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의 전시, 〈권력을 위한 건축〉

건축이 전시가 되는 곳

취리히 호숫가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은 전시 〈권력을 위한 건축(Bauen für die Macht)〉와 함께 새로운 시즌의 문을 연다. 이번 전시는 건축과 권력 사이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양가적일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의 전시, 〈권력을 위한 건축〉

취리히 호숫가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은 전시 〈권력을 위한 건축(Bauen für die Macht)〉와 함께 새로운 시즌의 문을 연다. 이번 전시는 건축과 권력 사이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양가적일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건축 도면, 이미지, 모형을 바탕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전간기에 남긴 논쟁적인 설계들을 당시 정치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며, 관람객들이 이러한 얽힘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질문해보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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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가 이상 도시 계획인 ‘빌 라디외즈(Ville Radieuse)’의 모형을 작업하고 있다. 사진 더 뉴욕 타임즈

건축은 언제나 단지 인간을 보호하고 삶을 조직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시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고대 피라미드에서 개선문, 의회 건물,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대기업의 상징적 본사 건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규모와 지속성을 지닌 기념비적 건축은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건축 환경을 여전히 형성하고 있는 오래된 전통이다. 반대로 이러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은 대형 프로젝트, 높은 명성, 그리고 영향력을 얻는다. 역사를 통틀어 이러한 상호적 관계는 압도적인 건축물들을 탄생시켰으며, 때로는 과대망상적 규모로 치달은 프로젝트들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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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mberto Romito & Ivan Šuta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 역시 정치 권력을 가진 인물들과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그들의 이념적 성향과는 무관했다. 그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독일의 나치와는 어떠한 공통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르 코르뷔지에 작업의 이러한 양가적인 측면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희석하지 않은 채 조명한다.

“〈권력을 위한 건축〉은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그것을 더 넓은 역사적·이론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그는 비판적 관찰자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흔적을 남긴 건축가였다.”

크리스티안 브랜들레(Christian Brändle), 취리히 디자인 뮤지엄 관장

종합예술을 구현한 공간,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건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이 파빌리온을 설계하며 ‘이상적인 전시 공간’을 꿈꿨다. 예술, 건축, 그리고 삶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결합하는 공간. 그가 평생 추구했던 “종합예술(Synthesis of the Arts)”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구현된 장소다. 배의 선체를 연상시키는 구조는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비례 체계인 모듈러를 기반으로 설계됐고, 내부를 따라 이어지는 램프와 동선은 그가 즐겨 사용했던 프로므나드 아르키텍튀랄(promenade architecturale), 즉 ‘걷는 동안 건축을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 연출’을 극대화한다. 약 600제곱미터, 총 4개 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 안에서 관람객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체험하게 된다. 천천히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배치된 르 코르뷔지에의 가구와 지붕 정원이 자연스럽게 동선 안으로 스며든다. 꼭대기 테라스에 오르면 취리히 호수와 취리히호른 강변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이 시각적 개방감마저 건축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취리히의 갤러리스트 하이디 베버(Heidi Weber)에 의해 시작된 파빌리온 르 코르뷔지에는 그 자체로 이번 전시의 핵심 전시물이기도 하다.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건축물이자 전후 모더니즘 건축의 선언문과도 같은 이 건물은, 건축을 단지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이상적인 장소를 제공한다. 1967년 개관 이후, 파빌리온 르 코르뷔지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과 사상을 더 넓은 대중에게 소개하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어 왔다. 약 600제곱미터, 총 4개 층에 걸쳐 전시는 건물과 긴밀히 대화하며 전개된다. 또한 이 건물의 건설 역사를 추적하는 별도의 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 파빌리온은 2019년부터 취리히시를 대신해 취리히 디자인 뮤지엄이 공공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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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 ©ZHdK

“이 건물은 내가 지금까지 지은 것 가운데 가장 대담한 건축이다.”

르 코르뷔지에

이상과 통제 사이의 도시 개발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비전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전간기 프로젝트들은 한편으로는 시대를 앞서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자아냈다. 대표적인 사례인 ‘빌 콩탕포렌(Ville contemporaine)’에서 그는 300만 명이 거주하는 수직적 고밀도 도시 구조를 제안했다. 유리 고층 타워들이 도시를 구성하는 형태였다. 더욱 급진적인 것은 그의 파리 계획안 ‘플랑 부아쟁(Plan Voisin)’이다. 그는 파리의 기존 도시 구역 전체를 철거하고, 질서정연하고 기능적으로 최적화된 새로운 도시 풍경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이 도시에서는 질서, 효율성, 통제가 핵심 원리가 된다. 여기서 건축은 도시 사회를 권위주의적으로 재조직하는 도구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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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mberto Romito & Ivan Šuta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전시 1층에서는 두 개의 핵심 작품이 마주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파비용 데 떵 누보(Pavillon des Temps Nouveaux, 1937)은 그의 도시 비전을 시각적 선언문처럼 제시한 작품이었다. 그는 이후 1951년부터 계획된 인도의 도시 찬디가르(Chandigarh)에서 이 비전을 처음으로 실현했다. 이 현대적 수도에서는 질서, 민주주의, 권력 분립이라는 개념들이 건축적으로 구현되고 협상된다. 2층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영감을 준, 권력의 이미지를 내포한 가상의 건축들을 살펴본다. 여기에는 약 1914년경 이탈리아 미래주의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가 설계하기 시작한 ‘치타 누오바(Città Nuova)’가 포함된다. 이는 기술적 역동성과 속도가 강조된 도시 풍경이다. 또한 약 1785년경 계몽주의 정신의 표현으로 프랑스 혁명 건축 형성에 기여했던 신고전주의 건축가 에티엔-루이 불레(Étienne-Louis Boullée)도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건축 일러스트레이터 휴 페리스(Hugh Ferriss)는 극적인 조명 속 거대한 계단식 타워들이 이어지는 ‘메트로폴리스 오브 투모로우(Metropolis of Tomorrow)’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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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아비테 뮈랄(Habiter mural)’. ‘파빌리옹 데 탕 누보’를 위해 제작되었으며, 2012년 아르투어 뤼에그와 페터 하베가 라쇼드퐁 미술관을 위해 재구성했다. © FLC / Pro Litteris,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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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디가르 캐피톨 힐(Capitol Hill)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사진 Galit Seligmann

모더니즘의 빛과 그림자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시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성취만을 기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더 큰 프로젝트를 위해 당시 정치 권력과 적극적으로 접촉했고, 소련 정부와 협업했으며,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와 프랑스 비시 정권 지도자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에게도 접근했다. 전시는 이러한 불편한 역사를 자극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이상주의와 야망, 그리고 정치적 실용주의가 한 인물 안에서 어떻게 공존했는지를 차분하게 드러낸다. 스위스 현지 문화·건축 매체들 역시 이번 전시를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모더니즘 건축이 품고 있던 윤리적 회색지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가 추구했던 ‘효율’과 ‘질서’라는 근대 건축의 언어가 언제 ‘통제’라는 또 다른 얼굴과 맞닿게 되는지를 공간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 〈권력을 위한 건축〉은 과거 건축사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스마트 시티, 데이터 기반 도시 관리가 일상이 된 오늘날, 르 코르뷔지에가 던졌던 질문은 오히려 더욱 동시대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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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mberto Romito & Ivan Šuta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권력을 위한 건축(Bauen für die Macht)〉
주소
르 코르뷔지에 파빌리온 (Pavillon Le Corbusier)
기간 2026년 4월 17일 ~ 11월 29일
큐레이터 및 전시 공간 디자인 크리스찬 브랜들(Christian Brändle)

김정아 해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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