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파리로, 동시대 디자인의 새로운 살롱

파리에 진출한 뉴욕 디자인 갤러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 프리드만 벤다가 파리 시장 진출 후 첫 전시를 선보인다.

뉴욕에서 파리로, 동시대 디자인의 새로운 살롱

파리 8구 아브뉴 프랭클린 D. 루즈벨트에 자리한 유서 깊은 아트 어드바이저리 하우스인 피에르 코르네뜨 드 생 시르(Pierre Cornette de Saint Cyr Advisory)의 건물에서 상징적인 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 프리드만 벤다(Friedman Benda)가 파리 시장에 진출한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 ‘살롱 다브릴(Salon d’Avril)’이 그것이다. 해외 갤러리의 파리 진출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뉴욕 특유의 컬렉터블 디자인 철학을 이 곳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화적 대화를 촉발하는 시도라 반갑다.

파리의 ‘살롱’ 전통을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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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Gousset, Courtesy of Friedman Benda

‘4월의 박람회’라는 뜻을 가진 ‘살롱 다브릴’이라는 제목은 18세기 이후 파리에서 이어져 온 ‘살롱’의 전통을 직접적으로 환기한다. 살롱은 단순한 전시 형식이 아니라, 예술과 사상이 교차하고 논쟁이 발생하며 새로운 시조와 흐름이 탄생하는 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역사적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그것을 오늘날의 디자인 언어로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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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Gousset, Courtesy of Friedman Benda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과도한 연출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배치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나는 오브제들이다. 가구와 조형물, 그리고 벽면의 회화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놓여 있고, 각각의 형태와 색이 비교적 선명하게 읽힌다. 특히 현대적인 조형 언어를 가진 작품들의 간결한 실루엣과 강한 컬러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만든다.

세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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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Gousset, Courtesy of Friedman Benda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미샤 칸(Misha Kahn), 새디어스 울프(Thaddeus Wolfe)와 같은 비교적 젊은 세대들과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가에타노 페세(Gaetano Pesce)와 같은 20세기 후반 디자인의 방향을 바꿔놓은 인물들이 함께 놓여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의외의 동질감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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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Fishy © Daniel Kukla, Courtesy of Friedman Benda and Misha Kahn

미샤 칸의 작업은 전통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따르기보다, 재료와 직접 부딪히는 과정에서 형태를 만들어낸다. 점토, 섬유, 금속, 유리 등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들을 즉흥적으로 결합하면서, 형태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미스 피쉬(Miss Fishy)’ 역시 청동이라는 전통적으로 단단하고 기념비적인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결과물은 고정된 조형이라기보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표면은 완결된 상태라기보다 계속 변화할 것처럼 보이고, 형태는 균형보다는 긴장 위에 놓여 있어, 재료의 고유한 성질을 따르기보다 그것을 교란시키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이에 비해 새디어스 울프의 작업은 유리라는 재료의 전통적인 특성 – 투명성, 매끄러움, 완결된 표면 – 을 따르는 대신, 그것을 반복적으로 절단하고 연마하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상태로 변형시킨다. 두꺼운 유리 덩어리를 겹겹이 쌓고, 그 단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의 오브제는 하나의 블록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복잡한 레이어와 깊이를 가진 구조를 드러낸다. 빛은 표면을 단순히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 스며들어, 각기 다른 각도로 굴절되고 분산된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접근은, 에토레 소트사스의 작업과 나란히 놓이면서 흥미롭게 읽힌다. 소트사스는 1960–80년대에 걸쳐 디자인을 기능 중심의 영역에서 해방시키고, 그것을 하나의 문화적 언어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그의 가구와 오브제는 단순히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 색채와 구조, 상징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특히 미국 체류 시기 이후의 작업에서는 팝 아트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디자인이 예술과 동일한 수준에서 개념과 이미지를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그의 작품들 역시 시각적 리듬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가에타노 페세의 캐비넷 역시 또 다른 방향에서 이 흐름을 확장한다. 그는 산업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반복하지 않고, 오히려 레진, 폴리우레탄, 펠트와 같은 재료의 유동성과 불규칙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한 점의 작품, 캐비닛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구조적으로는 가구의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외형은 전형적인 기능적 오브제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표면은 일정하지 않고, 색감은 감정적으로 읽히며, 전체적인 인상은 오히려 조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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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Gousset, Courtesy of Friedman Benda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디자인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들로 연결되는 듯 싶다. 미샤 칸과 새디어스 울프는 재료와 신체, 즉흥성을 통해 형태를 확장하고, 소트사스와 페세는 이미 그 이전 세대에서 디자인의 경계를 넓히며 기능과 표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의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활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디자인을 고정된 규칙에서 벗어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 위에 놓인다.

기술, 장인성, 그리고 새로운 물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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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tructures Adaptation Chair © Adam Reich, Courtesy of Friedman Benda and Joris Laarman Lab

기술, 장인성, 그리고 물질성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리스 라르만(Joris Laarman)의 ‘Microstructures Adaptation Chair(미세 구조 기반 적응형 의자)’는 생물학적 구조에서 착안한 알고리즘을 통해 형태가 생성된 뒤, 첨단 제조 기술로 구현된 케이스다. 구조는 매우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지만, 결과물은 기계적인 인상보다는 오히려 유기적인 흐름에 가깝운데, 라르만의 작업은 ‘제작’이라는 개념을 물리적인 노동에서 디지털 연산과 생성의 과정으로 이동시키면서도 그 결과를 감각적인 수준에서 경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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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옹 바뱅의 캐비넷과 새디어스 울프의 유리 오브제 © Fabrice Gousset, Courtesy of Friedman Benda

페레올 바뱅(Ferréol Babin)의 ‘Lands n°4’는 목재와 마르케트리라는 전통적인 기법을 기반으로 한 후 그 위에 회화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켰다. 장인정신으로 완성된 가구의 표면은 하나의 이미지처럼 다뤄지고, 색과 패턴이 기능적 구조 위에 얹혀지면서 새로운 레이어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업은 가구와 회화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손의 흔적과 미세한 불균질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제작 과정을 완전히 느낄 수 있다. 이는 산업적으로 완결된 오브제와는 다른 느낌이다.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유기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라르만과, 전통적인 수공예에서 출발하지만 회화적이고 동시대적인 언어로 확장시키는 바빈의 작업을 보면, 기술이 단순한 도구로 머물지 않고 형태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장인성 역시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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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Gousset, Courtesy of Friedman Benda

About 프리드만 벤다

2007년 설립 후 역사적으로 중요한 디자이너의 에스테이트와 현대 작가들을 함께 다루며, 디자인을 수집 가능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온 프리드만 벤다는 동시대 디자인 시장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갤러리다. 이번 파리 전시는 그들의 프로그램을 하나의 ‘캡슐’ 형태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동시에, 국제적 활동과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특히 뉴욕과 파리라는 두 도시 사이의 문화적 긴장을 보여준다. 뉴욕이 실험성과 시장 중심의 에너지를 상징한다면, 파리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미학적 권위를 상징하는데, ‘살롱 다브릴’은 이 두 축이 서로를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살롱 다브릴 Salon d’Avril

기간 2026년 4월 7일 – 4월 29일
주소 29 Av. Franklin Delano Roosevelt 75008 Paris
웹사이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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