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F&B 브랜드와 건축가가 만난 공간 3

브랜드가 곧 공간이 되는 유럽의 F&B 인테리어

최근 유럽의 F&B 브랜드들이 단순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음식의 본질을 공간에 직접 새겨 넣는 방식으로 건축가·디자이너와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브랜드와 공간이 하나의 일관된 서사를 이루는 이 접근 방식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인테리어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매장 디자인과는 결이 다르다. 폴란드, 독일, 스페인의 세 사례를 소개한다. 베즈 로드진코(Bez Rodzynek), 폴란드 스코르제보 포즈난(Poznań) 근교 스코르제보(Skórzewo)에...

유럽 F&B 브랜드와 건축가가 만난 공간 3

최근 유럽의 F&B 브랜드들이 단순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음식의 본질을 공간에 직접 새겨 넣는 방식으로 건축가·디자이너와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브랜드와 공간이 하나의 일관된 서사를 이루는 이 접근 방식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인테리어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매장 디자인과는 결이 다르다. 폴란드, 독일, 스페인의 세 사례를 소개한다.

베즈 로드진코(Bez Rodzynek), 폴란드 스코르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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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tryk Lewiński

포즈난(Poznań) 근교 스코르제보(Skórzewo)에 자리한 베즈 로드진코는 25㎡의 초소형 파티세리다. 폴란드어로 ‘건포도 없이’를 뜻하는 브랜드명에는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본질만의 제과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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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tryk Lewiński

이 공간의 설계를 맡은 것은 포즈난 기반의 건축 스튜디오 모드:리나(mode:lina™)다. 파웨우 가루스(Paweł Garus)와 예지 보즈니아크(Jerzy Woźniak)가 공동 설립한 스튜디오로, 이번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모드:리나의 건축가 킹가 킨(Kinga Kin)이 맡았다. 상업, 오피스, 주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두루 다뤄온 모드:리나는 사람이 공간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중심에 두고 설계하는 스튜디오다.

킹가 킨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택한 접근법은 케이크를 이루는 요소들을 하나씩 인테리어 디테일로 옮겨 내는 것이었다. 크림을 짜는 파이핑 기법은 벽과 천장을 감싸는 구슬 모양의 코니스(몰딩)로, 케이크 위의 크림 코팅은 따뜻한 핑크빛 단색 벽면으로 풀어냈다. 카운터 하단은 결이 다른 유리블록을 섞어 마감해 빛이 굴절되며 젤리의 반투명한 느낌을 재현했고, 카운터 상판과 바닥은 부서진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패턴의 타일로 마감했다. 저녁이 되면 파이핑으로 짠 크림에서 영감을 받은 부드러운 곡선의 네온 사인에 불이 들어오며 천장 라인을 강조하고, 이 네온 사인은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시각적 포인트가 된다. 케이크의 각 요소를 공간으로 풀어낸 베즈 로드진코는, 25㎡라는 작은 면적 안에서 브랜드와 건축가가 얼마나 촘촘하게 협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커먼(Common), 독일 베를린

베를린 노이쾰른(Neukölln)의 칼-막스-슈트라세에 위치한 커먼은 낮에는 빵과 페이스트리를 파는 베이커리로, 밤에는 피자 가게로 바뀌는 복합 F&B 공간이다. 창업자 막시밀리안 코렌츠 렘케(Maximilian Korrenz Lemke)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베스트Baest에서 셰프로 일하다 베를린으로 돌아와 이 공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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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emens Poloczek

인테리어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공간·제품 디자이너 탈레아 슈말렌베르크(Thalea Schmalenberg)가 맡았다. 코펜하겐 왕립 덴마크 아카데미에서 석사를 마친 그녀는 호스피탈리티와 주거 공간을 전문으로 하며, 스튜디오 안드라(Andra)를 운영하고 있다.

슈말렌베르크는 브랜드가 내세우는 세 가지 가치인 장인 정신과 로컬 식재료, 따뜻함을 소재와 색채로 직접 풀어냈다. 오랜 시간 발효하는 제빵 방식처럼 서두르지 않는 브랜드의 태도는 따뜻한 레드 톤과 천연 목재, 수공예 목공으로 표현됐다. 공간에 사용된 조명과 소재는 독일·덴마크산을 선별해 적용했는데, 이는 식재료를 엄선하는 브랜드의 소싱 방식을 인테리어에도 그대로 이어간 결과로,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같은 기준으로 공간을 완성했음을 보여준다. 개방형으로 설계한 공간 구성은 ‘공동의 관심사가 모이는 장소’라는 브랜드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브랜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공간의 소재를 일치시킨 커먼은, 디자이너와의 협업이 브랜드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렐레노(Relleno),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서 시작한 파스타 브랜드 렐레노의 바르셀로나 사리아-산트 제르바시 지구 플래그십은 브랜드의 첫 번째 오프라인 공간이다. 배달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온 렐레노가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처음으로 브랜드를 드러내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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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Zarzoso

설계를 맡은 이세른 세라(Isern Serra)는 2008년 바르셀로나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소재와 콘셉트를 균형 있게 다루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능성과 내구성, 따뜻한 감각을 결합한 공간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전통적인 수공예 기법과 실험적인 현대 공정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안드레우 월드(Andreu World), 엑스포르밈(Expormim) 등 스페인의 주요 가구 브랜드들과 폭넓게 협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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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Zarz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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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Zarzoso

이세른 세라가 렐레노와 함께한 프로젝트에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브랜드명 그 자체였다. 렐레노(Relleno)는 스페인어로 ‘속을 채운 것’을 뜻하며, 이세른 세라는 이 개념을 공간 전체로 끌어들였다. 이탈리아산 메탈릭 패브릭으로 감싼 폼 쿠션 모듈이 격자 형태로 벽과 천장 전체를 덮어 속을 채운 파스타의 형태와 질감을 연상시키고, 스테인리스 스틸과 메탈릭 톤의 차분한 색조가 바탕을 이루어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인 오렌지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여기에 RGB 조명이 공간을 주로 오렌지 톤으로 채우며 브랜드의 색채 정체성을 강조하고, 특별한 행사나 이벤트에 따라 색이 바뀌며 분위기를 달리한다. 브랜딩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나로 묶어낸 렐레노의 바르셀로나 플래그십은, 브랜드가 공간을 만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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