히 예쁜 상자에 제품을 담는 대신, 안경을 꺼내는 행동 자체에 베지 컬렉션의 유쾌한 콘셉트를 입혔다. 거대한 채소 오브제로 채운 팝업과 캠페인, 제품, 시딩 패키지까지 같은 이야기를 이어간 점도 젠틀몬스터답다. 제품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컬렉션 전체를 기억하게 만드는 언박싱이다.

헤라, 센슈얼 누드 스테인 립 PR 키트

“립 틴트를 사탕처럼 고른다”

사탕인 줄 알고 집어 들었는데 알록달록한 립 틴트가 나온다. 헤라는 센슈얼 누드 스테인의 신규 컬러 출시를 기념하며 전 컬렉션을 사탕처럼 하나씩 포장한 PR 키트를 선보였다. 아이디어는 제품의 핵심인 ‘사탕처럼 투명하게 차오르는 수분 윤기’에서 출발했다. 바스락거리는 습자지 포장을 하나씩 풀며 새로운 컬러를 찾는 손끝의 재미도 더했다. 틴트 특유의 맑은 광택과 색감을 친숙한 사탕 이미지로 재치 있게 풀어낸 사랑스러운 패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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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라 인스타그램

조선미녀, 규방 드로어 키트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조선미녀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조금 특별한 K 뷰티 브랜드다. 조선 시대의 미용 문화와 한방 원료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세계 소비자에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알려왔다. 시딩 패키지에도 이런 정체성이 또렷이 담긴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 시장을 위해 제작한 ‘규방 드로어 키트’다. 자수와 공예, 문학 등 여성들의 생활과 예술이 꽃 피었던 조선시대 ‘규방’에서 모티프를 얻어 전통 서랍장을 투명한 아크릴로 재해석했다.

서랍에는 한국 전통 문양을 섬세하게 새기고, 내부에는 대표 제품인 릴리프 선 아쿠아 프레시의 하늘빛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했다. 부드러운 실크 질감까지 더해 서랍을 하나씩 열 때마다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제품을 꺼낸 뒤에는 서랍을 수납함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세심하다. 전통은 새롭게, 브랜드의 뿌리는 선명하게, 쓰임은 오래도록. 좋은 패키지가 갖춰야 할 감각이 이 작은 서랍 안에 모두 담겼다.

29CM x 나이키, 문 슈 스페셜 시딩 키트

“운동화 한 켤레가 아카이브가 되었다”

운동화를 받았는데 흰 장갑이 동봉되어 왔다. 29CM가 나이키 문 슈를 위해 만든 스페셜 시딩 키트는 처음부터 신발을 평범한 상품처럼 다루지 않는다. 세 면의 절취선을 따라 겉포장을 뜯으면 투명 아크릴 케이스에 보관된 운동화가 모습을 드러내고, 동봉된 흰 장갑을 낀 뒤에야 신발을 꺼내볼 수 있다. 스틸 손잡이와 아카이브 라벨까지 더해 마치 박물관 수장고에서 귀중한 소장품을 꺼내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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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즈 인스타그램, 29CM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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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즈 인스타그램, 29CM 인스타그램

이렇게까지 특별하게 다룬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70년대 초 탄생한 문 슈는 나이키 초기 러닝화이자 브랜드의 역사를 상징하는 아카이브 중 하나다. 29CM는 그 가치를 긴 설명 대신 조심스럽게 꺼내는 행동으로 느끼게 했다. 일반 판매용 포장이 아닌 특별 제작한 시딩 키트라는 점도 희소성을 더한다. 같은 운동화도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법. 패키지 하나로 문 슈에 깃든 나이키의 헤리티지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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