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만드는 사람들, 마르텐 바스의 ‘피플스 클락’

네덜란드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Maarten Baas)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새로운 상설 설치 작업 ‘피플스 클락(The People’s Clock)’을 선보였다. 2016년 같은 공항에서 ‘리얼 타임(Real Time)’을 공개한 이후 약 10년 만의 복귀다.

시간을 만드는 사람들, 마르텐 바스의 ‘피플스 클락’

2016년 마르텐 바스가 스키폴 공항에서 선보인 작품 ‘리얼 타임’은 거대한 시계 내부에서 한 인물이 직접 시곗바늘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시계 속 사람의 실루엣은 일정 간격으로 지워지는 선을 반복해 그리며 시간을 ‘유지’한다. 이 시계는 실제 시간을 정확히 표시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철저히 비효율적이고 비기계적이다. 당시 자동화된 시스템 뒤에 감춰진 인간의 개입을 전면으로 끌어낸 이 작품에 수백만 명의 공항 이용객이 시선을 빼앗겼고, 지난 10년간 ‘리얼 타임’은 스키폴 공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스키폴 공항에서 선보인 작품 ‘리얼 타임’. 스키폴 공항 제2라운지에 설치되어 있다. 마르텐 바스는 2009년부터 동명의 연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신작 ‘피플스 클락’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집단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공항 제1라운지에 설치된 이 작품은 가로·세로·높이 약 250cm의 큐브 구조로, 네 개의 스크린이 맞물려 하나의 시계 시스템을 이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문자판이나 기계 장치는 배제하고, 12시간 길이의 영상을 루프 형식으로 재생한다. 영상 속 군중이 스스로 시침과 분침 역할을 수행하고, 초침은 한 명의 퍼포머가 구조의 외곽을 따라 끊임없이 달리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 자체가 가시적인 협력과 반복으로 유지되는 집단 퍼포먼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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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스 클락(2026) by Maarten Baas 사진 Thijs Wolzak

제작 과정 또한 눈길을 끈다. 이번 퍼포먼스에는 스키폴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1000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참여했다. 보안 요원, 수하물 처리 인력, 항공사 직원, 청소 인력 등 공항을 구성하는 다양한 직군이 한 화면 안에서 시간의 단위를 만들어낸다. 촬영은 공항 격납고 내부에서 약 12시간 동안 진행됐고, 카메라는 상공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기록했다. 개별 인물의 서사는 최소화되고, 대신 집단의 리듬과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다.

‘피플스 클락’ 메이킹 영상

이러한 설정은 공항이라는 장소성과도 맞닿아 있다. 공항은 끊임없이 이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대기와 반복의 시간이 지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출발과 도착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며 각자의 시간을 소비한다. ‘피플스 클락’은 이 중간지대를 시각화한다. 시간을 확인하는 가장 기능적인 장치인 시계가, 역설적으로 시간의 물리성과 인간적 기반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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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스 클락(2026) by Maarten Baas 사진 Thijs Wolzak

’리얼 타임’ 연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품은 디자인과 예술, 퍼포먼스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마르텐 바스는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수행을 통해 오히려 시간의 구조를 드러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 체계의 전제를 질문해왔다.

연간 7,0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스키폴 공항은 기능 중심의 인프라를 넘어, 공공 공간 안에서 예술적 실험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온 곳이다. 마르텐 바스와의 두 차례 협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피플스 클락’은 이동을 위한 공간에 ‘머무름’의 경험을 더하고, 그 경험을 통해 일상의 시스템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프랑스의 인류 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는 일찍이 관계, 역사성, 고유한 정체성이 부재한 공간을 ‘비장소’라고 명명했다. 그가 동명의 저서에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기차역 등과 더불어 ‘비장소’의 대표 사례로 꼽은 것이 바로 공항이다. 그러나 마르텐 바스의 작품은 마르크 오제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 보인다. ‘비장소’를 ‘장소’로 전환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디자인과 예술이다.

Interview

마르텐 바스 디자이너·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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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hijs Wolzak

ㅡ 2016년 ‘리얼 타임’을 선보인 이후, 10년 만에 새로운 작업으로 스키폴 공항에 귀환했다.

튤립, 나막신, 풍차 등 전형적인 네덜란드의 상징을 넘어서는, 동시대적이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스키폴 공항의 의뢰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매년 수백만 명이 지나치는 공항 라운지에 ‘리얼 타임’은 적절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 스키폴 공항은 새로운 요청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이번 의뢰는 ‘사람들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ㅡ 두 작품은 모두 시간이라는 주제를 공유하지만, 인상은 조금 다르다. 특히 ‘개인의 행위’에서 ‘집단의 움직임’으로 전환된 점이 돋보인다.

2016년에는 파란 작업복을 입은 익명의 한 인물,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매번 새로운 분을 만들어내는 고독한 존재에 끌렸다. 그 안에는 의식적인 반복과 평온함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다. 그래서 집단적 노력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작업, 함께해야만 무언가를 이루고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피플스 클락’이 비단 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측정된 시간’이 갖는 기묘함, 평범한 사물 안에 숨겨진 인간의 노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간은 전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며, 모두가 동시에 그것에 동의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피플스 클락’은 참여자들이 곧 시간이 됨으로써 이 사실을 드러낸다.

ㅡ 시간은 당신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창작자로서 시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나?

시계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사람들은 늘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어쩌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표현 방식일 뿐이니까. 다만, 직관적으로 어떤 본질적인 것에 닿아 있다는 느낌은 있다. 내가 정말 관심이 있는 주제는 인간적인 측면이다. 시간은 매우 인간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제안해낸 하나의 방식이다. 결국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ㅡ 당신의 작업은 디자인, 퍼포먼스, 영상, 연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오늘날 당신에게 디자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디자인은 내게 하나의 언어이자 프레임워크를 제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정의를 거부하는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 작업은 분명 디자인, 예술, 퍼포먼스, 영상 등 여러 분야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지만,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피플스 클락’이 좋은 예이다. 이 작업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1000명의 사람들과 앞으로 수년간 이를 바라보게 될 수백 만 명의 여행객 사이에 어떤 관계를 연출한다. 내게 이것은 예술 작품인 동시에 ‘기능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클라이언트 스키폴 공항
디자인 마르텐 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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